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약속

죽고 죽이고 흐드러진 것과 같이

네로브래

가벼운 마음이란 뭘까. 진지하게 고민한다니 뭘까. 생각의 깊이는 어떻게 전해지는 걸까.

얼마나 많이 생각했는지? 밤을 몇 번 지새웠는지? 실행하고 몇 번을 포기했는지?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브래들리를 향한 이 생각이 사라질 수 있는 걸까.

네로는 떠오르는 날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아,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로”

그래도, 된다면,

그와 계속 함께하고 싶었다. 앞으로도 쭉 살아가고 싶었다. 한쪽이 죽어 먼저 떠난다니, 그런 건 싫었다. 상대의 마나석을 먹는다니 그런 상상은 하고 싶지 않았다. 장례, 라니, 그런 건 죽음 이후의 일이니까.

북쪽에서 살아가는 녀석 주제에 고독을 견딜 수 없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나약하기 짝이 없다.

”네…… …어나……“

그러면서 당신을 죽일 생각까지는 할 수 있었다. 이 예리한 나이프로 당신의 심장을 꿰뚫는다면, 경계 같은 것은 하지도 못하고 무방비하게 의식을 잃고 있는 지금이라면, 차라리, 내가 당신의 끝을 가져간다면.

……내가 당신을 죽이기 전에 일어나.

브래드, 하고 이름을 불렀다.

생사를 떠돌고 있는 그에게는 닿지 않았다. 네로는 차가운 나이프를 손에 쥐었다. 평소에 요리를 할 때에도 쓰는 그것의 온기는 익숙해야 할 터인데, 어째서인지, 손에 쥔 모양새마저 낯설게 느껴졌다. 네로가 느낀 것은 살의였다. 하지만 살의에 민감한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마지막까지 적을 향해 달려들던 그의 전투적인 눈동자는 굳게 감겨있다. 상처에서는 아직도 피가 울컥 쏟아져나오고 있다.

하지만 몸을 기울여 가슴에 머리를 대면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그가 아직 돌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어나라고,”

얌전히 기다렸다.

기억이 안 날 만큼 여러 번 그랬다. 이런 위험한 일에는 어울릴 수 없다고 소리치자 이번에는 집을 지키고 있어도 좋다고 했다. 네로는 홀로 남아 식재료를 다듬으며 생각했다.

브래드, 파트너는, 나의 말을 오해한 것이다. 내가 두려운 것은 나의 죽음이 아닌데. 이제 와서 자기 죽음을 두려워할 리가 없다. 네로에게 두려운 것은 오직 브래들리의 죽음 뿐이었다.

얌전히, 기다렸다.

손질할 식재료가 없어지면 오랜만에 창고를 정리했다. 훈련을 하고 있는 녀석들을 도와주었다. 보스의 귀가가 늦어지자 다들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 사람 걱정이라면 하는 만큼 쓸모가 없으니 너희들의 앞으로를 걱정하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자 녀석들은 웃었다. 그렇죠, 보스는 무사하겠죠, 하고. 나는 안심시키는 것처럼 마주 웃었다. 사실 속으로는 울부짖고 싶었는데.

……얌전히 기다렸다.

교대로 망을 보는 녀석들은 있어도 대부분 잠에 빠져들 시각이다. 뛰쳐나갔다 엇갈리는 것이 두려워 동굴 입구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밤의 장막이 완전히 떨어지고, 재액이 무섭도록 군림한 야밤이 되어서야 브래들리는 귀환했다. 그의 손에는 승리의 트로피와도 같은 보물이 있었지만, 몸 상태는 처참했다.

그런 그가 눈앞에서 풀썩, 쓰러진다.

소중하게 쥐고 있던 트로피는 바닥에 나뒹굴고,

나는…….

“일어나, 네로!”

네로는 식탁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킨다. 눈에 보이는 것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포근한 분위기의 식당. 아, 그런가, 방금의 그것은 꿈이었구나. 떨리는 손을 숨기는 것처럼 네로는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을 깨워준 것이 옛 파트너―― 브래들리였으니까.

“왜 이런 곳에서 자고 있는 거야. 방이라도 부서진 거냐?”

