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핀/막시이스] 커미션 글 백업

룬의 아이들 블러디드

연성백업_2차 by 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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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미션으로 작업했던 룬의아이들 블러디드 / 막시이스(막핀) 글입니다. 업로드 허락을 받아 백업해둡니다.

블러디드 5권 분량 연재분이 나오기 전에 썼던 글이라, 4권까지만의 해석이 들어가 있으니 관련으로 참고 부탁드립니다. (개인 해석 많음)

+추가) 몇년 전에 썼던 글이라 펜슬에 재업로드하면서 약간 문장을 다듬어 업로드합니다. 4권 이후 연재분에서 막시민의 글씨체 설정이 나와서 관련으로 약간 덧붙여두었습니다. ^^)


수업은 나가지 않아도 술자리만큼은 일단 한 쪽 발부터 들이밀 정도로 술을 굉장히 사랑하는 막시민 리프크네가, 무려 친구의 공짜 술 권유도 마다하고 어디론가 급하게 사라지는 일은 당연히 흔하지 않았다. 우연히 근처에 있었다는 이유로 운좋게 그 광경을 관전한 몇 명의 네냐플 학생들은 그 사건을 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받아들였다. 우습게도 막시민이 없어도 술집 테이블의 관심사는 결국 막시민이 된 셈이다.

 

학업을 소홀히 한 죄로 한 교수한테 단단히 찍혀 술집에 가면 생쥐가 되는 저주를 받는 마법에 걸렸다던가, 혹은 아노마라드에 소문이 자자한 대마법사로 유명한 스승과 순도의 마나를 정제하기 위해 금주를 하고 있다던가. 아니면 사실은 금제의 마법에 손을 대는 바람에 저번에 네냐플까지 찾아온 심볼리온과 한 판 붙고 돌아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전혀 막시민의 음주 여부와는 상관 없는 소문까지 진위 여부가 불분명한 몇 이야기들이 그들이 앉은 자리에서 왁자지껄하게 쏟아져 나왔지만, 술에 취한 그들에게는 그저 자신들이 느끼기에 흥미로운 사실을 그럴듯하게 떠드는 것이 더 재미있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취한 그들은 막시민이 왜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떠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다가, 내내 그 이야기만 밤을 지새도록 할 정도의 가십거릿감도 아니었기에…. 그렇게 술을 끔찍하게도 좋아하던 선배가 그 자리에서 도망간 것처럼 보였던 일은 점차 그들의 인지 밖으로 사라져 갔다.


헤이마치 마을에서 교정까지 네 발로 기어올 정도로 거나하게 취한 주정뱅이들도 기숙사로 오던 길 어딘가에서 곤히 곯아 떨어져, 새벽녘의 기숙사는 평소와 같이 조용했다. 그런 고요함의 적막을 깨듯 탁, 하며 불을 피우는 소리와 함께 어둑한 방의 책상에 놓여 있던 양초에 불이 옮겨 붙었다. 다른 방과 다름 없이 새벽이 내려앉았던 검푸른 방이 은은한 크림색으로 빛났다. 그 곳을 밝힌 방의 주인, 막시민은 제 할 일을 다한 성냥개비를 훅 불더니 마룻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는 끼익 소리가 날 정도로 의자를 당겨 책상 앞에 앉았다.

명색이 네냐플의 학생이니 광원 정도는 마법으로 만들어 내는 건 그 천하의 낙제생 막시민도 할 수 있었지만, 그에겐 책상머리에서 본인의 일을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오래 마법을 지속할 여유도 기술도 없었다. 굳이 기술이 있다고 한다면 마법하고는 영 상관 없는, 기름을 치지 않아도 곧잘 돌아가는 혓바닥 정도였으며 오히려 누군가가 보기에는 그 행위 자체가 마법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말재주에 비하면 막시민의 글 솜씨는 지극히 평범하다 못해 재주라는 말도 무색할 정도였다. 내용은 둘째치더라도 뭐라 썼는지 알아보기 어려운 악필인 점이 한 몫했다. 심지어 타의로 네냐플에 입학한 막시민은 딱히 학업 성취에 흥미를 두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으니 그 끔찍한 필기 실력이 나아지는 일은 없었고, 이렇게 진득하니 앉아서 무언가를 써야 할 때 내내 골머리를 앓곤 했다.

