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에도 눈은 내린다
아서오즈
오즈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기억을 되짚어봐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분명… 현자와 중앙의 마법사가 함께 조사하러 왔을 것이다. 도착했을 때까지는 분명 모두가 함께였다. 하지만 리케는 신기한 것을 봤다며 혼자 떠나버렸고, 그 기세를 이어 카인은 현자의 손을 붙잡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붕괴성의 돌은 여러모로 귀찮아서, 사실 오즈도 이왕이면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현자의 마법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기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즈 님……”
아서가 오즈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작은 동물처럼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은 귀여웠지만, 이건 대부분 붕괴성의 돌에게 당한 것이다. 그래도 오즈는 아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오즈에게 아서는 아직도 품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어린 아이로 보였다. 그러니 아직도 밤이 두렵다고 하면 같은 침대에 누워, 모닥불을 바라보며, 안심하고 잠들 때까지 곁을 지켜줄 수 있었다.
동시에, 오즈는 알고 있었다. 바람에 휩쓸려 져버릴 것 같던 나비 같던 소년은 없다. 지금의 아서는, 매조차도 두려워 피할 것 같은 폭풍에 모두를 위해 뛰어드는 왕자였다. 옛날과 똑같이 발코니에서 힘차게 걸음을 내딛는 아이.
그렇게 내 품에서 떠나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떠나버리는――
“오즈 님, 오즈 님.”
재촉하는 것처럼 다시 이름을 불리자, 오즈는 우선 생각하던 것을 멈추었다. 안 그래도 아서의 말은 따라잡기가 힘들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가는 대체로 마지막 한마디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듣고 있다.”
오즈는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금방 달라붙어 품으로 비집어 들어오는 아서를 바라보았다.
“오즈님, 저 눈사람을 만들고 싶어요!”
어릴 때의 아서가 눈사람이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된 날, 하루종일 자기도 만들어보고 싶다고 조르기도 했다.
근처에 있는 마을에 보았다고 하는 그것은, 눈을 둥글게 뭉쳐 나뭇가지로 팔을 만들어 노는 것이라고 했다. 북쪽의 겨울은 동사하는 사람이 나올 정도로 춥다. 오즈는 봄이나 여름이 오면 하자고 다독였지만, 아서는 꼭 지금 만들어보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 오즈는 하는 수 없이 아서에게 겉옷을 꽁꽁 입힌 다음, 약간의 보호 마법도 걸어주고, 곁에서 계속 바라본다는 조건으로 놀이시간을 얻어냈다.
뭐든 마법으로 만들면 좋았을 텐데, 아서는 굳이 장갑을 낀 손으로 눈을 뭉쳐 그것을 굴리려고 했다. 비효율의 극치였지만, 아서가 즐겁게 웃음소리를 내고 있어서, 오즈는 아무런 말도 못했다. 아서가 손이 닿지 않는다고 하기에, 오즈가 눈덩이를 위에 올려주었다.
어째서인지 오즈는 그날 품에 안았던 거대한 눈덩이의 온도를 기억하고 있다. 지겨울 정도로 봐왔던, 그저 차가울 뿐인 의미 없는 덩어리. 하지만 그날의 그것은 약간의 따스함이 느껴졌다.
지금도 과연 똑같은 기분이 들까? 오즈가 꾸물거리다 결국 마도구를 꺼내 들었다. 복스노크, 하고 평소보다 힘이 없는 주문이 튀어나왔다.
구름은 불온하게 꾸물꾸물 모여들어, 유적 위에 눈송이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척 봐도 상당한 양이 내리고 있는데, 아서는 즐겁기만 한지 하늘로 손을 뻗었다.
잔디밭 위에 하얀 눈가루가 덮인다. 오즈는 돌바닥 위에 누운 채로 머리카락에 눈이 쌓이는 것도 내버려 두고 눈을 감았다. 아서의 신난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와서, 오즈는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되었다. 아서의 행동 범위를 제한하는 게 아니라, 잘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런 조언을 받은 오즈는, 피곤해서 눈을 감더라도 주변의 소리를 귀로 주워 담아 아서가 무엇을 하는지 파악하게 되었다. 뽀드득하고 눈을 밟는 소리, 앗 차가워- 하고 눈을 만지는 소리, 재미있는 것을(주로 사고가 되기도 한다) 할 때 들려오는 웃음소리.
