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번이고 당신의 곁에
아서오즈
그동안 함께 지내오며 엇갈림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나쁜 관계는 아니었다. 둘은 세간에서 말하는 ‘싸움’이라는 것을 해본 적은 없었다. 아서는 고개를 숙였다. 눈에 보이는 것은 마주 본 두 켤레의 신발.
“그건 저에게…… 알려줄 수 없는 것인가요?”
평소의 그들이었다면, 이런 무거운 분위기는 오래 가지 않았을 것이다. 아서가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오즈는 어쩔 수 없는 기분이 들어, 상냥하게 그의 고개를 들게 해줬을 것이다.
오즈는 항상 말했다. 네가 고개를 숙일 것은 아마 것도 없다고. 세상 모든 것들을 고개 숙이게 하는 마왕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 너는 그러지 말라고. 하지만 아서에게도 가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고 싶은 순간이 생기고야 만다. 하지만 그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오즈님,” 하고 재차 이름을 불렀다. 아서를 고개 숙이게 하는 것은 언제나 슬픔이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시야에서 신발 한 켤레가 사라졌다. 아서는 끝까지 고개를 올려보지 못했다. 오즈가 돌아보지도 않은 채 내뱉은 것은, 마치 작별을 고하는 말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너에게 말할 일은 없다. 앞으로도, 쭉.”
그것은 무척 심플한 거절이었다.
아서는 그를 뒤쫓아가지 못했다. 발이 무엇에 묶이기라도 한 것 처럼, 무거워서, 차마…… 아서는 제때에 오즈를 쫓아가지 못했다. 아서의 시야에 남은 것은 어둡고 어두운 그림자 뿐이었다.
“……그래서, 오즈랑 싸움이라도 한 거야?”
아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피가로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아서가 스스로 내린 차는-따르다가 잔이 넘치는 헤프닝이 있었다- 이미 차갑게 식어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이 상태다. 피가로는 솔직히 말해 애를 먹고 있다. 만약 아서랑 오즈가 싸웠다고 치자. 그러면 누가 나빴을까? 피가로는 망설임 없이 당연히 오즈를 택할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그를 둘러싼 고독의 세계를 끝내 부숴주지 못했던 스노우와 화이트, 피가로가 나빴겠지.
아서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다가, 그 푸른 눈동자는 어두운 바다에 떨어지는 것처럼 다시 아래를 향한다. 언제까지고 이 상태로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즈가 싫어졌어?”
사실 별로 의미 없는 질문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굳이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만약, 아주 작은 확률로라도,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야 하니까.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있을 리 없어도.
“그건 아니에요! 저는……”
세상 그 누구도 오즈에게 애정을 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쌍둥이도 하지 못했고, 피가로도 마찬가지였다. 숨을 쉬는 것처럼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아이였다.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삶을 이어 나갈 수 없는 괴물이었다. 밥 대신 마나석을 입에 머금고 있었던 마법사. 훗날 마왕으로 불릴 존재, 오즈. 그런 그에게 제 품을 내어줄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니, 오즈는 아마 평생 고독할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마왕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순간의 변덕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제까지고 아이를 죽이지 않고 품에 안고 있었다. 심지어 품에서 벗어가 날아가도록 내버려 두기까지 했다. 세찬 바람이 불면 휩쓸려 떨어질 것 같은데, 새장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용해준 것이었다. 거기에 더 넓은 세계가 있으니까? 새장에 갇혀 사는 것은 불쌍하니까?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무슨 이유라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럼 된 거야.”
그걸로 충분해. 아서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 아이는 여전히 진심으로 오즈를 안아줄 수 있다. 그것이 변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세상이 홍수에 휩쓸리거나 빙하기를 맞이하지는 않겠지.
피가로는 비가 쏟아지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루틸과 미틸이 피크닉을 가자고 했던 것도 이제 3일이 지났다. 내일은 맑아졌으면 하는 소원을 담아, 피가로는 아서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
…
“오즈야.”
“오즈야.”
쌍둥이가 멍하니 불을 바라보고 있던 오즈의 곁으로 다가갔다. 오즈는 그것을 내쫓지도 않았지만, 반응해주지도 않았다.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자, 무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쌍둥이는 볼을 부풀렸다. 오즈야! 하고 재차 이름을 불렀으나 오즈는 여전히 벽난로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것은 중증이다. 의자에 앉은 오즈의 양쪽에 서 팔을 잡아당기며 스노우와 화이트는 말했다.
“날씨가 도무지 좋아지지를 않아서 훈련하는 아이들이 고생하고 있지 않느냐.”
“날씨가 변함없이 나쁘니까 소풍도 연이어 취소되고 있지 않느냐.”
오즈는 그제야 불에서부터 시선을 옮겨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자 먹구름이 물러갔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 찰나일 뿐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이번에는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즈는 창문에 맺히는 물방울을 바라보다 불꽃으로 시선을 옮겼다. 모두가 입을 다물자 탁, 탁하고 모닥불의 불꽃이 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어느새 비는 그쳤다.
스노우와 화이트는 손을 모아 오즈의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나름 위로의 표시일 것이다. 오즈는 마찬가지로 그것에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뿌리치지 않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스노우와 화이트는 아무런 말 없이 오즈의 곁에 있어 주었다. 둘은 결코 오즈에게 등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경계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 차라리 밤이 온다면.
