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약속

‘우리’를 모르는 채로

북형제제자(세계정복조)


오즈도 이제는 이해하고 있다.

피가로, 아니, ‘피가로 가르시아’는 생명을 사랑한다. 적어도 무의미한 생명이 하나의 끝을 맞이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보살피는 것을 좋아하는 주제에, 세계 지배에 어울려준 이유를, 오즈는 모른다. 만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알고 싶다고 생각할까? 오즈는 그것조차도 모른다. 아마, 피가로라면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즈가 어느날 그렇게 물어보면, 네가 물어보는 거냐면서 쓴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있다. 오즈는 남들의 악의 외의 모든 것에 둔한 남자지만, 그 순간, 피가로가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대강 파악할 수는 있었다.

그래. 피가로였다면…… 그런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만물을 내려다보며 살피는 것을 좋아하는 존재였으니까. 비록 파도 한 번에 휩쓸려 사라질 모래로 된 정원일지라도, 피가로는 그것이 사라지기 전까지 계속 품에 안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고, 오즈는 생각한다. 그러면 피가로가 세계 지배에 어울려준 것은, 그저, 그가 무심코 돌보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피가로는 언제나 신이었다. 조금의 변덕으로 세상을 돌본다. 그것은 작은 사랑이기도 했다. 반면 오즈는 언제나 파괴자였다. 조금의 변덕으로 세계를 부순다. 그것은 알 수 없는 감정의 결정체였다.

그래, 오즈에게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세계의 모든 것이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즈는 어떤 수단으로든 답을 찾지 않았다. 북쪽의 아이답게 실로 오만한 행동이다. 이해해도, 이해하지 않아도, 차이는 없으니까.

그렇게 다시――

몇백 년의 세월이 흘렀다.

피가로와 오즈를 단둘이 남쪽으로 보낸다는 건은, 음, 여러모로 반대가 있었지만(특히 오즈가 싫다고 말했다) 하는 수 없이 동행하는 결론이 났다. 오즈는 기본적으로 현자의 말에는 거역하지 않았고, 피가로도 부탁받으면 거절하는 타입이 아니니까. 좀 꺼리기는 하지만 북쪽의 마법사들을 한데 묶어 보내는 것보다는 훨씬 간단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피가로도 오즈도, 태생은 북쪽이기에 마법사니까 북쪽의 마법사이기도 하지만.

사실, 둘이 함께 무언가를 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오즈는 대화를 잘하는 편은 아니다. 남들을 따르게 할 수 있을 정도의 강제력은 있지만, 누군가를 따르게 하는 것은 특기가 아니었다.

반면 피가로는 유연하다. 남들을 따르게 하는 것을 잘하고, 별로 쓸모없는 자존심도 조금 있어 굽히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무력이나 힘을 고려해 보자면 오즈보다는 떨어진다고도 할 수 있다.

아무튼 이렇게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는 -그들의 스승만큼은 아니지만- 꽤 좋은 콤비였다. 그 협력으로 해낸 것이 세계의 파괴라는 점만 빼면, 모든 부분이 좋았을 것이다. 피가로는 웃었다. 세계의 절반을 부순 그 결속이 지금은 세계의 사람들을 돕고 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그렇게 생각해도 빗자루의 속도는 늦춰지지 않고, 저 멀리서 남쪽 나라의 마을이 보였다. 하늘에 떠 있는 것은 빗자루에 탄 마법사 한 명. 이렇게 된 것은 아주 사소한 이유가 있다.

오즈는 사람들이 서툴다.

그래서 하루 종일 기척을 지우고 조사만 하겠다는 오즈를 어떻게든 말려서, 피가로가 낸 합의안은, 오즈를 동물에 변신시켜 함께 가는 것이다. 자신있거나 편한 모습이 있냐고 하니, 오즈는 망설임 없이 새로 변했다. 덧붙여 나는 것도 싫은 건지 귀찮은지, 피가로에게 착 달라붙어 빗자루에 타 이동했다. 중간에 툭 털어버릴까 고민도 했지만, 후환이 두려워 역시 그만두기로 하고, 피가로는 오랜만에 남쪽 땅을 밟았다.

