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팟의 먹거리
영광의 거리
“오웬, 조개 수프 먹을래요? 아까 노점에서 샀는데, 조개가 잔뜩 들어가 있어요.”
“하? 왜 나한테? 싫어.”
“아, 저번에 리케랑 갔던 디저트 가게. 오늘은 열려 있네!”
“…….”
“하나씩 사서, 강가에 앉아 먹어요. 케이크 드실 거죠?”
“먹을래.”
*
현자는 느긋하게 흐르는 배와 사람들에서 따뜻한 그릇 속 수프 건더기를 떠올렸다. 서로 다른 것들이 모두 부딪치지도 억지로 섞이지도 않고 그저 평화롭게 어울려 천천히 맴도는 모습. 현자는 제 상상에 놀라며 벤치에 기댔던 허리를 폈다. 잔잔한 운하를 앞에 두고도 굶주린 코는 물비린내보다 손 안의 조개와 토마토, 국물의 냄새를 먼저 잡아냈다. 한번 먹어본 적 있어 혀가 그 맛을 잘 아는 명물 요리는 식욕을 무섭게 자극했다.
영광의 거리 명물 조개 수프는 토마토와 향신료, 기호에 따라 파스타까지 넣어 든든하게 끓이는데, 그 조합들이 결코 과하지 않고 주재료인 조개에서 우려낸 육수가 깔끔한 맛을 낸다. 현자는 우선 수저를 쓰지 않고, 직접 그릇을 입으로 가져갔다. 한 모금 마시자 금세 따뜻하고 향긋한 수프의 감칠맛이 즐거운 자극을 주며 넘어갔다. 현자는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쉰다.
고개를 돌리자 역시나 포크도 없이 케이크 한 덩이를 움켜잡고서 우악스레 밀어넣는 오웬이 보였다. 그는 타인의 행복에는 일절 관심없다는 얼굴로 운하를 바라보고 있다. 재미없는 영화를 보면서 다만 맛있는 팝콘에만 열중하는 모양새다. 현자는 문득 마법사들과 제 세계의 영화들을 함께 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지극히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스크린 오락거리가 그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생각하면 조금 멋쩍기도 했다. 지금 곁에 앉아있는 인물만 해도, 현자로서는 어떤 매체를 통할지언정 완전히 묘사할 수 없지 않나.
현자는 오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단정한 얼굴과 어우러지지 않는, 그래서 매번 깜짝 놀랐던 난폭한 행동들이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다. 오웬은 디자인이니 데코레이션이니 하는 것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케이크를 뭉개며 즐거워하고, 조금씩 베어물기보다 입안 가득 꽉 찬 크림에 만족한다. 그렇게 좋아하면서 묘사할 때는 오싹한 선을 넘어 꼭 저렇게 말해야 하나, 악의가 느껴진다며 불쾌하게 여길 표현만 공들여 골라낸다. 좋아하는 아이를 괴롭히고 싶어지는 심정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심결에 아름답게 설명하고 마는 것들도 있다는 걸, 현자는 알았다. 악의는 강하지만, ‘최강’은 아니다. 그걸 알기에 현자는 오웬이 어렵다. 극단적인 악의 사이로 엿보이는-따라서 틀림없이 존재할-인간성이. 자신을 이루는 모든 것을 기꺼이 악의로 채워놓았는데, 그를 부정하는 부분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게.
“…왜 그렇게 보는데?”
“아, 죄송해요……. 오웬, 조개 수프 먹어볼래요? 맛있어요.”
“안 먹는다고 했잖아.”
“단 것만 먹으면 질리잖아요.”
