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오웬] #3, 4

포학 기반 au

like a miracle by s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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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

“뭐? 너 미쳤어? 내가 엮이지 말라고 했잖아.”

“아하하. 그랬지. 미안.”

네로 터너는 타인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다. 그래봐야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귀찮기도 하고.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 자기 일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이다. 다른 사람까지 책임질 여력 따위 자신에겐 없다. 하나하나 참견하기 시작해서야 끝도 없고.

점심시간, 드문드문 학생들이 모여있는 한적한 옥상 한구석이다. 오늘의 점심은 눈앞의 이 녀석, 카인 나이트레이와 함께다. 원래라면 그의 유쾌한 친구들, 아서와 루틸도 같이 먹을 예정이었는데 둘 다 직전에 급한 볼일이 생겼다며 가버렸다. 하늘엔 토끼 같은 모양의 커다란 구름이 떠 있다. 아아, 날씨 좋구만. 어딘가 심란한 얘기를 들은 한편으로도 태평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이 있다. 날씨는 좋고 도시락은 맛있고, 이렇게 평화로운데.

“충고를 우습게 들은 건 아냐. 근데, 그 녀석 꽤 귀여운 구석도 있어.”

평화는 이렇게 한순간에 깨진단 말이지.

진지하고, 어떻게 보면 묘한 쑥스러움조차 담긴 목소리에 네로는 도시락을 먹던 손을 멈추고 입을 허 벌렸다. 하마터면 계란말이를 떨어뜨릴 뻔했다. 오늘 계란말이는 역작인데. 조심스레 계란말이를 흰 밥 위에 올리며, 네로는 카인을 돌아보았다.

짚신도 제짝이 있고 제 눈에 안경이라지만, 이 카인 나이트레이와 그 오웬이?

제발 잘못 들은 것이길 빌며 그의 얼굴을 살피지만 카인은 어딘가 쑥쓰러운듯 머리를 긁적이며 웃고 있다. 이 녀석을 알게 된 이후 이런 얼굴을 하는 걸 보는 건 처음이다.

아니 제발, 저번에 미스라랑 안면을 튼 것만으로도 이미 위가 아픈데 여기다가 오웬까지?

“네로는 같은 학교 출신이니까, 뭔가 알까 싶어서.”

“미안한데 나도 아는 게 없어.”

딱 잘라 대답한다. 딱히 거짓말도 아니다. 정말로 그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아니, 아는 사람이 있는지 의문이다.

오웬. 학년 외에는 알려진 게 거의 없는, 그의 성씨조차 아무도 모르는, 그러나 그 존재만큼은 모두에게 인식되어 있는 불량교의 유명인. 그와 싸운 녀석은 모두 정신이 나가거나 실종되었다고 한다. 그건 지난번에도 알려줬지. 가까이 가지 말라고 알려준 건데, 대체 왜 눈앞의 이 녀석은 그런 위험인물의 이야기를 헤실헤실 웃으면서 하고 있는건지.

불량교의 녀석들은 오웬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름조차 부르는 걸 꺼린다. 그건 일종의 미신이다. 함부로 불렀다가 나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완전히 재앙신 같은 취급이지. 그리고 그건 그렇게까지 틀린 평도 아니다.

“아… 그러고 보면 단 걸 좋아한다던가.”

문득 생각난 정보를 입에 담는다. 아, 괜히 말했나, 하는 후회는 조금 늦게 따라온다.

“단 거?”

“어… 매점 디저트를 그 녀석보다 먼저 집었다가 행방불명된 녀석이 대여섯 명 있었던 것 같은 기억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얘기라기엔 너무 무서운 거 아냐?”

고기반찬을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눈썹을 올리며 곰곰이 생각에 빠진 카인의 옆얼굴을, 네로는 잠시 입안의 밥을 우물거리며 바라보다가 톡, 어깨를 쳤다.

“저기, 농담이 아니라 진짜 다가가지 마.

나쁜 말은 안 해. 넌 좋은 녀석이라 생각해서 말해주는 거야.“

그 말은 진심이다. 네로는 자기가 먼저 말을 꺼내 놓고 조금 놀랐다. 이 녀석은 좋은 녀석이다. 불량교 출신이든 진학교 출신이든 그런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타인과 자신의 차이를 재는 도구로 쓰지 않는다. 공정하고 다정하다.

