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약속

흙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알렉파우

처음 꽃을 입에서 토한 날도 곁에 알렉이 있었다. 입에서부터 쏟아져나온 파란색의 꽃잎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색을 하고 있었다. 알렉은 당황하면서도 파우스트의 등을 토닥여주었고, 파우스트는 한참을 입에서 꽃을 내뱉었다. 알렉은 놀라서 도망가거나 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파우스트의 곁에 있어 주었다. 욱신거리는 고통을 속이는 것처럼 파우스트는 꽃을 토해냈다.

그것은, 둘의 두 번째 비밀이 되었다.

알렉은 그 꽃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고양이를 낫게 한 파우스트를 보고 웃었던 것처럼. 빈도는 적었고, 꽃잎은 스스로도 처리할 수 있었다. 몸에 악영향을 끼치지도 않았고 남들에게 옮는 일도 없었다. 해가 되지 않으니 무시했다.

파우스트가 그 병의 진실을 알게 된 것은, 긴 시간이 지나고… 스승이 생겼을 때의 일이었다.

꽃을 토하는 병. 많이 본 색을 하고 있는 꽃잎. 몇 번이고 중얼거리던 이름. 피가로는 알렉과 처음 만난 날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고,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전투 중에 꽃잎을 뱉게 되는 일은 없었다. 용감하게 나아가는 알렉의 등을 바라보면 그것으로도 만족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감정은 거짓이 아니었는데. 알게 되어버린 진실이 사라질 일은 없었다. 아무런 해도 되지 않았을 그것은 몸에 박힌 가시가 되었다.

당사자에게는 비밀로 하고, 스승과 함께 몇 번이고 해주법을 찾았다. 저주가 아니라고 했지만 저주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마법사는 마음으로 마법을 쓴다. 마법사는 언제까지고 자신의 마음을 속이며 살아갈 수 없다.

‘거짓말쟁이.’

그것은 누가 뱉은 말일까. 자신이? 꽃잎이? 마법사가? 인간이? 그것도 아니면…… 너인가?

‘배신자.’

파우스트는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파우스트는 알렉에게 말할 수 없는 큰 비밀을 품고 있었다.

―사실, 알렉, 너를 좋아하고 있어.

그렇게 말하면 보답받는 걸까?

이 꽃잎이 멎는 걸까? 그 무엇 하나 안정되지 않은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어제 쥔 것도 내일 잃어버릴 수 있는 전장에서, 좋아한다고 말하면 너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거야?

나는 너에게 줄곧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너를 언제나 배신하고 있었다.

그래도 파우스트는 믿었다. 둘의 사이에는 비밀로 하는 거짓말이, 분명히 있었다. 알렉은 몇 번이고 바닥에 흩어진 꽃잎을 보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팔을 잃고 가끔 혼자 울고 있었던 알렉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처럼. 서로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었고, 서로 흙에 묻어두기로 했다. 우리는 분명 그렇기로 했었다. 

화형대에 불이 붙었을 때는, 차라리 이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감옥의 바닥을 꽉 채울 정도로 뱉었던 꽃잎들도 이걸로 해방될 수 있겠지. 마치 마나 에리어에 놓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의 감정이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린 것처럼.

마음에 품었던 푸른 눈동자는 어디에도 없다.

기나긴 하늘에서, 해방되었다.

파우스트는 눈을 감았다.

레녹스가 데리고 와준 오두막은 고요했다. 파우스트는 그 고요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레녹스는 말하지 않았다. 파우스트가 물어보지 않는 한은. 파우스트는 솔직하게 살아오고 싶었지만, 문득, 서로 말하지 않는 것으로 많은 시간을 넘겨온 듯한 기분도 들었다. 파우스트는 입 밖으로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어차피 목구멍을 넘어올 수 있는 것은 이제 없으니까.

침대에 누워있자 문득 떠오른 것은 곁을 떠난 스승의 가르침이었다.

마법사는 자신의 마음을 배신할 수 없어.

하지만 지금껏 잘 숨겨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말은 저주가 되기도 한다고 한다. 파우스트는 기침 사이에 섞여나온 파란 꽃잎을 바라보았다.

너는 그를 잊지 못할 거야, 파우스트. 나에게는 알 수 있어. 그러니, ―――――.

아, 그런가, 나는 이 지경이 되어서도… 많은 동포를 잃고도, 여전히. 파우스트는 안의 것을 게워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목구멍 안쪽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올라왔다. 파우스트는 그대로 오두막에서 벗어나듯 뛰었다. 부서져 가는 것 같은 몸으로, 아무도 없는 곳으로.

처음 몇 년은 움직일 힘도 없는 채로 누워 꽃잎만을 뱉으며 살아갔다. 바닥을 메운 꽃잎은 쿠션이 되어 차가운 바닥을 잊게 해주었다. 

몸이 회복되고 난 다음에는 풍부한 자연에 둘러싸여, 풀밭에 꽃을 토해내는 것으로 속이는 것처럼 살아갔다. 알렉을 향해 저주의 칼날을 들이밀면 언제나 꽃잎이 저지하는 것처럼 튀어나왔다. 마치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알렉을 저주하려고 떠올리지 않으면 꽃잎은 뱉지 않는다. 견디지 못하고 저주하기 위해 못을 들고, 토해내고, 또 한동안 잊으며 살다가, 화상자국이 눈에 들어오면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된다.

어느 날을 경계로, 파우스트의 증상은 멎었다.

특히 기쁘지도 않았고, 절망적이지도 않았다. 단지 평생 끝나지 않을 것에도 유효기간은 있다는 교훈을 얻었을 뿐이었다. 그날의 하늘은 유독 높고 푸르기만 해서, 이제는 사라져버린 꽃잎을 떠오르게 했다. 마음은 흘러가는 구름처럼 고요했다.

그 후 몇십, 몇백년 동안 저주상을 하며 살아갔지만 같은 증상을 안고 있는 사람은 마주하지 못했다. 떠난 스승도 자세한 것은 알려주지 않았기에 진실은 알 수 없는 채였다.

어쩌면, 평생 알 수 없는 채로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몰랐는데. 파우스트가 현자의 마법사에 뽑히고, 《거대한 재액》토벌에 10명의 희생자가 난 해… 본의 아니게 중앙의 땅에 머물게 되었을 때. 새삼스럽지만, 파우스트는 처음으로 알렉이 죽은 날을 알게 되었다. 죽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명확한 날짜를 알게 되는 것이 처음이었다.

알렉 그랑벨의 서거일.

그 시기를 확인하자 세상이 울렁거리는 기분이었다. 무언가를 토해낼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입을 틀어막았지만, 새어 나오는 것은 없었다.

그날의 하늘은 유독 높고 푸르러서, 잊었을 터인 꽃잎을 떠오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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