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약속

너는, 영원히 나를

레노파우(+천명조)

레노파우에 천명조(NCP)

‘지옥 같은 순애’ 리퀘스트입니다.


빗자루에서 몸을 내리고, 파우스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남쪽의 레이타 산맥. 파우스트는, 이변의 조사를 위해 남쪽-동쪽의 마법사와 남쪽 나라를 찾았다.

보고에 따르면 《거대한 재액》이 다녀간 이후부터 야생동물들이 유독 친근하고 경계심이 없어지고, 작물의 성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다…는 것 같다. 남쪽 나라에서도 특히 잘 키운 야채가 많이 나오는 마을이었다. 얼핏 보면 나쁜 일이 아닌 것 같지만, 모든 일에는 정해진 흐름이 있다. 죽은 사람은 되살릴 수 없고, 흘러간 시간은 되감을 수 없다. 무에서 유는 창조해낼 수 없다. 아무도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마법관에 이상 사태로 보고된 계기는, 그 지역을 벗어난 여행객이 ‘불운의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행운과 불운은 저주상인 파우스트의 전문이고, 흐름에 민감한 히스클리프라면 원인 규명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남쪽의 마법사 앞으로 날아온 의뢰를, 이 조합으로 가게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소동의 중심이 된 레이타 산맥을 가장 먼저 오른 것은 레녹스였다. 동료 양치기들이 연락이 끊겼다고 하고, 양들의 상태도 걱정되니 먼저 짧게 정찰을 하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시노와 네로도 함께, 셋은 먼저 산맥을 올랐다.

파우스트는 불안했지만, 그들을 믿고 배웅해준 다음 마을에서 정보수집을 했다. 피가로는 사고를 당했다던 여행자의 곁으로 갔고, 남은 아이들은 마을에서 정보수집을 하러 갔다. 파우스트는 피가로 뒤를 따라 구호에 나섰다.

여행자는 크게 다치긴 했으나, 다행히도 목숨에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사가 피가로인 것이 운이 좋았다.

“정말 최악이었어요, 마을을 나서자 마자 불운이 계속 겹쳐서……”

여행자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며, 피가로에게 몇번이고 감사를 전했다. 파우스트는 눈을 감고 기척을 더듬어봤지만, 저주의 힘이 느껴지거나 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그가 겪은 사고는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 뭔가…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줄곧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러한 형태로 존재하면 안 되는 것처럼. 물이 거꾸로 흐르고, 손에서 놓은 물건이 하늘로 날아가는 느낌.

파우스트가 그 답을 찾기 직전, 진료소의 문이 벌컥 열렸다.

“파우스트, 큰일이야! 양치기가……!!!”

파우스트가 네로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진료소 밖으로 나갔을 때, 그곳에는——— 동화책 속 공주님처럼 작은 동물들에게 둘러싸인 레녹스가 있었다.


“우와, 레노 씨!”

“어머, 인기 만점이 되셨군요!”

마을에서 정보를 들고 어린 마법사들이 합류했다. 레녹스는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곤란한 듯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그의 어깨에는 새가 올라타 있었고, 발치에는 강아지가 따르고 있었으며, 다람쥐가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고, 레녹스를 뺏긴 양은 억울한 듯 메에메에 울고 있었다. 파우스트는 우선 갈 곳을 잃고 떠도는 양을 끌어안아 들었다. 레녹스는 죄송한 듯 고개를 숙였다.

“아니, 됐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어?”

“…저도 잘… 양의 울음소리가 들려서, 풀을 헤치고 들어갔더니 나온 후부터 줄곧 이렇습니다.”

시노의 키만큼 자라있던 풀들 사이로 메에, 하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 시야에서 미아가 되면 찾기 어려울 것 같으니 소리로 위치 파악이 된 지금 데리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해 울음소라가 들린 곳으로 다가갔다. 레녹스는, 확실히, 거기서 양을 보았다. 양을 들고 이동하려고 끌어안았지만 통과되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레녹스가 앉아있던 그루터기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신발 근처의 풀밭에는 들꽃이 피어있었다.

“확실하게 이상 사태구나. 진찰 좀 해도 될까?”

“네, 부디…”

“파우스트 선생님. 마을 사람들에게 들은 ‘마법사’와 연관이 있을 것 같아요.”

다른 나라에서부터 온 여행객이었던 그 마법사는, 많이 지쳐있었고… 본인의 말에 따르자면 임종에 가까웠다는 것 같았다. 마법사는 죽기 전에 따스한 땅이 보고 싶어져 여행을 왔다고 했고, 양의 털은 부드럽고 따뜻해서 좋으니 양치기 일을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마법사는 친절을 받을 때마다 울먹였고, 양들과 지낼 때의 표정은 온화함 그 자체였다. 마법사는 마지막, 양들이 풀을 뜯어먹던 들판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웃고— 부서졌다. 마나석은 그 마법사가 짧게나마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던 들판에 다 함께 묻었다고 한다. 마나석을 따로 훔치러 오는 사람도 없었고,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고 한다.

