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부를게요
월화요이담의 레노파우
믿었던 스승이 사실 용이었다,
라는 일이 얼마나 자주 있는 걸까. 파우스트는 부채로 가린 시야 너머로 앵운가를 바라보았다. 파우스트가 스승의 거짓말에 침울하거나 말거나, 오늘도 앵운가는 활기차고 평화로웠다. 예전에는 자기도 이 틈 사이에 섞여 있었을 거라 생각하면 더 침울해지는 기분이었다.
파우스트는 떠들썩한 공기에서 눈을 돌리는 것처럼, 숲속으로 들어갔다. 앵운가에서는 조금 살기 불편해졌다. 파우스트는 언제나,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스승과 붙어 다녔다. 같은 텐구인 줄로만 알았던 스승의 존재는 그야말로 하늘에 떠 있는 별과도 같았다. 누구에게나 당당하고, 모두를 도우면서, 자신의 행동을 뒷받침해줄 실력도 확실히 있었다. 파우스트에게 있어서 스승의 존재는 자랑 그 자체였다. 그렇다고 파우스트가 실제로 자랑을 하고 다닌 것은 아니고, 그의 제자냐고 물었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한 정도다.
앵운가는 발달했지만, 매일 오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폐쇄적인 곳은 아니다. 즉…… 파우스트가 앵운가에 오면, 대체로 스승과 함께였기 때문에, 어째서 오늘은 혼자냐는 질문을 받고 만다. 일일이 해명하는 것은 곤란하다. 어찌 됐든 사실 용족이었던 그의 스승은, 겉으로는 텐구인 척하고 다니니까.
어차피 하나의 유흥거리였을 것이다. 용은 텐구를 제자로 받거나 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동안의 시간이 전부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어, 기분은 최악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었다.
이제 아무와도 엮이지 말자. 적어도 거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그렇게 마음 먹고 숲속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까만 깃털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기를 보니 텐구의 어린아이가 떨어트린 모양이었다. 이 숲은 오니가 나오기 때문에 어린아이가 돌아다닐 만한 곳이 아니다.
……어쩔 수 없지. 파우스트는 방금 막 아무와도 엮이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죽을 게 뻔한 어린아이를 두고 갈 정도로 박정한 사람은 아니다.
기척을 쫓아 간 곳에는 염려했던 대로 오니와 어린 텐구가 대치하고 있었다. 거기서 파우스트는 망설임 없이 부채를 휘둘렀고, 결과, 오니는 하늘의 별이 될 기세로 날아가 버렸지만 어린 텐구는 무사했다. 파우스트가 일으킨 바람 탓에 머리카락이 엉망이 되었지만.
사실은 구해주고 바로 떠날 생각이었지만, 자신이 망가뜨린 머리 그대로 돌아가라고 하기에는 좀 그래서 모습을 드러냈다. 섬세한 손길로 머리카락을 정돈해주면서 이쪽은 오니가 나오는 곳이니 다가오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덤으로 앵운가의 입구까지 아이를 바래다주었다.
그것이 조금 엉망진창이었던, 지극히 우연으로 이루어진, 레녹스와의 첫 만남이었다.
이듬해. 파우스트는 주의 표지판을 세우기 위해 다시 마을로 내려왔다. 또 어린아이들이 쫄래쫄래 돌아다니면 곤란하다. 주로 파우스트에 심장에 무리가 간다. 잠자리가 편치 않으니까. 파우스트는 스스로 그런 이유를 대며 표지판을 설치했고, 레녹스와도 거기에서 재회했다.
이것은, 또 시간이 흐르고 레녹스가 표지판을 수리할 나이가 되었을 때 쯤의 이야기.
파우스트의 등을 졸졸 쫓아다니던 어린 텐구는 파우스트가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커졌다. 제대로 한 사람 몫의 어른이 되어, 일을 하고 다닐 정도였다.
“레노! 간만이네. 별일 없었어?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야?”
본론부터 말하자면, 파우스트는 레녹스를 구해준 것으로 아주 많이 곤란해졌다. 오니의 후환 따위가 두려운 것은 아니다. 곤란한 것은 주로 레녹스가 원인이다.
“네, 그럭저럭… 이건 그때 부탁하셨던 약초입니다. 이쪽 분은…”
레녹스와 함께 하면 곤란해지는 이유.
그것은 바로――
“제 은인이신 파우스트 님입니다.”
구한지 수십 년이 넘은 레녹스가 아직도 자신을 ‘은인’으로 칭하기 때문이다. 나는 은인 같은 게 아니야. 저한테는 은인입니다. 이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눈 것도 수백번이 넘어간다. 슬슬 포기해주었으면 한다.
