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약속

불꽃에서 초목까지

레노파우

지금의 마법사는 마력의 흐름이 불안정하다.

힘든 의뢰 탓에 3일째 철야를 맞이한 끝에 겨우 복귀할 수 있었던 파우스트가 통보받은 것이었다. 북쪽의 마법사들이 대판 싸워, 엉망진창으로 마법을 사용하고, 온갖 마력이 얽혀 수습이 불가능해진 끝에, 결국 오즈가 마법사를 둘러싼 모든 기운을 초기화하게 되었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 돌아오지 않았을 거라며, 파우스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미 도착해버렸고, 심지어 잔뜩 지친 상태였다. 설령 결계를 칠 수 없어도 잠은 자야 했다. 아니면 결계를 치다가 쓰러지던가. 그에게 있어서는 어느 쪽도 같은 결과였다.

파우스트는 눈을 감고,

그의 꿈은 현실로 흘러나오게 된다.

피가로는 말만 ‘초기화’라고 하지, 실질적으로는 잠깐 환기를 시키는 것에 가까우니 안심하라는 말로 젊은 마법사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이건 결코 방의 창문을 열어두는 것처럼 가벼운 일은 아니었다. 일단, 개인적으로 사용하던 결계 같은 것은 실질적으로 무력화 상태에 빠진다. 좋은 의도로 설치한 것도, 나쁜 의도로 설치한 것도 전부 없던 것이 되어버린다.

쌍둥이는 부순 녀석들이 고쳐야 한다며 북쪽의 마법사들이 딴짓을 하지 않도록 감시에 들어갔다. 그리고 겸사겸사 보호막을 펼쳐두었기에 외부에서의 공격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면 방 벽이 날아가 횅하니 풍경이 보이더라도, 자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실제로 카인 같은 경우는 방이 반파되었다는 사실도 그냥 받아들이고 그대로 자겠다고 했다가, 아서의 손에 끌려가 오즈의 방으로 향했다. 중앙이 다 함께 오즈의 방에서 잔다는 소식이 들리자, 루틸이 남쪽의 마법사들도 하자며 남쪽의 마법사들을 끌고 갔다. 파우스트는 어쩐 일로 마중 나오지 않았나 했더니, 정도의 가벼운 감상을 가졌다.

어찌 됐든, 파우스트와는 별 상관 없는 일이다. 네로는 방이 멀쩡하고, 시노는 이렇게 된 김에 히스클리프의 방문 앞에서 망을 보겠다며 떠났고, 음, 아무튼 동쪽의 마법사들은 제 할 일을 하러 들어갔다. 그들답다고 하면 무척이나 그들다운 느낌이었다. 걱정할 필요도 없고.

아니…… 문제라면 있지만.

파우스트는 방문 앞에서 몇 번이고 결계를 치기 위해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사전에 들은 것처럼, 마법은 모여 힘이 되지 못했다. 정령들도 조금 방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 환기가 끝나지 않았다. 수리가 전부 끝나기 전까지는 쭉 이런 상태일 것이다. 파우스트가 애써 끌어모은 것들은 바람과 함께 흩날려 사라져간다. 꽤 강한 마법사들도 이런 상태에서는 마법을 쓰기 어려울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북쪽의 마법사 셋이 붙어 수리에 전념하고 있음에도, 차가운 밤공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적어도 이 수리가 끝마칠 때는 어찌저찌 간단한 결계라도 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파우스트가 그때까지 버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샤일록은 방이 날아가도 쿨쿨 자느라 비몽사몽 하던 무르를 끌고 마법사를 나갔다. 내일 낮까지는 돌아온다는, 산책이라는 명목이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는 무슨 의도인지 짐작이 갔다. 그것은 샤일록 나름의 배려였다. 파우스트는 자신의 사정을 남들이 신경 쓰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피로가 한계에 쌓이기도 했으니 그의 호의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쩌다 한 번, 어쩔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니까. 어차피 흘러나갈 꿈이라면, 꼴사납게 쓰러져 피가로의 수고를 들이는 것보다는 순순히 잠드는 편이 낫다. 파우스트는 그렇게 판단했다.


레녹스는 피가로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한 다음 루틸의 방을 빠져나왔다. 남쪽의 마법사들끼리 모여 잠드는 것은, 물론, 레녹스도 좋아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결계가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순간부터, 레녹스는 그의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전에 현자님께 행방을 물었을 때에, 하고 있던 일이 길어져 복귀가 늦어지실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레녹스는 얌전히 기다렸다. 사실, 혼자서 해내실 수 없는 일이라면, 도와드리고 싶었으나…… 파우스트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은 결코 필요 없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고, 그것마저도 납득해주지 않을 것 같아 다음 장에는 진행 상황에 대한 보고서도 포함했다.

