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 the water

피가로.

like a miracle by s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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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가로, 2024 생일 축하해요!

* 원작 설정의 자의적 해석, 날조.

혹여 불쾌감을 느낄만한 부분이 있었다면 전적으로 제 글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파도로 떠밀려 온 심해어를 본 적 있나.

납작하고 기다란 몸체, 기이할 정도로 커다란 입, 묘하게 번들거리는 비늘. 그 얼굴은 마치 뇌가 없는 동물처럼 추하게 뭉그러져 있다. 훅 끼쳐오는 비린내에 피가로는 저도 모르게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한눈에 여기에 속하지 않은 것임이 명확해 보이는 생물. 보기만 해도 눈을 찌푸리게 될 정도로.

한 점 빛조차 들지 않는 칠흑같이 어둡고 깊은 바닷속, 자신이 닿는 범위 안에 먹잇감이 들어오길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가만히 응시한다. 거대한 입으로 먹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집어삼키고, 또 집어삼킨다. 그것만을 위해 진화한 몸, 그것만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들.

그것은 무엇을 위한 삶인가.

그럼에도 기어이 살아가겠다 발버둥 치는, 세계의 중심 순환 사이클에서 벗어나 있는 존재.

“마법사님, 어떤가요.”

피가로가 굽힌 허리를 펴고 일어나자 뒤쪽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안내역의 남자가 겨우 말을 건넨다. 피가로는 빙긋 웃어 보였다. 다정한 남쪽의 마법사답게.

“아아, 위험한 생물은 아니야. 아마 먼바다에서 파도에 휩쓸려온 거겠지.

독을 뿜거나 하진 않아. 며칠 더 지켜보고 무슨 일이 있다면 연락 줘.”

“이… 이건 어떡하죠.”

그 말에 별로 안도하는 기색도 없이, 남자는 입을 뻐끔거리는 불길한 생물을 달달 떠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쪽을 보고 싶지도 않다는 듯한 눈치였다.

“아… 뭐, 먹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아이구야, 선생님, 어떻게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저런 걸.”

“응. 내가 처리할게.”

감사합니다, 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인 남자가 가버린 후 피가로는 죽어가는 물고기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잿빛의 튀어나온 동공.

이지러지고 일그러진 보기 흉하고 애처로운 것.

<폿시데오>.

그 추하고 고독한 생물은,

우리와 몹시 닮지 않았나?

“피가로 님, 바다에 시찰을 다녀와 주셨다면서요, 감사합니다.”

“아냐, 내가 오랜만에 바다를 보고 싶었던 것뿐이니까.”

온화하고 평화로운 것들이 망가지는 상상을 하곤 한다.

아서를 볼 때마다 늘 그렇다. 이 다정하고 부드러운 아이를 손에 쥐고 꾸욱 힘을 준다면, 물컹, 하고 천천히 뭉그러져 세상에서 없앨 수 있을 거라는 걸 안다. 꼭 손안에 쥔 눈덩이가 녹아내리듯이. 매끄러운 지점토 조각이 짓눌려 망그러지듯이.

그건 아주 간단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생각된다. 이제 와서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 따위 제게는 아무렇지 않은, 아프기는커녕 간지럽지도 않은 일이다.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엄청나게 괴롭고 잔혹한 일처럼도 들린다. 어째서.

그 두 개의 차이를 피가로는 가끔 알 수 없다.

이 아이가 웃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조각이 된다면 오즈는 볼만한 표정을 짓겠지. 쌍둥이 선생님은 어떠려나. 두 분은 그렇게까지 남에게 관심이 깊지 않으니, 그냥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설교를 하실 거야. 아, 오즈가 세상을 멸망시키려 들면 그렇게 끝나지는 않으려나.

그건 마치 난간이 없는 높은 계단참에서 거꾸로 추락하는 것 같은 상상이다. 까마득한 낭떠러지 끝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조금만 건드려도 와장창 부서지는 유리 조각품이 가득한 진열장 사이를 걷는 것 같은 기분.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피가로는 다정함에 다정함을 되돌려주고 싶다. 아무런 의심도 불안도 없이 미래를 믿고 자신을 믿고 상대방을 믿으며, 따뜻하고 목가적이고 평온한 나날을 지켜주고 싶다. 언제까지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가로 님?”

