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약속

식탁보

브래네로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차려준 요리를 먹어주는 모습이 기쁨으로만 다가오지 않았던 때가.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그가 앉은 의자가 피투성이인 것이 늘 있는 일이 되어버린 날이.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브래들리가 다쳐서 돌아오고, 평소랑 똑같이 저녁밥을 요구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을 때가.

시트린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어간다. 마음은 수만가지 생각이 얽혀가며 뜨거워지는데, 보내는 눈빛은 따스해지지 못했다. 도무지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언제나와 같이, 피투성이가 된 브래들리를.

식탁보를 더럽히지 마! 네로는 그렇게 화냈다. 정말로 식탁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다. 브래들리의 피로 하얀 식탁보가 물들어가는 모습이, 보기 힘든 것 뿐이었다. 마치 죽음이 퍼져가는 것 같아서. 그만큼 브래들리의 목숨이 흘러내리는 것 같아서. 네로는 그것이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브래들리는 혼자 외출을 다녀왔다. 그가 가져온 것은 새하얗고 부드러운 천이었다. 옷에 대해서 잘 모르는 네로의 눈으로 봐도, 잘난 놈들이 중요한 날에 꺼내 입는 옷감 같았다.

도무지 식탁보 따위로 쓸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는데, 브래들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이런 것쯤은 얼마든지 줄 수 있어. 그러니 화 풀어, 파트너.’라고. 네로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빨아도 사라지지 않는 붉은 흔적을 바라보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려야지. 최종적으로, 네로는 전의 식탁보는 불태운 다음 브래들리에게 받은 새로운 식탁보를 깔았다.

흔적이 말끔하게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는 것은 쓸 수 없다. 하얀 천은 다른 색으로 물들면 가치가 떨어진다. 그리고, 브래들리가 자신의 욕심이나 명성이 아닌…… 오직 자신만을 위해 무언가를 가져왔다는 사실은 꽤 나쁘지 않았다. 그래. 네로는 천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브래들리가 나를 위해 가져왔다’는 사실 하나만이 기뻤다.

브래들리는, 네로가 그 식탁보를 마음에 들었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움직임에 평소보다 좀 더 주의를 기울였다. 상처가 나면 피를 흘리게 된다. 보석도 아닌 그까짓 천 따위는, 몇 번이고 내어줄 수 있지만, 네로는 그 식탁보가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네로가 마음에 든 것을 또 더럽히면 화를 낼 테니까.

피투성이로 만들 순 없으니까 조심했다.

그것도, 브래들리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한 번 툭 내뱉어봤을 뿐인 것. 하지만 네로에게는 달랐다. 처음으로 브래들리가 말을 듣고 조심해주었다. 그 결과 피를 흘리지 않았다. 식탁보는 더럽혀지지 않았고, 네로는 웃었다.

하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그 식탁보가 순결함을 유지할 일은 없었다. 브래들리는 얼마 가지 않아서 또 크게 다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주제에 책상에 쓰러진 채로 밥을 먹었다. 마치, 네로가 화냈던 것은 새하얗게 잊어버린 것처럼.

이제, 지쳤다.

도적단을 벗어날 때, 네로는 그 무엇도 챙기지 않았다. 그저 빨리 사라지고 싶었다. 브래들리가 죽기 전에. 내가…… 브래들리를 죽이기 전에. 눈밭을 걷고 또 걸어서 북쪽을 벗어날 생각이었다.

북쪽 나라를 떠날 때 위장용으로 필요했던 것이 하얀 천이었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고, 눈을 닮은 하얀 천을 두르고 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네로는 식탁보를 골랐다.

그 천은 마지막 미련을 닮아있었다.

브래들리라면 분명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대지에 얼룩진 흔적을. 약간의 소망을 담은, 망설임을. 북쪽에서 벗어나기 전에. 분명, 잡히지 않고 나를 쫓아온다면……

하지만, 네로가 뒤를 돌아볼 일은 없었다.

……

그는 식탁보를 걷어냈다.

“뭐야, 청소?”

“……아아. 조금, 그럴 일이 있었어서.”

조금 전, 리케가 마시던 음료수를 엎었다. 하얀 식탁보에 엎어진 오렌지 주스는 빠르게 천에 스며들었다.

리케는 그야말로 대패닉을 일으켜,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있었다. 네로는 몇 번이고 이 정도는 괜찮아, 늘 있는 일이야, 누구나 하는 실수야 하고 리케를 달래주었다. 그래도 리케는 끝까지 책임지겠다며 식탁보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지금쯤 미틸과 물놀이를 하며 빨래를 하고 있을 것이다.

“개구쟁이구만.”

“애들은 원래 다 그래.”

“그러냐……”

더럽혀진 하얀 천은 처음과 같은 색으로 돌아갈 수 없다. 브래들리가 죽어가던 네로를 주운 것처럼. 건네고 싶은 반지가 있어서 대지 위를 흔적으로 더럽히는 것처럼. 한 번 품어버린 사랑이 살의로 변질되는 것처럼.

“남이 식탁보를 다시 까는 동안 은근슬쩍 음식에 손대지 마. 네녀석으로 플레이팅 해버린다.”

“오우, 알았대도. 정말인지… 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깔끔한 것을 좋아하구나.”

딱히 그의 앞에서 순결하게 있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사랑도, 살의도, 품은 채로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네로는 한 번도 자신이 하얀 식탁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추잡하지 않은가. 한 사람을 아끼고, 사랑한 끝에, 차라리 내가 죽여버리고 싶어졌다니. 그런 건,

“뭐, 그렇지. 누구 때문에 말야.”

하얀 식탁보에 담은 마음도, 평생 말하지 않아. ……당신에게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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