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오웬] 흰 천 너머

오웬! 2024 생일 축하해!

like a miracle by s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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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오에와 오에를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런 관점에서는 구분하고 있지 않습니다. 기사도 그렇다는 전제로 쓰인 글입니다.

죽은 사람 위에는 흰 천을.

오래된 기억이다.

서늘한 흰 천이 고목 같은 몸뚱어리 위로 천천히 덮인다. 좀 전까지 호흡하고 움직이던 것이 더 이상 미동조차 하지 않게 된다. 한눈에 그곳에서 숨결이라는 것이 전부 사라졌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얼음에 베인 것 같은 차가운 감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주변의 흐느끼는 사람들 사이로 조금씩 호흡이 가라앉았다. 흰 천 사이로 삐져나온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발목에는 고목의 나이테만큼이나 뚜렷한 주름이 있었다. 그것이 묘하게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제 다시는 늘어날 일 없는 어떤 것. 완전히 끝나버린 것. 그것을 알았다.

앞으로 영영 다시 보자는 인사도 당신을 만나서 좋았다는 마음도 건넬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것.

카인 나이트레이가 그것에 익숙해진 것은 언제였을까? 친하게 지내던 옆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지병으로 먼 친척이 죽었을 때, 불운한 사고로 친구가 명을 달리했을 때…

동료가 칼에 찔렸을 때.

중앙의 나라는 비교적 평화로운 편이다. 내전은 드물고 주변국과의 전쟁도 없다. 기사단이 주로 맡게 되는 임무는 고위직의 호위, 거리의 치안 유지, 맹수-아주 간혹 마법 생물의 습격에 대응하는 일 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끼리-카인 나이트레이는 비록 인간이 아니나-싸우는 일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언제 어느 시기에든 그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반란군이 덮쳐왔던 날을 기억한다.

반란군, 이라고는 해도 그렇게 큰 규모가 아니었다. 주모자는 왕도에서 꽤 떨어진 작은 영지의, 영지민들의 목소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세금을 빼돌리며, 그 결과 왕명으로 직위를 해제당한 영주였지. 그쪽의 승산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자기 자리가 무엇 위에 서 있는지 알지 못하는 오만한 자였으니, 제가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을 나라가 빼앗아 간 것으로 생각했을지 모르지. 그대로 직위를 빼앗기고 영지에서 내쫓겨 평민들과 섞여 노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저 받아들이지 못한 것일지도.

소규모이든, 명분이 있든 없든, 반란은 반란. 그런 변방의 영지까지 왕도의 기사단이 움직이는 것은 드문 일이지만, 왕실이 반란을 엄중히 처벌한다는 것을 보이고 싶었던 것이겠지. 하지만 어디 다른 나라에까지 소문이 나서 좋을 일은 없다. 가능한 한 조용히 해결하라는 명이었다. 중앙의 영주들에게는 암암리에 소문이 돌 정도로, 하지만 타국에까지 알려지지는 않게. 카인의 판단하에 기사단은 소규모로 움직였다.

제압 결과, 주모자, 귀족이었던, 남의 위에 서는 입장의 인간은 대여섯 명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그네들이 마지막으로 빼돌린 돈으로 고용한 듯한 어중이떠중이 용병. 기사단은 압도적으로 이겼다. 그러나 싸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규모와 소규모의 싸움이었기에 전투가 일어나곤 했다.

그런 역사서에는 단 한 줄 기록될까 말까 한 사소한 사건에서도 사람은 죽는다. 어제까지 곁에서 웃으며 농담 따먹기를 하던 친구가 영원히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것을 보고받으며 카인은 입술을 짓씹었다. 부상을 당한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애써 미소를 건네며 분명 괜찮을 것이라 웃은 것은 자신인데. 보고를 한 부관을 방에서 내보낸 후 애꿎은 보고서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런 짓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지막으로 흰 천을 덮은 것은 카인이었다.

망자의 얼굴을 보고 그 온기를 기억하면서 그 삶을 애도하면서. 마음속으로 이젠 영영 닿지 않는 이별의 말을 건네면서.

한 명 한 명, 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듯이.

그 끝없는 이별에 익숙해지듯이.

“과자를 주세요.”

