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약속

착각으로 사랑해줘

피가파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대체 뭐였을까.

피가로는 쭉 기지개를 키고 나뭇가지에서 폴짝 뛰어내린다. 사실은, 지금부터 그것을 알아보러 가는 참이었다. 지금의 피가로는 고양이다. 제대로 네발로 걷고, 꼬리도 살랑거리고, 귀도 쫑긋하는 어딜 봐도 평범한 고양이다. 방금 오즈가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지나갔지만 평범한 고양이다.

그야 어쩔 수 없지, 나는 약하기만 하고 상냥한 피가로 선생님이니까. 이런 저주를 직접 풀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한 도락의 이야기일 뿐이고 실제로는 지금도 당장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지만, 현자님이 무릎을 꿇고 경건한 자세로 쓰다듬어도 될지 물어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잠깐 이대로 남기로 했다.

정작, 재미있음의 주 요인이었던 현자님은 급하게 불려갔다. 그래서 저주가 풀리기 전까지 남은 사람들에게 잔뜩 귀여움을 받을 생각이다. 북쪽의 마법사들과 만나면, 역시 그건 공격당하기 전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하겠지만.

이곳저곳 돌아다녀 보았지만, 아까의 긴급사태로 많은 마법사가 현자와 동행한 건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미틸은 오늘 시장으로 장을 보러 간다고 하니 그쪽도 기대할 수 없다. 생각보다 재미가 없어서, 피가로는 풀밭에 뒹굴었다.

슬슬 질렸으니 원래 몸으로 돌아갈까 싶던 찰나…

“고양이인가.”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돌아보자 보인 것은 파우스트였다. 여전히 어두운 옷을 입고 있지만 낮의 빛 아래에 반짝거리는 자수정의 눈동자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 같았다. 저런 보석이 있었다면 분명 항상 몸에 지닐 수 있도록 장신구로 만들겠지만, 정말로 파우스트의 눈동자 같은 자수정이 있다면 역시 귀걸이로 만들고 싶다. 그리고 그에게 선물해 반짝이는 것을 늘리고 싶다. 피가로는 그런 별것 아닌 생각을 하며 파우스트에게 먼저 다가갔다.

파우스트가 몸을 숙여 이쪽을 바라본다.

착하다, 귀엽네, 하고 고양이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파우스트의 눈에 비치는 피가로는 실제로 고양이니까 크게 틀리지도 않지만. 피가로는 굉장히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야옹, 하고 울면서 그의 곁으로 다가간다. 다른 북쪽의 마법사들이 보면 ‘뭐야 그 내숭 떠는 목소리’라고 경악할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파우스트가 눈앞에 있으니까.

다리에 얼굴을 부비적거리자 파우스트는 피가로를 안아 올렸다. 작아진 고양이의 몸으로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프로의 솜씨다. 조금도 불편하지 않은 것이, 왠지 파우스트가 안아준다는 느낌이 들어서, 피가로는 한 번 더 야옹하고 울어주기로 했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는 걸까. 안긴 채로는 도망갈 수 없으니 얌전히 이동되긴 했지만, 도착한 곳은 의외로 파우스트의 방이었다.

청순파인 파우스트에게 이런 어둑한 방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어둠 속에서 주변을 밝혀주는 빛이 있다는 것은 파우스트를 닮았다. 그래서 피가로는 파우스트의 방을 꽤 좋아했다.

침대까지 도착하고, 파우스트는 시트 위에 피가로를 내려준 뒤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매달리는 것처럼 피가로는 고개를 그쪽으로 기울였다.

“실은 어젯밤에 잠들지 못했으니까… 오늘은 수업도 없으니 낮잠을 잘 거다.”

그럼 파우스트가 잠드는 동안 망이나 봐줄까, 하고 피가로는 앞발로 파우스트를 꾹꾹 눌렀다. 이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현자님은 제일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어떨지 모르겠다. 이왕이면 마음에 들어 하면 좋겠지만.

푹신, 하고 매트리스가 삐걱거리는 느낌이 든다. 바로 옆에 파우스트가 누워있는 것은 상당히 신기한 기분이었다. 파우스트는 분명 이 고양이가 피가로인 것을 모른다. 그러니 방까지 데려온 것이다. 정체를 몰랐다지만 파우스트가 직접 방에 데려와 준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피가로는 기분이 좋으니 조금 서비스라도 해주자는 기분이 되었다.

너는 안심하고 잠들어도 좋아.

몸을 옆으로 돌리고 누운 파우스트의 자수정 눈동자는, 피가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여전히 사랑스러운 아이다.

사실은 지금이라도 당장 인간의 몸으로 돌아가 그 몸을 끌어안고 토닥여주고 싶었다. 잠들 수 있을 때까지 곁을 지켜줄 테니까, 안심해도 좋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짓으로라도 사랑 받고 싶어서 얌전히 곁에 누웠는데, 진심을 담아 그를 사랑해주고 싶어진다. 당장이라도 그 뺨에 입을 맞추고 싶은데. 태평한 듯한 파우스트는 무방비했다.

그러니까, 조금, 착한 아이를 속이는 것처럼.

그거 알아? 파우스트. 현자님 세계의 동화책에서는 말이야, 마녀가 키스를 해서 공주와 왕자를 저주했다고 해.

불쌍한 파우스트.

너는 이런 최악인 마음 따위 품지 않겠지.

피가로는 고양이의 모습으로 파우스트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그것은 뽀뽀라기보다는 얼굴을 쿵 부딪힌 것과 비슷하기도 했다. 조금 기세만 나갔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작아진 몸이 익숙해지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자. 결코, 거절당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빠져…… 그 아이에게 입을 맞추는 것조차 두렵기 때문이 아니다.

“굿나잇 키스인가. 좋아, 이만 자자.”

함께. 피가로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고양이가 된 몸으로 잠 같은 것을 잘 수 있을 리 없다. 이렇게 공격당하기 쉬운 몸을 하고는 약점을 다 내어준 채로 눈을 감는다니. 상상밖에 해본 적 없다. 파우스트는 손을 뻗어 아이를 재우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피가로를 토닥여주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항거할 수 없을 정도로 따스한 기분이 들어, 피가로는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진다. 마치 마을 위로 눈이 한가득 쏟아지는 것처럼……

이것은 내가 아니기에 취할 수 있었던 온기다. 피가로 가르시아가 아닌, 어딘가를 떠돌고 있었던 출처 모를 고양이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사랑. 그러니 마음이 편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내일 눈을 뜨면 잃어버릴 사랑이니까 상관 없다.

그래, 이것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니까……

나는………

……

“……안녕히 주무세요, 피가로 님.”

사틸크나트 무르크리드, 하고 저주를 푸는 작은 축복의 주문이 들려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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