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전장을 누비며 수천의 목숨을 거두고 번번이 살아 돌아왔던 너는 결국 피를 뒤집어쓴 야차도, 눈물을 모르는 냉혈한도 아니었다. 까마득한 언젠가처럼 힘겹게 무릎을 꿇은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용서를 구하는 순간 나는 머지않아 벌어질 일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장렬히 죽는다, 늦은 기별을 받았으나 애통하다 기별하기에는 터져 나올 목소리가 수천
"네가 결혼을 한다고?" "예, 이미 날짜는 다 잡았습니다." 수줍게 말하는 사내의 얼굴은 낯선 것이었다. 뺨이 발갛게 물들여지고, 영락없이 아둔한 자의···. 도깨비는 오랜 세월을 살며 멍청해진 인간—인간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도—들을 꽤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이 사내의 표정도 그런 종류와 같았다. 부채를 피는 소리가 둘의 귓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