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네로] 인터루드

like a miracle by s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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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도적단 시절, 아마도 스무 번째쯔음의 망상입니다.

* 네로의 과거 및 이것저것 전부 다 날조.

* 원작 설정의 자의적 해석.

처음 생물의 목숨을 끊은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야, 잡아.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손안의 털 뭉치 같은 작은 토끼는 아직 새끼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조금도 알지 못한다는 듯 검고 작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손끝에 전해지는 체온이 뜨겁다. 그 온기에 손가락 끝이 마비되는 것 같이 느껴진다. 제대로 제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형제 중에서도 유독 거칠고,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기억한다. 그는 벌벌 떠는 저를 비웃듯 입가를 올리고 나이프를 이쪽으로 내밀었다. 날을 이쪽으로 향해서. 거절하면 그 날이 너를 대신 찢을 수도 있다는 듯이. 야, 니가 해. 그 말을 잠시 이해하지 못했다. 머뭇거리며 고개를 작게 들자 단번에 손찌검이 날아왔다. 어깨를 세게 치며, 그는 짜증이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못 하면 전부 굶는 거야. 너 때문에. 후들거리는 손으로 나이프를 건네받았다.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목을 찔러. 그러면 죽어. 생물은 대부분 그렇다. 죽은 동물을 보는 건 처음이 아니다. 인간을 포함해서. 하지만.

얼른 해.

그 눈빛에는 자비가 없다. 눈을 들어 조심스레 살핀 것이 어리석은 짓이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네로 터너는 바들거리는 손을 다시 쥐었다. 식은땀으로 손안의 나이프가 자꾸만 미끄러진다. 검고 작은 눈과 눈이 마주친다. 손끝에 살아있는 것의 숨결이 닿는다. 네로는 토하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머릿속이 핑그르르 돈다. 그대로 있다간 쓰러질 것만 같아서, 네로는 검게 칠해진 것 같은 머릿속과 새하얘지는 시야 끝을 겨우 잡고, 얕게 숨을 뱉으며 눈앞의 동물에게 날이 선 나이프를 찔러넣었다. 무정할 정도로 따스한 온기. 물컹하고 불쾌한 촉감이 손끝에 닿아서, 네로는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훅, 피비린내가 끼쳤다.

그리고 검은 눈엔 아무것도 비치지 않게 되었다.

그날의 저녁 식사에는 오랜만에 고기가 들어있었다. 가족들은 모두 기뻐했다.

네로는 밤새 토했다.

나쁜 꿈을 꿨다.

서늘한 시트의 감촉에 천천히 눈이 떠진다. 의식이 조금씩 위쪽으로 부상한다. 시야에 들어온 것과 현실을 파악할 즈음 꿈의 내용은 거의 다 잊어버렸다. 다만 나쁜 꿈이었다는 것과, 어쩐지 어린 시절의 꿈이었다는 것만 기억에 남는다.

네로는 작게 고개를 기울이며 기지개를 켰다. 어린 시절, 변변찮았지. 북쪽 나라는 치안이 좋지 않다. 자신이 살던 곳도 그랬다. 살아간다는 것은 시련이었다. 잠드는 곳도 먹는 것도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뼈가 다 굳기도 전인 어린 시절부터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언가를 맡아서 했다.

아주 어릴 땐 이거저거, 잔심부름이나 청소, 빨래 등의 보조를 맡는 일이 많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네로에게 맡겨진 것은 주로 요리 당번이었다. 그 말은 즉, 네로가 요리의 재료 조달부터 손질까지 담당했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고생했지. 동물을 도축하는 건 유쾌한 작업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익숙해지고 나면 그저 작업일 뿐이다. 짐승을 죽이는 것도, 그 살과 가죽을 분리하고, 내장과 분비물을 꺼내서 버리고, 섭취할 수 있는 부위만을 정리하는 것도. 청소나 세탁과 비슷했다. 그냥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네로는 그것을 꽤 잘 해냈다.

