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타한] Romanicus despērátĭo

삼아님께 선물해드린 삼아님 댁 아스타브 연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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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왕이 자신의 성에 서 있다. 왕의 맞은 편에는 왕국에서 가장 큰 거울이 존재했다. 그는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비춰봤다.

창백한 피부와 붉은 눈동자를 가진 엘프. 그는 이 왕국의 주인이었다.

다음 순간, 희미한 달빛 한 줌이 그를 비추고,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또 한 명의 인물이 그의 곁에 나타났다.

새하얀 치맛자락과 구불거리는 은색의 머리카락. 은빛 여왕은 왕의 배우자였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춤을 춘다.

연회장을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던 두 사람은 거울 앞에 도달했다.

거울은 허공에 손을 뻗은 채 춤을 추는, 왕의 모습이 비췄다.

 

-이름 없는 바드의 존재하지 않는 동화에서 발췌

프레이고 여인숙을 스쳐지나가는 이는 윔 건널목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많은 편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대게 일주일이면 누가 얼마나 머무는지 기억해두는 게 무의미한 행동이라는 걸 깨닫고는 했다. 얼마 전부터 머물기 시작한 이름 없는 바드도 처음에는 몇 달이 지나면, 잊혀질 인물에 중 하나라 여겨졌다.

그 바드가 여타 손님과 다른 점이라고는 구태여 1층까지 내려와 글을 쓰고 그러다 밤이 되면, 그 종이들을 끌어 앉고 술을 마신다는 것뿐이었다. 그는 술독에 빠진 다른 이들이 의례 그렇듯 의미 모를 말들을 늘어놓고는 했다. 저택, 거울, 달빛. 그가 가장 많이 중얼거리는 세 개의 단어들이었다.

모든 종업원이 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제대로 된 문장이 되지 못한, 단어들의 나열에 불과했으니까.

그가 온전한 문장을 뱉어낸 건 이상할 정도로 손님이 없던 어느 날의 오후였다.

거울에 비치지 않는 여인.

얼마 전에 새로 들어 온 요리사의 아들이 그 문장을 들었다.

그곳에 있던 사람 모두, 바드가 아이에게 윽박을 지르거나 최악의 경우 손찌검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긴장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바드는 부드러운 손길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그는 가지런한 이를 모두 드러내며 웃더니 아이를 그리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손짓으로 불렀다.

아이가 부모를 한 번 쳐다보자, 부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부모의 고개짓을 확인한 뒤에야 바드에게 다가갔다. 아이가 그의 앞에 앉는 것을 시발점으로 다른 이들도 하나둘 눈치를 보며, 근처에 둘러앉기 시작했다.

그는 모두가 자리를 잡은 뒤에야 입을 열었다.

제가 한 귀족의 저택에 방문했을 때 말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누군가 ‘방문’의 의미를 물었지만 그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며 주제를 돌렸다.

그가 바드로서 저택에 초대되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두어 명 정도였다. 남은 이의 절반은 그가 이야깃거리를 위해 저택에 침입했으리라 예상했고 다른 반절은 헛소리를 늘어놓다 잡혀갔으리라 짐작했다.

바드는 셋 중 어떤 가능성에도 긍정하지 않았다. 곧이어 바드의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그게 바드의 대답이라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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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저택의 주인은 창백한 얼굴을 가진 엘프였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붉은 눈을 가진 주인은 여러모로 특별해 보이는 인물이었다. 그는 여러모로 놀라운 남자였다. 누구나 동의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도 외모는 그가 가진 특별함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바드를 가장 놀라게 한 점은 이 저택이 꼭 그를 위해 지어지기라도 한 듯 그와 잘 어울린다는 사실이었다.

그 저택이 얼마나 오랫동안 발더스 게이트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 알고 있으니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데도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와 같은 이들은 대게 자신과 비슷한 이를 옆에 두고는 했다. 그 남자의 경우 은색 머리에 두 눈의 색이 미세하게 다른 부인이 곁에 있었다. 바드는 남자가 여인을 부인이라 소개하기 전부터 그녀가 아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한 눈빛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동반하지 않고는 그려낼 수 없었다.

