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약속

그 무렵에는

시노히스

분수의 물방울이 반짝거려 보석이 되는 순간, 심어두었던 나무가 처음 빛을 발하게 되는 순간, 창가 너머에서 웃고 있는 그 아이를 발견한 순간.

시노는 그런 순간들이 전부 좋았다. 춥고 어두운 밤, 히스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기분이 될 수 있다. 내일의 해가 뜨지 않을 것 같아도 다음 날 아침 꽃나무를 꺾어가면 히스는 웃어준다.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히스에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그러자 히스는 웃지 않았다. 어째서, 라고 되묻기도 전에 그 사실을 깨달았다. 히스는 나와 다르다. 상처에도, 피투성이에도 익숙하지 않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상처 아무렇지도 않아, 라고 해도 히스는 웃지 않았다. 그래도 꽃다발은 받아주었다. 내가 무서워도 히스는 나의 마음을 받아준다. 그걸로 충분했다.

그랬는데.

최근의 히스는 이상하다.

다른 녀석들에게 히스, 요즘 나를 피하지 않아? 라고 물어봐도 제대로 된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파우스트는 알아서 잘 해결하라고 하고, 네로는 파이 구워줄 테니 화해하고 오라는 말만 한다. 무책임한 어른들. 애초에 나는 히스랑 싸운 적이 없는데. 모처럼 노크를 해도 돌아오는 답이 없다. 이불 속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물론 억지로 걷어내면 히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더 화낼게 분명하다. 테이블 위에 가져온 꽃다발을 올려두고 방을 나왔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풀릴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다. 하는 수 없이 아침 단련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평소보다 안 좋은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하이파이브를 한 카인에게 걱정받았다. 괜찮다는 대답을 돌려주고선 낫을 꽉 쥐었다. 강해지려는 것도 전부 히스를 위해서다. 꽃을 바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히스는 그것을 거부한다.

한바퀴 뛰고 다시 중정으로 돌아왔다. 카인이랑 레녹스랑 셋이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며 단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슬슬 다른 녀석들도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 네로가 한참 아침밥을 완성해가고, 파우스트도 사실 이 시간이면 일어나있다. 방 밖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상쾌한 아침 바람에 이끌리듯 고개를 들었다. 밝은 햇빛에 한 번 눈을 찡그리고, 시야를 확보한다. 창문의 커튼 너머로 보이는 히스의 방은, 예전과 똑같았다. 밖에서 제일 잘 보이는 창가에 놓인 꽃병에는 내가 가져온 꽃이 들어있다. 소중하게, 시들지 않도록. 스트레칭을 하다 말고 나는 빗자루를 타고 창가로 다가갔다.

똑똑.

…똑똑똑.

똑똑똑쾅쾅쾅쾅

“시노! 그만해!”

“역시 깨어있잖아.”

방금 막 침대에서 일어난 히스의 머리는 엉망이었다. 언제나 그걸 단정하게 해주고 싶었지만, 히스의 머리카락을 정돈하는 것은 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내가 손대면 악화되기만 하고. 조심스럽게 손을 뻗자 히스는 볼을 붉히고 살짝 고개를 피한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히스는 평소보다 훨씬 예쁘고 좋아한다. 히스는 언제나 좋지만, 히스를 깨우는 날은 더 좋은 기분이 든다.

히스는 우물쭈물하고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양 눈을 꼭 감고, 다짐한 듯이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런 식으로 한 번 집중하면 주변을 보지 않게 되는 것은 히스의 나쁜 버릇이다. 특히 창문 앞에서 눈을 감고 몸을 기울이는 것은 특히 더 위험하다. 하지만, 그런 위험한 부분을 감싸주는 것이 종자의 역할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히스는 아마 우리 사이의 틈을 메우려고 다가오는 거다. 설령 그 끝이 창문의 너머라고 해도. 하지만 나는 히스와 거리를 좁히려고 창문까지 날아온 것은 아니다. 히스는 그걸 모른다.

“히스.”

하지만 몰라도 됐어. 지금 ‘종자’로서 너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이 틈을 메울 수 있으니까. 나는 히스를 꽉 끌어안았다. 앞으로 기울어지는 몸은 딱 달라붙는다. 두근두근, 히스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아아, 히스는 심장이 뛰는 소리도 예쁘구나. 새가 우는 소리에 맞춰 하나의 음악 같았다.

뒤늦게, 아까까지 훈련을 하느라 땀투성이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히스에게는 좋은 향기가 난다. 그 차이를 깨닫고 히스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그 마음도 모르고 되려 이쪽을 끌어안아 온다.

“시노, 여기에 있어.”

“어디에도 가지 않아.”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는 어디에도 갈 생각이 없다. 평생, 히스의 한 걸음 뒤에서 보필할 거니까. 그리고 죽은 다음에도 히스의 마음에서 살아갈 거니까. 하지만 히스는 그 대답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면 불안하니까 매번 확인을 받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 무렵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히스의 심장은 내가 꽉 끌어안고 있으면 빨라진다. 예전이 좋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는 것 뿐이다.

나는 소중한 보물을 흙더미 속에 숨기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그것을 덮어두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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