어린 목소리가 카인 나이트레이의 발을 붙잡은 건, 그날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카인은 이제 제법 익숙하지만 어딘가 불안정한, 금세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그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평소와 다른 상태라는 것은 목소리를 듣자마자 알았지만, 그 상태와 관계없이 기묘한 상처를 입은 다음부터 유일하게 세상에서 보이는 존재. 그 흰 인영이 눈에 들어올 것을 기대하며. 하지만 기대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는 분명히 들렸는데, 이상한 일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내 기어들어 가듯 작은 목소리,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은 목소리가 다시 귓가를 간지럽혔다.

“…기사님?”

카인은 목소리를 다시금 추적했다. 자신과 그는 키가 비슷하다. 근처에 있다면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리가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위나 아래로 움직이는 일 없이 가로로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래도 오답이었던 것 같다. 목소리는 위쪽에서 들렸다. 목소리 쪽으로 얼굴을 들자 이윽고 흰 인영이 시야에 들어온다. 하지만 생각했던 모습은 아니었다. 그는 평소의 정장 차림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는 커다란 흰 천을 뒤집어쓰고 있었으니까. 구깃구깃한 흰 천 사이로 빼뚤빼뚤하게 겨우 눈이 보이는 작은 구멍만이 두 개 뚫려있다. 한편, 놀란 것은 그의 외견뿐만이 아니라 그의 위치정보에도 있다. 목소리가 카인이 예상치 못한 높이에 있었던 만큼. 그는 마법관 건물 외벽의 2층 창문 아래쪽의 돌출부에 앉아 있었다. 건물 모퉁이에 있는 창문이라 건물 사이에 끼어있는 것 같은 인상이다. 돌출부는 그렇게 넓지 않고,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아이를 보는 것 마냥 불안하다. 평소라면 북쪽 마법사를 상대로 절대 이런 걱정 하지 않겠지만. 걱정을 하는 쪽이 미친 사람일 테지만. 지금은 평소와 같은 상태가 아니다. 마법을 제대로 쓸 수 없을 것이다. 저 높이에서 무방비하게 떨어진다면 다칠지도 몰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카인은 다급히 다시 말을 걸었다.

“어쩌다 거기까지 올라간 거야. 혼자서 내려올 수 있어?”

흰 천의 인영은, 오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마도 그렇다는 것이다. 얼굴 부근의 천이 좌우로 격하게 흔들렸으니까. 카인은 허리를 짚으며 위쪽을 올려다보곤 어떡해야 좋을지 생각한다. 바로 뒤에 창문이 있으니 그쪽으로도 들어갈 수는 있을 터다.

“뒤에 있는 창문으로 들어갈 수 있겠어?”

그 말을 들은 오웬은 잠시 멈췄다. 몸을 돌려 뒤쪽의 창문을 보려는 듯 흰 천이 살짝 움직인다. 하지만 좁은 공간에서 그 이상 움직이기 어려웠는지 이내 다시 앞을 보고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그럼 하는 수 없지.

“받아줄게. 뛰어내려.”

카인은 두 팔을 뻗어 받아내는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오웬은 바로 뛰어내리지 않는다. 흰 천 아래 삐쭉 보이는 검은 구두가 이질적으로 흔들렸다. 무서운 걸까. 오웬을 상대로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어쩐지 저항감과 웃음이 동시에 나오는 일이지만. 카인은 피식 웃는 것을 멈추지 못한 채 벌린 팔을 조금 더 뻗었다. 괜찮아, 반드시 받아낼게. 걱정 말고 뛰어내려.

공중에서 작게 흔들리는 검은 구두에는 여전히 걱정과 망설임의 기색이 보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오웬이 떨어졌다. 어설프고 서툰 자세였다. 그대로 바닥에 부딪힌다면 반드시 다친다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카인은 순간적으로 그의 위치를 파악해서 자신의 위치와 자세를 조정했다. 순식간에 눈앞에 덮쳐온 흰 천이 너울너울 유령처럼 흔들렸다. 이내 둔탁하게 상대방이 부딪히고, 그 충격으로 카인도 주저앉았다. 정확히는, 오웬에게 깔린 듯한 상태가 되었지. 흰 천의 덩어리에.