“아아, 아니, 미안. 잠깐 딴생각을.”

“그러시군요.”

아서는 다정하게 웃었다. 피가로는 거기에 똑같은 미소를 돌려준다. 마치 꼭 인간을 흉내 내는 마물처럼. 어쩌면 다정함을 흉내 내는 텅 빈 공동.

“그러고 보면 내일은 마법관에 계시지요?”

“응?”

“아, 별다른 일이 있어서 말씀을 드린 것은 아니고, 저, 그냥 계시는가 해서.”

갑자기 횡설수설 말이 길어진 아서를 잠시 의아하게 바라보다 문득 눈치챈다. 자신의 생일이군. 마법관의 유쾌한 젊은이들이 깜짝 파티라도 준비하는 걸까. 소란스러운 생일이 될 것 같네. 아서는 아직 거짓말이 서툴구나.

“하하, 응. 아마 있을 거야.”

“그렇군요!”

화악, 밝아지는 어조에 피가로는, 이번에는 그 사랑스러움에 정말 이끌려서 웃었다. 그런 순간에는 이 따스함과 행복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창가로 비쳐 들어오는 햇살에 녹아들어가듯 반짝이는 윤곽. 늘 이렇다면 좋을 텐데,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그날 밤은 오랜만에 악몽을 꿨다.

꿈을 잘 꾸지 않는다. 안 그래도 너무 많은 것이 소용돌이치는 머릿속에 꿈같은 것까지 끼어든다면 펑크 나버릴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꿈을 꾸면 금세 안다. 아, 꿈이구나.

발이 땅에 못 박힌 듯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꿈 주제에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니. 짜증이 확 치민다. 그 순간 조그마한 손이 양쪽 손에 닿는다. 피가로, 피가로야. 애교 있고 사랑스러운 어린아이의 목소리다. 피가로는 손을 잡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 쪽에서 가벼운 힘으로 손을 잡아 온다. 그 손을 피가로는 뿌리치지 않는다. 혹은 뿌리치지 못한다. 도저히.

또 괜한 걸 생각했구나.

괜한 걸 생각했어.

네가 생각하는 게 너를 규정하진 않는단다.

네가 행동하는 게 너를 규정하지.

아아, 시끄러워요, 두 분. 그래서 서로를 죽이셨나요.

작은 새처럼 재잘대던 조그마한 그림자 두 개는 멈칫 행동을 멈추더니 연기처럼 사라진다. 손안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바람이 훅 분다. 조바심이 난다. 자신은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데. 어디선가 매끄러운 마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살고 싶은 대로 살아야 해.

마녀의 어디까지나 펼쳐진 풀밭 같이 아름다운 연둣빛 눈동자에는 흔들림이 없다. 피가로의 발은 바닥에 붙은 듯 조금도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예언이고 뭐고, 나는 모리스와 함께 끝까지 살 생각이야.

피가로, 알겠어? ‘살’ 생각이라고.

하지만 치렛타, 넌 죽어버린걸.

그녀의 옆으로 무릎 꿇은, 생명이 꺼져가는 남자의 모습이 비친다. 그 눈동자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발버둥치고 있다. 그러한 행동이 그의 삶을 연장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별 있는 자가 보기에 빤한데도. 그리고 그렇게 되었지. 금방 죽었어.

가르시아, 그의 이름은 무엇이었지?

피가로 님, 피가로 님.

다정하고 아름다운 종소리 같은 목소리들이 피가로를 감싼다. 어리고 약하고 무른, 쉬이 망가지는 것들. 자신이 이끌어야만 하고 지켜야만 하는 무수한 손들. 가만히 두면 금방 잘못된 곳으로 향하는, 어리석고 가엾은 양 떼.

그러나 이윽고 모두가 지나간다. 결국엔 혼자 남겨진다.

나를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 놓고선.

그것은 무엇을 위한 삶인가.

아름다운 달빛이 바다 위로 비친다. 청은색의 길 중앙.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반쯤 물에 잠겨있단 걸 깨닫는다. 언제부터? 하지만 줄곧, 그랬던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이대로 힘을 빼면 어디론가 갈 수 있을까.

비록 천국이 아닌 곳이라 해도.

“피가로, 피가로.”

