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약속

신은 보석이 되어 잠든다

레노피가

피가로 가르시아는 32세의 상냥한 의사 선생님이다. 남쪽의 마법사로 소환되어, 슬로우 라이프에 약간의 부담을 가한 채로 살아가는 중이다. 피가로 가르시아는 1500세 이상의 무서운 북쪽의 마법사다. 그 예지는 모든 진리를 뛰어넘었다고도 하고, 답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내려준다고도 한다.

세상에는 앞면과 뒷면이 존재한다. 은화에도 앞뒤가 있고, 카드에도 앞뒤가 있다. 앞면과 뒷면이 다르게 생겼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것은 하나의 물체로 인식한다. 피가로 가르시아의 존재도 그랬다. 어떤 때는 조금 느슨한 32세의 마법사이고, 어떤 때는 눈을 마주치는 것 조차 두려운 1500세의 마법사이기도 했다.

레녹스는 특히, 그의 그런 부분을 잘 아는 존재였다. 무서운 북쪽의 마법사 피가로를 레녹스보다 더 잘 아는 상대는 있다. 상냥한 남쪽의 마법사 피가로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두 부분을 어떻게든 잘 종합하여 알고 있는 것은 레녹스가 유일하다. 남쪽의 마법사들 중 유일하게 그를 알고 있으니까.

소중한 주인의 마법 스승.

신의 기적에 가까운 마법을 구사하는 마법사.

환자를 아끼는 상냥한 의사.

조금 느슨한 면이 있는 용감한 개척자.

“레노!”

바다와 대지를 그 작은 그릇에 가득 품은, 비밀스러운 사람……

…이 제멋대로 침대에 누워있다. 그것도 자신의 방에. 레녹스는 보여서는 안 되는 모습이 보이길래, 순간 방을 잘못 찾은 줄 알고 밖으로 나가 문패를 확인했다. 어딜 어떻게 봐도 자신의 방이다. 피가로가 있는데도.

레녹스는 결국 다시 자신의 방문을 열었다. 방문을 향해 몸을 돌린 피가로가 그를 맞이하는 것처럼 찡긋 윙크했다.

“짜잔, 피가로 선생님의 서프라이즈 방문~!”

“하아……”

레녹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피가로는 침대에서 데굴데굴 누워있는 채로 ‘잠깐, 그 반응. 실례네.’하고 짜증을 내고 있었다. 잠옷 차림인 것을 보니 나갈 마음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그럼 저는 밖에서 잘게요, 하고 나가는 것을 용서해줄 리도 없다.

피가로는 종종 ‘변덕’을 부린다. 그건 등골이 서늘해지는 장난이기도 하고, 아기 고양이가 뭐든 호기심에 툭툭 쳐보는 것 같은 행동이기도 하고, 오랜 시간을 살아온 자가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했다.

“……좁지 않나요?”

“괜찮아, 이 정도가 적당해. 오늘은 레노에게 꼭 붙어있고 싶은 기분이니까.”

“제가 불편한데요.”

솔직한 감상이다. 성인 어른 두 명이 1인용 침대에서 잘 수 있을 리 없다. 잠버릇이 없다고 해도, 눕는 것만 해도 큰일이지 않을까. 레녹스는 가뜩이나 큰 편이기도 하고. 현실적인 태클에, 피가로는 흐음― 하고 고민하는 듯하더니 오브를 꺼냈다.

사실, 침대를 크게 만드는 것은 예전부터 꽤 쓰던 수법이었다. 자고 난 다음에는 제대로 원래 크기로 돌려줄 테니 막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짜잔~ 이걸로 해결이지?”

하지만 피가로는 작은 소년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전혀 짐작할 수 없었던 해결책에, 레녹스도 조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어린 아이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피가로는 대마법사고,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 것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 어느 쪽이냐면 피가로의 어린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쪽이 놀라웠다. 지금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외형일지도 모른다. 바다를 닮은 머리카락도, 자연을 품은 듯 반짝거리는 눈동자도 똑같았다. 팔다리는 훨씬 짧았고, 어린아이라는 느낌이 가득했다. 아…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머리카락의 길이일까. 피가로는 머리카락을 옆으로 땋아 내린 모습이었다.

어째서? 라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기어코 어린 아이의 모습이 된 것은, 레녹스를 놀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적당히 아무런 반응이나 해주지 않으면 삐질지도 모른다. 여러모로 귀찮은 사람이었다.

“작네요.”

“그게 끝이야?”

피가로가 노골적으로 실망했다는 듯한 표정을 했다. 레녹스는 지금까지의 흐름으로는, 이것도 전부 놀리려고 하는 것 뿐이라는 사실을 안다. 크게 반응해주면 사죄의 뜻으로 뭔가 어울려달라며 이런저런 일을 해보려고 한다. 거절하기에 곤란하다.

