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기영] 소유하다

2019년도 회사설 동양풍 합작

회사설 by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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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하나 정도 올려 놔야 될 것 같아서 올려놓은 것+너무 예전 글이라 구립니다~~

1.

“왕자 저하. 바람이 차갑습니다. 인제 그만 처소에 드시지요.”

 

궁궐 안 동궁 근처에 있는 작은 정원에 있는 자신의 주인을 모시기 위해 낸 시종의 작은 목소리에 자신의 눈앞에 있는 잘생긴 인물이 인상을 구기자 이기영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며 동의하는 말을 내뱉었다.

 

그래. 이제 나도 집에 가서 쉴래.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이기영은 천천히 왕자를 처소까지 모셔다드리고 얼른 집으로 향하는 가마 안에 몸을 실었다. 기껏 뇌물을 바쳐서 궁 안에 들어왔는데 결국 왕자의 선생 노릇이나 하라고 해서 기겁을 했었는데 일이 이렇게 잘 풀리게 되었으니.

 

이제 앉아서 부귀영화나 누려야지! 푸헤헷!

 

청렴하다고 소문이 가득 퍼지라고 외관은 더 없이 수수하지만 안은 비싸고 푹신한 방석이 안락함을 선사하고 있는 가마 안에서 이기영은 절로 그려지는 행복한 미래에 실없이 웃음을 짓고 말았다.

 

처음 김현성이라는 2 왕자를 만났을 때는 그저 눈앞이 깜깜했다. 뇌물로 본 시험이라 선생질을 할 실력도 아니었고 검술은 뛰어나나 자기 혼자 이상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어서 책에 나온 군자의 덕이나 신하나 백성들이 이상적인 역할을 다 하는 세상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래도 훈련에 방해가 된다고 올려묶은 검은 머리칼, 누가 봐도 잘생겼다고 칭할 얼굴, 잘 여며 묶은 도포가 몹시 잘 어울려 기분이 약간 풀어지는 것을 느끼며 이기영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지식수준을 알게 된다면 아마 궁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데 이미 들어간 뇌물이 아까워서 그 일만큼은 꼭 막아야 했다. 

 

그래서 이기영은 김현성을 현실로 끌어내리기로 마음먹었다.

 

세상은 아름다운 것만으로 가득차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상은 하늘에 뜨는 무지개와 같아서 보기에는 더없이 좋으나 현실은 손에 잡히는 것이라 한번 손안에 쥐면 욕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그렇게 이기영은 왕자를 조금씩 물들여 저에게 껌뻑 넘어가게 되면 그걸 이용해서 한탕하고 옆나라로 도망가버릴 계획을 짰다.

 

“저하. 저하께서는 이미 검술에도 능통하시고 서책을 통달하셔 저는 다른 것을 알려드리고싶은데. 어떠십니까?”

“저는 무엇을 배우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뭐든 배움이라면 가리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제가 이상한거 알려주면 어쩌려고요….

 

자신에게 적당히 거리를 두며 상석에 앉아 살며시 웃고 있는 2왕자를 보며 괜히 오기가 들어 자신과 또 왕의 자리에 앉으면 왕자도 좋을 테니까라고 생각하며 이기영은 속으로 각오를 다졌다.

 

내가 꼭 곤룡포 입혀드릴 테니까 꼭 금은보화 내려주기에요. 알았죠?

 

그리고 이기영은 저잣거리를 조각조각 왕자에게 물어다주었다. 

 

“…그래서 제가 가만히 있지 않고…”

“저하. 제가 저잣거리에서 주전부리를 하나 사왔습니다.”

“…모함을 당한 자가 너무 억울하여서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오늘 장이 서서 길가에 옆 나라에서 온 물건들이 잔뜩 있는데 검이 있었습니다. 저하에게 선물하면 좋을 것 같았지만 제가 검을 잘 몰라서요”

“…뒤뜰에 배나무가 있는 처녀가 개울가에 사는 도령에게 첫눈에 반해서…”

“이걸로 인형극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혹시 이런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래서 수염을 살살 만지며 늙은이가 능글맞게 입을 여는데…”

“저하. 내일 장이 서는데 혹시 원하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저하. 그래서 …”

“저하 이것을…”

 

저하. 저하. 저하.

