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약속

나의 XX

알렉파우

파우스트는 침대에 무거운 몸을 눕혔다.

파우스트는 항상 그와 함께한다. 눈을 뜨고 있을 때는 그릇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의 증오와 원망으로, 눈을 감고 있을 때는 달콤한 꿈의 사랑으로.

오늘도, 또, 마찬가지였다. 이 꿈의 끝은 언제나 숨통을 죄어오는 불꽃이더라도 파우스트는 그와 함께 행복한 듯 웃는다.



알렉은 손이 많이 가는 소꿉친구였다.

덤으로 무모하기까지 해서, 파우스트는 항상 알렉을 걱정하고 있었다. 몇 번이고 스스로 목을 내미는 알렉을 보고, 몇 번을 속으로 비명을 질렀던가. 항상 무리하지 말라고 크게 혼을 내도, 그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너희들도 항상 그렇게 싸워주고 있잖아. 무리 정도는 하게 해줘.

알렉은 마법사의 헌신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마법을 부러워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 강대한 힘에 두려움을 품지도 않고, 친구처럼 대해주었다. 혁명에 가담하면서도,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하여 혁명군을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지 않은 자는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마다 알렉은 목소리를 냈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마법사와 인간이 평화롭게 손을 맞잡고 공존할 수 있는 세계를 바란다고.

그렇게 말하는 알렉의 눈동자는 푸른 하늘을 닮았다. 파우스트는 그런 알렉의 눈동자가 좋았다. 반짝거리고, 항상 앞을 바라보는, 올곧은 사람의 모습. 자신의 팔을 잃었으면서도 알렉은 여전히 앞을 향해 나아가려고 했다. 파우스트는 알렉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다.

웃음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도, 혼자 울음을 삼키는 횟수가 늘어나도, 파우스트는 알렉의 곁을 지켰다. 알렉의 팔을 고쳐주지 못하는 파우스트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대신 파우스트는 매일 밤 그를 축복했다. 바라건대, 그대가 세상에 매몰되지 않기를. 바라건대, 그대가 마음을 배신하지 않기를. 잠든 알렉의 머리맡에서 그 손을 붙잡고 파우스트는 몇 번이고 기도했다. 흰 눈꺼풀 사이로 그 올곧은 눈동자가 다시 뜨기 전까지는, 꿈에서만큼은, 그가 평온하기를.

그리고 날이 밝고 난 뒤에는 다시 그 눈동자가 이쪽을 바라보기를. 알렉의 걱정에서 시작된 기도는, 언제나 파우스트의 제멋대로인 소원으로 끝난다. 그래도 좋았다. 알렉에게 말할 수 없는 소원만 계속 늘어나도, 파우스트는 좋았다. 알렉이 아직 앞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렇기에.

처음으로 알렉과 눈이 마주치지 않은 날, 파우스트는 그의 감정에 답을 내릴 수 있었다.

헛된 소망이라도 믿고 싶었다. 알렉은 설령 마법사가 아닐지라도, 친구니까. 그래서 같은 마법사인 종자를 거부하고 알렉을 따르는 것을 택했다. 인간들에게 있어서 약속이란 어겨도 상관 없는 가벼운 것이라고 알고 있어도. 내가 아는 알렉은, 다른 누구도 아닌 알렉만큼은, 불을 붙이지 않을 거라고.

고양이가 나무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말을 걸어온 소년이었다. 마법으로 나무에 올라가도 환하게 웃기만 하던 친구였다. 마치 돌풍이 훑고 지나간 것 같은 마을을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고, 우리가 세상을 바꾸자고 한 청년이었다.

성대하게 축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그 사이에 파우스트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없었다. 알렉, 알렉 그랑벨 님에게 영광을. 그래도 괜찮았다. 파우스트가 만일 이런 곳에 있지 않았다면, 그들과 마찬가지로 알렉을 칭송하고 있었을 테니까.