마법을 써서 물을 데웠다. 누군가는 고상한 취미라며 피식 웃지만 아무튼 챙겨둔 찻잎을 넣어 차를 내린다. 따스한 액체가 몸 안으로 들어가니 조금 머릿속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옷을 갈아입고 침대 곁의 테이블에 앉는다. 평소보다 꽤 일찍 일어나버렸다. 호록, 그새 좀 미지근해진 차를 마저 마신다.

그러고 보면 한동안 굶었던 적이 있었지.

왜였지, 그런 사치가 허용되는 곳이 아니었다. 먹고 싶지 않아서 굶는다. 그런 건 미친 짓이었다. 때가 되어 겨우 주어진 한 줌의 식량을 반드시 입에 구겨 넣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그건 다른 누군가에게 빼앗긴다. 남은 음식? 그런 말은 이상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어쩐지 그땐 목구멍으로 음식이 넘어가질 않았다. 그런 말을 하며 식탁에서 빠지면 형제들은 미친 녀석을 다 보겠다는 눈으로 쳐다보며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그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먹을 수 있는 게 늘어났으니까. 그럼에도 우습게도 사람의 몸이란, 음식을 먹지 않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강 건너편, 밀밭을 좋아했다. 차갑고 건조한 푸른 하늘 아래 황금빛의 밀밭은 꼭 천국 같았다. 가끔 떨어져 있는 밀알을 주워 입에 넣었다. 별달리 맛이 있는 것도, 배가 차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쩐지 그것만은 입에 댈 수 있었다. 밀은 키가 크다. 잠시 틈이 나면 밀 사이에 들어가 앉아 있었다.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을 장소라 좋았다. 꼭 자신을 숨겨주는 것 같아서. 그러던 어느 날, 거기서 쓰러지듯 잠들었었지. 태엽이 다 돌아간 장난감 인형처럼. 깨어나 보니 이미 어두워서, 급히 집으로 돌아갔더니 호되게 혼이 났다. 할 일도 하지 않고 어디서 싸돌아 다녔냐는 것이다. 얼굴이 부을 정도로 맞아서 한참을 고생했다. 그날 이후론 굶지 않았다. 돌멩이를 씹는 것처럼 억지로라도 제 몫의 음식을 씹어 삼켰다. 위장에 묵직하게 앉은 돌멩이들이 데구루루 굴러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 결국에는 무엇이 무엇인지 잘 모르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느 날 문득 요리를 준비하면서, 동물을 죽이고 그 살을 가르면서, 그것을 맛있게 먹기 위해 조리하면서, 이 모든 작업이 살고 싶어서 하는 일인지 죽고 싶어서 하는 일인지 잘 모르게 되는 순간. 눈을 감지도 않고 죽어버린 이름 없는 짐승과 눈이 마주쳐서, 그 짐승과 자신의 가족이 자기에게 있어서 별 차이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네로는 집을 나오기로 했다.

그건 언제였지, 네로는 기억을 더듬어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겹겹이 쌓인, 제대로 묶이지도 않은 페이지들을 들춰보는 기분이다. 먼지가 풀풀 피어오르고, 페이지가 손안에서 빠져나가거나 섞여서 원하는 부분을 제대로 찾을 수가 없다. 가족과 함께 지낸 건 얼마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인데도. 전혀 정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정리할 기력도 전부 들춰낼 힘도 그에겐 없다. 자신이 집을 나온 그날부터 지금까지, 며칠이 지났는지 네로 터너는 알지 못한다. 몇천 일인지, 그것보다 훨씬 많은 날이 지났는지. 가늠조차 가지 않는다. 그런 것은 그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에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에.