편지의 마지막에는 금방 돌아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상냥한 말도 적혀있었다. 그렇게까지 적혀있다면, 레녹스에게 ‘기다린다’는 것 외의 선택지는 없었다. 어쩌면, 예전에도 그랬듯이.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층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것은 붉게 타오르고 있는 복도였다. 레녹스는 스스로의 걸음을 재촉하며 파우스트의 방을 향했다. 마치 그것은 레녹스가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는 것과 같았다. 언제나 그에게는 기다린다는 것 외의 선택지는 없었다. 계속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 순간.

레녹스는 문득 생각하게 된다.

따라갔어야 하지 않았을까.

곁에 있어 드려야 하지 않았을까.

그분께서 뭐라 하시든, 그 손을 놓쳐서는 안 됐던 것이 아닌가.

과거의 그림자는 레녹스가 나아가는 것과 정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등을 돌리고, 잠들어있는 그를 외면하는 것처럼 멀리 떠나간다. 레녹스는 흐름을 거스르는 것처럼 파우스트의 방으로 나아갔다.

그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나? 꿈은 그저 꿈에 불과하다. 모든 것은 이미 흘러간 시간이다. 레녹스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 그것은 강을 거꾸로 헤엄치려는 것처럼 바보 같고 어리석은 일임이 분명했다. 레녹스는 앞으로도 평생 그의 꿈을 구할 수 없다. 열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지도 않고 들어가는 것에 대한 무례를 사죄하며, 레녹스는 그의 방 안으로 들어섰다.

파우스트의 꿈에서 흘러나온 불꽃이 방 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몇 번이고 거울에 반사되어, 방의 한 부분도 빠짐없이 전부. 마치 불이 끊임없이 옮겨붙는 것 같았다.

지금의 파우스트는 레녹스의 시야 안에 있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자, 그는 얼굴을 찡그린다. 파우스트가 악몽에 시달리는 날은 유독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레녹스가 이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몸을 흔들거나 말을 걸면… 아무리 깊게 잠들어 있더라도 기척에 민감한 파우스트라면 깨어날 것이다.

레녹스에게는 파우스트를 깨운다는 선택지가 있었다. 하지만 눈 밑에 있는 그늘이 마음에 걸렸다. 설령 악몽이라고 한들, 휴식은 휴식이다. 겨우 잠들어있는 파우스트를 깨워도 되는 걸까, 하고. 레녹스는 망설였다. 그때 레녹스의 양이 작게 메에, 하고 울었다. 작아진 상태인 양은 폴짝, 하고 요령 좋게 레녹스의 어깨에서 뛰어내렸다. 푹신한 침대 위로 떨어진 양은 파우스트의 품에 파고들었다. 악몽에 짓눌려 괴로워하는 그를 위로하는 것처럼.

파우스트는 깨어날 것처럼 움찔거리다, 잠결에 양을 꽉 붙잡아 끌어안았다. 양은 반항하지도 않고 조용히 그의 품에 안긴 채였다. 파우스트는 쌓인 피로 탓에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불타고 있는 풍경 한구석에 푸른 초원이 생겨났다. 파우스트는 그 초원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기댄 채 앉아있었다. 특별히 풀린 표정도 아니지만, 찡그리지는 않았으므로 기분이 좋은 상태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레녹스가 키우는 양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곁에 몰려드는 양이 아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시야의 끝에는 한 남성의 모습이 있었다. 빛에 반짝거려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처럼, 하얀 실루엣을 하고 있는 남자였다. 그가 파우스트의 세계를 향해 걸음을 뻗었다. 그가 걸어가는 길마다 양들이 뛰어노는 푸른 초목으로 변했다. 어느새 끔찍한 처형장의 불꽃은 사라져 없어졌다.

파우스트는 살짝 미소를 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입이 움직여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하얀 형체도 화답하는 것처럼, 파우스트를 향해 걸어온다. 그런 둘의 주변으로 푹신푹신한 양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레녹스는 드물게 편안 표정을 하고 있는 파우스트를 바라보았다. 전부 한날의 꿈인, 있을 수 없는 현실이라고는 알고 있지만…… 레녹스는 꿈속의 파우스트가 아닌, 잠들어있는 파우스트의 손을 붙잡았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고통스러워하던 표정은 풀어지고, 숨소리도 안정적으로 돌아왔다.

레녹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받은 것밖에 없는 것 같은데, 제대로 해줄 수 있었던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대체 왜, 자신의 무엇이, 그의 불꽃을 몰아낼 수 있었을까.

자신의 기억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산맥이 방을 뒤덮어간다. 레녹스는 이렇게나 아름다운 풍경을, 그를 찾아 헤매면서도 본 적이 없었다. 파우스트 님, 하고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꿈속의 파우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저, 한 순간의 꿈이라도 좋으니, 그가 예전처럼 편안하게 웃었으면 했다.

레녹스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언젠가 그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그에게 다시 한번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헤매던 시절의 이야기를. 파우스트는 그 곁에서 언덕에 앉아, 미소 짓고 있었다.

밤에서, 아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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