마을은 여전했다. 피가로에 루틸과 미틸에 레녹스까지 다함께 현자의 마법사가 된 탓에, 어느 정도 혼란은 있었던 모양이다. 미리 대비를 하기도 했고, 중간중간 시간이 날 때마다 마을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지만, 갑자기 큰 일손들이 비게 된 것은 여러모로 고생이었겠지. 저 멀리서 반가운 얼굴이 보이자 사람들은 하던 일도 멈추고 피가로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피가로의 어깨에 얌전히 앉아있는 칠흑의 새는, 이 대지를 전부 뒤져보아도 흔히 없을 것 같은 피처럼 붉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오자, 새는 살짝 숨는 것처럼 피가로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이러면 어린애들의 손에는 안 닿을 것이다. 어른은 이런 위험해 보이는 생명체에 쉽게 다가가지 않을 테니, 현명한 선택이었다.

세계 지배를 그만두고 중앙의 마법사가 되었다고 해도, 오즈는 여전히 마왕이다. 그 눈동자를 깜빡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숨을 얼게 할 수 있다. 괜히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처음부터 조금 떨어진 채로 지내는 편이 좋을 것이다. 피가로 선생님, 하고 서쪽의 주민들이 그를 반긴다.

“까마귀다! 무서워요.”

“피가로 선생님이랑은 별로 안 어울리네요.”

“후후, 그런 소리를 하면 까마귀도 슬퍼할 거야. 이렇게나 착하고 얌전한데.”

피가로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까마귀는 부리로 피가로의 머리를 콕콕 쪼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피가로는 웃으며 “부끄럼을 타나 보네~” 하고 무시했다. 남쪽 마을의 주민들은 그동안 쌓아두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요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다는둥, 그 사이에 누가 결혼했다는 둥, 루틸이랑 미틸은 어떻게 지내냐는 둥, 레녹스와 양은 건강하게 지내고 있냐…… 피가로는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적절한 대답을 하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들의 무익한 대화는 몇십분이고 이어질 것 같았다. 그동안 주변이라도 둘러보고 오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는지, 까마귀는 날개를 쭉 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피가로가 손바닥을 뻗자 검은 깃털 하나가 팔랑, 손에 떨어진다. 이것도 하나의 촉매가 될지도 모르는데. 어차피 피가로의 손바닥 위로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지만, 지금의 형제 제자에게는 조금 조심성이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시야에서 사라지는 불길한 까마귀에서 시선을 뗀 피가로는, 우선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자며 자신의 진료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2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까마귀는 제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피가로는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간단한 진료를 봐주었다. 물건을 전부 정리하고 사전에 받은 보고서를 넘기며, 피가로는 툭 내뱉었다.

“그래서 말야, 최근 비가 심하게 온다던데. 애들이 걱정하고 있었어.”

어느새 오즈는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의자에 앉아있었다. 이곳에는 평소와 다르게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난로가 없었다. 창문 밖에 조용히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오즈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표현이었다.

그런 식으로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피가로는 오즈가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오즈는 이야기를 듣지 않을 거라면 자리를 뜬다. 얌전히 앉아있다는 것 자체가 이야기를 들을 마음이 있다는 거고, 피기로는 그것이 꽤 알기 쉬운 신호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 같지만.

“그러니 지금부터 신님 놀이를 하자.”

“신님 놀이, 라는 것은?”

오즈가 오늘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남들 앞에서 ‘기적’을 내보이지 않는다. 보여주기식 마법은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미, 증명할 필요도 없이 세계 최강의 마법사니까.

“복스노크 해줘.”

피가로가 웃으며 말했다.

“할 수 있지? 오즈. 어린애들도 기대하고 있으니까.”

어린애들도 기대하고 있다니 오즈에게 그것을 거절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피가로가 부탁한 것은, 오즈에게 있어 썩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오즈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해, 마도구를 꺼내든 다음 하늘을 바라보았다. 주문도 없이 그저 지팡이를 치켜드는 것만으로도 어두운 먹구름은 물러간다.