“응. 고마워.”

씩 웃는 얼굴은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처럼 밝았지만 좀처럼 이쪽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네로는 잠시 뭔가 더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모르겠다, 내 코가 석 자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흘러간 구름은 이윽고 토끼의 모양이 아니게 되었다.

“…뭐야?”

“너, 단 걸 좋아한다길래.”

오웬은 보건실 침대의 흰 시트 위에 가득한 과자들을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크림빵, 팥빵, 푸딩, 딸기 우유, 초코 코로네 따위의 매점에서 파는 달콤한 빵과 과자들이 잔뜩 놓여있다.

“이런 싸구려 과자 안 좋아해.”

“그래? 난 좋아하는데.”

됐으니까 일단 치워, 하고 오웬은 거칠게 시트를 잡아 들었다. 우수수 떨어지는 빵 봉지 몇 개를 카인이 황급히 잡는다. 흥, 하고 본체만체 침대 위에 대강 앉았다.

“하나 먹어봐.”

“싫다고.”

“아, 배불러? 아직 점심시간 전인데.”

“아니, 싫다고.”

하여튼 이 녀석은 가끔 말이 통하질 않는다. 가끔 마주치는 공원의 고양이 쪽이 더 말이 통하는 느낌이야. 목소리가 크고, 시끄럽고, 어느 순간 가까이 와 있다. 맞아, 산책 중의 개 같다. 신나서 달려와서는 이쪽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얼굴을 잔뜩 핥는 천연덕스럽고 멍청하고 마냥 해맑은 개. 그런 녀석을 만나면 어쩐지 기운이 빠져서 뭐라 대응하는 것조차 바보 같아진다.

부스럭.

봐, 이번에도 아무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멋대로 빵 봉투를 열더니 이쪽으로 들이미는 거. 아니, 안 먹는다고 했잖아.

그렇지만 눈앞의 크림빵은 제법 맛있어 보였다. 생크림은 싫어하지 않는다. 생크림이 들어간 과자도, 빵도.

“네가 안 먹으면 그냥 내가 먹을까?”

“...내놔.”

아하하, 카인은 쏟아지는 햇빛처럼 웃었다. 이 녀석은 늘 이렇다. 정말 싫어. 잠시 눈이 부셔서 눈을 찡그린다. 건네받은 크림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달콤하다. 알고 있는 맛이지만 어쩐지 조금 더 달게도 반면 묘하게 아무 맛 안 나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이상해. 몸이 안 좋은가?

“어때, 나쁘지 않지?”

“…몰라.”

그러는 옆에서 카인은 부스럭부스럭 초코 코로네의 봉지를 뜯더니 냉큼 한 입 베어 물었다. 맛있어! 하고 큰 소리를 낸다. 하나하나 신경에 거슬리는 녀석이다.

“저기, 내 거잖아.”

“응?”

“나보고 먹으라며.”

“응?!”

“허락 안 했는데.”

카인은 눈이 동그래져서 오웬을 돌아본다. 당연히 나눠 먹을 거라 생각한 얼굴. 오웬은 조금 더 트집을 잡으려다가 그만두었다. 바보 같아. 카인은 잠시 입을 벌리고 생각하더니 오웬에게 물었다. 오웬, 너 이거 먹고 싶었어? 먹을래?

그러고서 불쑥, 한 입 베어 문 코로네를 눈앞에 내민다. 오웬으로서는 상상도 못 했던 해결책이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다.

“어, 웃었다.”

“안 웃었어.”

“웃었어!”

오웬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말하는 카인이야말로 정말 즐거운 듯이 웃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눈이 부셔서 자꾸 눈을 깜빡이게 된다. 뭔가 더 말하는 것조차 힘이 빠진다. 바보 같아. 그렇지만 짜증이 났기 때문에 정강이를 걷어차 주었다. 아파! 하는 목소리는 역시 산책 중의 개와 조금 닮았다.