왜냐하면, 파우스트는 앵운가에서 잊혀지고 싶었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않았으면 해서 숲으로 들어갔다. 그런 게 최근에는, ‘레녹스의 은인인 파우스트 님’으로 통하게 되었다. 몹시 곤란하다. 일단, 거듭 강조하자면 은인이라 불릴 만한 일은 하지 않았는데.
딱히 너만 특별히 구한 거 아니야, 라고 했더니 모두를 구해주고 계시니까요, 하고 존경하는 눈빛을 받았다. 정말 곤란하다.
조금 강경책이 되겠지만, 파우스트는 더는 질질 끌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녹스는 소중하다. 언제까지고 자신을 ‘은인’으로 칭한다면, 그날의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진지하게 함께 살면 어떻겠느냐고, 자기 집 방을 내주겠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었다. 거절해도 레녹스는 작은 집으로 이사 가지 않았다. 적당히 잊어주었으면 했지만, 확실히, 레녹스는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오늘. 샤일록에게 줄 것도 있으니 겸사겸사 앵운가로 내려와 레녹스를 만난 것이다. 평소와 같이 은인이 아니야, 은인입니다, 하는 대화를 나누었다. 가게 안에서 싸우는 것은 좀 그래서 밖으로 나와 마저 이야기를 했다. 아무리 대화를 나눠도 레녹스의 뜻이 굽혀지지는 않았다.
파우스트는 그저, 그의 인생을 그에게 돌려주고 싶은 것 뿐인데. 정말 좋아하는 그가 나에게서 벗어났으면 하는 것 뿐인데. 잊어달라는 말로 레녹스를 상처 주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걱정할 정도로…… 파우스트는 레녹스가 소중했다. 그러니 잃고 싶지 않았고, 시간을 끌었고, 더는 미룰 수 없어진 것 뿐이다.
“저는……”
“이제 됐어, 레녹스. 나는 질렸어.”
설령 잃어버린다고 해도, 그에게 걸린 요술을 풀 때가 됐다. 예전의 자신같이 은인에게 맹목적인 신뢰와 존경을 보내는 그를, 풀어줄 때가 온 것 뿐이다.
“내가 너를 구해주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알고 있어? 이만 나를 잊어줘.”
그렇게 말하는 파우스트의 눈동자는 평소같이 아름다웠고, 조금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파우스트는 그대로 날갯짓하며 숲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파우스트는 텐구인데도 높은 곳까지 비행할 수 있다. 그래, 용과 같은 정도로. 본인은 눈에 띄고 싶지 않다며 적당한 높이로 나려고 하지만(주변 표본이 레녹스밖에 없던 시절, 레녹스가 날개가 있는둥 없는둥 상당히 낮게 난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비슷한 높이로 날았다) 가끔 생각이 많아지면 무심코 높게 날아버리고 만다.
파우스트가 떠난 자리에는 깃털 하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레녹스는 여전히 종종 한두 개쯤 떨어트려 파우스트에게 주의를 받고는 하는데도.
레녹스는 집으로 돌아가 몇 번이고 파우스트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처음, 파우스트와 앵운가에서 재회했을 때. 은인과 재회할 수 있었던 레녹스는 그저 신나있었고, 그의 손을 끌어 이곳저곳 탐험시켜주고 싶었다. 표지판을 두러 왔을 뿐인 파우스트는 곤란해하면서도 아이의 손을 내치지는 않았다.
거리의 사람들은 파우스트를 알아보았다. 다만, 파우스트는 그의 스승 이야기가 나오자 재빨리 모습을 숨겼다. 그 후 또 몇 년 동안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걸 깨달은 후부터, 레녹스는 마을 사람들에게 파우스트의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제 은인이신 파우스트 님.’
틀린 말은 없었다.
그리고 거기서 몇십년을 더 들여, 레녹스는 긴 싸움 끝에 파우스트의 호칭을 바꿔내는 데 성공했다. ‘누군가의 제자였던 파우스트’를 ‘레녹스의 은인이신 파우스트’로.
처음, “아~ 그 레녹스의 은인이신 분!”이라는 소리를 들은 파우스트는 깜짝 놀라 레녹스를 찾아갔다. 그건 지금도 손에 꼽을 정도로 몇 안 되는, 파우스트가 먼저 레녹스를 찾아온 날이기도 했다. 그때는 몹시 기분이 좋아서, 웃어버린 끝에, 파우스트도 하는 수 없이 기세로 용서해버렸던 것이 기억난다.