적어도 오즈가 있는 동안은 비에게서 자유로울 것이 분명했다. 해가 저물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잠깐 불러세운 피가로는 상냥한 남쪽의 마법사처럼 웃었다. 내일은 분명 맑을 거야, 라며.

그리고 어두운 밤이 지나가고,

다음 날 날씨는 최근 쭉 기후가 이상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쾌청했다. 구름에 해가 가려지지도 않고, 이상하게 계속 내리던 비도 그쳐 있어 사람들은 기쁜 듯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피가로 선생님의 일기예보는 백발백중이라니까, 하하!”

피가로가 스스로를 치켜세우듯 말하자, 창가에 앉아있던 까마귀가 나무라듯 까악― 하고 울음소리를 냈다. 피가로는 대충 알아알아, 하고 대꾸한 다음 창문을 벌컥 열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피가로와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면 피가로도 그것에 있는 힘껏 화답하기 위해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든다.

그 모습은 무척이나 자애롭고, 아름다웠다. 만일 피가로가 신이었다면 분명 세계를 창조하는 데에 아주 오랜 시간을 들일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생물들을 위해 개념 하나조차도 세밀하게 조절하며,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낙원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세계는 언제까지나 아름답고 완벽한 것을 지니며, 사람들은 낙원에서 벗어난다는 개념조차 잊어버린 채

그것이 멸망해 버릴 때까지.

까마귀는 창문으로 날아올라 지붕으로 향한다. 피가로가 눈에 담고 있는 세계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날 무슨 이유로 세계를 파괴하는 것에 동의했을까. 피가로가 생각하는 이 지상낙원에, 없어야 할 것이라도 있었을까. 바닥을 몇 번 차던 까마귀는 무언가를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굴다가, 결국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던 까마귀는, 한참을 비행하던 끝에 근처 숲 가지에 앉았다. 몸을 부르르 떤 다음에 바닥을 향해 추락하며, 오즈는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 주변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다. 인기척도 없고. 

오즈는 남쪽 나라의 기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즈뿐만 아니라, 북쪽에서 살아온 마법사라면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피가로 정도면 익숙해졌을지도 모르지만. 거대한 나뭇잎 아래에 몸을 숨긴 오즈가 더운 숨을 내뱉었다. 하기 싫다는 이유로 팽 던져버릴 수 있는 일이었다면, 오즈는 지금 막 주문을 외워 이 나라에서 도망갔을 것이다.

인기척도 없는 이 주변에서 인위적인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는 것은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오즈는 눈에 뻔히 보이는 것을 외면할 정도로 책임감이 없진 않았다. 애초에 이곳에 오게 된 것도 제대로 의뢰라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니까.

기운의 중심으로 향한다. 오즈가 그곳에 발을 뻗자―― 쿵, 쿵! 하고 무언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강의 바닥에 잠들어있는 대지가 술렁이고 있다. 오즈가 자리에서 날아오르기 위해 마법을 외웠을 때는 이미 발목까지 물이 차 있었다. 비도 내리지 않았는데 강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오즈조차도 휩쓸어 쓸어내려 버릴 것 같은 기세로, 거대한 물줄기는 바닥을 훑으며 빠르게 이동했다. 그 물의 흐름은 사람들이 있는 마을을 향하고 있었다. 다른 방향으로도 영역을 확장하려 하는 것을 결계로 막아가며, 오즈는 그 물줄기를 쫓아갔다.


강이 범람하고 있었다.

요 며칠 지속된 비구름과 폭우는 단순한 계절상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차근차근, 자신의 세상을 늘리고 싶었던 마법생물은 오즈의 등장으로 영역확장을 방해받게 된 것이다.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의 등장에 숨을 죽이고 있을 테지만, 비를 내릴 수 없게 되자 초조해진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정면 돌파를 노리게 된 건가. 피가로가 오브를 꺼내 들었다. 땅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앞으로 수십 초 후면 비정상적으로 범람한 강이 마을을 집어삼킬 것이다.

