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약속

가까운 곳에서

알렉과 레녹스

알렉 그랑벨과 레녹스

리퀘 받았습니다!


“레녹스, 포옹할까?”

그것은 언제나와 똑같은, 혁명의 어느 날… 하지만 파우스트가 부상자의 구호에 나서 알렉과 단 둘이 남겨진— 레녹스에게 있어서 특별한 날의 일이었다.

최소한의 처치를 마친 알렉은, 파우스트를 더 급한 환자에게 가라며 내쫓듯 밖으로 나가게 했다. 마찬가지로 부상을 입어 구호반을 도와주기는 어려운 신세에 처한 레녹스가 최소한의 감시를 자처해서 알렉의 천막에 남았다. 알렉 님은 금방 무리해서, 모두에게 제 무사를 알리기 위해 부상을 입고도 나가버리시니까…… 레녹스는 그런 조금 옛날의 일을 떠올렸다. 적의 계략에 걸려 모두 큰 상처를 입었을 때, 제일 앞에서 그것을 타파하고 몸을 내던졌던 알렉의 모습을. 피를 흘리면서도 승리한 뒤 하늘로 주먹을 내질렀던 그의 모습을.

알렉은 읏차, 하며 침대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용맹하던 그는, 어디로 갔을까? 죽음의 공포도 모르고 그저 앞을 향해 나아가기만 하려던 그는… 어디로 갔을까? 보검을 손에 쥐고 세계가 바뀔 때라고 외치던, 알렉 그랑벨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알렉의 몸이 휘청거리자 레녹스는 다급하게 그를 받아들었다. 알렉이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로 괜찮아, 괜찮아, 하며 바로 앉았다. 알렉은 괜찮다고 했지만 레녹스는 그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가까이 와.”

레녹스는 알렉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새하얀 옷을 입은 그가 오늘따라 유독 작아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알렉은 상체를 숙여 레녹스를 향해 팔을 뻗었다.

“한쪽 팔이 없으면, 너를 꼭 안아줄 수 없어 불편하구나……”

레녹스는 단지 생각했다. 이분은, 이분도, 그저, 파우스트 님과 같이 평범한 청년일 뿐이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그렇다. 대의에 몸을 던졌을 뿐, 이상적인 세계를 위해 뛰어들었을 뿐, 누구나 죽음은 두렵다.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것은 두렵다…… 떨리고 있는 알렉의 팔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레녹스는 분수를 아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강한 힘 따위를 원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 이 상태에서 만족하고, 정진하여, 갈고닦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 이 순간처럼 자신이 약한 마법사인 것을 괴롭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만일… 정말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이, 나에게도 있었다면—

“우와, 울어!? 아니… 울지 마, 레녹스. 정말인지. 너희는 주종이 너무 닮았다니까.”

널 울리면 파우스트한테 혼나, 라며 알렉은 레녹스를 토닥여주었다. 하지만 한 번 쏟아진 눈물이 멎을 일은 없었다. 소리를 죽이고, 레녹스는 그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레녹스……”

살아있으면, 된 거야.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알렉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쪽 팔로 레녹스를 꽉 끌어안았다. 그것은 확실히 레녹스에게 해주는 말이었지만… 동시에 알렉 자신에게 들려주는 것 같기도 했다. 레녹스는 차마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고, 곤란한 듯 시선을 헤엄친 끝에, 알렉의 힘이 빠져나갈 때쯤 자신 쪽에서 그를 꽉 끌어안았다. 마법사는 죽으면 돌이 된다고 한다. 알렉이 파스스 깨져 돌이 되어버릴 일은 없다. 하지만, 레녹스는 그 어느 때보다… 그가 돌이 되어 깨져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빈사의 파우스트를 보았을 때도 이렇게까지 두려운 적이 없었다.

얼마 가지 않아, 레녹스는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정말로 새삼스러우나— 레녹스는 그 순간 알렉의 인간다움을 찾아낸 것이었다. 둘은 그날 서로의 인간다움을 공유했다. 소꿉친구도, 주인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공유를. 그래서 레녹스는 그 누구보다 알렉의 ‘인간다움’을 믿는다. 완전무결한, 위대한 영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날 알렉의 몸이 떨리고 있던 것도, 그 품의 따스함도 전부 기억하고 있다. 레녹스는 열쇠를 꽉 쥐고 감옥을 향해 달려갔다. 레녹스는, 파우스트보다 더, 알렉의 인간다움을 믿었다.

그렇게 화형대에 불이 붙었다.

그렇게 수백 년을 지새웠다.

“아서 님은 작으시군요.”

그날 본 작은 소년을 기억하고 있다. 헝클어진 하얀 머리카락을 하고, 깊은 바다 같은 푸른 눈을 한 소년을.

사실 우리에게는 이상한 힘이 주어졌을 뿐이지, 인간과 별 다를 바는 없는 게 아닐까? 도무지 마법이 기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이 힘을 기적이라고 부른다면, 기적만 가지고는 평화를 불러올 수 없었던 것이 되어버린다. 기적이라는 것을 가지고도 그의 인간다움을 구해내지 못했던 것이 되어버린다.

“…아서는 열 일곱이니까.”

파우스트는 먼 곳을 회상하는 것처럼, 고요한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레녹스는 조금 더 가까운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우스트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을, 아주, 아주 가까운 곳.

잡아당기면 안을 수 있는 그 가까운 거리,

그날의 작은 그를,

레녹스는 지금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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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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