by 김디너
송다빈은 어지간한 건 곧잘 했다. 얼굴은 세상 의욕 없어 보이면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무던하게 해냈다. 정노을은 게임패드를 조작하는 후배 놈을 쳐다보며 실소를 흘렸다. '알긴 알았지만….' "재수 없네, 진짜…." 실언했다. 첫음절을 입 밖으로 냈을 때부터 아차 싶었지만 엎어진 컵에서 쏟아지는 물처럼 마저 흘려버렸다. 정노을은 송다빈의 표정을 살폈다. 녀석
송다빈은 정노을에게 초대 받았다. 정노을이 초대했다. ‘이번 주말에 집 비니까, 놀러 와.’ 송다빈 맞춤형 구종 강의를 하던 중에 갑자기 툭 던지듯이. 투수는 포수가 기습적으로 던진 말을 엉겁결에라도 받을 생각 하지 못하고 얼굴에 물음표를 백 개 띄웠다. 포수는 노트에 끄적이던 9분할 면을 마저 그린 후에야 송다빈을 슬쩍 바라보며 눈으로 웃었다. ‘영상 자
정노을은 자아 없는 투수를 좋아했다. 하지만 투수라는 생물의 특성 상 무자아인 투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정노을이 택한 차선은 [확신 주기]였다. 내 전략이 네 것보다 낫다는 확신, 시키는 대로 던질 수만 있다면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 너의 판단은 그르고 내 판단이 옳다는 확신. 종래엔 투수 스스로의 의지로 정노을에게 모든 걸 믿고 맡길 수
송다빈에게선 샤워실 공용 비누 냄새가 났다. 정노을은 그게 묘하다고 생각했다. 훈련이 끝난 저녁에야 야구부 대부분이 풍기는 냄새지만, 송다빈은 하루 종일 그 향내를 냈다. 빡센 훈련으로 땀범벅이 되어도, 혈중 비누 농도가 몇 %를 차지하고 있기라도 하는지, 녀석에게선 온종일 그 비누 향이 났다. 박스째 들여놓는 싸구려 오이 비누. 정노을이 송다빈의 입학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