오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당연하지만 대피는 불가능하다. 눈대중으로 얼만큼 속일 수 있을까? 어지간히 큰 마법이 아니면 마을 전체를 감쌀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라면 보호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집이나 마을은 재건하면 되고, 잠시 다른 마을로 피난하는 것도 방법이다. 여기서 연기를 그만두고 모두를 지킬 수도 있다.

신비한 사슴에게는 마을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런데. 휩쓸려 떨어지게 되면? 완벽하게 지키지 못한다던가, 가감에 실패해 방어막이 견디지 못했다던가, 낙오자가 생겼는데, 처치가 늦어지면 어떡하지? 또 전부 휩쓸려 사라지고 나면… 그러면……

―――아.

검은 깃털이 하나, 또.

피가로의 시선에서 흩날려 떨어진다.

까마귀는 마치 지면을 향해 도약하는 것처럼, 속도조차 줄이지 않고 강하한다. 앞으로 흩어질 흙먼지를 예견하듯이, 혹은 바닥에 떨어질 새를 걱정하듯,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눈을 감았다. 다시 뜬 순간 시야를 메운 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칠흑의 머리카락이었다.

“……너 같은 것이 침범해도 좋은 구역이 아니다. 주제를 알라.”

가장 신에 가까운 남자가, 붉은 보석이 박혀있는 지팡이를 높게 치켜든다. 피가로는 나설 필요도 없었다. 착하고 선량하고, 연약해서, 지켜줘야만 할 것 같은 남쪽의 피가로 선생님이 나설 차례는 없었다. 하지만 만일 여기에 서 있는 것이 북쪽의 피가로였을지라도, 나설 차례 같은 것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마왕 오즈는 죽이기로 마음먹은 사냥감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놓치지는 않는다.

복스노크, 하고 주문을 외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실로 경이로운 마법이었다. 물을 불로 태워버리고 있는, 자연의 이치를 벗어난 풍경. 그 장소에 있는 마법사, 심지어 평범한 사람조차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것은, 찰나의 시간을 살아가며 손에 꼽을 정도의 기적. 그 자체라는 것을.

마치 세상이 연기에 잡아먹힌 것 같이 주변을 감싼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남성이 대충 지팡이를 휙, 하고 휘두르자 거센 바람이 불어 저편으로 날아가 흩어졌다. 그 틈을 타 물의 형체는 오즈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은 마치 마지막 발악과도 같았지만, 돌아온 것은 무자비한 낙뢰였다.

남쪽 나라의 날씨는 멋대로 비가 내리고 후덥지근하지만, 그만한 위력의 낙뢰는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결코 자연에서 볼 수 없는 섬광.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아아, 이 마법사가 쏘아낸 것이구나.

그 힘을 이기지 못한 마법 생물은 폭발음을 내며 터지고, 이리저리 튀어 하나의 비가 되었다. 피가로는 정면을 향해 얇은 방어막을 깔았다. 주민들에게 그 물방울이 닿지 않도록 막은 것이다. 마법 생물이 둘렀던 물이니, 만일을 대비해서라도 닿지 않는 편이 좋았다.

지팡이를 사라지게 한 오즈는 나른한 듯 고개를 꾸벅 숙이며, 주문을 한 번 더 중얼거려 새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마나석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오즈는 피가로 머리를 둥지로라도 쓰는 것처럼, 몸을 웅크리고 누웠다. 아직 밤이 오기에는 멀었으니 마법을 쓴 탓에 졸린 것은 아니다. 그저 정말로 졸린 것뿐이고, 방금의 인지를 뛰어넘은 전투도 오즈에게 즐거움을 주지는 못했다는 뜻이었다. 피가로는 조금 쓴웃음을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확히는 머리 위 오즈를 바라보고 싶었던 것이지만, 제 머리 위에 앉아있는 것은 바라볼 방법이 없었다.

