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약속

유일하게 두려운 것

아서오즈

오즈는 지금도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새햐안 눈밭. 아무것도 없기에 비로소 자신의 장소가 될 수 있는 북쪽의 대지. 바람이 눈을 훑고, 가지를 흔들어, 저 먼 하늘로 떠나가던 날. 조용했던 정령들이 유독 시끄럽게 굴었던 날. 보통 이런 날에는 침입자가 근처에 있다. 오즈에게는 썩 달갑지 않은 날 중 하나였다.

오즈는 기본적으로 고요한 장소를 선호한다. 강제로 정령들을 조용히 만들어도 되지만, 침입자는 내버려 두면 또 사고를 친다. 그를 죽이는 편이 빠르다. 그런 생각으로 눈밭을 향해 걸음을 뻗었다. 내려온 어둠의 장막.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한 별. 혹한의 대지에 어울리지 않는, 얇은 잠옷을 입은 검은 남자.

소년은 그날 자신의 운명을 만났다.

아서는 현 그랑벨 왕가의 유일한 왕자였다. 한 번 실종 사건에 휘말려, 왕궁을 비우고 있던 그 시기조차도 아서는 유일한 왕자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이다. 설령 왕비에게 버려졌다고 해도, 북쪽에서 대마법사의 제자가 되었다고 해도. 차기 국왕이 될 사람으로서 정진해나가는 것은 아서에게 부여된 역할이었다. 많은 사람의 걱정과 기대를 안고, 아서는 그 자리에 서 있다. 매일 저녁 늦은 시간까지 공무에 시달려야 겨우 자신의 방으로 돌아올 수 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왕자로서의 일도, 현자의 마법사로서의 일도 빼먹지 않는다.

가뜩이나 바쁜 아서에게 더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즈는 아서의 호위를 거부했다. 너에게 지켜질 만큼 연약하지 않다, 오즈는 그렇게 말했다. 밤이 되면 마법을 쓸 수 없는 기묘한 상처를 얻었으면서도… 밤의 오즈는 무력하다. 순수 근력이라면 지나가던 사람과 싸워도 질 것이다. 반면, 오즈를 노리는 사람은 많다. 아서는 두려웠다. 감히 그럴 거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지만, 만약, 만약에라도… 오즈님께 무언가 큰일이 생겨버린다면… 그러면 나는……

“그건, 제 힘이 부족하기 때문인가요.”

두려웠다. 그 순간에, 자신이 없는 상황이. 그렇기에 아서가 하고 있는 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아서는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힘이 부족해서,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되려 위험하니까, 아직 한 사람의 몫으로 인정받지 못했기에 허락해주지 않았다고. 오즈는 차라리

“너는 아직 어리다.”

“벌써 7년 전입니다, 오즈 님. 아서는 그 후로 7년이나 자랐어요.”

오즈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또 7년이 흐르면 무언가가 달라질까? 그때에는 지금보다 이 아이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희미해질까? 아서는 더 이상 자신이 보호를 받아야 할 어린 아이가 아니라고 하지만, 오즈에게는 여전히 와닿는 말은 아니었다. 오즈가 알고 있는 세계는 더 강대하고 드넓은 곳이다. 하얗고 작은 종달새가 마음껏 날갯짓할 수 있을 정도로, 오즈가 봐온 세상은 달콤하지 않았다.

“오즈 님, 저는.”

오즈는 대답하지 않았다.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아는 언어를 전부 동원해 세계를 설명한다면, 아서는 납득해 주는 걸까? 그것에 대한 답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다. 아서는 그런 것으로 납득해주지 않을 것이다. 드넓은 미지의 세계는, 아서에게 있어서 호기심을 자극할 뿐이다. 성의 발코니에서 뛰어내리는 아이에게 높은 절벽이나 파도의 벽은 뛰어내리고 넘어야 하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즈는 아서가 위험한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그 몸을 어딘가에 내던지지 않도록, 곁에서 지키며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앞으로 얻어가는 지식도 전부 공유할 뿐이었다.

오즈는 그것으로 만족했지만, 아서한테는 아니었다. 단지 오즈에게 지켜지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거대한 달도,

쏟아지는 눈도,

그 어떤 괴물도, 마법사도, 인간도.

아서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이 앞으로 무슨 고난이 찾아와도, 어떤 절망을 겪더라도, 아서에게는 돌아갈 수 있을 곳이 있다. 자신을 끌어안아 줄 사람이 있다. 영원한 잠에 빠지게 된다고 해도 자신을 부드러운 이불까지 데려다 줄 사람이 있다. 유일하게 두려운 것이라고는 자신이 갈 곳이 없다는 사실 뿐이었다. 또 버려져, 별의 바다를 헤엄치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홀로 죽어가는 것.

“아서는 죽는다고 해도, 분명, 오즈 님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오즈는 두려웠다.

거대한 달도,

쏟아지는 눈도,

모든 괴물이, 마법사가, 인간이.

아서에게서 손을 놓은 그날부터 쭉 두려웠다. 언젠가, 반드시, 무언가가 원인이 되어 아서는 죽는다.

아서는 죽음에 뛰어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그날 별의 바다에서 헤엄치던 자신을 건져 올려 준 사람의 덕분이었다. 무엇을 이뤄내지 않아도 아서의 죽음은 가치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고귀한 사람에게 큰 가치가 있다. 설령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어떤 최후를 맞이해도, 아서에게는 도달할 곳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앞을 향해서만 나아갈 수 있었다.

오즈에게는 그것이 두려웠다.

언젠가 죽어 돌이 된 아서를 삼키게 될 자신이. 또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홀로 살아가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저택에 혼자 남겨지게 될 자신이. 그러니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게 아니라고, 제대로 전해주고 싶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설명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너를 돌로 만들기 위해 보살피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 나는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걸까?

우리의 짧은 몇 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 나는 너를 어떻게 생각하면 좋은 거지?

이런 감정의 이름은 모른다. 알고 싶어도 알 수 없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단지 바라는 것은, 너의 행복 뿐이었는데… 이 미래에도 쭉, 나보다 많은 시간을 살아가며, 너의 삶에 축복이 가득하기를, 그렇게 생각했을 뿐인데……

“오즈 님, 아서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세계가 울렁인다.

나는, 하고 오즈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하고 다시 입을 꾹 닫아버렸다. 말을 고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오즈에게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제가 죽고 나서는 늦어요, 오즈님. 아서는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 당신이 제게 베풀어준 모든 것들을… 지금 당장이라도 되돌려드리고 싶은데. 아서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달콤한 것이었다. 얼음 같은 오즈에게는 그것보다 더 두려운 것이 없었다.

“너에게, 바라는 것은…”

오즈는 세상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것을 ‘공포’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누군가는 말했었다. 딛고 있는 바닥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아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어진다. 아서는 평소와 같이 오즈를 끌어안았다. 괜찮아요, 오즈 님, 하고 달래는 듯이 중얼거린다.

언젠가는 이 공포도 익숙해지는 때가 올까. 오즈는 올 것 같지 않은 날을 상상하며 아서를 끌어안았다. 품 안의 아이는 처음 눈밭에서 만났을 때처럼 조금 차가웠고, 그것이 마치 돌과 비슷한 느낌을 들게 했다. 아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더 두려웠지만 품 안에서 놓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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