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브아스] 햇빛 아래의 뱀파이어

발더게3 타브x아스타리온

*수명 짧은 종 타브 (이 글에서는 티플링)

*아스타리온 로맨스-햇빛 볼 방법 찾기 엔딩 에필로그


그 어느 때보다 어두웠던 새벽이 끝났다. 이제 곧 동이 튼다.

타브가 죽은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네더브레인이 바다에 가라앉은 후, 타브는 아스타리온와 함께했다. 초월을 말린 것에 책임감을 느껴서인지, 정말 자신을 사랑해서인지 그땐 헷갈렸지만... 그들이 함께한 백년은 책임감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아스타리온만큼이나 계획 세우는 데에 재능이 없었던 타브가 내밀었던 종이쪼가리가 떠오른다. 햇빛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하며, 햇빛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올챙이의 효과였으니 오멜룸에게 첫번째로 가볼 것, 공작송이를 찾아볼 것, 그리고 드로우 여자에게 피 개조에 대해 물어볼 것... 세번째 메모는 죽이 죽죽 그여지고 아래에 혼자 다녀오겠다고 쓰여있었다. 혼자 보내면 또 이상한 걸 받아서 마실까봐 결국 같이 갔지만... 연구를 도와주는 대가로 타브 피를 한 병이나 빼앗겼지만! 뱀파이어가 햇빛을 받으면 피부가 갈라지고 타오르는 게 피 때문이라는 걸 밝히는 데에 드로우의 지식이 상당한 몫을 하긴 했다.

이 사실을 알아내는 데에만 십년이 넘게 걸렸다. 태양을 견딜 수 있게 도와줄 물약을 만드는 데에는 두 배정도 더 걸리겠지, 하고 생각했던 아스타리온이다.

이제는 그 생각이 택도 없었음을 안다. 타브가 죽을 때까지 아스타리온은 햇빛 아래 설 수 없었다.

타브는 티플링이었다. 길어야 백년하고 오십년 정도 더 사는 종족.

네더브레인을 줘패서 바다에 처박을 정도로 강했던 타브지만, 흐르는 시간 앞에서는 너무나 평범했다. 그의 백 스물 다섯번째 생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타브는 숨을 거두었다. 아스타리온에게는 엘프로써도, 뱀파이어로써도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승천을 포기한 것을 이토록 후회한 때가 없었다. 햇빛 속에서의 모험을 그리워한 적은 있었지만, 초월체가 되지 않은 것을 가슴을 쥐어뜯으며 후회한 적은 없었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으면서도 타브의 설득에 흔들렸던 제 잘못이리라. 살려준 칠천 스폰 중 반절은 아랫도시를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죽었고, 언더다크에 도착한 뒤 또 반절이 적응하지 못하고 죽었는데.

그렇게 죽어버릴 거였다면 차라리...

여러번 젖고 마르고를 반복해 푸석해진 눈밑이 다시 젖어들었다.

차라리, 그 뒤를 상상해본 것 또한 수십, 수백번이다. 타브의 눈가에 주름이 하나씩 늘어나고, 검은 머리카락에 섞여있는 흰 가닥이 눈에 띌 때마다 뱀파이어 초월체인 자신과 스폰 타브의 삶을 상상했다. 문제는 아무리 행복한 미래를 그리려 해도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 어째서인지 스폰이 된 타브는 별로 기뻐보이지 않았고, 초월한 아스타리온도 마찬가지였다. 카사도어가 아무리 웃으라 명령해도 입꼬리를 뒤트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것처럼... 상상속의 그들은 인형놀이를 하는 것마냥 삐그덕대기만 했다. 자신의 가슴에 말뚝을 박는 다른 스폰들과 그들을 막으려던 타브가 먼저 죽는 결말이 그나마 희망적인 버젼이었다. 한날 한시에 떠날 수 있었으니.

홀로 살아남은 아스타리온은 타브가 없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생각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시야가 흐릿해진다.

해가 수평선 위로 올라오며 빛이 조금씩 강해져, 피부가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타브가 쇠약해지기 전... 그러니까 아스타리온을 하루종일 업고 다녀도 쌩쌩했던 그 타브가 아스타리온을 들어올리지도 못하게 되기 전까지는, 학회와 꾸준히 연락하며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 또한 십수년 전이다. 마지막 시험 물약의 효과는 다 져가는 노을빛을 견딜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올챙이가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만졌던 노을빛처럼 붉고, 눈 깜빡하는 사이 사라질 태양의 끄트머리.

두려운 마음에 담장 뒤에 숨어 망설이던 아스타리온을 끌어당기던 타브의 손, 두려운 얼굴에 덮이는 따스함, 붉은 빛에 젖어 나눈 입맞춤을 기억한다. 그렇게 매일 노을을 보러 지상에 올라갔던 시간들을 기억한다. 이른 아침해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일출을 기다리던 밤을 기억한다. 피부에 뜨겁게 꽂히는 햇빛이 오랜만이라 그리 느껴지는 것이라며, 부득불 버티다가 타브에게 들려 돌아왔던 날을 기억한다. 그 때 갈라져 떨어진 살점이 남긴, 이제는 옅어진 흉터를 손끝으로 더듬어본다.

혼자서 보는 태양은... 야속하게도 아름다웠다.

뜨거운 빛이 자신을 삼키길 기다리며, 아스타리온은 눈을 감았다. 더이상 뱀파이어의 눈은 그 빛을 받아낼 수 없었기에.

조금만 참으면 암전, 평화, 사랑하는 자가 죽어버린 세상과의 안녕.

제 몸이 타들어가며 피어오르는 연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태양은 눈꺼풀 뒤의 잔상조차 찬란했다.

다시 눈을 뜬 아스타리온은 라섄더의 피를 훔치고 달아날 때보다도 빠르게 뛰었다. 한발짝이라도 모자라다면 이번에 무너지는 것은 건물 따위가 아니라 자신이었으니까. 죽을듯이 뛰어 어두침침한 골목에 몸을 숨겼다.

그림자 속으로 차마 다 들어오지 못한 발끝이 빛에 붙잡혔다.

기다려줄 수 있지?

나즈막히 중얼거리고, 태양을 등지고 다시 뛰어가는 아스타리온.

어쩌면 아스타리온은 죽을 때까지 정오의 태양 아래 설 수 없을 것이다.

그런들 어떠랴, 태양은 늘 그곳에 있을 것이다. 하늘 높이 떠서 드러난 모든 곳을 샅샅이 밝히는 빛은 언제까지나 그곳에 있을 터.

피하는 법을 몰랐던 자를 기억한다. 그의 삶에 드리운 한줄기 빛이었던 누군가를.

태양이 떠오르는 한 아스타리온은 타브를 느낄 수 있었다.

때가 되면, 햇빛을 부서지도록 끌어안고 사랑을 속삭이리라.

만지지 못한 시간동안 쌓인 마음을 모두 나누어주리라.

그 빚보다 환하게 웃어주리라.

메마른 얼굴에 미소가 살풋 떠올랐다.

🌅

카테고리
#2차창작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