괜찮아? 우선은 상대방의 상태를 확인한다. 자신의 배를 깔고 앉듯 그 위에 자리 잡은 흰 천이 가만히 위아래로 흔들린다. 그 대답을 보고 나서야 카인은 자신의 상태도 확인한다. 땅에 찧은 엉덩이가 조금 얼얼하지만 그 외의 외상은 없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야 깨닫는다. 마법을 쓰면 됐는데. 내 맘대로 오웬을 공중에 띄운다, 라는 발상이 없었지. 아하하, 크게 웃어버린다. 그러자 웃음을 터뜨린 카인을 관찰하듯 눈앞의 흰 천은 고개를 기울이더니 카인의 얼굴 쪽으로 제 몸을 가까이했다. 천 너머로 붉고 노란 눈동자가 보인다. 카인에게 익숙한, 잘 갈린 칼 같은 날카로운 그것이 아닌, 어떤 함의도 가지고 있지 않은, 동그랗게 뜨인 눈이다. 그것은 약간 어색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싫지만은 않은 것이기도 했다. 카인은 부드럽게 시선을 돌려주었다. 그러자 다음 순간, 그는 작게 웃었다. 의미를 알지 못하면서 보호자를 따라 하는 아이처럼, 아하하, 하고. 어린 새처럼 웃은 것이다. 그 소리를 들은 카인은 조금 놀라서 입을 벌린 채 눈을 크게 떴다. 어리지 않은 그한테 보였다면 분명 얼빠진 바보 멍청이 같은 얼굴이란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는 수 없다. 오웬에게 그런 반응을 기대해 본 적은 없었으니까. 아하하! 카인은 그 웃음에 더 큰 웃음을 돌려주며 흰 천의 머리 부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매끄러운 감촉이 손끝에 와닿는다. 흰 천 덩어리는 놀란 듯 당황한 듯 잠시 몸을 움츠렸지만 그의 손을 피하지 않았다. 아니, 잠시 있자 오히려 카인의 손길을 원하는 듯이 그 손바닥에 제 몸을 들이댄다. 마치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처럼.

얼마간 그렇게 쓰다듬고 있었을까. 카인은 그것을 멈추는 적당한 타이밍을 좀처럼 잴 수 없었다. 그에게 고양이가 다가오는 일은 드물었으므로.

“음, 그럼, 이제 갈까?”

어설피 손을 멈추고 그렇게 말하자 갑자기 덥썩 손을 잡혔다. 양손으로, 아니, 양쪽의 흰 천 사이로. 그 힘은 그렇게 세지 않다.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다. 하지만 카인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 여린 힘에 따라주고 싶은 기분이 되는 것이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지만. 잠시 그러고 있자 흰 천 너머로 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과자를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그 문구는 익숙하다. 바로 어제가 할로윈이었으니까.

과자를 주지 않으면 장난을.

현자님이 알려준 이세계의 풍습은 완전히 마법관에 스며들어서 이제는 할로윈을 챙기지 않는 게 어색할 정도가 되었다. 리케와 미틸을 선두로, 다들 이런저런 가장을 하고는 한다. 과자를 달라며 돌아다니는 마법사들도 있다. 자신은 어느 쪽이냐면 과자를 주는 쪽이지만. 어른이니까.

오웬이 적극적으로 그 풍습에 참여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과자를 빼앗는 건 본 적이 있는 것도 같지만, 그건 언제나의 일이니까. 할로윈이라서 그런 건지, 그냥 그런 건지 카인으로서는 판단이 서지 않는 문제였다.

어제는 어땠더라. 턱을 작게 긁적이며 기억을 떠올려보지만 오웬을 본 기억이 없다. 어디 다른 곳에 가 있나 했지. 변덕스러운 녀석이니까.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서 과자를 달라고 요구하진 않을까 잠깐 생각하기도 했지만 결국 모습을 보지 못한 채 해가 졌다.

카인은 다시 눈앞의 오웬을 바라본다. 가장이라고 하기에는 꽤나 어설픈 모습이다. 마법관에는 클로에가 있으니까 괜히 더 그렇게 느껴진다. 그라면 가장을 하고 싶다는 말의 기역 자만 꺼내도 번듯한 코스튬을 만들어올 텐데. 이건 그냥 흰 천을 뒤집어썼을 뿐이다. 물론 보자마자 유령이라는 것을 알겠으니까 어느 의미 훌륭한 가장이기는 하다. 한밤중에 봤으면 놀랐을 거야.