그날 이후 카인은 보건실에 올 때마다 달콤한 과자를 챙겨오게 되었다. 작은 초콜렛들, 달콤한 푸딩, 크림이 가득 든 빵. 그걸 먹는 오웬의 얼굴을 보는 게 좋았다. 달콤한 걸 입에 넣은 그 순간만은 오웬이 어쩐지 작은 어린아이처럼 무구하게 행복한 표정이 되었으니까.

“저기, 이건?”

그날 가져간 건 딸기 크림이 들어간 과자와 설탕이 입혀진 비스킷이었다. 오웬은 이제 별말도 없이 카인이 가져온 과자를 제 것인 것 마냥 먹는다. 가끔 뻔뻔하게 더 없어? 하고 묻는다. 오늘의 문제는 다른 것이었다. 구석에 따로 놓여있던 쇼핑백. 그 안에도 과자 비스름한 것이 들어있다는 것을 오웬은 사냥감을 발견한 고양이처럼 기민하게 알아챘다.

“아, 미안, 그건…”

“흐음.”

“받은… 거라.”

드물게 카인이 곤란해하는 걸 본 오웬은 재미있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달라고 한다면? 안 줄 거야? 가엾은 내가 이렇게 배고파하는데?

“너, 방금 가져온 과자 전부 먹었잖아. 그리고 다음 시간이 점심시간이니까.”

“흐응, 재미없어.”

하지만 오웬은 냉큼 집어챈 쇼핑백을 돌려주지 않고 그 안의 포장지를 뜯기 시작했다. 오웬! 하고 카인이 당황해서 그의 이름을 부른다. 먹지만 않으면 되잖아. 이까짓 과자…

……

오웬이 행동을 멈췄다. 오웬의 손에서 과자를 탈환하려던 카인도 그걸 보고 행동을 멈춘다.

“왜?”

기사님. 여자 운이 나쁘네.”

오웬은 담담히 포장지 안에서 작은 카드를 꺼냈다. 언뜻 별문제 없어 보이는, 검붉은 글자로 사랑을 속삭이는 말이 쓰여있는 카드. 그게 왜? 오웬, 이상한 핑계로 과자를 먹으려는 건…

"이거, 피야."

"어?"

카인이 당황해서 카드를 낚아챈다. 보통 펜으로 썼다기에는 조금 번지고 삐뚤삐뚤한 글씨는, 익숙하진 않지만 핏방울과 비슷한 색인 것 같기도 하다. 에이, 그래도, 설마.

"내가 잘못 볼 거라 생각해? 아님, 내가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그런… 건."

카인의 목소리가 꺼지기 전 촛불처럼 약해진다. 오웬은 헤에, 하고 감정 없는, 마치 노래하는 듯한 감탄사를 내뱉더니 손에 들고 있던 과자 곽을 콱 쥐어 망가뜨린 후 그대로 자리를 떴다. 카인은 그를 잡을 수 없었다.

그다음 체육 시간, 카인은 갑작스러운 선택지에 부딪혔다. 수영 수업이 끝난 것이다. 다리는 아직 전부 낫지 않았지만, 강당에 앉아 견학하는 것은 가능하다. 카인이 바라 마지않았던 일이기도 하다. 운동을 구경만 하는 건 좀이 쑤시는 일이기는 하지만, 강당은 좋아하고, 스포츠를 관람하는 것도 좋아한다. 어쩌면 가벼운 스트레칭 정도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마음속 한구석이 무겁다. 하필 마지막에 그렇게 헤어져서는. 수소문해서 어느 반인지까지도 알았지만, 오웬은 거의 교실에 없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보건실이 아니면 만날 방도가 없다. 카인은 엄청나게 고민하다가, 그 끝에 결국 보건실로 향하는 걸 택했다.

이랬는데 본인이 없으면 말짱 꽝이지만.

조심조심 보건실 문을 연다. 안은 조용하다. 이거, 피가로도 없는 것 같은데. 잘 보니 책상에 무언가 쪽지가 붙어있다. <출장 중>. 출장 많지 않아?!

앗, 그렇지만 언제나의 자리에는 커튼이 쳐져 있었다. 카인은 한달음에 그 앞까지 달려갔다. 다만 역시 좀 주저했다.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망설이고 있자니 안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드문 일이다.