똑똑.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어, 들어와. 머리에 두건을 쓴 글렌이 문을 열고 몸을 빼꼼 내민다. 부대장! 보스가 돌아왔어요! 네로는 벌떡 일어났다. 테이블이 다리에 닿아 덜컹 흔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급하게 문으로 향하자 그런 그를 보고 글렌이 앞장서듯 먼저 몸을 돌려 복도를 달린다. 마지막 연락으로부터 꼬박 열흘이 지난 후다. 그 모든 나날, 숫자, 때로 자신의 생일조차 깜빡하는데도, 그가 없는 날들은 하루는 고사하고 단 1분조차 마치 심장에 직접 글씨를 새기는 것처럼 고통스러워서. 네로는 차라리 전부 없는 척, 잊고 싶다고 생각하며 아침에 잠에서 깨고 밤에 잠이 들었다. 평소처럼 요리를 하고, 모두에게 요리를 대접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는 하루가 너무 길다. 매일매일 밥을 먹는 것이 몹시도 괴로웠다. 어린 시절에 비해서는 풍족하다 못해 넘칠 정도의 식탁 앞에서, 그 시절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음식을 먹으면서,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입안에서 버석이며 씹히는 음식들에게 괜히 마음으로 사죄했다. 자꾸만 숨이 막혔다. 이러고 있는 순간에도 브래들리는. 혹시, 설마, 어쩌면. 네로는 제발 생각을 멈추고 싶었다. 늘 실패하곤 하는 시도였다.

하지만 드디어, 겨우, 마침내.

브래들리가 돌아왔다! 브래들리가 돌아왔다!

헐레벌떡 뛰어가 도착한 곳은 아지트의 입구에 가까운 공간이다. 응접실, 이라는 말은 너무 거창하지만 그런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익숙한, 눈을 뜨고도, 눈꺼풀 아래로도 몇 번이고 그린 나머지 눈에 달라붙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실루엣이 보인다. 기쁜 것이 당연한데, 네로는 그 모습을 보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브래들리는 피투성이였다. 그런데도 곁의 단원에게 부축받으며 웃고 있었다. 무언가 날카로운 것으로 커다랗게 베인 옷 사이로 꼭 같은 모양의 상처가 보였다. 대충 처리는 한 듯 붕대로 휘휘 감겨 있었지만 그 사이로 배어 나오는 피까지는 숨기지 못했다.

브래드!

오, 여어, 네로. 이름을 부르자 브래들리는 웃으며 팔을 휘적휘적 저었다. 늘 저렇게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웃지. 자기 마음이 얼마나 타들어 가는지도 모르면서. 눈앞에서 브래들리가 숨 쉬고 움직이고 있다. 그것만으로 마음이 벅차서 당장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반면 피투성이로 뻔뻔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저 등짝을 세게 때릴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단 생각도 동시에 들어버려서. 네로는 잔뜩 인상을 구겼다. 얼굴에 열이 오른다. 여태까지 버석버석하니 다 타버린 재라고만 생각했던 그 안쪽에 다시 불이 붙는다.

…내가! 얼마나!!

야야, 아픈 사람 앞에서 소리 지르지 마라. 브래들리는 얼굴을 찡그리며 귀가 아프다는 듯이 양손으로 과장되게 귀를 막았다. 옷이 펄럭이며 상처 난 부위가 더 잘 보인다. 오른쪽 가슴부터 왼쪽 배 위까지 초승달 모양으로 커다랗게 한 방, 치명상을 입을 부위는 아니지만 저렇게 큰 상처라면, 깊게 베인다면, 당연히 어디든 치명상이 된다. 어디에서든 생명은 빠져나간다.

조심했어, 안 죽을 거 알고 베인 거야. 너도 보면 알잖냐. 이 정도면 침 바르면 금방 나아.

……

네로는 대답하지 않고 브래들리를 노려봤다. 브래들리가 그 눈빛을 받아주다 결국엔 피할 때까지. 아, 그러니까, 별일 아니라니까. 브래들리는 부루퉁하게 말을 내던지며 제 머리를 헝클었다. 그 모습조차 가슴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괴로워서. 뭐라도 말하지 않으면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주제에 그가 눈치를 보는 양 행동하면 그것도 마음에 걸린다. 도대체 제 마음이 제 것 같지 않다. 네로는 요동치는 가슴을 그냥 그 앞에서 갈라내어 버리고 싶었다. 거기서 무언가 뜨거운 액체라도 흘러나오면, 그래서 가슴안이 깨끗이 비어버린다면 그걸로 좋을 듯싶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렇게나 보고 싶었던, 눈을 감은 채로도 생생하던 얼굴을 더 이상 보고 싶지가 않아서, 아니, 보고 있기 괴로워서, 네로는 말없이 그 자리를 떴다.