방문 밖으로 들리는 먼 목소리에 눈을 뜬다. 누군가 문 너머에서 자신을 부르고 있다. 아는 목소리다. 피가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차림을 정돈하고 살며시 문을 연다. 자연스러운 얼굴로 빙긋 웃는다.

“현자님.”

“피가로.”

아직 앳된 얼굴에 안도가 서린다. 피가로는 이럴 때의 현자를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이 세계에서 가장 약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이면서, 자기와 비교할 바 없이 강하고 오래된 존재를 걱정한다. 아무 이해타산 없이. 그저 그러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아침 시간인데 피가로가 식당에 오질 않아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아, 응. 늦잠 잤을 뿐이야.”

하하, 현자가 작게 웃는다. 그 종이 울리는 것 같은 웃음소리에 피가로도 살짝 미소 짓는다.

“일부러 데리러 온 거야? 미안하네.”

“예전에 그랬잖아요, 제가 만약 늦잠을 자면 걱정한다고…

저도 피가로가 늦으면 걱정해요.”

조금 쑥스러운 듯 건네진 말. 그건 예상했지만 기쁜 일이다. 어쩐지 생각보다 더. 간지러운 듯 눈썹을 찡그려 웃으며, 피가로는 잠시 앞에서 걸어가는 자신보다 작은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목가적이고 평온하고 따스한 것.

“현자님, 심해어를 본 적 있어?”

“어, 실제로 본 적은 없어요.”

“그래, 꽤 무섭게 생겼더라. 이렇게 커다란 입을 하고서 말야.”

피가로가 팔을 벌려 과장스레 모양을 그린다. 어제 잠깐 바다에 다녀왔거든. 아아, 아서에게 이야기 들었어요.

“현자님은, 내가 심해어라면 어쩔 거야?”

“그건… 비유적인 이야기인가요?”

“글쎄, 어떨까.”

“그럼 피가로는 바다로 돌아가야 하나요?”

“그럴지도 모르지.”

조그마한 머리통이 사선으로 기울어지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런 순간이다. 아무런 경계 없는 사랑스러운 것들. 조금만 세게 쥐어도 금세 부러져버릴 어떤 것들.

“쓸쓸하지 않을까요.”

불쑥 내밀어진 말에 피가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것은 아주 순수한 의아함과 아주 조금의 경탄이 섞인 동작이다. 갓 태어난 양이 제 발로 서서 자신에게 머리를 부볐을 때의 감각.

“피가로가 심해로 돌아가면, 저는 분명 쓸쓸할 거예요…”

물 밑의 꿈을 꾼다.

그곳에 분명 아름다운 세계 같은 것은 없다.

바다에서 태어난 것이 바다로 돌아가듯이. 어두운 물속 깊숙이 침잠하여 그 바닥에서 심해어와 함께 호흡하게 되겠지. 사랑해온 세계에 편입되는 일 없이 오직 혼자서.

기다리는 것은 아마도 지독하게 고독한 평온이다. 결코 피하고 싶은 듯한, 오히려 바라왔던 것도 같은.

그리고 그것을 막는 것은 아마도 이런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신도 기적도 아닌 것.

자기도 모르게 멈춰 선 피가로를 잠시 머뭇거리던 손이 잡는다. 그 푸른 옷자락 끝을, 확실하고 단단하게.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는 듯이.

“피가로, 생일 축하해요.

오늘 제일 먼저 축하할 수 있어서 기뻐요.”

현자는 가끔 생각한다. 그의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는 때로 긴 시간 그저 존재한 몹시도 오래된 나뭇등걸처럼 보이는 동시에 영문도 모른 채 바닷가로 떠밀려온 심해의 생물처럼도 보였다.

거기에 있을 수밖에 없지만,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는 얼굴.

그것만은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 세계에 온 현자도 꼭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건 그와 자신이 같다는 뜻은 아니다. 함께라는 뜻도 아니고, 이해할 수 있다는 뜻도 아니야. 그것은 서로가 서로, 외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고작 그 정도의 이야기이다. 그것은 위안이 되는 일이 아니다. 되려 서러울 정도로 외로워지는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한다. 현자는 어쩐지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그의 옷자락이 잡힌 손에 자못 힘을 주었다.

이 사람이 이렇게 웃는 순간을 많이, 늘리고 싶다고.

그것이 비록 바다 위에 녹아 사라지는 눈 같은 것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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