차르륵, 둥글게 침대를 감싸듯이 쳐져 있던 커튼이 단숨에 열린다. 그 안에는 언제나처럼 닿으면 녹을 것처럼 새하얀 얼굴이 있다. 카인이 뭐라 말을 걸기도 전에 그쪽에서 먼저 툭, 하고 말을 뱉었다.

“질리지도 않아?”

“……”

“짜증 나니까 남의 침대 옆에 얼쩡거리지 말아줬음 하는데.”

그렇게까지 말을 들었음에도 답지 않게 머뭇거리는 카인에게 오웬은 대놓고 커다랗게 한숨을 쉬더니 손을 내민다.

“줘.”

“…응?”

“없어?”

“어?”

“과자. 맨날 갖고오던 거.”

그러고 보면 어떻게 할지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나머지 과자를 준비하지 못했다. 카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색하게 웃었다. 아~ 음… 오늘은. 응.

“하? 쓸모없네. 이러니까 기사님은 진짜.”

“아하하.”

언제나와 별 차이가 없는 태도에 카인은 조금 긴장이 풀리는 걸 느꼈다. 해결된 문제는 하나도 없지만, 그럼에도 조금 안심이 된다. 언제나의 오웬이다. 언제나와 같은 두 사람의 시간이다. 카인은 오웬 옆자리 침대에 걸터앉았다. 두 사람 사이의 커텐이 하늘하늘 흔들렸다.

“저기, 오웬.”

“응.”

“이거, 열어둬도 돼?”

“싫은데.”

“오늘만.”

“……”

답이 없을 때는 대체로 무언의 허락이다. 오웬과 여러 번 대화하며 대충 그 부분을 이해했다. 카인은 씨익 웃으면서 침대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흰 시트에서는 섬유유연제의 포근한 향기가 났다. 몸을 옆으로 돌려 누우니 이쪽으로 몸을 쭈그리고 누워있는 오웬과 눈이 마주친다. 지금까지와 다른 각도로 보이는 얼굴은 뭔가 재미있어서, 카인은 눈을 접어 씩 웃었다. 오웬은 질린 표정을 하더니 바로 돌아누웠지만.

돌아누운 선이 가는 뒷모습은 처음 만났을 적 자기 다리를 부러뜨릴 기세로 공격해 온 사람이라고는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빛을 반사해 반짝거리는 은빛 머리카락과 대조되듯이 검은 목 카라 사이로 새하얀 피부가 보인다. 그걸 잠시 관찰하다가 카인은 문득 물었다.

“그거 안 아파?”

“?”

“이거, 귀걸이.”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뻗어 만지려고 하다가 바로 손이 막혔다. 아니, 그냥 막힌 게 아니라 꺾였다. 아, 아아아아아파! 오웬! 반사적으로 한 행동인지 오웬은 잠시 제가 더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 코로 웃으며 제 손을 놨다. 기사님, 진짜 바보야? 미쳤어? 가정교육을 못 받은 거야? 사람을 허락도 받지 않고 만지려고 하다니 말도 안 돼. 정말 최악.

“아파라… 손까지 깁스하고 싶진 않다고.”

“바보에도 정도가 있지. 기사님 잘못이잖아.”

“응. 이건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습니다.”

흥… 하고 오웬은 잠시 이쪽을 한심하게 바라보더니 이내 흥미를 잃은 것처럼 이불을 뒤척이고 반대쪽으로 돌아누웠다. 그 가는 뒷모습, 부드러워 보이는 은빛 머리카락에 싸인 조그마한 머리통, 흰 목덜미, 작은 귀, 살며시 흔들리는 귀걸이… 그런 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카인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근데, 만져보면 안 돼?”

“뭐?”

“귀걸이.”

“하아? 안 되는 게 당연하잖아.”

“역시 아파서?”

“하? 안 아프거든?”

오웬은 짜증 난다는 듯이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제 귀를 가리는 머리카락을 치워낸다. 하나도 안 아파, 이까짓 거. 만져보던가.