오웬은 말없이-그리고 보란듯이 케이크를 다시 한 움큼 집어들었다. 스스로 입을 틀어막으며 대답할 여지까지 삼켜버린다. 현자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가, 따라서 조갯살 하나를 수프와 함께 떠먹었다. 탄력이 적당한 살, 즙과 함께 새어나오는 수프 국물을 꼭꼭 씹었다. 맛있는데. 그의 아쉬움은 어디까지나 같은 경험을 공유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물론 걱정도 있지만. 현자는 의사가 아니므로 마법사의 신체구조를 모르고 다만 돌연변이에 가까운 그들이 경이로운 수명을 타고난다는 것, 신비로운 힘을 다룰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인간과 분명 다른 데가 있다는 걸 배웠다. 그 힘이 인간이라면 당연히 취해야 할 수면, 식사 등의 행위를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미뤄준다는 것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기계처럼 살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는다. 수면과 식사는 결코 순수히 신체에만 영향 주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정말로 좋아하는 것만 먹으며 살 수 있는가는 의문이었다. 싫어하는 걸 억지로 먹는 행위도 마음 즉 마력에 영향을 미칠까? 편식이 심한 마법사도 있고 몇 번인가 마법관 주방을 빌려 마법사들을 대접해본 결과 제법 확고한 호불호가 있음도 안다. 그렇다고 정말로 좋아하는 음식만 먹으면, 신체나 마음 건강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그리고 현자가 알기로 가장 취향이 확고하며 그 외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는, 마음에 솔직한 마법사가 마침 곁에 있다. 현자는 다시 수프를 조금 먹고, 오웬이 새 케이크를 꺼내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오웬은 그렇게 한 가지 음식만 먹어도 몸이 망가지지는 않나요?”
“한 가지 음식?”
“오웬은 늘 단 것만 먹잖아요. 크림이라든가, 초콜릿이라든가……. 솔직히, 건강한 식단은 아니니까요. 몸이 상하진 않나 걱정돼서요.”
“흐응.”
오웬은 짧게 대답하더니, 케이크 위에 올라가 있던 초콜릿 판을 집어 와작와작 씹어먹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이쪽을 보며 히죽 웃는 것이다. 현자는 이런 미소를 짓는 오웬을 꽤 자주 보았다. 반사적으로 느껴진 불안은 그 때문이었다.
“알았다. 현자님은 내가 싫어하는 음식을 억지로 먹이고,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야. 나를 괴롭히면서 희열을 느끼려는 거지.”
“아,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저는 정말로 걱정되고, 궁금하기도 해서….”
“거짓말. 아까부터 계속 먹어보라고 했잖아.”
“수프는 정말 맛있다구요.”
매번 이런 식인데도, 매번 마음을 졸이며 대답하고 만다. 그래도 매번 부정하고 싶어. 만약 한 번이라도 그렇다 인정했을 때의, 설령 그것이 농담이었더라도, 그때의 오웬이 지을 표정을 현자는 보고 싶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현자는 매번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고, 오웬은 그런 현자를 매번 가지고 놀았다. 상대의 신경을 갉아먹듯 야금야금, 한참을 실컷 가지고 놀고서, 옆으로 죽 밀려난 채 현자조차 잠시 잊고 있던 현자의 말을 도로 끌어와 준다. 부조리해서 더 달콤한 대화.
“뭐, 괜찮지 않을까? 몰라. 난 애초에 다른 마법사랑도 다르니까.”
“다르다고요?”
“잊었어? 난 죽지 않아.”
현자는 잘 만든 도자기 인형처럼 매끄럽고 하얀 오웬을 바라본다. 생명 없는 것의 색을 띠고서도 오웬은 살아있다. 심장이 뛰지 않아 죽은 몸으로 산다. 몸은 살아있는데 심장만 없는 거지. 오웬은 달콤한 크림을 소화할 수 있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뱉을 수도 있고 피를 흘리기도 하니까. 현자는 오웬이 삼킨 음식들이 제대로 소화되어 오웬을 구성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지금 그가 베어무는 빵과 크림과 초콜릿과 설탕으로 코팅된 과일은 그의 피와 살이, 생명이 되어주고 있을까.
오웬의 눈을 본다. 왼쪽은 노랗고 오른쪽은 붉은, 색이 다른 눈. 오웬이 죽으면 카인에게 받은 눈도 함께 죽을까? 오웬이 살면, 카인의 눈도 함께 사는 걸까? 오웬이 죽으면, 오웬은 두 눈을 모두 감을까?
