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h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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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네로

Astra Space by 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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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테레고 기반 짧은 글 (퇴고X) 급전개 죄송…

"뭐? 조직에서 빠지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네로가 얼이 빠진 채 되물었다. 창밖에 줄줄이 늘어선 화등의 빛에 눈이 시려웠다.

"농담이지?"

"아닌 거 알면서."

브래들리는 그런 네로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봇짐을 꽉 여몄다. 얇디얇은 옷 겨우 두어 가지에 푼돈이 든 지갑, 그 이상이 들어갈 틈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간소한 짐이었다. 그걸 가볍게 둘러메고 거리로 빠져나가려 드는 브래들리에게는 망설임이라곤 없는 듯 보였다.

"잠깐… 그게 무슨 뜻인지 알잖아, 그 벤티스카라고. 널 끝까지 쫓을 거야."

다급하게 문 앞을 막아선 네로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제정신인가 이 자식. 거칠게 손등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는 브래들리를 향해 침이라도 뱉고 싶은 심정이었다.

돈 스노우를 한 대 패주고 싶다는 소리가 브래들리의 입에 붙었을 무렵에도, 단순히 질이 나쁜 농담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물론 패밀리의 분위기에 대해서는 네로도 불만이 없지만은 않았지만… 별수가 있었겠는가. 그저 참았다. 다른 이들이 그리했듯이. 조직은 강대했고, 그 규모는 거리의 다른 어떤 패밀리와도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러니 순종하는 것 외의 선택지라곤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야…

"어디 한 번 쫓아보라지 그래."

배신은 곧 죽음이니까.

아니, 브래들리… 넌 모르고 있어. 그 말의 의미를. 조금도! 네로의 혀끝에 원망 섞인 소리들이 마구 맴돌았다. 꼭 쓰디쓴 약을 씹은 것처럼 네로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진다. 질끈 감은 눈꺼풀 사이로 빛 한 줄기도 스미지 않을 기세로. 한껏 가라앉아 감정을 읽어낼 수 없는 목소리로 브래들리가 말했다.

"왜 네가 두려워하는 거야."

"……."

"정에 약한 줄은 알았지만 이래서야. 너야말로 그만두는 게 어때."

"내 얘기로 말 돌리지 마…."

등 뒤로 꾹 눌러쥔 네로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그걸 보기라도 한 것인지, 금방이라도 문 앞의 네로를 밀치고 떠날 기세였던 브래들리는 문득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문틈으로 불어오는 미적지근한 바람이 기이했다.

"…그냥, 이상하잖냐."

브래들리가 미동도 않은 채 담담히 말했다.

"아무 사이도 아닌데."

…실로 그랬다. 조직에서 의무적으로 짜맞춘 2인 1조의 파트너 관계. 우연히도 합이 잘 맞는 덕에 벤티스카의 두 사냥개こま犬 같은 우스운 별명이 붙기도 했다지만, 딱 그 정도일 뿐인 관계였다. 브래들리와 네로는 서로와 사적으로 엮이려 들지 않았다. 조직 내의 암묵적인 규칙 때문만은 아니었다. 갑작스레 가빠진 호흡에, 네로는 고개를 푹 떨구곤 한숨을 삼켰다.

상대가 껄끄러웠다. 참기 어려울 만큼.

언젠가 한 번, 지독하게도 끈질긴 악운 탓에 어쩔 수 없이 브래들리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었다. 네로는 그 밤의 불쾌한 공기를 천천히 곱씹었다. 일터에서의 브래들리는 난폭하면서도 언제나 냉철하게 가라앉아 있고, 그런 주제에 무모하기 짝이 없어서, 네로는 언제나 그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동분서주 굴러야만 했다. 이어지는 반복에 겨우 그의 변덕을 한 꺼풀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어도 그런 뻔한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브래들리는 툭하면 자신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튀곤 했다. 네로는 그럴 때마다 잔뜩 질린 표정으로 입술을 짓씹으면서 생각했다. 꼭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군다고.