갑작스레 떨어진 허락에 카인은 오히려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늘 녹아내릴 것 같다고 생각한, 유령이라고 해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새하얀 피부가 손끝에 닿는다. 모양 좋은 귀 끝에 제 손가락이 닿은 순간, 카인은 멈칫했다. 우윳빛의 귀 끝이 살짝 떨리듯 움찔, 작은 머리통이 희미하게 흔들린다. 뭔가 나쁜 짓을 하는 것 같아. 그나저나 이렇게 보니 진짜 하얗다. 자신의 손가락 끝과 육안으로 보아도 명확할 정도로 톤이 다른 피부가 꼭 혼자서 빛을 내기라도 하는 듯 희다. 자세히 보면 푸른 핏줄이 비쳐서 꼭 투명해 보이기까지 해. 조그마한 귓바퀴를 조심스레 만지면 또 움찔, 몸이 작게 흔들린다. 이제 조금 재밌기조차 하다. 원래 목적을 잊어버릴 것 같아.

작게 귓바퀴를 쓸어내리듯 그 동그마한 모양을 따라 손가락을 내리면 손끝에 조그마한 금속의 피어스가 걸린다. 작고 동그란 피어스 아래에는 기다란 장신구가 달려있다. 무겁지 않을까. 이렇게 작은 귀에 용케도 이런 걸. 엄지와 검지로 조심스럽게 귓불을 집듯이 만진다. 두께를 확인하듯 작게 주무른다. 역시 얇은데.

“그만 만져!”

관찰에 열중하던 카인을 막은 건 귀의 주인이었다. 카인의 손을 찰싹 쳐내고서는 귀를 가리고 몸을 둥그렇게 말아 반대쪽 이불 쪽으로 파고든다. 카인은 머쓱하게 한 대 맞은 손을 털어냈다. 기사님은 정도라는 걸 몰라? 하나하나 가르쳐야 하는 거? 진짜 바보야? 개도 아니고… 이쪽을 바라보지도 않고 쏟아내는 매도는 이제 조금 익숙해져서, 그다지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았지만 어쩐지 흰 피부가 아까보다 조금 붉어 보이는 것이 신경 쓰였다. 얼굴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

“…저기, 기사님.”

“응?”

작은 침묵이 지나간 후 웬일로 오웬이 먼저 운을 뗀다. 태평스러운 대답은 공기조차 말랑하게 만들어서, 자신조차 어쩐지 좀처럼 날을 세우지 못하고 무뎌지는 기분에 오웬은 작게 진저리를 쳤다. 이것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아.

“저번에 그거. 어떻게 했어?”

“……”

잠시 공기가 굳는다. 명확한 단어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지만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 말하지 않아도 안다. 카인은 입을 달싹였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잘 알 수가 없어서.

“아… 응.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결국 누가 넣은 건지는 알 수가 없어서.”

“헤에…”

오웬이 흥미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목소리로 가늘게 호응한다. 카인은 어쩐지 조급한 기분이 든다. 뭐라도 변명하고 싶은 기분. 무엇을 변명하는 건지는 자기도 모르겠지만.

“음, 그치만, 별일 없이 지나갔고. 괜찮았으니까.”

“괜찮아? 누가?”

“어…”

순간 말문이 막혀서 입을 닫았다. 피로 쓴 글씨라는 건 피를 흘린 누군가가 있다는 거겠지. 그 이유를 아직도 카인은 잘 알 수가 없지만. 그런 행동의 이유도, 그런 행동의 목적도. 카인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지만.

“먹었어?”

“…어? 응?”

“별일 아니니까, 먹었어? 초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먹진 못하지.”

흐음. 좀 전에 말하는 걸로 봐선 개보다 못한 것 같아서, 먹은 줄 알았지. 아깝게 됐네. 남의 일처럼 중얼거리는 오웬의 목소리에선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어서. 카인은 차마 묻지 못했다. 뭐가 아까운 건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자신은 조금도 잡아내지 못한, 안개 속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더듬는 것 같은 감각의 이 사건을, 오웬은 이해하는지. 그렇다면 그건 어째서인지.