즉, 이변이 일어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추측이지만, 그 마법사가 마을에 축복을 부여하고 있던 것 같군. 사소하게 행운만 불러오던 그것이, 거대한 재액의 습격 이후 폭주하기 시작했고…”

“정확해, 파우스트.”

진찰이 끝난 피가로가 말을 이었다.

“섭리를 거스를 정도의 ‘행운’이 부여되어 있어. 주변의 모든 것을 회수하느라, 단순한 축복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야. 약도 과하면 독이 되니까.”

이대로라면 레녹스를 둘러싸고 혼돈이 일어난다. 레노, 인기쟁이구나— 하고 피가로는 웃었다. 하지만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았다. 개척 도중인 남쪽 땅은 특히 모든 것이 불안정하다. 정령들도, 살아가는 것들의 흐름에 맞추려고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레녹스의 주변에 모인 동물들도, 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태계를 지키고 있다. 숲에 있는 모든 동물들이 뛰쳐나오면, 얼마 가지 못하고 모든 섭리가 무너져버리고 말 것이다.

“그때 품에 안았던 양 때문일까요?”

“그렇겠지. 그 마법사가 남긴 ‘축복’ 그 자체이지 않았을까?”

“제가 숲으로 돌아가면……”

“안돼. 더 빨리 무너질 거야. 축복이 시작된 곳에서는 영향이 배로 커질 테니까. 상태를 알리기 위해 바로 뛰쳐나온 것이 정답이야. 잘했어, 레노.”

파우스트의 품에 안긴 양은, 여전히 메에메에 울며 불만을 표하고 있었다. 파우스트가 쓰다듬으면 잠시나마 조용해진다. 파우스트는 피가로의 설명을 들으며 계속 양을 쓰다듬어주었다. 레녹스는 그런 파우스트를 빤히 바라보며, 함께 설명을 들었다.

정령들도 슬슬 이상을 눈치채고, 질서를 채우려고 줄을 서 모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마법을 쓰면 모인 정령들을 흩어지게 할 가능성이 있다. 마법은 최소한으로 쓰면서, 돌이 묻힌 곳 찾아, 한 번에 축복의 효과를 약화 시킨다. 마법을 쓰지 않고 근원지를 찾는 건 히스클리프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레녹스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레녹스를 이대로 두면, 지금껏 쌓인 행운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부여한 행운까지 레녹스가 혼자 다 끌어안고 있다. 행운인 점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불행인 점은, 만일 잘못된다고 하면 레녹스 혼자만 큰일을 겪는다는 것이다.

“파우스트. 네가 못하겠다면, 내가 할게.”

“……내가…”

…해결책이, 하나 있다. 행운과 저주는 한끗 차이. 행운이 플러스를 부여한다면, 저주는 마이너스를 부여하는 것이다.

“네가 하지 않아도 괜찮아.”

피가로는 남쪽의 마법사답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단순 실력 차이라면 피가로와 비교도 안되지만… 저주와 행운에 관련된 일이라면 파우스트가 더 익숙하다. ‘저주를 하는 것’과 ‘정화하는 것’ 중 어디를 파우스트가 우선해야 하는지는 말할 것도 없다. 파우스트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올곧게, 피가로를 바라보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대답이었다.

“…그래.”

괴로운 경험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은, 언제나 진심이었다. 파우스트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반짝이는 그 아이를 지켜주고 싶었다. 너의 행복은 내가 아니었다. 하지만, 네가 행복하지 못했다면, 내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니 외면하고, 도망가서, 네가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너의 선택이라면.”

피가로는 히스클리프와 시노, 미틸을 데리고 산맥으로 향했다. 루틸과 네로는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떠났다. 레녹스와 파우스트는 마을 사람들에게 빌린 빈집으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은 주변을 어슬렁거리지 않도록 말해두고, 문을 잠그고, 커튼을 내렸다. 문밖에서는 레녹스에게 떨어져 어슬렁거리는 동물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아까까지 그렇게 많은 것들이 레녹스를 따르고 있었지만… 지금은 고립되어 있다. 조금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방 속에서, 파우스트가 촛불에 불을 밝혔다. 탁, 하고 손짓하자 타오르기 시작한다. 어두운 모닥불의 앞… 그때의 기억. 파우스트의 머리카락이나 눈의 색은 변함이 없는데도, 많은 것이 달라져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레녹스는 문득 불안하고 괴로워졌다.

“파우스트 님.”

“……레노. 아무런 말도 하지 마.”

파우스트는 사람을 저주하지 않는다. 단순히 가능 여부의 이야기가 아니다. 파우스트 라비니아는 사랑을 안다. 남을 위하고, 헌신하는 것을 좋아한다. 모두의 행복을, 진심을 다해 빌고 있었다. 그러니 파우스트는 타인을 축복할 수 있었다. 마음 안쪽에서부터, 경건하게.

“아니요.”