이쯤에서 부끄러운 이야기를 해보자면, 바드는 그 저택에 들어가기 전까지, 두 사람과 같은 이들은 자기 자신 외에는 무엇도 사랑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권력이란 저주와 같아,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여유를 빼앗는다고 생각했다. 바드는 그제야, 권력이 앗아가는 것이 여유가 아닌 용기임을 깨달았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고 권력 위에 앉은 이들은 자신이 쥐고 있는 걸 잃을까봐 두려워,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은 사랑할 용기를 가지고 있던 셈이었다.

젊고 치기 어렸던 당시의 바드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말았다. 둘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 용기가 정녕 완전한 용기인지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하고자 했다.

그곳에는 로망이 있으니 필히 절망 또한 있으리라.

그 생각이 적중해도 완전히 빗나가도 좋으니 확실한 답을 얻고 싶었다. 바드는 자신에게 허락된 선에서 두 사람을 관찰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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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서 바드는 말을 멈추고 테이블 위의 물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바드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던 사람들이 긴장이 풀려 맥 빠진 한숨을 쉬었다. 어느새 관객이 된 이들이 바드가 뒷말을 이어주기를 기다렸다. 참을성 없는 이들은 탁자를 두드리며 그를 재촉하기까지 했다. 바드는 관객의 그런 반응을 즐기는지 눈동자를 굴려 사람들을 훑었다.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드십니까?

바드는 처음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인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는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한 가지 묻겠습니다. 당신들 발더스 사람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언제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드의 질문에 관객들은 하나둘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내뱉었다. 입을 맞췄을 때, 밤을 함께 했을 때, 연정의 말을 건넸을 때 등 제각기 다양한 답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바드는 그 무엇도 성에 차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바드의 시선은 사람들에게 향해 있으나 그가 바라보는 것이 그 장소에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저택.’ 바드는 자신의 이야기 속 그 저택을, 그곳에 있던 두 남녀를 바라보는 듯했다. 마치 자신이 바라는 대답이 그곳에 오롯이 남아 있다는 듯. 어쩌면 그곳에서 얻은 대답 외에는 무엇도 정답이 될 수 없다는 듯이.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서로를 마주 봤을 때 아닌가요?

그제야 바드의 시선이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는 만족했고 사람들은 다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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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대부분 함께 있었다. 저택의 주인은 아주 드물게 홀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여주인의 경우 그와 함께 있을 때가 아니면, 바드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만 머무는 듯했다.

어쨌거나 바드가 보고하는 것은 이 흥미로운 두 연인의 일상이었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저택의 주인 부부는 언제든 바드를 내쫓을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이었기에 그는 최대한 두 사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주의했다.

하루는 이 웅장한 저택의 외관의 구경하는 척하며, 정원을 산책하는 두 사람을 몰래 훔쳐보았다.

햇빛이 유난히도 따사로운 날이었다. 살랑이는 봄바람이 한 자락 남아 있던 추위마저 사라지게 만든 어느 봄날의 한때를 바드는 흐릿하게나마 기억했다.

두 사람의 손은 맞닿아 있었고 남편이 느릿한 걸음으로 아내를 에스코트하면, 아내는 우아하게 그 뒤를 따랐다. 그가 여인을 이끄는 모양새였는데도, 바드는 어째서인지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한동안 정원을 거닐던 두 사람은 햇빛이 가장 기분 좋게 비치는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햇살이 여인의 머리카락 위로 쏟아지자, 그녀의 은빛 머리카락이 은은하게 반짝였다. 남편이 몸을 돌려 자신의 아내를 마주 봤다. 내리쬐는 햇빛 탓에 그녀의 머리카락은 꼭 자신의 남편처럼 새하얀 색이 되었다. 남편이 입을 열고 내 사랑이나 자기 같은 온갖 달콤한 애칭을 쏟아냈다. 그는 한 차례 말을 멈추더니 짧은 숨을 내뱉고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미사여구로 가득한 그 어떠한 애칭보다 정중하게 그리고 진실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두 사람은 동시에 눈을 깜빡였고 바드는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서도 그 시선 사이사이 묻어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사랑이란 두 사람이 마주 봤을 때 가장 빛을 내며,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바드는 그날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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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택의 주인이 내뱉은 이름이 뭔데요?