5층은 유독 방이 부서지는 일이 많다. 특히 북쪽의 마법사들이 몰려있는 탓인지, 그냥 오즈가 사는 층이라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가벼우면 창문, 큰일이면 벽, 제대로 붙으면 재건축감.

짓는 건 부순 녀석들이 바로 다시 짓게 되니까 정말로 노숙하는 사람은 나온 적 없다… 고 믿고 싶었다. 적어도 네로는. 북쪽 출신 마법사에게 있어서 5층 마법사들의 일에 끼어드는 것은 굉장히 무서운 일이다.

“잠깐 졸았을 뿐이야.”

“하핫, 이런 곳에서? 꽤 평화에 취했구나, 너도.”

브래들리는 호쾌하게 웃으며 네로의 맞은편에 앉았다. 속에 살의를 품은 녀석의 바로 앞에서, 기절하고 있던 녀석에게 듣고 싶지는 않다고 쏘아붙여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 감정은 평생 비밀이다.

네로는 흘러넘칠 것 같은 마음을 꾹 눌러 담는 것처럼, 시선을 돌리고 평온한 목소리를 내었다.

“……지금은 평범한 요리사니까.”

그렇게 말하자, 브래들리는 조금 씁쓸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필시 브래들리에게 있어 원치 않은 쓴 채소를 입에 넣었을 때 같은 감각이다. 그리고, 어딘가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지금은 부하가 아니더라도, 지금은 보스가 아니더라도, 함께 도적단에 속해있던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쓴맛도 있었으면 단맛도 있었다.

하지만 네로는 그 추억 자체를 전부 부정했다. 함께 밤하늘을 누비며 날아다녔던 것도, 꾸미는 것은 하지도 않으면서 훔친 장신구를 끼우는 것도, 희귀한 식재료를 사용해서 풀코스를 만드는 것도, 전부, 브래들리는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장난스러운 말들을 몇 번이고 나누고 내일도 모레도 이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함께 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하지만 이제 전부 떠나간 일이다. 시간은 결코 되감을 수 없다. 어디서부터인가 실패했지만, 결과를 수정할 수는 없었다. 브래들리가 아무런 말도 없어지자, 네로는 점심을 준비할 거라면서 탁자에서 일어났다.

네로가 낯설었다. 브래들리는 대체 언제부터 네로를 낯설게 느끼고 있었을까. 머리카락은 옛날부터 저 길이였을까. 머리끈은 바뀐 것 같기도 하다. 평범한 요리사 차림도 나쁘지 않고 귀엽기도 하다. 도적단 때 입었던 옷이 더 어울렸던 것 같지만.

너는 언제부터 변했을까. 나는 언제부터 변한 걸까. 우리는 언제부터 엇갈리기 시작한 걸까. 고요한 수면을 닮은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저기, 브래드. 만일……

내가 당신을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뒤를 돌고 있는 네로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브래들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하는 네로라니. 항상 몇걸음 떨어져 졸졸 쫓아오던 꼬마가 제 목숨을 앗아가려고 하다니! 설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돌연 사라지려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이쪽을 향해 검을 겨누려고 한다니.

아아, 그런 것은, 정말로……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어째서 불쾌한 기분이 들지 않는 걸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텐션이 올라가 버린다. 순진무구한 표정을 하며 부끄러워하던 눈동자가 살의를 담고 나를 바라본다니.

“잔챙이 따위에게 쉽게 내어줄 리가 없잖냐. 이 브래들리 님의 마나석이라고.”

‘더 가치가 있는 마나석’이라면 존재한다.

하지만 네로에게 있어서 ‘브래들리의 마나석’의 가치는 질의 정도로 따질만한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무이한 보물이다.

그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으니 혼자서의 힘으로만 이겨야 하는, 그 뒤에도 빼앗기지 않게 지켜야만 하는, 성가시고 손이 많이 가는――

“――전력으로 빼앗으러 와라, 네로.”

얻기 힘든 보물보다 가치 있는 것이 있을까.

보물을 주운 끝에, 함께 보물을 뺏은 끝에, 최상의 보물이 된다. 그 때가 분명, 만개하는 날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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