하지만, 다시 만난 그는 저주상이 되어있었다. 사랑을 외면하고, 타인의 불행을 바라며, 불안을 부추기는 일을 한다.

“저를 혼자 둬주세요.”

설령 어떤 상황일지라도, 레녹스를 저주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레녹스만큼은. 친우에게 배신당해, 인간에게 실망하고, 그리고 또 레녹스를 두고 떠나버린 자신에게 절망했다. 저주상을 시작한 것이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라고 말한다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녀석들을 저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쌓은 저주들로 대가를 치렀으면 했다.

그래서 레녹스와 함께하는 나 자신을, 더욱 더,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너를 저주할 거야.”

바닥에 앉아있는 레녹스를 덮어 가리는 것처럼, 파우스트는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상체를 기울였다. 불꽃을 가리는 것처럼.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파우스트는 시선을 내리깔고 주문을 외웠다. 몇번이고 축복하며 썼던 그 주문을. 몇번이고 저주하며 썼던 그 주문을. 선글라스 너머로, 그의 섬세한 눈동자가 보인다.

저주한다. 네 앞에, 불행만이 있기를. 행복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네가 스스로 죽인 것들이 되돌아오기를. 그동안 저질러온 모든 것들을 되돌려 받기를… 네가. 너만이. 너만큼은…… 거울에 반사되는 촛불이, 마치, 불이 번지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옮겨붙어, 지금껏 쌓아 올린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그날의 파우스트조차도.

그리고, 영원히……

앞으로 쓰러지는 것처럼, 파우스트는 레녹스의 품에 누웠다. 그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얼굴에 닿아, 레녹스는 조금 황송한 기분이 되었다. 그리고 또… 너무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뿌리치지는 못했다.

사틸크나트 무르클리드. 깨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주문을 외운다. 파우스트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에. 주문을 외우고, 그의 몸에 기대, 쩌억하고 금이 가지 않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다시 주문을 외웠다. …사틸크나트 무르클리드. 제발, 깨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기도하며 눈을 감았다. 그저 바랐다. 이 저주가 그를 혼돈에서 구하기를, 그를 버리고 떠나 얻은… 나의 이 힘이…… 그럼에도, 그를 구할 수 있기를. 파우스트 님, 하고 다시 이름을 불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파우스트는 고개를 들지 않고 여전히 레녹스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댄 채로 그의 심박을 쫓는다.

축복의 기척이 완전히 끊기기 직전, 파우스트는 마지막으로 저주한다. 무엇 하나가 반드시 저주가 되어야 한다면… 부디…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내가 너의 저주가 될 수 있기를. 잃어버린 사백년을 한탄한다면 그것이 나의 잘못이 되기를. 들고 있는 열쇠가 꼴보기도 싫어진다면 그것을 나에게 던지기를.

레녹스.

레노.

네가,

영원히,

또 수백 년간 무언가를 찾아 헤매야 한다면,

“너는 영원히, 나를 쫓아오기를——”

“그건 저주가 되지 못합니다.”

혼돈에 휩쓸려 나가지 못하는, 못을 박는 듯한 저주를. 레녹스는 파우스트의 몸을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그래. 그것은 분명 저주가 되지 못한다. 그를 처음 만나 종자가 되었을 때부터, 어디까지고 따라가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레녹스가 자유롭게 정한 것이다. 마법사이기에,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고 정직한 결과였다. 아무리 힘들고,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해도, 어딘가에서 파우스트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떠올리면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니 파우스트의 존재는, 레녹스에게 축복에 가까웠다.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진작 어둠에 꺾이고 무너졌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축복과 행운에 이끌려온 동물들이 정신을 차리고 숲으로 돌아갔는지, 집 주변에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원래 그것은 레녹스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제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레녹스도 그러한 것이 함께하는 것은 자신에게는 너무 과분하다고 생각했다.

“…바보구나, 너는. 정말, 정말로 끔찍한 저주야, 이건. 결국 너에게 네 인생을 돌려주지 못하게 되어버려.”

하지만, 지금, 파우스트가 품에 있는 것이야말로…… 과분하지 않은가. 레녹스는 그런 자신의 의문을 외면한 채로 파우스트를 더 꽉 끌어안았다. 정말, 너는 바보야, 라고 파우스트가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그 말에는 대답하지 못한 채 레녹스는 작게 웃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언젠가 이렇게, 영원히 파우스트를 찾으며, 그 끝에 파우스트를 끌어안은 채로 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버린다. 그 마법사가 사랑하는 대지에서 가장 원하는 것을 끌어안고 잠든 것처럼. 그리고 언젠가, 사랑으로 쌓아 올린 이 세계에— 우리도 축복을 남기고 떠날 수 있기를.

어느새 옮겨붙을 것만 같던 저주의 불꽃은 모닥불의 환상이 되어 떠올랐다. 저주상인 파우스트가 축복을 남기는 미래를 상상하며, 레녹스는 답했다.

“저는, 영원히 당신을——”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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