굳은 결심을 한 막시민은 책상의 서랍을 열어 노란 빛이 도는 종이 묶음을 몇 장 꺼냈다. 티치엘에게서 시험 공부를 해야 하니 메모할 거리를 가져오라는 말을 듣고 기숙사 같은 방의 란지에가 사 왔던 린디즈 절임을 쌌던 종이 봉투를 아무렇게나 찢어다가 온 막시민을 보고 깜짝 놀란 티치엘이 공부에 쓰라며 건네 줬던 것이었다. 받을 그 당시만 해도 필기를 하기에 꽤 좋은 질의 종이였지만 주인이 막시민으로 바뀌자마자 먼지들의 무덤이라고 봐도 무방할 그의 책상 서랍 속에 방치되다시피 보관된 탓인지, 표면은 메마르다 못해 잔뜩 바삭거리는 소리를 내는 자질구레한 잡기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글만 쓸 수 있다면 이게 무슨 종이던, 사실은 헝겊이던 별 상관이 없었던 막시민은 안으로 둥글게 말린 종이를 주먹을 꾹 쥐고선 몇 번 밀어 펴더니, 먼지가 묻어 있는 볼품없는 깃펜을 꺼내 들었다.

 

아쉽지만 막시민이 이 새벽에 술도 마다하고 책상에 앉아 종이를 꺼내 든 이유는 공부가 아니었다. 깃펜에 잉크가 마를 날이 없단 말보다 묻을 날이 없단 말이 잘 어울리는 막시민이니만큼 그가 공부가 아닌 무언가를 쓰러 책상에 앉아있기란 더욱 기적과도 같은 일이긴 했다. 만일 루시안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막시민이 어떻게 기저귀가 되냐고 되물어 오는 바람에 괜히 뒷목만 내내 잡았을테지만 지금 이 공간, 즉 도토리 빌라에는 막시민 외에는 다행히 깨어 있는 자는 없었다.

 

막시민이 흔히 네냐플 전액 장학생 혹은 낙제왕, 술집 탐정 등등으로 불리는 것 외에도 또 다른 감투가 또 있었으니 그것은 막시민이 리프크네 가의 실질적인 가장이자 장남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막시민은 이렇게 주기적으로 코츠볼트에 있는 자신의 가족, 즉 동생들에게 보낼 편지를 쓰곤 했다. 6명이나 되는 동생들의 신변에 대한 약간 진지한 물음이나 도토리 빌라를 같이 쓰는 한 구성원이 와인을 산딸기 주스인 양 주류반입 금지인 기숙사까지 대담하게 들고 와서는(그 대담한 구성원은 키가 꽤 크고 숯가마에서 막 꺼내온 큼지막한 숯처럼 생겼으며, 자신은 굳이 따지자면 장작보다 부지깽이에 가까운 자이므로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굳이 덧붙였다.) 같이 몰래 홀짝대며 마셨단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교수의 연구실에 숨어 든 도둑을 얼떨결에 잡고 보상으로 받은 큼지막한 은 한 덩이의 값을 조금이나마 더 받으려고 헤이마치 마을 구석구석의 전당포란 전당포는 죄다 발품을 팔아서 얻어 낸 놀랍고도 멋진 성과를 조금이나마 나눠서 집에 부친다는…. 겉보기에는 심술궂은 생색내기에 가깝지만 뜯어보면 꽤 다정한 이야기까지 동생들의 앞으로 줄줄이 쓰여졌다. 

 

코츠볼트야 눈이 띄일 정도로 재미난 건 딱히 없는 촌구석이기도 하고, 이 정도면 동생들이 일주일 정도는 편지의 내용을 곱씹으며 킬킬거리며 지내리라. 막시민은 약간 뿌듯한 마음으로 대충 마무리 인사를 쓰고 난 뒤 세 번 정도 대강 접은 편지를 자신의 집 주소가 적힌 봉투에 넣고는 글을 쓰는 내내 타고 있던 초를 들어올려 봉투 앞쪽에 촛농을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편지의 내용에서도 큰 존재감을 뽐냈던, 300엘소가 든 노끈으로 단단하게 입구를 묶은 헝겊 주머니 옆에 편지 봉투를 내려놓았다. 그러다 문득 막시민은 책상 한 구석에 놓인 존재를 응시했다.

그건…. 아직 주소를 적지 못한 빈 편지 봉투였다.

그 봉투 근처에는 자신의 글씨체와 달리, 또박또박 무언가를 힘주어 적은 글자가 보이는 종이 쪽지가 놓여 있었다. 막시민은 그걸 보고선 괜히 뒷머리를 벅벅 긁다, 앉은 자세를 좀 더 비딱하게 바꾸더니 책상 위의 종이 쪽지를 한 손으로 낚아 채 들었다.

 

'…….'

 

그 녀석에게는 별로 쓸 만한 이야기도 없었다. 난 잘 지낸다. 너도 잘 지내라 정도면 사실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막시민은 펜을 들어 빈 편지 봉투를 받을 수신자에게 보낼 인삿말을 적는 대신, 이름과 주소가 적힌 종이 쪽지만 꾸깃하게 손으로 굴렸다. 그토록 쉬운, 별 것 아닌 말이 이렇게 선뜻 하기 어려운 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이스핀. 원래 그가 가진 이름은 더 길고 거창하지만, 본명을 알고 난 후에도 막시민은 계속 샤를로트를 이스핀이라고 불렀다. 막시민이 손에 든 쪽지는 오를리 궁으로 직접 편지를 보내면 자신보다 먼저 편지를 뜯어 그 안의 내용물을 빠짐없이 해독하듯 읽는 사람이 열 명 이상은 나타난다고 불평을 하며, 연락을 하려면 이쪽으로 보내 달라며 이스핀이 막시민의 손에 쥐어 준 것이었다. 아마도 이 주소지는 그의 가신의 저택 중 하나겠지만…. 오를란느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이스핀이 사실 그 대공국의 대공녀였다는 것 외에는 거의 알고 있지도, 관련으로 깊게 알 생각도 없던 막시민의 눈에는 이 쪽지는 그저 그 때 이스핀이 자신에게 남기고 간 마지막 흔적일 뿐이었다.

