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약속

나의 닻

스쿠아마 엔딩 후의 브래네로

여전히 붕 떠 있는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고. 네로는 흔들리는 수면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그래도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기도 했다. 네로는 맥주가 담겨있는 컵에 입을 대고, 홀짝인 다음, 다시 바다로 시선을 옮겼다. 차가운 밤바다의 공기가 스며든다. 그것은, 몹시, 자유를 닮았다.

과거의 네로는 상자 속 구슬이었다. 자신이 태어난 알 안에서 몸을 웅크리고 번데기가 되려는 애벌레 같았고, 나무 꼭대기에 있는 안락한 둥지에서 날개를 펴는 법도 모른 채 잠이 드는 것과 같았다.

네로는 기다렸다. 번데기를 찢고 나와 나비가 되는 순간, 핀셋으로 꽂혀 영원불멸 박제되는 것을. 오랜 시간 굶주려있던 포식자의 양분이 되는 순간을. 이대로 그 무엇으로도 완결되지 않은 채 잠드는 순간을.

어차피 인간다운 삶 같은 것은 몰랐다. 네로는, 이것보다 더 좋은 삶은 모른다. 언제나 그랬으니까. 슬프거나 억울하지도 않았다. 가진 적 없는 것은 탐나지도 않는다. 그러니 네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철장의 틈새로 흐르는 유성 말고는.

아름다운 별에 홀려, 네로는 막무가내로 고치 밖으로 뛰쳐나갔다. 애벌레도 아닌 번데기가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리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 길에서 오르게 된 바다 위, 그는 알려주었다. 인간보다 못한 삶만을 살아왔다는 것이, 인간다운 삶을 구가하지 않을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그 사람은, 나에게.

“우와, 네로. 너 또 취했냐.”

누구야, 이 녀석한테 한 잔 더 준거. 혼내는 듯한 목소리와 다르게, 따뜻한 손이 거칠게 머리를 쓰다듬는다. 차가운 밤공기 탓인지, 브래들리의 손은 평소보다 훨씬 따뜻하게 느껴졌다.

“캡티인~……”

네로가 브래들리의 몸에 기댔다. 시끌벅적한 동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브래들리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가, 네로는 알아서 챙길 테니 내버려 두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네로의 의사도 묻지 않은 채 어깨를 들쳐메고 방으로 향했다.

네로가 몸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만취했을 때마다, 브래들리는 항상 자신의 방으로 네로를 데려갔다. 네로의 방 위치를 모른다던가, 방문이 잠겨있어서 같은 이유는 아니었다.

사실 브래들리는 지금도 네로가 악몽을 꾸고는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망망대해에 혼자 버려지는 악몽. 특히 술에 취해 어질어질해지면 항상, 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랬다.

……혼자서 잠들고 싶지 않아.

네로는 그렇게 말했다. 브래들리는, 지금도 꾸준히 그것을 지켜주려고 한다. 상대가 악몽을 꾸고 있다는 사실조차 숨기려고 한다고 해도.

침대에 던지듯 눕히자 네로는 작게 무언가를 중얼거리면서 눈을 떴다. 푸른 하늘을 닮은 머리카락이 침대 시트에 물결처럼 퍼져간다.

“어때. 캡틴이 쓰는 침대는. 평소랑 푹신함의 정도가 다르지?”

브래들리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졸음에 빠진 네로에게는 닿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뭐, 그렇지,” 하고 적당한 대답을 해오는 점이 네로다웠다.

어이, 네로. 옷을 갈아입고 자라고. 브래들리가 네로의 몸을 흔들었다.

“저기, 캡틴.”

물에 젖은 듯한 시트린의 눈동자가 호소한다.

“옷 갈아입으면 들어줄 테니 일어나.”

“왜 내가 특별해? 나만… 「능력이 없는」 스쿠아마니까? 아니면 모두를 특별하게 대하고 있어?”

브래들리의 방에는 ‘최고로 좋은 것’ 밖에 두지 않는다. 네로는 그것의 의미를 아직도 모르고 있다.

……하지만 몰라도 상관 없었다.

특별한 것은 특별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가치가 떨어지거나 하지 않는다. 다른 녀석들이 네로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됐다. 이 녀석의 캡틴은 영원히 나 한명 뿐이니까. 브래들리는 네로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서는 그 얼굴을 들여다본다. 조금 부끄러운 듯이, 망설이는 것처럼, 네로는 시선을 아래로 내린다.

“바보냐, 다른 녀석들한테는 안 해. 내가 갖고 싶은 건 너 뿐이라고.”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 무언가가 살아간다는 느낌을 들게 할까? 네로는 언제나 망망대해를 떠도는 기분이 들었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은 것 같아서 두려웠다. 이대로 끝없는 바다에 표류해서, 아무도 없는 곳까지 떠내려갈 것 같아서.

브래들리가 먼저 네로를 껴안고, 조심스럽게 토닥여준다. 소중한 보물을 다루는 것 같은 손길이었고, 동시에 부모가 자식에게 보내는 애정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네로는 참지 못하는 것처럼 몸을 일으켜 브래들리를 껴안았다. 알콜에 취한 세상이 크게 기우뚱, 하고 흔들렸다. 침대 시트에 쓰러진 둘은 하얀 이불 속으로 파묻혀간다. 계속 울렁거려도 두렵지 않았다. 네로에게 있어, 브래들리는 닻이었다. 브래들리가 곁에 있다면 아무리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도 떠내려가지 않을 것만 같았다.

품에 안은 캡틴은 평생 닿을 것 같지 않으면서도 확실히 곁에 있었고, 차가울 것 같으면서도 무척이나 뜨거웠다.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 알 수 없던 세계는, 이렇게나 가까이에 미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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