 

2.

처음 맛보는 현실이 너무 휘향찬란했다. 처음 보고 또 처음 맛을 보는 단 음식에 혀가 아렸고 선물 받은 인형은 허술하게 만들어졌지만 움직이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가 즐거웠다. 슬펐다. 행복했고, 또 화가 났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중 제일 좋았던 것은 이기영이라는 자신의 선생님으로 온 사내였다.

 

붉은 동백꽃 같은 입술이 움직이며 말을 하다가 제 반응을 기다릴 때 살짝 벌어지는 것이 고왔고, 푸른 색 옷자락이 나풀거릴 때 그 안에 있는 하얀 손이 춥다는 듯이 제 팔을 쓸어내리면 피부에 분홍빛 자국이 남아 시선을 끌었다. 옷깃 안으로 살며시 보이는 목선은 시선이 닿을 때마다 괜히 뭔가 잘못한 것처럼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자꾸 저하라고 부르면서 제 시선을 채가고,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되고, 품 안에 선물을 가져와 안겨주는 것이 퍽 마음에 들어서인지. 항상 말해주는 이야기에 포함되고 싶어서인지 무심코 입을 열어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예?”

 

앞에 앉아 오늘도 궁밖의 이야기를 해주던 사내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표정을 하며 놀라는 모습에 더욱 힘을 주어 말을 이었다.

 

“이번에 장이 설 때 같이 가고 싶습니다.”

 

약간의 침묵 끝에 나온 좋습니다. 그럼 내일 같이 갈까요? 라는 말에 행복해서 환하게 웃으며 바로몰래 빠져나가 입을 만한 옷을 구해놓으라고 명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그날 하루가 지나 밤이 되었는데도 기대감에 잠이 들 수가 없어서 잠시 검을 챙겨 처소를 빠져나와 수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3.

2 왕자의 마음에 들어야한다는 압박감에 원래 하던 일이 밀려 밤이 다 되었을 때까지 궁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내일 일찍 일어나야 왕자를 데리고 시장구경을 할텐데. 이번일이 잘되면 확실히 잘보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사람을 풀어 좀 즐거운 분위기의 시장을 보여주고 싶었다. 안좋은 꼴을 보고 환멸을 느껴버리면 죽도 밥도 안될 테니까.

 

일이 얼추 끝나자 대충 자리를 정리해두고 퇴청을 하던 와중에 바쁘게 움직이는 2왕자의 전담 시종들이 보여 집에 가는 것을 미루고 따라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 하나, 연못에 반사된 보름달 하나, 칼날에 비친 보름달 하나.

칼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 발이 지면을 딛는 소리,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살갗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땀방울, 얕게 공기에 흩어지는 숨결

검 끝을 바라보고 있는 눈동자가 새로워서, 체온이 올라가서인지 벗고 있는 상체가 감탄스러워서

 

무언가가 마음에 살며시 들어와서.

 

“크흠.”

“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다가 자신을 발견한 왕자가 헛기침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시종이 들고 있는 천을 뺏어 들었다.

 

“고뿔이라도 걸리시면 내일 못 나가실 텐데. 어찌 나와계셨습니까.”

 

자신도 모르게 책망하는 투로 말이 나간다. 투정하는 말투인가? 걱정하는 말투인가? 뱉고 나니 다시 알 수 있는 길도 없었다. 그저 입을 꼭 다물고 천으로 아까까지 검을 쥐고 있던 손을 닦아주고는 한걸음 물러났다.