 

이제 이 종잇조각은 이스핀의 손을 떠나 자신에게 더 오래 머물러 있었지만 헤어지던 그 날, 자신의 손 끝을 스치고 갔던 이스핀의 손의 온기가 이 쪽지에도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아 막시민은 볼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손에 꾸욱 쥐어보곤 했다. 이스핀과 자신을 스치다 못해 흠뻑 적셔버릴만큼 큰 파도같은 사건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된 뒤, 다시 오를리로 돌아간 이스핀은 네냐플에 있는 막시민에게 몇 번 편지를 보냈지만, 막시민은 그때마다 답장을 쓰지 못했다. 술기운으로 대강 쓰고 치워 버릴까도 몇 번 고민했지만 취한 사이 자기도 모르게 낯뜨거운 말을 적어버릴까봐 결국은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마시는 것조차 포기하고 말았다.

 

'막시민 리프크네. 왜 이런 시시하기 짝이 없는 일에 빌빌대는거냐.'

 

막시민은 쪽지를 든 손을 약간 구깃하게 쥐며 약간 자학적인 생각에 잠겼다. 이스핀에게 있어서 나는 뭘까. 간혹 편지를 보내 주니까 나쁘지 않은 관계인 건 맞을테다. 하지만 서로 이해 관계가 닿아서 당분간 행동을 같이 했을 뿐이지 사실은 그리 일상에서 접점도 없는 사람인데다가, 심지어 이스핀은 타국의 사람이었다. 작정하고 마주치지 않으면 앞으로 살면서 얼굴을 마주할 일은 없을 테지. 게다가 같이 휘말렸던 사건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된 뒤 자신과 이스핀은 원래 있던 장소로 다시 돌아갔다. 

즉, 서로 제 갈 길을 갔다. 일이 끝나면 이런 관계가 될 거라고 늘 머리 속에서 생각해 왔는데도 자신은 대체 무엇을 두려워 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몸이 귀찮은 일은 어릴때부터 정말이지 딱 질색이다. 남에게 무슨 곤란한 일이 생기던 말던간에 그건 남의 일일 뿐, 흙먼지가 이는 바닥에 자갈처럼 구르는 한이 있더래도 자신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당시 이스핀과 지내면서 휘말렸던 여러 사건들을 생각하면 막시민은 간혹 마음 한 구석이 한껏 들뜨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물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 사건의 중점에 서 있는 경우가 많았고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도 기가 막힌 재주가 있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렇게 모험을 즐기는 타입도 아니었기에 다시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좋다며 흔쾌히 따라나서진 않을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 그렇게 오래 같이 있지도 않았는데, 단지 곁에 그 애가 없을 뿐인데 왜 이런 묘하게 허전한 기분을 느끼는 것인지는 영 알 수가 없었다. 

 

이스핀이 보내주는 편지에 자주 등장하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깃거리에는 더 이상 막시민이 등장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편지를 주고 받는 와중에는 늘 그럴 것이다. 이스핀의 주변 인물에서 제외되고 완전한 관전자가 된 자신이 막시민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편지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자신을 대체할 새 파트너가 이미 곁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까지 생각이 미치자 막시민은 입술을 크게 비죽거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이쯤 되면 나도 조군 놈이랑 다를 것도 없군.'

 

막시민은 이전에 리체에게 편지를 쓰다 머리를 감싸 쥐던 자신의 친우가 이 상황에 겹쳐 생각나기라도 한 듯 짜증이 난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책상에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헝겊을 집어 들곤 그렇게 더럽지도 않은 안경만 여러 번 벅벅 닦았다. 그러나 이렇게 깨끗하게 안경을 닦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인지 괜히 막시민은 화풀이를 하듯 애꿎은 헝겊만 바닥으로 홱 내던지고는, 책상 앞을 박차고 일어섰다. 

그렇게 오늘도 막시민은 이스핀의 편지에 결국 답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희끗하게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결국 자신이 보낸 편지의 답장을 계속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스핀이 탐정을 만나러 기습적으로 네냐플에 방문한 건, 이 막시민의 쓸데없고 우스운 고뇌로부터 약 사흘이 지난 뒤였다. 

막시민의 마음이 들뜰만한 일이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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