“…장난을 칠 거야.”

그나저나 할로윈이라는 건, 그 다음날까지 계속되는 것이던가?

속삭임 같은 작은 목소리가 귓가에 닿는다. 흰 천 너머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비록 카인에게는 간지럽힘 정도로도 느껴지지 않는 약한 것이었지만. 한편, 그 매끄러운 천 건너편에 마땅히 느껴져야 할 따뜻한 체온은 느껴지지 않는다. 흰 천이 따스함을 전부 차단해 버린 것 마냥 서늘한 감각만 남는다.

카인은 그것이 어쩐지 몹시 싫었다.

오늘은 이미 할로윈은 아니지만, 카인에게는 과자가 있었다. 오히려 다음날이라서 과자가 있었다. 네로가 어린이들 용이라며 잔뜩 만들고 남은 과자들을 다른 마법사들에게도 뿌렸으니까. 출출하면 입가심으로라도 먹으려고 주머니 가득 챙겨뒀지. 그러니까 곧장 과자를 꺼내주면 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아서. 카인은 잠시 망설였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더. 무얼 어쩌고 싶은지 고민이 되었기에.

카인이 이렇다 할 반응이 없자, 흰 천은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천 너머의 붉은 눈동자가, 가는 동공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울렁거린다.

“과자를 안 주면… 장난을 쳐야 해.”

“응? 어떤 장난을 칠 건데?”

그건 즐거운 행사를 앞둔 목소리라기보다는 혼나기 직전 어린아이의 그것 같아서. 카인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본다. 희미하게 흔들리는 흰 천을 커다란 손으로 쓰다듬는다. 장난을 치는 날이잖아. 그래도 돼.

“…장난을 쳐도 돼? 그래도 나쁜 아이가 아니야?”

“응, 그럼. 장난을 쳐도 돼.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 과자를 줄게.”

카인은 다정하게 흰 천 너머로 보이는 눈에 두 눈을 맞춘다. 눈에 익은 눈동자다. 평생을 보아온 쪽도, 그렇지 않은 쪽도 이제는.

서늘한 가을 바람이 분다. 낮에 나온 흐릿한 초하룻달이 유령처럼 떠 있다. 흰 천이 바람에 너울거린다. 하루 늦어버린 망자의 존재를 증명하듯이. 어째서일까. 카인은 천천히 붙잡힌 손을 마주 쥐었다. 다른 한 손으로도 흰 천을 감싸듯, 바람 같은 것으로는 놓치지 않을 강도로 잡는다. 천 너머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처럼. 자기 위에 앉아 있는 유령의 무게가 느껴진다는 것에 어쩌면 조금 안도하면서.

“천, 걷으면 안 돼? 네 얼굴이 보고 싶어.”

“…안돼. 이걸 벗으면 들켜.”

“들켜?”

“들키면 돌아가야 해.”

“어디로?”

“……”

답은 없다. 다시금 미약한 바람에도 꺼질 것처럼 아른거리는, 덤불 속 단 한 송이 피어있는 꽃처럼 선연한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다. 문득 카인은 그 눈을 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하고 냉담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좀처럼 알 수 없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눈동자. 간질간질한 감각이 가슴 속에 퍼진다. 원하는 답이 돌아올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어진다.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초조하고 답답한 기분.

그의 앞에 있던 것은 언제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같은 사람이 아닌가?

죽은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다음, 혼자 남겨진 어린애.

이별을 건넨 나날을 기억한다. 흰 천을 덮은 날들도. 언제나 돌이킬 수 없는 작별이라는 것을 깨닫는 마지막 순간, 다시 한번 그 얼굴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별을 유예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결국에는 천을 덮지 않을 수 없으니까, 그것을 다시 걷는 것엔 어떤 의미도 없어서. 그 짙푸른 슬픔이 어깨를 눌러오던 감각을 기억한다. 앞으로 영영 닿지 않을 손가락에 느껴지던 서늘하고 차가운 공기도.