현자는 이 질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강바람에 조금 미지근해진 수프 그릇을 두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그래도, 저는 오웬이 이왕이면 골고루 먹어줬으면 해요. 싫어하는 걸 억지로 먹으라는 게 아니에요.”
“그럼?”
“이것저것 조금씩 맛보다 보면 생각보다 괜찮은 맛도 있을 거고, 오웬이 좋아하는 음식이 늘어날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자연스럽게 식단도 지금보단 건강해질 테고, 오웬도, 오웬을 이루는 것들도 모두…….”
현자는 수프로 목을 축이는 척 말을 고른다. 반짝이는 강에는 어느덧 조금씩, 토마토에서 배어나오는 즙처럼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뒤집은 조개껍데기의 배를 타고 유유히 흘러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현자는 말했다.
“오래오래, 살 수 있을 테니까.”
내뱉고 나면 꼭 제가 한 말의 우스운 점들이 보인다. 현자는 민망한 마음에 연거푸 수프를 들이켰다. 그릇 바닥에 겨우 두어 모금 남긴 채 돌아본 오웬의 표정에는 더할 나위 없는 황당과 당황, 그리고 약간의…… 말로 할 수 없는, 그래서 현자가 어쩔 수 없이 ‘그의 인간성’이라 표현하는 어떤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 모든 것을 지우고, 오웬은 강을 바라보았다. 낮에는 낮만의 활기, 밤에는 밤만의 생기가 있는 마을이다. 악의도 환영하며 기꺼이 음식을 내주는 영광의 거리. 결코 가라앉지 않는 배에서 현자는 카인이 추천해준 조개 수프를 줄곧 떠올렸다. 오웬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그때 갑자기 오웬이 현자에게 손을 뻗었다. 정확히는 현자가 들고 있는 그릇이었다. 그는 현자가 뭐라 할 새도 없이 덥석 빼앗아 가더니, 그릇을 기울여 남은 수프를 입안에 흘려넣었다. 제가 줄곧 해왔던 동작인데도 역시나 완전히 새롭게 느껴지는 건-벌써 몇 번이나 극찬해온 바 있는-그 특유의 아름다움일 테다. 현자는 긴장과 설렘 어린 얼굴로 오웬이 그릇을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오웬은 입술을 혀로 한 번 핥고, 그릇을 현자에게 휙 던졌다. (모든 동작을 홀린 듯 관찰하던 현자는 뒤늦게 허둥지둥 받아내다가 손에 수프 방울이 튀어 퍼덕거렸다.) 그리고 곁에서 일어나는 소란을 흘긋 보다가 툭 대답했다. 소감은 간단했다.
“입맛 버렸어.”
“마, 맛 없었나요?!”
“맛이 너무 강해. 이러면 케이크 맛이 묻히잖아.”
그러고는 곧장 먹다 만 케이크를 크게 베어물었다. 몇 번 입맛을 다시고는, 재차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맛이 너무 강해…….”
현자는 오웬을 잠시 쳐다보다가, 빈 그릇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한번 받아들이면 절대 존재감을 잃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리하여 결코 이전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오웬이 싫어할 만하다고, 현자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서 이렇게도 생각했다. 그가 되뇐 쪽이 ‘입맛을 버렸다’가 아니라, 그저 ‘맛이 강하다’는 감상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오웬, 저도 케이크 조금만 나눠주세요.”
“하? 줄 리가 없잖아. 싫어.”
“오웬은 제 수프 먹었으면서.”
“네가 주고 싶어해서 먹어준 거라고.”
저녁 노을 아래, 조각 케이크 위로 하얗게 올라간 생크림도 약간 불그스름하게 물들었다. 현자는 포크 끝에 묻은 크림을 살짝 물고서 웃었다. 그는 수프를 배불리 먹고 디저트에 손댈 때까지도 계속 음식과 사람, 풍경을 비교하고 있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