아무리 많은 밤이 지나도 이어질 거라 믿었던 평화로운 시간들. 오즈는 차가운 눈을 맞으며 간신히 권태감에서 깨어났다. 몸은 여전히 게을렀지만 정신은 조금 맑아져 있었다.
오즈는 마왕의 성을 벗어난 소년이 어디로 갔는지 기억하고 있다. 아서는 이후에도 일정이 있고, 요 며칠 마법사에 들르지 못할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조사를 핑계로, 어느 정도 기분 전환 삼아 함께 조사를 온 것이다. 된다면 은근슬쩍 아서를 잠들게 하자는 계획도 있었는데. 아서가 노느라 지쳐버려 무리라도 하게 되면 본말전도다.
“아서, 이쪽으로.”
오즈가 자신이 누워있던 바로 옆자리의 눈을 털어주었다. 신나서 눈을 뭉치던 아서는 오즈의 부름에 쫄래쫄래 다가가 곁에 앉았다.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품에 가두는 편이 낫겠다. 오즈는 아서가 딱딱한 돌에 머리를 눕히지 않아도 되도록, 자신의 팔을 뻗었다.
“……좀 더 가까이 와라.”
아서가 갑자기 눈사람을 만들고 싶다고 한 것도, 아마, 쉬고 싶다는 생각에 어린 시절을 떠올려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 예전처럼 함께 누우면 되겠지. 아서는 조금 망설이다가 오즈의 팔베개를 받으며 곁에 누웠다. 펑펑 내리던 눈은 어느새인가 거의 멎어가고 있었다.
아서가 곁에 누워있는 오즈를 바라보았다. 칠흑 같은 오즈의 머리카락에 하얀 눈송이가 내려앉는다. 오즈는 눈을 감고 조용히 숨을 내뱉고 있었다. 그것이 조금도 방해되지 않는 것처럼, 오히려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아서는 그것이 조금 부럽고, 질투가 나서, 손을 뻗었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보물을 만지는 것처럼. 아서는 조심스럽게 오즈의 얼굴에 닿았다.
붉은 눈동자가 천천히 뜨인다. 아서는 웃음소리를 냈다. 문득, 사랑스러운 분에 대한 감정을 참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쪽, 하고 입을 맞추는 소리가 난다. 오즈의 차가운 볼에 따뜻한 입술이 닿았다. 간지러운 느낌에 오즈가 팔을 들어 아서를 붙잡았다. 그대로 살짝 눌러 밀어내려고 했지만, 아서는 아랑곳 않고 더 가까이 몸을 밀어붙였다.
“읏, 아서……”
몇 번이고 입을 맞추는 소리가 난다.
“후후… 오즈 님.”
아서의 푸른 눈동자는 언제나 차분하고 고요한 바다와도 같았는데, 어쩐지 지금은, 모든 것을 휩쓸어버릴 것 같은 정열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오즈는 그 시야에서 도망가는 것처럼 몸을 뒤척였다. 하지만 아서는 뒤척여 흘러내린 오즈의 머리카락도 다시 조심스럽게 넘기고서는 입을 맞추었다.
아…… 도망갈 수 없다.
오즈는 뒤늦게라도 기다리라며 아서를 말리려고 했지만, 말을 내뱉을 수는 없었다. 간지럽히는 것처럼, 애태우는 것처럼, 참고 기다리는 것처럼… 얕았던 아서의 입맞춤은 마지막으로 입술에 닿았다. 이건 전부 붕괴성의 돌 때문이다. 한참을 이어진 입맞춤은 열기에 눈이 전부 녹아내리고 나서야 끝을 맺었다. 방금 보았던 눈에 기뻐하는 어린아이는 전부 눈이 보여준 환상이었던 것처럼. 오즈 님, 하고 재차 이름을 불리자 오즈는 다시 눈을 감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눈은 그쳤지만, 맑은 날은 아직도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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