한숨을 내쉬고 뒤를 돌아본 피가로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이제, 남은 수습은 그의 몫이다. 피가로는 일단 질문 공세는 전부 나중으로 미룬 다음 마을의 재건에 전력을 다했다. 오즈가 때에 맞춰 마을은 지켜낼 수 있었지만, 강에서부터 마을까지 일직선으로 있던 길은 엉망이 되었다. 그건 마법사가 주문을 한 번 외우면 전부 해결될 일일지도 모르지만, 앞으로도 일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피가로는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난관을 헤쳐 나가는 혜안을 길렀으면 했다.

피가로는 그것을 위해 어울리지도 않는 육체노동을 살짝 거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 너무 무거워서 들 수 없었으므로, 그 부분은 살짜쿵 마법을 써서 가볍게 한 뒤 환자 케어에 집중했다. 오즈 덕분에 피해는 최소화되었지만 부상자가 한 명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즈는 새의 모습이 되어서도 착실히 피가로의 심부름을 해냈다. 하얀 천이 둘러진 그것은 마치 의사의 백의를 닮았고, 부리로 꽉 쥐고 있는 바구니 안에는 마법사의 슈가가 들어있다. 오즈는 자신에게 둘린 의사 가운(유사품)을 몇 번이고 벗어던지려고 했지만 피가로가 리본까지 묶어준 탓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부상으로 인해 누워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그 슈가를 나누어주며, 까마귀는 파닥파닥 날갯짓하고 있었다. ……라고는 해도 오즈의 슈가는 거기에 없다. 출발하기 전 무사히 돌아오라던가,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둥 어린 마법사들에게 걱정을 받으며 통 가득 받아온 슈가였다. 원래대로였다면 근육통의 해결책으로라도 사용할 예정이었는데. 하지만 그 아이들도 이런 식으로 사람을 돕는 데 쓰이는 것을 더 좋아할 거라며, 피가로는 미틸의 슈가를 딱 하나만 입에 넣었다.

남은 슈가는 마을 사람들에게도 나눠달라고 하자, 오즈는 제 발톱으로 바닥을 툭툭 치더니 마지못해 밖을 향해 날갯짓했다.

얼마 후, 슈가를 전부 나눠준 오즈는 다시 피가로의 곁으로 돌아왔다. 피가로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오즈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변신한 뒤, 옷장 안으로 숨어들어 갔다. 얼마 가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피가로의 방으로 들이닥쳤다. 피가로는 방패막이로 사용당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 정도로 사람들과 얽히고 싶지 않은 건가, 이 녀석은. 

마을 주민들은 아까 자신을 구해준― 그리고 슈가를 나눠주기까지 한 까마귀 마법사의 정체를 알고 싶어했다. 다른 나라였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풍경이다. 특히, 간접적인 형태일지라도 북쪽에서밖에 사람들을 돌보지 않은 오즈에게는 더더욱 생소한 풍경이었다. 오즈는 성 주변에 마을을 만든 사람들에게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오즈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쥐 죽은 듯 얌전히 지냈다. 먼저 얽혀오지 않는다면 주변에 무엇이 있어도 상관없다. 오즈는 그런 식으로 손을 놓고 누군가를 구하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남쪽은 다른 나라보다 마법사와 인간의 거리가 가깝고, 서로 돕고 살아가는 이미지가 강하다. 피가로도 마법으로 사람들을 도와주면 고맙습니다 세례를 받는다. 피가로는 솔직히 그것을 좋아하지만…… 오즈는 아마 아니겠지.

잠깐 사람들에게 던져줄까 싶더라도, 상당히 공기가 흐트러져있는 것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에 적당히 거짓말을 지어내 둘러대기로 했다. 사람들은 거듭 강조해 꼭 감사하다고 전해달라고 한 뒤에 피가로의 진료실을 떠났다.

모두가 떠난 뒤 조용해지고 난 다음 피가로가 옷장 문을 열었을 때, 아이의 모습을 한 오즈가 굴러떨어졌다.

“…….”

“……미리 말해두겠지만, 문에 기대고 있던 네가 나빴어.”

결국 오즈가 피가로를 째려보았다. 어느새 창문 밖은 어둑해져 있었고, 오즈는 결국 돌아갈 때를 놓친 채로 마법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래, 그래. 저녁이라도 챙겨 먹자.”