부대장, 부대장 차례라는데요…

마법사는 인간보다 오래 산다. 그것은 그 본연의 수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의료가 그다지 발달하지 않은 이 세계에서, 마법은 외적인 상처를 입었을 때 생명을 붙들어두는 데에 꽤 유효한 수단 중 하나였다. 어떤 상처는 종이 한 장 차이로 생명을 앗아가므로. 그러므로 의료 계열의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는 꽤나 인기가 좋다. 쉬운 마법은 아니지만, 집단, 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에는 어디에나 한둘 정도는 있을 것이다. 전혀 없는 경우에는 고용하기도 한다.

죽음의 도적단에 의료 계열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는 여럿 있다. 뭣하면 네로도 아주 간단한 처치 마법 정도는 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반면 아주 고도의 치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는 한 명도 없다. 그만큼 누군가를 저세상의 문턱에서 불러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브래들리가 위험한 일로 나갈 때엔 치료 마법을 쓸 수 있는 동료도 반드시 한 명은 동행하기 마련이다. 물론, 일반적인 경우고, 항상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브래들리는 엉망진창인 모습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보통 현장에서 처치를 받고 돌아오는 것이기에 그런 경우 그가 도적단에 돌아온다고 해서 상처를 바로 쾌유할 수 있을 정도의 치유 마법을 걸 수 있는 동료는 없다, 고 해도 좋다. 다만 안정을 취할 수 있으니 상처가 비교적 빨리 나을 뿐이지.

도적단의 보스가 부상 상태다, 그런 정보는 극비이지만, 어디서 샐지 모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브래들리가 다쳐서 요양 중인 경우에는 그의 방에서 한 명씩 교대로 불침번을 선다. 문 앞에서라도 상관없다지만, 마법으로 기척을 지우는 것은 간단하다. 문 앞에서 불침번을 섰다가 문 안에서 일어난 일을 전혀 몰랐다, 는 결과가 나오면 의미가 없다. 그렇기에 보통 문 안에서, 브래들리가 자고 있든 깨어있든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밤을 새우는 것이 이 때의 불침번이다.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였다. 오늘은 네로가 불침번을 서는 차례. 네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브래들리를 보고 싶다. 보고 싶지 않다. 조금이라도 곁에 있고 싶다, 아주 멀리 떨어져서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자기도 자기 마음을 모르겠다.

……

대답 없이 잠시 고민하고 있자 부르러 온 단의 신참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안절부절못하며 방황하는 눈빛을 보냈다. 네로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자기 고집 때문에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네로의 성미가 아니다. 준비하고 갈게, 라고 대답하니 신참은 눈에 띄게 안심한 얼굴로 자리를 떴다.

똑똑.

작게 문을 두드렸다. 대답은 없었지만 잠시 기다렸다가 문을 열었다. 화악, 익숙하지만 언제까지고 좋아지지 않는 냄새가 풍긴다. 소독약과 피 냄새.

브래들리는 잠들어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말이라도 걸어온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어쩌면 영영 정리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잠들어있는 쪽이 좋다. 네로는 혹시라도 그를 깨우지 않게 조심해서 침대 곁의 의자에 앉았다.

