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현실이 아니었으나, 꿈 또는 허상이라 할 수도 없었다. 바람이 스치되 새가 울지 않고 햇살이 비추되 향기가 없었다. 그러나 생멸이 본디 하나이며, 이승조차 실존하지 아니한다는 일설을 떠올리면 이상하게 여길 이유가 없었다. 그저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면 그만이었다. 백날 삼청동과 종로만 오가던 터에 진고개로는 걸음 할 일이 없었다. 토질이 질고 경사가
온몸이 내리쬐는 일광日光에 절절이 빛바랬다. 썩지 못한 피부가 늦여름 열기 아래에서 펄펄 끓는다. 의식에 오감이 빌붙었다. 뒤범벅된 통증이 눈꺼풀에 추를 얹어 인내의 무게를 어림잡았다. 몸 누인 돗자리에 말라붙은 피가 뒤척임마다 쩍쩍 울부짖으며 갈라졌다. 제깟 것도 몸에서 나온 거라고 여태 생인 줄 아나 보다. 근원에서 유리되어 떠도는 흔적이 꼭 제 모
한정훈은 살았다. 이것을 '살았다'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생각을 하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상태에 있는 것을 죽었다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그것은 연장선이라기보다 되풀이에 가까웠으므로, 다 꺼진 양초를 바라보며 익숙한 온기를 강박적으로 떠올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정훈에게는 '삶'이라는 글자가 어색했다. 희끄무레한 전등 아래 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