카인이 뚝, 입을 닫자 오웬은 코 끝으로 웃었다. 뒤돌아 누워있어도 빤히 알겠어. 파삭이며 부서지는 나뭇잎 같은 서늘하고 차가운 소리가 났다. 카인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또 이 감각. 쥐고 있던 것이 전부 모래로 만들어진 조각이라 알지도 못하는 순간엔 이미 손안에서 전부 빠져나간 것 같은.

그러니까 카인의 입을 열게 만든 것은 어쩌면 조급함이다. 번민이고, 망념이다. 카인은 문득 오웬의 가느다란 팔을 잡았다. 이쪽을 봐줬으면 해. 바로 여기에 있는데도 왜 자꾸 멀어지는 거야? 어째서 전혀 모르는 목소리로 웃는 거야?

“오웬은 알아?”

조심성 없이, 오늘만 해도 두 번째로 허락 없이 자신을 만진 손길에 오웬은 잔뜩 분개하며 눈을 크게 뜨고 이쪽을 노려봤지만, 카인의 물음이 먼저였다. 그 어쩌면 절박하기까지 한 표정에 오웬은 화를 내는 것을 잠시 유예했다. 잡힌 손목에 열기가 전해지듯 괜히 뜨겁게 느껴진다. 불쾌해. 오웬은 작게 몸을 떨었다.

“오웬, 지금 무슨 생각해?”

오웬은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 따위에 의미는 없으니까. 그저 눈앞에서 불쾌한 것은 치우고, 달콤한 것만 가져다 놓는다. 익숙한 것에 둘러싸여서 예정대로의 반응을 한다. 거기에 생각 같은 것이 끼어들 여지는 별로 없다. 그러면 편안하고 안정된다. 예상할 수 없는 것은 싫다. 그러니까 눈앞의 이 남자도 싫어. 익숙한 루틴에 계속해서, 톱니바퀴에 잡음처럼 끼어들어서 사고회로를 흐트러뜨리는 게 싫어. 내 이름을 불러대는 게 싫어. 나에 대해 물어보는 게 싫어. 별것도 아닌 일에 헤실거리는 게 싫어. 누군가의 악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짝거리면서 빛나는 게 싫어. 질척하고 더러운 것 따위 잘 모른다는 표정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지는 꼴이 보고 싶어.

“바보 아냐?”

그러니까 조그마한 입이 움직여버린 것은 아마도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그저 상대방을 꿰뚫어 상처를 입히고 싶다는, 충동. 그 충동이 사실은 어느 쪽을 찌르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냐고?

기사님의 친구들이고 뭐고 기사님의 아는 사람을 전부 손이고 발이고 다 망가뜨리는 생각. 그렇게 모두에게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거야. 그건 전부 기사님 탓인 거고. 다들 슬퍼서 울부짖지만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테고. 그런 상황에서도 기사님은 지금처럼 날 보고 조잘거릴 수 있을지…”

오웬은 문득 몸을 돌리곤 말을 멈췄다. 얼굴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 언제나 뻔뻔할 정도로 반짝거리면서 웃는 얼굴이 이지러져선 화내는 꼴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 그러면 어쩐지 맘이 더 편할 것 같아서. 이 불쾌하고 무거운 가슴의 답답함이 조금은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그 얼굴을 보고 맘껏 웃어주자고.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네가 그런 표정을 하니까.

오웬은 휙, 거칠게 카인을 밀어내고선 커튼을 쳤다. 차라락. 커튼레일이 서로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두툼한 면 커튼이 잠시 흔들리다 이내 멈췄다. 그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세상이 고요해진다.

카인은 눈앞의 커튼을 망연히 바라보며 사라진 손끝의 감각을 되새기듯 손을 쥐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 이해하고 싶은 것. 영영 이해할 수 없는 것.

그럼에도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름다운 소리가 어디에서 울리는지, 그 악기의 안쪽에는 무엇이 있는지.

“오웬…”

작게 혼자 중얼거리듯 부른 이름에 대답은 없어서, 문득 이 세상에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부르는 것 같은 기묘한 감각에 휩싸인다. 하지만 카인은 분명히 알고 있으니까.

그 눈동자를, 그 색을, 좀 아까 분명 손끝으로 느꼈던 녹지 않는 피부의 주인을.

마지막으로 마주친 눈이 옅게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도.

그러니까 어쩌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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