분위기를 환기하는 것처럼, 피가로가 넉살스럽게 말했다. 오즈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식사 준비에, 마법을 쓰지 못하는데 어리기까지 하는 오즈는 딱히 쓸모가 없었다. 팬케이크는 만들 수 있다지만, 그것도 그닥 쓸모있지는 않았다. 피가로는 오즈를 들어 올려 식탁에 앉힌 다음 요리를 하러 부엌으로 향했다. 불만 한 두마디는 내뱉고 싶었지만, 오즈는 입을 꾹 다물었다.

특별하지도, 별로이지도 않은 저녁 식사가 끝나고, 각자 씻으러 떠난 뒤, 오즈에게는 맞는 옷이 없는 탓에 마법으로 대충 걸칠 것을 만들어낸 다음, 창 밖을 살펴보면 해는 완전히 떨어져있었다. 지금부터는 밤의 영역으로, 피가로의 진료소 주변에도 급한 용무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다가오는 사람이 없다.

날이 밝으면 그립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피가로에게는 많은 거처가 있고, 한동안 남쪽 나라를 집으로 여기기도 했지만, 지금은 마법사 쪽이 훨씬 집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서 돌아가고 싶네, 그렇지, 오즈?”

오즈에게서, 당연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즈는 자신의 감정에 둔하다. 만일 오즈가 평범한 아이들처럼 감정이 풍부한 편이었다면, 진작에 마음이 무너져 끝을 맞이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이 세상을 길동무 삼아 눈밭으로 흩어졌을 것이다.

그러니 피가로는 오즈에게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그렇기에, 오즈에게서 대답이 돌아오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피가로가 말하면 언제나 오즈는 따르는 쪽이었다. 사소한 기호조차 피가로에게 의탁하고, 오즈는 그저 앞에 보이는 것만을 믿었다.

“…아아.”

돌아오지 않았어야 했을 것이 돌아왔다. 피가로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오즈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희미하지만, 확실하게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표정은 마치 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화이트가 스노우를 바라보는 것처럼, 파우스트가 알렉을 바라보는 것처럼, 누군가를 특별하게 여기는 표정이었다.

네게 감정을 느낄 정도의 무언가가 있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오즈는 쌍둥이의 ‘훈육’으로 반죽음을 당해도 눈물 한 번 흘리지 않던 괴물이었다. 감정을 닳는 것이라고 표현한다면, 오즈는 처음 만나기 전부터 풍파되어 뼈대조차 남지 않은 형태였을 것이다. 어쩌면 생명체로서 당연히 있어야 할 그것을 갖고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오즈가 세계를 불태우게 되고 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서순이었다. 피가로는 당연하다는 듯이 오즈와 손을 잡았다. 그래, 그때는, 세계의 인간들보다 오즈가 귀여웠던 것이다. 피가로의 해설을 진리로 여기고, 맹목적으로 따라오려던 모습이 귀여웠다.

세계정복을 시작하고, 오즈는 여전히 웃지는 않았어도 때때로 아무것도 아닌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당시의 오즈는 모든 것에 지쳐있었다. 본인은 귀찮았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피가로의 눈에 귀찮아하는 수준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깨달은 피가로는 종종 오즈를 보호했다. 하지만 오즈는 보호받는다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언제나, 피가로는 그럴싸한 핑계를 붙였다. 집중하는데 시끄럽게 굴어서, 새로운 마법의 시험을 위해, 아직 쌍둥이의 비호 아래에 있는 존재니까, 그곳은 내가 지키는 장소이고 그들은 침입자였으니까.

‘―――너 같은 것이 침범해도 좋은 구역이 아니다. 주제를 알라.’

“오즈. 너는……”

너무 많이 알고 지냈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가끔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낯설기도 했다.

허락 없이 그 땅에 서 있던 것은 오즈도 마찬가지였는데. 오즈는 자신이 비호받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으면서도, 피가로의 공격이 자신을 향할 가능성도 이해하지 못했다. 어째서, 대체, 어떻게 하면,

“……내가 너를 죽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야?”