 

“저는 몸이 튼튼하니까……”

 

당황하면서 변명을 하는 왕자의 모습이 조금 만족스러워 다시 부드러워진 말들로 왕자를 처소로 보내고 자신도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결국 얼마 자지 못해서 피곤한 상태로 노비들을 재촉해 겨우 제시간에 도착해 발걸음을 재촉해 왕자 궁으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자신을 향해 웃음 짓는 왕자의 짙은 회색빛 두루마기가 입은 사람과 잘 어울려 왜인지 피곤함이 조금 가시는 듯했다.

 

“준비되셨습니까?”

“네. 어제는 제가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린 것 같습니다.”

 

어제? 우리 왕자저하 완전 멋있었는데!

 

“아닙니다. 저도 잠이 잘 오지 않았는걸요”

 

소매로 입을 가리고 살포시 웃으며 왕자를 이끌어 미리 알아둔 작은 쪽문으로 궁궐을 몰래 빠져나왔다. 찬찬히 골목을 걸으며 조금씩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저하라는 것이 알려지면 안될 것 같은데……도련님이라고 부르며 말을 조금 편하게 해도 될런지요?”

“그럼 저는 형님이라고 부르면 되겠네요. 좋습니다.”

 

그렇게 빠르게 호칭 정리를 하고 사람들이 가득한 물론 반절은 자신이 심어놓은 사람들이지만, 거리로 나섰다.

 

4.

“형님. 이것은 어떠십니까?”

“형님. 이 붓은 털이 참 고급스럽습니다.”

 

처음 구경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중에서 제일 흐드러지던 것은 서로를 놓치면 못 찾을 수도 있다고 제 옷자락을 꼭 붙잡고 있는 기영 형님이었다. 자꾸 웃어주고 받아주니까 계속 어리광을 피우게되었다.

 

“아. 도련님. 저기 제가 저번에 말했던 검을 파는 곳이네요.”

 

어디서 이런 사람이 나타났을까. 

 

“그럼 가볼까요? 감사선물을 하고 싶었는데.”

 

꼭 좋은 검을 골라주겠다는 각오를 하며 검들이 늘어져있는 가판대에 다가가서 검을 하나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좋은 검들이 많아 꼼꼼하게 비교해보고 얇은 금색 문양이 새겨진 호신용으로 쓸만한 단검을 사서 선물했다.

 

“검을 잘 다루지는 못하지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받았다는 듯 기뻐 보이는 표정이 좋아서 또 선물할만한 것들을 찾아 주변을 열심히 두리번거리는 와중에 보석들을 파는 가판대가 보여 얼른 그쪽으로 다가갔다. 갓끈 중에 제일 어울릴만한 보석이 달린 것을 골라 아직도 단검을 살펴보고 있는 기영 형님에게 안겨주었다.

 

“이것도요?”

“제가 얼마나 받은 게 많은데요. 꼭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세 번씩이나 거절하고 나서야 선물을 받아드시는데 어찌나 사려 깊으신지. 계속 이것저것 사소한 것들을 더 선물해드리자 점점 거절하지 않고 받아주시더니 소매를 잡고 있던 것을 놓아버리고 선물들을 품에 넣고 놓질 않아 조금 섭섭해질 뻔하기까지 했다.

 

주전부리를 조금씩 사서 먹고 봄꽃을 구경하다 잠시 쉬기 위해 조금 인적이 드문 곳에 있는 평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둘이서 달콤한 것을 각자 입에 물고 있느라 잠시 침묵이 있었지만 어색하지 않아 더 친밀해진 것 같아 기껍기 그지없었다.

 

“오늘 즐거우셨습니까? 저하?”

“예. 감사합니다. 정말. 즐거웠습니다.”

 

시간이 야속하게 빨리 지나가 벌써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조금만. 조금만 있다가 돌아가요. 노을이 이렇게나 아름답지 않습니까”

“음……그 정도는 괜찮을 듯합니다. 그래도 밤이 되기 전에는 돌아가도록 하죠.”

“예. 좋습니다.”

 

5.

너무 많이 돌아다녔다.