그래서 네로는 브래들리의 방의 쪽문이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생활감이라곤 조금도 없는 휑한 방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조소를 띄우고 있었다. 피범벅인 앞섶을 그러쥔 채 생각했다. 아무리 상황이 안 좋았다지만 집의 위치까지 남에게 까발리게 되다니, 지금쯤 꽤나 치욕을 맛보고 있으리라고.

하지만, 태연하게도 문을 열어젖힌 브래들리의 뒤로 묵은 기름의 냄새가 났던 것이었다.

고소한 올리브유의 향이었다. 그 순간 네로의 머릿속에서 긴장의 끈 하나가 툭 하고 풀린 듯했다.

케케묵은 먼지와 곰팡내 속에서도 의외로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는 가구들과 옷들이 눈에 띄었다. 베란다 맞은 편의 작은 좌식 탁자 위에는 읽다 만 잡지가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이부자리는 반듯하게 개어져 있지는 않았지만, 무난하게 널부러져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야말로 사람 사는 집이었다.

아무 데나 앉아 있어. 아래에서 밥 가져올 테니까. 브래들리는 그렇게 말했다. 꼭 오랜 친구를 집에 초대한 것처럼.

하숙의 형태로 운영되는 이 단칸방들의 주민들은 저녁이 되면 아래층에서 나누어주는 식재를 한 냄비씩 들고 계단을 오른다. 브래들리는 직접 요리를 해야 하는 게 불만이라는 듯 툴툴대면서도 묵묵히 튀김옷을 입은 닭고기로 가득 찬 냄비를 먼지 쌓인 조리대로 옮겼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만 보던 네로는 무심코 실언을 하고야 말았다.

…내가 튀겨줄까, 라고.

명백한 실수였다. 네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일을 후회했다. 사실은 서로의 영역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언제든 자신의 등에 칼을 꽂아 넣을 수 있는 상대가, 여차하면 자신의 칼로 쑤셔버리게 될 상대가, 밥도 먹고 요리도 하는 일상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실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브래들리의 경우, 그는 그런 종류의 선을 긋기에 능했다. 하지만 네로 터너는 어떤가 하면, 물론 브래들리처럼은 할 수 없었다. 그러니, 브래들리가 자신의 요리를 칭찬하며 맛있게 먹는 모습 따위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방을 선뜻 내어주면서도 브래들리는 네로에게 단 한 칸의 공간도 내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를 순간이라도 얕보았던 네로는 되려 브래들리를 제대로 마주 보고야 말았다. 네로는 이 어쩔 수도 없는 불공평함, 다른 말로 치사함에 헛웃음을 흘렸다.

"알아, 붙잡을 명분 하나 없는 거…."

"……."

"내가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 성정이란 것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잘 알아."

"…그래서."

그냥……. 네로의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전해야 할지 조금도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아닌 사이에, 네 비참한 꼴을 보고 싶지 않다 쏘아붙이는 건 자신의 자존심을 깎는 일인 것도 같았다.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감정이 으레 그렇듯이. 그대로 입 밖으로 낼 수가 없는 저주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울음이 샐 것처럼 네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물이 배어 나올 것만 같았지만, 실제로 방울이 맺히는 일은 없었다. 느릿하게 고개를 저어도 그 감각은 바뀌지 않았다. 언뜻 보기엔 분한 건지 슬픈 건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잔뜩 목이 멘 소리로, 네로가 말했다.

"나는……."

눈앞이 핑 도는 감각에 바닥을 향해 고개를 처박은 네로에게는 물론 브래들리의 모습이 보이지도 않았다. 여느 때보다도 당황으로 가득 찬 그의 얼굴도, 순간 머뭇거리다가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의 발걸음도.

어느새 네로의 발치에까지 걸음을 옮긴 브래들리는, 답지 않게도 양팔을 벌려 네로를 꾸욱 눌러 안아주었다. 내팽겨처진 봇짐이 바닥을 소리 없이 굴렀다.

"알았어. 떠나지 않을게."

"……."

"네 입장을 고려 안 한 게 실수였다. 인정할게."