축복받은 거리. 그 곳을 파우스트가 걸어 다닐 수는 없었다. 두 다리는 족쇄에 묶여 땅에 박혀있는 것 같다. 그래도 괜찮았다. 파우스트는 언제나 이 족쇄를 끊고 밖으로 뛰쳐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알렉의 신용을 잃어버리니까 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하늘. 파우스트는 작은 창문 너머로밖에 그것을 보지 못했다. 감옥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작은 창문을 바라보는 것 뿐이었다. 파우스트는 알렉의 눈을 떠올리게 하는 푸른 하늘을 좋아했다. 해가 지면 노을빛으로 물들어버리지만, 완전히 해가 떨어지고 나면 반짝이는 별들이 파우스트를 반긴다. 그러면 그곳에 묶여있어도 그는 언제든지 친우의 곁으로 갈 수 있었다. 그 반짝이는 보석이 가득하던 동굴 속으로.

낮은 감옥에 앉아있는 언젠가의 나. 파우스트에게 위치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혁명은 영광을 얻기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바라는 것은, 알렉이 말했던 평화로운 세계.

높은 곳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언젠가의 너. 그 아름다운 모습을 또 곁에서 바라보고 싶었는데……

나는……

파우스트는 어두운 감옥에서, 가끔 자신의 감정에 짓눌릴 것 같은 때가 있었다. 작은 촛불조차 방을 밝혀주지 않아서, 거대한 재액의 빛에만 기대야 하는 어두운 밤은 특히 더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파우스트의 곁에 있어 준 것은 알렉의 꿈이었다.

― 파우스트, 전부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그는 웃었다.

하지만 그 풍경은 뜨거운 불에 밀랍처럼 녹아내린다. 파우스트는 답을 내렸다. 알렉의 푸른 눈동자는 언제부터인가 평범한 사람들의 것이 되어있었다고. 그것은 기적과도 같은 힘을 가진 마법사를 두려워하고, 같은 생명으로 보지 않는 눈이었다. 공포에 빠진 사파이어의 눈동자에, 무서운 자수정의 눈동자가 겹친다. 불을 붙이라고 명령하는 그는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었다. 친우의 두 눈동자는 더 이상 앞을 향해있지 않았다.

거기에 파우스트가 알고 있던 알렉은 없었다.

거기에 알렉이 알고 있던 파우스트는 없었다.

― 또 그때의 풍경을 함께 보자.

파우스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 하아, 하고 짧게 숨을 내쉰다. 마치 무언가가 목을 조르고 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파우스트는 발버둥 치는 것처럼 시트를 밀어낸다. 그래. 결코 잊을 수 있을 리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알렉과 지낸 시간은 단 1초도 잊지 못할 것이라고.

허나 파우스트 기억 속에는 모르는 알렉이 잔뜩 있었다. 과거의 기억은 당장이라도 떠오를 정도로 선명한 밤하늘의 형태를 하지만, 때때로 뜨거운 불꽃 속으로 매몰되어버리기도 했다. 파우스트는 다짐할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거듭해 기억이 희미해지더라도. 몇 번이고 악몽으로 상기시키면서,

평생,

평생, 너를,

너를, 너만을, 계속……

“알렉……”

튀어나온 목소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나약했다. 파우스트는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눈물은 볼을 타고 흐르지도 못하고, 천에 스며든다. 오열은 새어 나오지 않았다. 소리 내 울기에도 너무 늦어버렸다.

한 번이라도 물어보고 싶었다. 그날 화형을 막지 않은 것을 후회하냐고.

한 번이라도 물어보고 싶었다. 내가 너에게 복수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냐고.

한 번이라도 물어볼 걸 그랬다. 어째서 나를 두려워하게 되었냐고. 나의 무엇을 믿을 수 없게 되었냐고. 무엇을 고쳤으면, 나는 다시 너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냐고.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할 각오가 있었는데.

비겁한 알렉 그랑벨.

마지막까지 약속을 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은, 비겁한, 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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