이 시간을 좋아했다. 처음에는. 맨 처음 불침번을 섰을 때엔 자신에게 보스 곁을 맡겨주다니, 하고 감동했었더랬지. 그가 다친 건 속상했지만, 잠들어있을 땐 얼마든지 마음껏 그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고, 깨어있을 땐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런 것이 그저 즐거웠다. 묘하게 현실감이 없는 즐거움이었다. 그때의 그는 자신에게 있어서 무적이었으니까. 결코 다치지도 죽지도 않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처럼,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

언제부터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은 걸까. 자신을 감싸다가 죽을 뻔했던 순간일까, 아니면 그때, 멀쩡해 보였는데 갑자기 아지트로 돌아와선 울컥 피를 토했을 때였을까, 아니면 그 전, 꼬박 일주일 동안 깨어나지 못하고 누워있었던 때…

네로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브래들리는 제법 편안하게 숨을 쉬고 있다. 색색, 잠든 소리가 들린다. 이불을 또 이렇게 칠칠치 못하게 다 걷어차고서. 가슴과 허리에까지 둘둘 감겨있는 흰 붕대에는 여전히 작게 피가 번져있다. 네로는 이불을 다시 덮어주려다가 그만두었다. 이상하게 깔아뭉개서는, 이걸 움직인다면 분명 잠에서 깬다. 대신 근처의 소파에 대충 걸쳐져 있는 담요를 가져온다. 그걸 덮어주려다 문득 멈췄다. 그의 목울대가 움직이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것은 몹시도 이상한 충동이었다.

목을 찌르면 죽는다. 생물은 대체로 그렇다. 네로 터너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동물도, 인간도, 마법사도 예외가 아니다. 네로는 충동적으로 손을 뻗어 브래들리의 목 부근으로 가져갔다. 손가락을 아주 조금 뻗으면 닿을 거리. 그건 그의 나이프가 닿는 거리라는 말도 된다. 네로의 마도구는 커틀러리. 마음만 먹으면 한순간에 꺼낼 수 있다. 손가락이 닿는 것처럼 나이프의 날이 그의 잘생긴 목울대에 닿아서, 단 한 번, 강하게 찌르면 그 상처 자국에서는 분명 생명이 빠져나간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묘하게 선명하고 강렬한 욕망.

아, 기억났다.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그저께 꾼 꿈이다. 처음으로 동물을 죽인 날의 기억.

영영 코끝에서 맴도는, 아무리 손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어떤 냄새.

문득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니 브래들리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홍색 눈동자가 가라앉아있다. 안일했다. 생각해 보면 그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그는 자신보다 강한 마법사다. 이렇게 근거리로 다가가면 아무리 숨을 죽여도 아는 것이 당연하다. 네로는 당황해서 몸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브래들리가 그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네로는 굳은 듯 멈춰 섰다. 어정쩡하게 걸쳐져 있던 담요가 바닥으로 펄럭이며 떨어졌다.

브래들리는 말없이 네로의 손을 잡았다. 네로의 긴 손가락을, 군데군데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을, 모양 좋은 손톱 끝까지.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보면 깜짝 놀랄 만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그는 그 손을 조심스럽게 끌어당겨 손바닥에 살며시 입술을 댔다. 마치 세상에 둘도 없이 소중한 보석을 다루듯이. 몹시도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듯이.

네로, 자자.

브래들리는 낮게 웃으며 손을 잡은 그대로 네로를 끌어당겼다. 네로는 버텼지만 저항도 무상하게 그의 위에 반쯤 쓰러지듯 누웠다. 병자인 주제에, 아프면서. 그럼에도 도무지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을 길을 네로는 알 수가 없었다. 그의 곁에 있으면 언제나 그렇다. 그가 있는 한 그를 따르지 않을 방도 따위 네로는 모른다. 네로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가능한 상처 부위를 피하려 노력하며 그의 품 옆을 파고들었다. 피 냄새, 소독약 냄새, 숨 막힐 듯이 짙고 달콤한, 이제 아주 조금 익숙해진, 브래들리 베인의 냄새. 쿵, 쿵. 귓가에서 작게 뛰는 심장 소리가 들린다. 네로는 다시 덜컥 불안해진다. 물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안온하고 두렵다.

아아,

그 토끼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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