아이는 순진한 눈망울을 하고 바드에게 물었다. 바드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같은 이들 중에는 귀족을 언더다크의 드로우만큼이나 먼 존재로 생각하는 이가 있는 반면, 귀족이라는 직함 자체를 흠모하여, 그들의 이름을 줄줄이 꿰고 있는 이들 또한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그 이름을 발음한다면, 저는 두 사람의 삶에 대해 입을 놀린 죄로 목숨이 위태로워질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바드의 반론에 사람들은 말없이 동의했다. 오직 아이만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일 뿐이었다.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사랑이란, 무엇을 닮았다고 생각합니까?

이번에도 들려오는 대답은 다양했다. 불꽃, 밤하늘의 별, 변덕스러운 날씨. 바드는 기대 어린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봤지만 아이는 자신 없는 투로 ‘포옹?’하고 중얼거렸다. 짧은 순간 바드의 눈빛에 실망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아이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 누구도 답을 맞히지 못하자 바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것은 종교와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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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종류에 따라 색을 바꾸는 보석을 본 적 있는가. 바드는 그 저택을 나온 뒤 곧바로 보석상에 들어갔고 가진 돈을 모두 털어 그러한 보석을 구매했다. 그 보석이 두 사람과 닮았다 생각해서였다.

사랑의 형태를 본 이후 바드는 더 열렬하게 두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어쩌면 숭배라고 해도 좋을, 일방적인 경외. 그 보석은 바드에게 신앙의 상징이라 할 수 있었다.

정원에서 본 두 사람이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봄날의 풋풋한 연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면, 샹들리에 불빛 아래 나란히 선 두 사람은 오랫동안 왕국을 통치해 온 왕과 여왕을 닮아 있었다.

연회장을 가득 메운 불빛은 은근한 주홍빛이었다. 직선으로 내려앉은 빛 탓에 두 사람의 얼굴에 약간의 그늘이 졌다. 두 사람은 그 봄날의 산책에서처럼 서로의 손을 마주 잡았다. 사람들은 숨을 멈추고 두 사람을 바라본다. 느리게 흐르는 악단의 선율을 밟고 두 사람이 춤을 춘다. 바드가 눈을 부릅뜬다. 그 순간을 조금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숨을 쉬는 것조차 잊고 두 사람을 바라본다.

저택은 하나의 왕국이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통치자였고 서로를 숭배하는 신도였다.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두 사람의 왕국에는 서로만 존재했을지도 몰랐다.

당신은 존재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광경을 목격했을 때의 황홀경을 아는가.

그 어떠한 신도 관여하지 못할 온전한 순간. 무책임한 신을 대신하여, 서로가 서로의 곁에 있겠다고, 평생을 소비해서라도 당신을 책임지겠다고, 그리하여 신조차 해내지 못한, 무한한 사랑을 기꺼이 내주겠다고 결심한 이들을 보았을 때, 바드는 환희를 느꼈다.

어쩌면, 이는 진실한 사랑의 목격자가 되고자 하는 바드의 망상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들에게 바드가 감히 떠올리지도 못할 그림자가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두 사람은 마침내 바드가 본 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그 종교와 같은 사랑을 이뤄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것은 바드가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그가 감히 의심하거나 평가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 감정은 온전히 두 사람의 것이었기에. 그리하여 바드는 두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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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거울에 비치지 않는 여인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잖아요.

