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약속

기분 전환

카인오웬

그 날은 유독 오웬에게 있어서 최악의 하루였다.

바닥에 떨어진 모자를 주워 먼지를 탁탁 털어낸 오웬은 얼굴을 한껏 찡그렸다. 갑자기 실험해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며, 미스라가 쳐들어 들어온 것이 1시간 전. 그런 미스라한테 살해당한 것이 20분 전. 심한 꼴을 당해서 복구하는데 20분이나 걸리고 말았다. 저항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미스라에게 이길 수 없었다.

그 생각을 하니 더 열이 뻗쳤다. 뭔가 기분 전환으로 달콤한 것이 먹고 싶어진 오웬은 부엌으로 향했다. 동쪽의 요리사나 쥐어짜 볼까 했는데, 아쉽게도 동쪽의 마법사들은 임무로 외출을 나갔다고 한다. 당연한 서순으로 히스클리프도 부재중. 오늘은 풀리는 게 하나도 없었다. 오웬은 네로가 나가기 전에 만들어둔 쿠키를 입에 잔뜩 욱여넣고, 평소와 같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장을 향해 떠났다.

시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서로 각자 갈 길을 향해 떠나고, 가끔 멈춰서기도 하며, 행복한 얼굴로 품에 얻은 것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오웬은 남의 천막 지붕 위에 앉아 그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물론 그를 눈치챈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천막 지붕 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이 제정신일 리가 없다.

오웬은 느긋하게 기지개를 쭉 켰다. 오늘은 날씨도 좋았다. 시장에는 사람이 많은 탓에 새들이 모이지 않지만, 대신 다른 사람들의 대화가 들렸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있으면 금방 기분이 괜찮아질 것 같았다. 아니, 분명 괜찮아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웬! 어디에 있던 거야. 한참을 찾았잖아.”

오웬의 기분은 최악에서 더 떨어질 곳도 없는 최악의 기분이 되었다. 카인은 다급하게 뛰어온 듯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 옆으로 넘겨져 있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틈 사이로 본래 오웬의 것이었던 눈동자가 보였다.

오웬의 표정이 알기 쉽게 구겨졌다. 방금까지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던 오웬은 어디에도 없다.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모습이 마치 환상 같이.

“왜 또 기분이 나쁜 거야?”

이럴 때에는 보통 용건이 먼저 아닌가. 급하게 뛰어온 주제에, 또 그 잠깐 사이에 잊어버린 모양이다. 아니면 오웬의 기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을지도… 어느 쪽이든, 오웬이 얼굴을 찡그릴 이유로는 충분했다.

“어차피 기사님은 말해줘도 모르잖아.”

“알 수 있어! 최근에는 오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맞췄단 말야.”

오웬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카인은 상당히 자신이 있어 보였다. 그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아서, 오웬은 다리를 꼬고 카인을 내려다보며 질타하듯 내뱉었다.

“하… 그럼 알려줄게. 눈알을 뺏어간 나에게도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거는 부분이 싫어. 기묘한 상처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아서 여기까지 오면서 계속 양해를 구하던 목소리도 싫어. 이유는 궁금하지도 않지만 나를 찾겠다고 시장까지 쫓아온 근성도 싫어.”

“…오웬, 너.”

그렇게 화를 내면 된다. 카인은 오웬을 올려다보느라 햇빛에 반사적으로 얼굴을 찡그린 것 뿐이지만, 그렇게 일그러진 표정을 보는 좋았다. 상대를 비웃는 것처럼, 오웬은 웃는다.

“내가 찾고 있는 걸 진작 알고 있었구나! 말해주면 좋았을 텐데. 아무튼, 지체할 시간 없어. 자리 없어지기 전에 가자!”

“하? 몰라.”

언제나와 같은 패턴으로 돌아왔다. 이 뒤부터는 항상 같은 흐름이 된다는 것을, 오웬도 알고 있다. 오웬이 한숨을 내쉬며 천막에서 내려온다. 카인은 드디어 갈 마음이 생겼나, 하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본다. 지금 대화의 흐름으로 그럴 리가 없는데도. 헛된 희망도 정도가 있지.

“아무랑도 대화 안 할 거야. 잡아당기지 마.”

영문을 모르겠지만 카인은 ‘이러다간 정말 늦는다’는 말만 하고서 오웬을 쭉쭉 끌고 나아갔다. 오웬이 너무 사람을 죽일 것 같은 표정을 해서인지 사람들은 슬금슬금 앞길을 비켜주었다.

평소에는 쓸데없이 배려투성이면서 급하면 행동이 조잡해지는 부분은 정말 좋지 않다. 오웬은 얼굴을 더 구기고서는 알았으니까 놓으라며 성질을 부리고 카인의 뒤를 쫓아갔다. 지금 사라지면, 기사님은 나를 찾으러 올까? 아니면 포기하고 돌아갈까?

“저번에는 같이 가자고 했더니 네가 갑자기 짜증 내면서 떠났잖아.”

“시키지도 않았는데 데려가 주니까 그렇지.”

카인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시키지 않으면 같이 가면 안 돼?”

오웬은 마침내 뭐라 할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됐어, 빨리 가기나 해, 하면서 오웬은 모자를 꾹 눌러썼다. 기분 전환으로는 나쁘지 않은 하루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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