브래들리가 형제를 대하듯 네로의 등을 천천히 두드렸다. 어린아이를 달래어주는 듯한 손길이 참 어울리지 않아 우스웠다. 까슬까슬한 손 거죽이 옷깃의 표면에 달라붙어 스친다.

"여기서 내가 떠나면 곧바로 네가 의심을 사겠지. 입장도 난처해질 테고. 조금 더 상황을 보고 결정할 일이었어."

그게 아니잖아. 네로가 숨을 삼켰다.

"…화 풀어, 파트너. 내가 경솔했다니까."

나한테 사과할 일이 아니잖아. 느릿하게 전해지는 진동이 심장의 박동과는 엇박자로 울렸다.

아무 사이도 아닌데 너야말로 어째서 내 기분 같은 걸 신경 쓰는 거야, 라는 말은 차마 뱉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 질문의 답은 분명 브래들리도 모를 테니까. 네로는 대답 대신 브래들리의 몸통을 슬쩍 밀어냈다. 브래들리 또한 아무런 대꾸 없이 양손을 들어 보이며 천천히 물러나 주었다. 아주 얄팍한 그들의 관계와도 같았다.

네로는 메마른 눈가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니, 나야말로."

브래들리는 뭐에 사과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호쾌하게 웃었다. 당연하게도 내일이 이어질 것처럼.

"다음에는 네 집에서 튀겨줘. 내일 보자고, 파트너."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이별이었다.

*

"브래들리가 우리네를 배신했다네."

네로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상석에 앉아 네로를 내려다보는 돈 스노우의 시선이 싸늘했다.

"그대는 놀라지 않는구나. 그가 배신할 것을 알고 있었는고?"

"아니오, 그런 예감이 있었을 뿐…."

"그걸 보고하지 않은 것도 용서받지 못할 일임을 잘 알고 있을 테지."

질타하는 듯한 말에 네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넋이 나간 사람처럼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난감하다는 듯, 벤티스카의 보스는 그와 쏙 빼닮은 어린아이를 끌어안은 채 한숨을 푹 쉬었다.

"뭐, 됐네. 그 책임은 파트너였던 그대가 온전히 지게 될 테니. 따로 죄를 묻진 않도록 하지."

그제서야 당황한 기색을 내비친 네로가 돈 스노우를 올려다보며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그대를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치고선 떠났으니 말야. 무슨 원망을 샀기에."

네로의 얼굴이 순간 허옇게 질렸다가, 금세 낯빛이 어두워졌다. 왜?

"게다가 배신을 선언하면서 우리네의 자금을 보란 듯이 가져가 버렸다네. 괘씸한지고."

네로의 머릿속에 어제의 기억이 난잡하게 뒤섞여 맴돌았다. 브래들리가 여기서 멈출 리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언질도 않고 훌쩍 떠나버릴 인물이라는 것도 물론, 뻔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네로가 이를 뿌득 갈았다.

'설마, 이러려고 일부러 뜸을 들인 거냐…?'

내가 의심받지 않게 하려고, 또 일부러 내가 너를 쫓게끔 하려고 일을 꾸민 거였어? 내가 네 배신에 동요하지 않을 걸 알고서?

네로의 사고가 새카맣게 물들었다. 네로와의 연결 고리를 증오로 바꾸어서 큰 의심을 사지 않게끔 만드는 동시에, 네로가 브래들리 자신을 좇아야만 할 명분을 쥐어준다…. …거기까지 노린 거라 치더라도, 왜? 네로는 마땅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마른 입술을 애써 축여보아도 금세 바싹바싹 말라가는 피부가 따끔거려 눈살이 찌푸려졌다. 끝까지 이기적인 놈….

돈 스노우가 비죽 웃음을 흘리며 자조 섞인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죽임당하지 않으려면 먼저 죽여야 하지 않겠는고."

배신자를 처리하고 돌아오게나. 네로는 눈을 질끈 감으며, 무어라 기억에도 남지 않은 대답을 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위장이 쓰려왔다.

네로는 전해지지도 않을 마음의 외침을 계속해서, 계속해서 되뇌었다.

도망쳐, 브래들리. 내가 널 죽이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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