아이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아이의 눈빛에 다시금 기대가 어렸다 마지막까지 미뤄둔 케이크 위의 딸기에 포크를 찔러넣었을 때처럼, 생일 전날 마구 뛰어대는 심장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을 때처럼. 바드는 그런 아이의 기대를 눈치채고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어둠만이 가득한 바드의 시야는 몇 번이고 그랬던 것처럼, 그때의 저택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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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광경은 의도적으로 본 게 아니었다. 바드는 날이 밝으면 주인 부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떠날 생각이었다. 무엇에 대한 감사인지 전할 수도, 정의할 수도 없었지만, 끝내 그렇겠노라 결심했다.

마지막 밤, 바드는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몇 시간을 뒤척였지만, 수마는 찾아올 기색이 없었고 결국 깊은 한숨과 함께 촛불을 들고 복도를 거닐기 시작했다. 연회장 근처를 지나자, 조금 전 봤던 두 사람의 춤이 생각났다. 바드는 연회장 문 근처로 다가갔고 연회장의 문이 살짝 열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 안에 있는 걸까 싶어 바드는 한쪽 눈을 문틈 사이로 가져다 댔다. 그러자 새하얀 머리를 한 남자가 서 있는 것에 보였다. 남자의 맞은편에 있는 거울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창백한 피부와 붉은 눈동자를 가진 엘프. 이 저택의 주인이었다.

다음 순간, 희미한 달빛 한 줌이 그를 비추고, 어둠이 감춰두었던 또 한 명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하얀 치맛자락과 구불거리는 은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여인이 등을 돌리고 있어서인지, 달빛이 너무 희미해서인지, 그 외의 다른 점은 알 수 없었지만. 바드는 그 여인이 주인의 아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드는 마지막으로 두 연인을 보고자 거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햇빛 아래의 두 사람을 봤고 촛불 아래의 두 사람을 봤다. 지금, 이 순간 달빛 아래의 두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하니 묘한 기대감이 생겼다. 하지만 거울에는 오직 남자의 모습만이 비춰줬다. 그 순간 어릴 적 읽었던 동화 속 뱀파이어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붉은 눈, 창백한 피부, 저택의 주인. 거울에 비친다는 점이 이상했지만, 남자는 필히 뱀파이어 군주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인은 그의 스폰일까?

혼란이 바드를 집어삼킨다. 바드가 아는 군주와 스폰은 절대 두 사람과 같은 사이가 아니었다.

군주는 스폰을 귀여워할지언정 사랑하지 않는다. 스폰 역시 군주를 숭배할지언정 사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아니라면, 둘을 정의할 수단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바드는 몸을 돌려 그곳에서 도망쳤다. 다음날 일찍 출발하기 위해 챙겨두었던 짐을 들고 저택 밖으로 뛰었다.

그릇된 이는 누구인가. 군주와 스폰에 대해 정의했던 선인들? 두 사람 사이에서 사랑을 보았던 바드?

바드는 자신이 옳았다고 믿고 싶었지만, 답을 내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바드는 날이 밝자마자 보석을 구매해 손에 쥐고 사람이 많은 곳마다 찾아다니며, 이렇게 묻고 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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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건 누구인 것 같습니까? 이게 저의 마지막 질문입니다.

바드의 질문에 관객들은 답을 내리지 못했다.

저는 당신이 맞았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바드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아이의 맑은 눈이, 아무런 의심도, 망설임 없는 눈빛으로 외친다.

그건 사랑이 맞아요.

바드는 그제야, 자신의 머릿속 안개와 같던 편견의 존재를 인지한다.

이곳의 모든 어른들의 머릿속에 존재했던 편견. 뱀파이어는 사랑의 감정을 알지 못한다. 그 거짓된 문장이 유일하게 침범하지 못한 아이의 입을 통해서 바드는 답을 얻는다.

네. 사랑이 맞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두 사람 사이에 자리 잡은 견고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바드는 품속에서 쓰고 있던 원고를 꺼낸다. 원고의 마지막 문장을 써넣는다. 마침내 그 원고에 불을 붙인다. 원고가 한 줌 재가 되기 직전, 아이는 마지막 문장을 보았다.

자르 저택에 아스타리온 씨와 타한 씨는 서로를 사랑하는 부부였습니다.

하지만 그 문장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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