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화] 너의 온도
2024 스노화 생일 기념
* 2024 생일 대사의 스포일러. (변형있음. 맥락, 상황 등은 날조입니다)
닿아있던 손이 스르륵 떨어진다.
천천히 멀어져가는 부드러운 감촉에 화이트는 못내 아쉬움을 느꼈다. 아주 조금만 더. 멀어지지 말라는 듯이 작게 소매를 당긴다. 그걸 보고 놀란 듯 잠시 눈을 크게 뜬 자신의 반쪽은 이내 웃으며 다시 다정하게 입을 맞춰왔다. 숨과 숨이 섞이는 거리. 보드라운 입술이 꽃잎처럼 살며시 겹쳐진다. 화이트는 이 순간이 좋았다. 함께 호흡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꼭 하나의 생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유리창 너머로 비쳐 들어오는 햇볕이 따스하다. 그 밖으로 이슬이 맺힌 푸른 잔디가 빛을 받아 반짝이고, 아치문을 휘감으며 만개한 장미가 가득 피어있다. 어디까지나 평온하고 아름다운 세계. 스노우와 화이트는 코를 맞대고 웃었다.
“우와, 최악…”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입맞춤의 여운에 잠겨있을 틈도 없이, 지나가던 들고양이의 야유가 들려와 화이트는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반쪽도 그 목소리에 눈치챈 듯 이미 그쪽을 보고 있다.
“오웬,”
“오웬쨩.”
오늘도 말버릇이 나쁘구나. 그래그래, 너의 훌륭하고 관대한 선생님들이 생일이라는데, 이런 못된 학생을 어찌할꼬. 끼어들 틈도 없이 다다다 폭격하듯 떨어지는 이중창에 오웬은 한껏 질린 표정을 지었다. 웃기지도 않아.
“생일은 무슨. 나이 따위 안 먹는 유령이랑 자기 반쪽을 죽인 쓰레기가.“
스노우와 화이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 눈을 맞췄다. 꼭 닮은, 동그마한 두 개의 머리가 서로를 향해 기울어진다. 갸웃. 오웬쨩, 오웬쨩, 반항기? 그런 시기? 선생님들한테 혼이 나고 싶어서 관심을 끄는 거?
“아아, 시끄러워. 축하를 받고 싶으면 살아 돌아오거나 나머지 한쪽도 죽으면? 그러면 축하해줄게.”
“오웬쨩, 더 하면 정말 혼낼 걸세.”
스노우가 노래하듯 말한다. 그 평이하고 나긋한 어조와는 다르게 이미 한 손에는 마도구를 들고 있다. 화이트도 그 옆에서 방긋 웃으며 한 팔에 안고 있는 마도구를 쓰다듬었다. 오웬은 지긋지긋하다는 얼굴로 쳇, 하고 혀를 찼다.
“변태 이상성욕자들끼리 맘껏 축하하던가. 안 보이는 데서 해주면 좋겠는데.
그리고 화이트, 비쳐 보여.”
심술궂은 한마디를 남기곤 주문을 외어 연기처럼 사라진 들고양이를 뒤로 하고, 자리에는 다시 둘만 남겨진다. 묘한 침묵. 그걸 억지로 무마하듯이 슬쩍 손을 뻗어 슬그머니 자신을 끌어당기는 손을 찰싹, 내리치며 화이트는 부러 엄한 목소리로 말한다.
“스노우, 할 말은 없는가?”
햇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나는 그 손끝은 분명 평소보다 조금 더 투명하다. 스노우는 고아한 눈썹을 살짝 기울여 곤란한 표정으로 입을 달싹인다. 귀찮은 듯한 성가신 듯한, 그렇지만 도저히 내팽개칠 길 없는 소중하고 귀하고 아름다운 것. 화이트는 가끔 그렇다. 스노우의 마력에도 마음에도 아무 문제 없이 평온한 상태인 것을 스노우 본인이 확신하고 있는 이상, 이 현상은 화이트에게 달린 것이니까. 스노우는 그런 것을 잘 이해할 수 없다. 불확실하고 형태가 없으며 쉬이 일그러지는 투명한 감정. 이렇게나 확실하게 닿고 있는데도.
스노우는 작고 하얀, 뒤가 약간 비쳐 보이는 손을 천천히 끌어당겼다. 눈 위에 피는 작은 꽃처럼 사랑스러운 손끝에 입술을 가져다 댄다. 그 손에는 온도가 없다. 가끔은 그것이 스노우의 가슴을 찢는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여기에 화이트가 있다. 분명히 존재한다. 닿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다. 스노우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중요하다.
화이트는 샐쭉한 표정으로 아무 말 하지 않는 스노우를 잠시 바라보았지만,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알고 있다.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화이트는 자신의 손을 세게 잡으면 망가지기라도 할 듯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다루는 자신의 반쪽의 조그맣고 애교 있는 머리통을, 그 사랑스러운 머리 가마를 바라보다 쪽, 하고 머리카락 끝에 입을 맞췄다. 화이트으…! 과장되게 울먹거리는 척을 하며 스노우가 고개를 든다. 어느새 반쯤 투명해져 있던 손끝도 평소와 같은 색을 되찾았다. 그러니까, 결국은 속아주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화이트가 부드럽게 스노우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자 스노우가 우는 척을 멈추고 가볍게 웃으며 화이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거기에는 반쪽짜리 문양이 있다. 스노우는 그것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몹시도 어여쁘다는 듯이, 안타까운 듯이. 검은 선을 덧그리듯 쓸어내리고, 깃털 같은 입맞춤의 비를 내린다. 온전하지 못한 반쪽짜리 문양. 아무리 애써도 하나의 의미를 갖지는 못하는 표상.
“스노우, 태어났을 때를 기억하나?”
스노우는 말없이 웃는다. 태어났을 적. 그런 건 물론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 화이트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화이트는 가끔 이 이야기를 한다. 세상에 오직 단둘이었던 시절. 아니, 오히려 세상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꼭 붙어서 결코 떨어지지도 않고 떨어질 수도 없는, 마치, 둘인데도 심장이 하나인 이형의 괴물의 이야기.
스노우는 작게 속삭인다. 응, 물론 기억하고말고. 화이트가 까르르 웃는다. 그 웃음소리와 그 속삭임이 서로의 머리카락 끝을 간지럽힌다. 햇살은 따스하고, 어디선가 은은한 장미 향기가 난다. 창가의 커튼이 가만히 흔들리고, 멀리서 작은 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스노우는 천천히 화이트에게 입을 맞추었다. 보드라운 여린 살이 열리고, 서로의 숨결이 섞이고, 이내 하나가 된다. 그건 오직 한 순간의 짧은 결합인 동시에 한 순간의 어느 먼 이별이다. 하나가 되는 일은 둘 이상의 존재만이 할 수 있으므로. 이 세계에, 눈앞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자신의 반쪽의, 눈처럼 흰 뺨을 애달픈 손길로 쓸어내리며 스노우는 쓰게 웃었다. 더없이 사랑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을 끌어안는 것처럼 상대방을 끌어안았다.
거기에 더 이상 온도는 없다. 하지만 분명하게 느껴지는 감촉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틀림없이 확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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