그래. 되짚어보면, 레녹스는 많은 시간 동안 파우스트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스스로 답을 내기 위해 밤을 지새웠다. 일출의 색과 꽃잎이 뒤섞여, 파우스트의 눈 색으로 착각한 순간. 레녹스는 그 답을 깨달았다. 레녹스는 파우스트를 좋아한다. 파우스트가 거처로 삼았으면 해서 자신의 집을 둘이서 살 정도의 크기로 마련한 것도 그것의 연장선이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갈 채비를 마치고, 레녹스는 바로 행동에 나섰다. 물론, 당장 고백할 생각이다. 파우스트라면 “역시 어제는 말이 너무 심했다”며 레녹스를 만나러 올 것이다. 지금이면 확정적으로 만날 수 있다.
예상했던 대로, 파우스트는 몇시간 지나지 않아 앵운가에 모습을 나타냈다. 머리에 내려앉은 꽃잎을 조심스럽게 떼고 있는 그의 표정은 온화했다. 흘러가는 구름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웃고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끌리듯 살짝 미소 짓고 있었다.
이 사람은 거리를 사랑한다.
거리에 원치 않는 이름으로 불려진다 해도.
“파우스트 님.”
“우, 우연이네. 레노. 어제 샤일록에게 부탁 받은 것을 건네주는 걸 까먹어서 다시 내려왔거든.”
물론 거짓말이다. 말을 더듬거나 시선을 미묘하게 회피하는 것에서 티가 나긴 하지만, 파우스트가 샤일록에게 건넬 것이 있어서 내려오는데 그것을 까먹고 돌아갈 일은 결코 없다. 그만큼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니까.
“……너에게 할 말이 있는데. 그러니까…”
“죄송합니다. 저 먼저 해도 될까요?”
레녹스는 언제나 상대의 말을 기다리는 경향이 있었다. 파우스트는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그래, 하고 대답했다. 별일이구나― 정도의 감상으로.
“연모하고 있습니다, 파우스트 님. 저를 반려로 삼아주세요.”
그래, 침착하게 생각하면 무언가 좋은 이야기가 나올 리 없었다. 레녹스의 눈은 진지했고, 평소랑 다르게 먼저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는 소리를 했으니까.
파우스트는 사과를 건네지 못한 채로 도망가지는 않는다. 즉, 저번에는 미안했다는 말을 건네기 전까지는 반드시 앵운가로 돌아오게 된다. 그 흐름을 읽은, 레녹스의 선공이었다.
결과는, 보란 듯이. 파우스트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손에서 툭- 하고 부채를 떨어트렸다. 앵운가로 내려오지 않은 사이 레녹스가 50cm나 자라있었던 이래로 그런 표정은 처음이었다. 다만 그때는 얼굴을 붉히지 않았으며, 지금처럼 오래 굳어있지도 않았다.
“이 앵운가를, 저의 곁을, 거처로 삼아 주세요.”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듯이, 레녹스는 전한다. 파우스트는 한참을 더 조용히 있다가 뒤늦게 부채를 주웠다. 그리고 평정을 가장하듯 평소처럼 부채로 얼굴을 가렸지만, 갑작스레 몸을 숙여서 모자가 비뚤어졌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레녹스는 “진심입니다”라고 말했다. 파우스트는 “알아, 알고 있어,” 라고 웅얼거리듯 답했다. 한참을 침묵으로 보냈다. 사이에 레녹스를 알아보고 인사하는 사람이 네명이나 지나갔다.
파우스트는 레녹스와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레녹스는 그 사실이 기뻤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10년을 기다리라고 했어도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서로 가만히 서서 10분을 넘긴 끝에, 파우스트는 겨우 입을 열었다.
“레노. ……그, 함께 사는 건 아직은 무리지만… 너와 특별한 사이가 되는 건, 그러니까.”
오랜 고민 끝에 내놓은 답이라기에는, 자신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마치 넘치는 부끄러움을 감당하지 못한 듯… 파우스트는 부채로 얼굴을 다 가리고선, 기어들어 가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좋아. 레노.”
집도 이미 있으니, 파우스트의 마음만 돌릴 수 있다면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이 거리에서. 함께. 둘이서, 언제까지고.
레녹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앞의 파우스트를 끌어안고, 너무 기쁜 나머지 업어 올리고, 필요 이상으로 사람들의 눈에 띄어 혼나고 말았다.
거대한 나무는 마치 축복하는 것처럼, 바람에 살살 흔들리며 꽃잎을 뿌리고 있었다.
“안녕, 레노! 오늘은 경단이 잘 만들어졌어. 옆에 계신 분은 누구야?”
레녹스는 조금 망설이듯이 시선을 배회하고선, 이내 결심했다는 듯이 주먹을 꽉 쥐며 답했다.
“……저의 정인이신 파우스트 님입니다.”
……그리고, 레녹스의 몹시 파격적인 소개를 견디지 못한 파우스트가 다시 숲으로 도망쳐버린 것은 또 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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