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도 키스를
알렉파우
밤이라고 말하기에도 너무 늦었고, 새벽이라고 칭하기에는 너무 이른 애매한 시각. 아키라는 눈을 떴다. 잠자리가 특히 안 좋았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가끔 이유도 모를 이유로 잠에 깨고는 했고, 조금 산책하다 보면 금세 잠들 수 있었다.
그러니 오늘도, 아키라는 남몰래 이곳저곳을 탐험한다. 저번에 1층에 내려갔을 때는 잠들지 못하는 미스라가 복도에 누워있어서, 방에 데려가 주었다.
2층은 ‘착한 어린이’들의 층이기 때문에 역시 다들 잠든 것 같았다. 3층은 네로가 가끔 이 시간까지 깨어있기도 한다. 레녹스와 클로에는 이 시간에는 잠들어있다. 라스티카는… 대체로 잠들어있다.
노크를 했다가 깨워버리는 것도 미안하니, 누군가가 나오지 않는 이상은 다음 층으로 넘어가고 있다. 최고 기록은 언제나 4층이었다. 그야, 5층은 무서우니까. 북쪽의 마법사는 타인의 기척에 민감하다. 복도에 서성이고 있다가는 반드시 누군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4층으로 향한 계단에 시선을 주자, 보인 것은 고양이였다. 옅게 빛나는 고양이는 척 봐도 평범한 것이 아닌 듯한 느낌을 주었다. 환영처럼, 고양이는 벽 너머로 스르르 사라져간다. 짐작 가는 것은 있었다.
파우스트의 ‘기묘한 상처’―――
아키라는 조금 망설이다가도, 용기를 내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파우스트를 깨워야 한다. 꿈이 새어나가는 것은 그가 원치 않는 일이니까.
문을 열고 들어간 방은 촛불의 불꽃으로 옅게 비치고 있었다.
잠든 파우스트의 곁에 있는 것은 은발 머리의 청년. 무심코 아서, 어째서, 여기에, 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아서는 파우스트를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않는다. 아키라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분명……
초대 국왕, 알렉 그랑벨.
그 청년은 개구쟁이처럼 순진무구하게 웃으며, 검지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쉬잇. 비밀이야, 하고 말하려는 것처럼.
큰 장난을 치는 중이라 들키지 않으려는 것처럼. 등에 ‘바보’라고 적힌 쪽지를 붙여놓고 비밀로 해달라는 것 같은 어린아이의 사랑스러움이 있었다. 이런 청년이 친구를 불에 태우려고 했을까. 정말로? 그렇게 의심하게 될 정도였다.
촛불의 불꽃은 모여 모닥불이 되고, 어두운 그림자는 수풀이 되어 방을 물들여간다. 파우스트가 앉아있는 의자 위를 자연이 덧씌우는 것처럼, 환영에 잡아먹히고 있었다. 그것은 가끔 고개를 불쑥 들이미는, 그들의 과거. 아키라는 용기를 내서 방의 중심으로 나아갔다. 파우스트를, 깨워야만 한다.
잠들어 있는 파우스트의 곁을 지키는 것처럼, 청년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의 등을 쓸어내린다. 그 입이 호를 그리며 움직인다. 파우스트,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목소리는 새어 나오지 않았지만. 어쩌면, 파우스트에게는 들리고 있는 걸지도.
그리고 알렉은 고개를 들어 아키라를 바라본다. 분명 모든 것들이 익숙한 생김새를 하고 있는데, 전부 처음인 것처럼 낯설기도 했다.
아키라가 다가오는 것은, 곧 꿈의 끝을 뜻한다.
알렉은 마지막으로 장난을 치는 것처럼, 감정을 숨겨 눌러 담는 것처럼, 잠에 빠진 공주님을 깨우려는 것처럼…… 파우스트에게 입을 맞추었다.
――직후, 파우스트는 악몽이라도 꾸고 있었던 것처럼 덜컹!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아키라의 바로 앞으로 넘어졌다.
“……너인가, 현자. 지금… 지금이, 몇 시지?”
파우스트는 혼란을 숨기는 것처럼 그렇게 물었다.
“새벽 3시가 넘었어요, 파우스트.”
그래서 아키라도 모르는 척을 하기로 했다. 아니면 못 본 척을. 파우스트는 고개를 돌린 채로 그렇구나, 라고 대답했다.
꿈이라는 것은 이미 있었던 일을 다시 보기도 하고, 이랬으면 좋겠다는 하는 소망을 반영하기도 한다. 파우스트의 기묘한 상처는 어디까지나 꿈이 새어 나오는 것 뿐. 없던 꿈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제대로 침대에 누워서 주무세요, 파우스트. 무리하지 말아요.”
아키라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다시 혼자 남겨진 파우스트는 마지막으로 결계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침대에 누웠다.
차라리 전부 잊고 시트의 물결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그래도, 잊을 수 없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입을 맞추었던 날의 그를.
그때 알렉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멋대로 했던 주제에, 사과도 하지 않았고, 잊어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받아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알렉은 그저 웃으며, 그래, 웃으며……
가끔 이렇게 낡은 기억이 들춰진 날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몇 번이고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고, 또 불꽃에 휩싸이고, 겨우 악몽에서 벗어난다. 파우스트는 그렇게 계속 감정을 짓누르는 방법밖에 몰랐다.
그날, 흐릿한 모닥불의 불빛에 의존해 바라보았던 알렉. 풀벌레들이 우는 소리만 들려오던 날. 알렉은 어째서 입을 맞추었을까. 남과 입을 맞춘 것은 처음이었다던가, 누군가에게 보여지면 안 될 거라던가, 그런 생각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이 세상에 알렉과 단 둘이 남겨진 것 같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이 세상에 둘만 남는다. 그것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고, 동시에 떨릴 정도로 두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알렉과 입을 맞추던 파우스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 뒤로는 둘이 남겨질 일도 없었고, 그래서, 알렉이 다시 입을 맞춰올 일은 없었다.
알렉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니 파우스트도 작은 실수로 넘어갔다. 얼마 가지 않아 파우스트는 친애의 뜻으로 손등에 키스를 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알렉의 ‘그것’도 비슷한 개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종종 떠오르고 만다.
장난기가 서려 있던 표정. 닿은 순간 느껴졌던 뜨거운 온도. 가라앉은 호수 같은 색을 하고 있던 눈동자. 모닥불의 열이라고 속여 넘어갔던 모든 것들을.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날 알렉을 따라 고향을 벗어났던 것이 잘한 일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나도 알렉에게 입을 맞추었다면 계속 그때 그 순간을 되새기지 않았을지.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앞으로도, 이때를 계속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추억을 통째로 점령당한 것처럼. 그에게 되돌려주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빼앗기는 그 순간을.
지금도, 똑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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