“……네, 뭐. 그 정도라면 어떻게든 잘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레녹스가 양을 쓰다듬고 바닥에 내려주었다. 양들은 방의 구석으로 도도도 달려 나가 함께 등을 맞대고 잘 준비를 한다.

“엄청나게 희귀한 모습인데 말이지, 지금의 피가로 선생님은. 한 번 마주하면 고개를 숙이고 손을 위로 뻗어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할 정도인데.”

레녹스도 잠옷으로 갈아입고(시선이 쭉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다) 침대로 향했다. 피가로의 좀 알 수 없는 소리는 대답하기 곤란했으므로, 시선을 슬쩍 피해 회피하기로 했다. 피가로도 더 이상 희귀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은 걸 보니 대답하는 쪽이 오히려 위험했던 경우일지도 모른다.

피가로는 변덕스럽다. 대꾸하지 않았으면 하는 경우도 있고,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다. 문제가 있다면 피가로가 말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없다는 부분이었다. 간단히 말해, 구분하기 힘들다. 어느 말을 무시하면 좋은지, 어느 말에 대답하면 좋은지를. 레녹스는 이런 부분에서는 피가로는 잘 꿰뚫고 있었다.

몸을 구겨 넣은 침대는 평소보다는 작았지만, 굴러떨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양 인형을 꼭 끌어안은 피가로의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내용물이 1500살의 대마법사가 아니었다면, 아마 머리를 쓰다듬었을 것이다.

“이렇게 쉬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네.”

언젠가는, 분명 날갯짓 할 수 없을 때가 온다. 나는 도중 지면으로 추락해버리기 전에 쉴 수 있는 나무를 찾아야 한다. 다른 새들은 비행 도중 적당히 발견한 나무에 앉을지도 모른다. 그곳을 집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어느새 집처럼 여기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피가로는 달랐다. 그는…… 날개를 접는 법을 몰랐다. 어떻게 하면 나무에 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한 나무를 선택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생각보다 편안해. 그 애들의 마음도 알겠는걸.”

레녹스는 생각했다.

이 앞, 그가 얼마나 멀리 날아가게 될 지는 모르지만, 이 따뜻한 나라가 날개를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 나무를 택해주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마음에 들어 쉬어갈 곳으로 정해주었으면 했다.

그런 마음이 전해진다면 좋을 텐데. 레녹스는 이불을 끌어당겨 피가로에게 덮어주었다. 전해진 따스한 온기에, 피가로는 눈을 느리게 감고 중얼거렸다.

“……사슴보다는 역시, 레노의 양이 되는 편이 좋겠어.”

레녹스는 자신에게 없는 양을 상상해본다.

다른 양들보다 훨씬 느긋하고, 가끔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들어오지 않는 다른 양들을 걱정해서 몸소 찾으러 나가는, 목양견의 일마저도 해내려는 양. 모두가 우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한걸음 뒤에서 지켜보고 확인한 다음에서야 자신도 발걸음을 옮기는 상냥한 양을.

아아, 그런 양이 있다면, 분명.

“그러면 혼자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꼭 안고 다녀야겠네요.”

내내 인형에 가려져 있던 눈동자가 레녹스를 바라본다. 그건 조금 기대를 품고 있었고, 동시에 내쳐질 각오도 끝나있는 것이었다. 피가로는 늘 그랬다. 품에 안기도 전에 품에서 놓을 각오를 해버린다. 품에 안은 생명체는 결코 떠나려고 한 적 없는데도.

“지금, 안아줄래?”

무슨 대답을 내놓아도, 피가로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안아주는 것도, 안아주지 않는 것도 이미 각오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그건 어리광을 부리는 목소리였다. 레녹스 앞에서만 보여주는, 적당히 느슨한 모습. 레녹스는 대답 대신 피가로의 작은 몸을 꼭 끌어안았다. 품에 안은 모습은 평소의 피가로보다 무척 작고 얇아서…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마법사는, 죽으면 돌이 된다. 그러니 마법사의 최후는 언제나 부서지는 것이었다. 피가로는 레녹스의 품에서 꾹 눈을 감고, 얼마 가지 않아서 얕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름을 부르면 깨어나 버릴 정도로 얕은 잠을. 하지만 레녹스는 잠들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결에 꽉 끌어안기라도 하면, 그에게 균열이 나버릴 것 같아서.

아, 이 분은 언제부터 이렇게 섬세한 것이 되었을까. 레녹스는 그 작은 몸에 자신의 과거를 겹쳐본다. 곡괭이와 작은 등불이 품의 전부였던 때를.

그리고 떠올린다. 섬세한 광석을 만났을 때를. 조심스러운 손길로 무더기 속에서 파내, 반짝거릴 때까지 조심히 닦아내서, 소중한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던 때를. 레녹스는 제 품으로 피가로를 좀 더 끌어 당겼다.

부디, 자고 일어나도 그가 깨지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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