카인은 몹시도 안타깝고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부드럽게 흰 천을 끌어당긴다. 밀어내도 좋다는 마음으로. 하지만 흰 천은 놀랄 정도로 순순히 잡혀주었다. 보드라운 천 너머의 누군가가 느껴진다. 허깨비도 허상도 아닌, 그곳에 존재하는 숨 쉬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그를 죽은 사람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창백할 정도로 흰 피부. 투명해서 핏줄조차 비쳐 보이는 것 같은. 살아있다기보단 죽어있는 것에 가까울 정도로 무기질적인 질감의 얼굴.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심장은 이미 멈춘 것은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그 모양 좋은 코 밑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해도 가느다란 숨결 하나 느껴지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만약 그가 정말로 죽는다 해도 그 마지막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허락되지 않겠지. 우리는 모두 돌로 돌아가서 찬란히 부서질 것이기에. 천을 덮어 애도를 보내는, 영원한 작별 인사도 허락되지 않는 이별. 그것은 몹시 쓸쓸하고 슬픈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 이 흰 천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카인 나이트레이는 안다.

“걷어도, 돼?”

카인은 어쩌면 간절하게 되뇐다. 과자를 줄게, 네가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매끄러운 천을 살며시 쓰다듬는다. 그 존재를 손끝으로 느끼듯이. 닿고 있다는 걸 확인하듯이. 아마도 그것은 카인 나이트레이의 욕망이다. 여태까지 줄곧 포기해 왔던 것을 이번만은 그러고 싶지 않다고, 너를 여기에 매어두겠다고. 지금 여기서는 보내고 싶지 않다고.

“오웬.”

작게 속삭인 목소리는 분명하게 그 귀에 가 닿았을까?

가을 장미를 잼으로 녹여 그 아래 꽃잎이 가득 가라앉은 것 같은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가 얼핏 흔들린 것처럼 보였다. 여름꽃의 꿀 빛도 함께. 카인의 가슴 속이 이상한 확신으로 가득 찬다. 카인은 그 두 눈에 못 박힌 듯 그것을 줄곧,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천을 걷었다. 어린애조차 막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그것을 막는 손길은 없었다. 흰 천이 일렁이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모든 것은 그 너머로.

마치 놀란 것처럼 동그랗게 뜨인 눈동자가 얼어붙은 것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서서히 깜빡인다. 눈앞의 세상을 처음 본 것처럼, 오늘이 태어난 날인 것처럼. 만지면 녹을 것 같은 차가워 보이는 흰 얼굴이 천천히 카인을 인식하고, 이쪽을 마주 바라본다. 그 눈에 카인이 담긴다. 세상 전부가 불만스러운 듯한 눈동자가 이내 가늘게 뜨인다. 아아, 그 얼굴을 보니 어쩐지 웃음이 난다. 카인은 저도 모르게 가는 어깨를 가볍게 잡아당긴다. 손끝에 온기가 느껴진다. 그 온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카인은 망토 아래 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손가락 끝에 와 닿는, 희미하게 따뜻한 마른 윤곽. 아직 그 무엇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

“…또야? 진짜 짜증 나. 기사님은 또 뭔데. 어서 떨어지지 않으면…”

“여기에 있어.”

스위치가 눌린 듯 시작되어 이어지던 짜증 섞인 말이 끊긴다. 다정하고, 따스하고, 이상하게도 어쩌면 절박한 목소리에 오웬은 의아한 듯이 잠깐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그의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그 얼굴은 카인이 알고 있는 것이어서. 카인은 작게 웃었다. 그건 아마도 너를 만난 게 기뻐서, 네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기뻐서, 너와 닿을 수 있다는 것이 기뻐서.

그래서 카인 나이트레이는 오웬을 와락 끌어안은 것이다.

뭐야?! 답답해. 기사님은 정도라는 걸 몰라. 그렇게 무식한 힘으로 잡아당기면 어떡해. 멍이라도 들면 가만 안 둘 거니까. 갖고 있는 과자 몽땅 다 내놓지 않으면 용서 안 할 거야. 그럼에도 오웬은 그것을 허락했다. 그걸로 좋았다.

“오웬, 생일 축하해.”

카인은 그의 귓가에 속삭인다.

그것은 비밀스러운 의식처럼. 과자를 바쳐 너를 부르는 것처럼.

네가 태어나도록 네가 여기에 존재하도록.

뻗은 손가락 그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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