오즈는 밤이 되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

강한 마법을 쓰지 못하는, 그야말로 남쪽의 마법사들과 맞먹는 존재가 된 오즈를 죽이는 것은 무척 쉬운 일이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약해졌다고 한들, 피가로는 여전히 북쪽 출신의 마법사다. 기묘한 상처의 영향을 받은 오즈 따위는 변변찮은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다. 그 사실을, 오즈는 이해하고 있을까?

붉은 눈동자는, 고요한 밤을 닮았다.

“피가로.”

피가로는 처음 오즈에게 이름으로 불렸던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오즈는 스노우와 화이트는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구별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인연이라는 것은 하등 의미가 없을 것이고, 오즈에게 있어서도 그 편이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피가로는 오즈와 아무리 시간을 보내도 처음 들었던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오즈를 처음 본 날, 그 순간, 지금이라면 죽일 수 있을 거라는 이성. 지금이 아니라면 미래영겁 오즈를 죽일 수 없게 될 거라는 본능.

그럼에도 오즈는 피가로의 이름을 불렀다. 그 때에는 무슨 생각을 했더라. 아마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오즈에게 ‘개별’의 생명체로 인식당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 그의 기억에 남는다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쫓아 죽일 수 있으니까. 그러니 오즈가 틈을 보이면 마법을 써 기억을 지우는 것도 고려했다.

……하지만 동시에 애틋함도 조금 들었던 것 같다. 평생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일 없던 순진무구한 괴물이, 처음으로 삶을 향해 걸음을 뻗은 순간이었다. 그것은 스노우와 화이트, 피가로가 이뤄낸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피가로는 작은 어린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 때 오즈가 어떤 심정으로 손을 뻗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걷는 것이 귀찮았을지도 모르고, 그저 틈을 만들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며, 안고 걸어가는 내내 목덜미를 내놓은 것 같은 섬뜩함을 느꼈지만――― 피가로는 마지막까지 오즈를 놓지 않았다. 아이의 눈동자는 어째서, 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업어달라는 거 아니었나.’

결국 오즈는 어떻게 대답했더라.

“…네 그런 점이, 가끔은 정말 싫기도 해.”

오즈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붉은 눈동자는 아무 감정이 담기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호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예전처럼.

그래, 예전처럼.

피가로는 예전이 좋았다. 쌍둥이 선생님은 제멋대로고, 횡포만 부리지만, 네가 좋아하니까― 따위의 이유로 선물을 주기도 했다.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선물을 받으면, 그것은 특별한 날이 되기도 했다. 복장이나 식기 등을 한가지로 통일하는 것은 쌍둥이의 변덕에 가까웠지만, 싫은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그것은 오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세트라며 목소리를 높혀 웃는 쌍둥이에게 시끄럽다며 일갈하지 않았고, 얌전히 식탁에 앉아있기도 했으니까.

이미 깨져버린 것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날이 밝아 모두의 곁으로 돌아가면, 이 인연은 없던 것이 되기도 하고, 가끔 명실상부한 진실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둘의 관계는 달라지지 않았다.

너무 간섭하지 않도록, 너무 알게 하지 않도록.

피가로는 언제나 그럴 생각이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이 확실해 보였지만, 피가로는 손을 뻗어 오즈의 눈을 가렸다. 품안의 어린아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고 자신하고 있었는데. 대체, 언제, 너는 고독에서 벗어나고 말았을까. 세계 절반을 불태우고도 얻지 못한 평온을 스스로 내던질만한 일을 겪고야 말았을까.

“잘자, 오즈. ……《폿시데오》”

이것은 분명 사랑은 아니다.

마법에 이기지 못하고, 오즈는 얌전히 잠들었다. 피가로는 손을 뻗어 자상한 손길로 오즈의 기다란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또 다시 몇백년의 시간이 흐르고, 설령 자신이 돌이 되어버린다고 한들, 그의 기다란 머리카락만큼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피가로가 믿는 절대불변은 이미 깨져버렸다. 고독이라는 개념도, 사랑이라는 개념도.

그러니 평생 그 마음을 알지 말아줘.

날이 밝아도,

우리는 모르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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