밤은 유일하게 오즈가 섭리에서부터 단절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아이가 살아가는 세상을 매몰시켜버리기 전에, 차라리, 내 손에서 세계가 벗어나기를…… 오즈는 눈을 감았다. 어느새 쌍둥이는 모습을 감추었고, 빗방울이 창문에 튀는 잡음은 사라졌다. 지폈던 불은 어째서인지 꺼진 뒤였다. 오즈는 마도구를 붙잡았다. 불을 붙이는 것 정도는 밤에도 할 수 있으니까. 주문을 입에 담으면, 쏟아지는 졸음과 함께 과거가 떠오른다. 아이는 무엇이든 스스로 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벽난로의 불도 스스로 붙여보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다른 매개체를 이용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극구 반대했던 기억이 있다. 불은 아이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 멀리서 마법으로 붙이는 것이 아닌 근거리에서 물건으로 불을 자아내는 것은 더더욱. 그건 언젠가 네가 소년이 된 뒤에 해보자고.
끝내 소년이 불을 붙일 일은 오지 않았지만, 그곳에 남은 오즈는 몇 번이고 불을 끄는 것을 반복했다. 불을 지펴 모든 것을 태워버렸다. 재가 되고 나면 남아있는 불을 끄고 텅 비어버린 방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그 공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시 방의 물건들을 마법으로 되돌렸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서 다시, 주인 없는 방에 불을 지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했다. 계속 반복하고 반복하고 반복했다. 수를 세는 것을 포기한 것은 나이를 셌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내가 무엇을 했으면 좋았을까?
나는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애석하게도 오즈는 그런 것을 알지 못했다. 적어도 지금은… 목이 마른 것 같다. 오즈는 벽난로를 뒤로 한 채 방 밖으로 나갔다. 짙은 어둠을 감싸는 것처럼 오즈는 걸음을 내디뎠다. 오즈는 사랑받을 수 없었다. 싸워 죽을 수 있는 시간도 이미 지나버렸다. 미래영겁, 이 목숨이 다한 후에도, 오즈는 사랑받지 못한다. 그러한 생명으로 태어났고, 그러한 역사를 쌓아왔다.
차마 닫히지 못한 창문 사이로 차가운 밤공기가 들어왔다. 연이어 내린 비 탓인지 기온이 크게 오르지 못한 모양이다. 오즈는 마치 설산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정도의 추위쯤은 북쪽에서 살았을 때는 느껴지지도 않았을 터인데, 따뜻한 온기에 익숙해진 몸은 춥다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얇은 옷을 입고 헤매던 날처럼. 아주 먼 옛날, ‘혼자’밖에 모르던 시절. 돌아본 눈밭에 남은 것은 한사람분의 발자국이었다. 오즈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마저 길을 나아갔다. 마치 처음부터 곁에 거닐던 아이는 없었던 것처럼……
“――오즈님!”
팔이 잡혀 뒤를 돌아보았다. 오즈의 붉은 눈동자를 마주한 아서는 조금 긴장한 듯 망설이다가도, 더 꽉 그의 팔을 붙잡았다. 오즈가 도망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서는 “몸이 차가우세요,” 하고 아서는 손 위치를 옮겨 오즈의 손을 꽉 붙잡았다.
자신이 비호하던 작은 아이는 없다. 책임과 의무를 짊어지고 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니는 왕자만이 남아있었다. 그쪽으로 향할 수 있도록, 날갯짓 할 수 있도록, 놓아준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다. 놓아주지 않았더라면, 차갑고 외로운 북쪽이라도 편안하게 지냈을지도 모르는데…… 오즈는 아서에게 잡히지 않은 쪽의 손을 뻗어, 그 눈가에 닿았다. 그저 눈 밑이 까매질 정도로 무리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오즈의 차가운 손에 닿자, 아서는 그 추위에 몸을 흠칫 떨었다.
“아, 아니에요! 오즈님… 저는……”
오즈가 손을 거두려고 하자 아서는 급하게 그 손을 붙잡아 제 볼에 가져다 댔다. 확실히 차가울지도 모르지만, 아서는 오즈의 손길이라면 뭐든 좋았다. 저는, 그저, 하고 아서가 말을 더듬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전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말해야 오즈의 고독에 닿을 수 있을까. 대체 무엇을 해드려야, 사랑하는 당신이, 혼자 추위에 떨지 않게 되는 걸까요? 오즈는 아서의 손을 차마 뿌리치지도 못한 채로 시선을 이리저리 헤엄치고 있었다.
“저는 오즈 님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너에게, 좋지 않을 거다.”
당신께 이야기 해주고 싶은 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요. 추운 눈밭에서 당신이 준 온기를 지금도 잊지 않았어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두 번 다시 보지 못하게 되어버려도, 당신과 보낸 날들을 잊은 잊지 않을 거예요.
“오즈 님이 곁에 계신다면, 뭐든 좋아요.”
아서는 반짝이는 눈동자로 오즈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지금껏 입에 넣어온 그 어떤 마나석보다도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이었다. 아서는 오즈의 눈치를 보듯 조금씩 움직이다가, 이내 거절당하지 않자 그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오즈의 기억 속, 너무나도 작은 나머지 품에 쏙 들어오던 아이는 없다. 이제는 훌쩍 커버려, 누군가를 따스하게 해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왕자만이 있었다. 그리고 왕자는 마왕을 끌어안았다. 힘껏, 사랑을 담아, 따스함이 전해지도록. 그것은 수백 년이고 벽난로의 앞에 앉아있어도 끄떡 않던 얼음을 녹이는 온도였다.
어느새 눈밭은 온기에 사라지고, 마법서의 복도였다. 오즈는 아서를 마주 안아주었다. 놓지 않도록, 꽉, 온 힘을 담아서. 품 안의 아이는 부서지지 않았고, 부서질 정도로 약하지도 않았다. 그것만이 유일한 안도이자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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