무인이라 체력이 무한한 듯한 왕자는 저를 끌고 전국팔도를 다 돌 열정으로 마을을 돌아다녔다.

선물을 사주는 건 기뻤지만 점점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너무 많이 돌아다녀 힘들었다.

 

그래서 노을이고 나발이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친목을 도모하던 와중 깜빡 잠에 들어버렸다.

 

 

쪽? 쪽…? 왜 쪽 소리가 났지? 쪽? 입맞출 때 그 쪽?

 

당황스러운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진 않고 다시 빠르게 눈을 감았다. 머리가 미친 듯이 돌아간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야. 나 지금 뽀뽀당한 거야?

 

혼란스러웠던 건 잠시 왕자에게 버림 받는 방향은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아서 기쁨에 하고 싶은 거 다하라고 다시 눈을 감아주었다.

 

딱히 그 뒤에 무언가 더 하려는 것 같지는 않아 해가 거의 다 졌을 때 막 일어난 것처럼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으으음-”

 

그리고 불경함을 대충 사과하고 다시 왕궁으로 데려다주며 같이 겪은 일인데 혼자 겪은 일처럼 오늘 일을 다시 말해주는 왕자의 말을 열심히 듣는 척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주었다.

 

이제 계획의 다음 단계에 돌입하기에 적당한 시간이 된 것 같아서 점점 왕자의 처소에 가던 횟수를 줄여나갔다. 그리고 자신이 세자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확신하는 1 왕자와 만남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언제 다시 오실 건지……”

“제가 요즘 일이 많아져서요. 죄송합니다. 저하.”

 

처음 먹어보는 간식을 빼앗긴 강아지같이 잔뜩 시무룩해져 있는 모습에 마음이 약해질뻔 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은 왕위를 원하는, 권력을 원하는 2 왕자였기에 겨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네……”

 

너무 아쉬워하는 모습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라고 약간의 도움을 주려고 작게 한숨을 쉬며 중얼거리고는 바로 자리를 떠나버렸다.

 

“1 왕자가 자꾸 불러서 올 수가……”

 

끝말을 흐지부지 마무리하고는 바로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자 어두운 표정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자신이 자리를 피한 방향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도통 움직이질 않았다. 완벽했다.

 

1 왕자와 2 왕자의 사이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1 왕자와 2 왕자의 자질을 비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1 왕자의 편에서 2 왕자의 편으로 돌아서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래서 누군가 위기감을 느낀 걸까. 조금씩 조련을 하는 날이 이어지던 와중 퇴청을 하다가 눈을 떠보니 태어나서 처음 보는 곳이었다.

 

뭐야. 여기 어디야. 너무 나댔나?

 

6.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사람이 사라졌다. 형님에게 붙여놓은 시종이 허겁지겁 달려와 괴한이 달려들었다고 하자마자 쫓아가려 했지만 그사이 이미 일이 끝난 건지 주변은 깨끗하고 아무런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안돼…안돼!”

 

손에서 빠져나갈 것만 같아서 더 곁에 두고싶어서 기틀을 마련하려고했고 자리를 잡았더니 그 이유가 감쪽같이 사라져? 이건 절대 안될 말이었다.

 

“오늘 왕과 1왕자를 죽일겁니다.”

“하지만 사병들이 아직 모이지 않아서 인원이 부족합니다!“

“혼자. 나 혼자 할 테니 뒷수습할 준비나 해놓고 있어요.”

 

항상 착하고 순하기만 했던 2왕자의 모습이 화가 나 붉어진 듯한 눈동자와 거칠어진 말투로 바뀌자 모두가 그저 입을 다물고 천지신명에게 기도를 올릴 뿐이었다.

 

이 나라를 샅샅이 뒤지려면 군사가 필요했다. 몇몇 귀족들의 사병으로는 숫자도 부족하고 남들의 집을 뒤질 수도 없었다. 기영 형님은 지금 얼마나. 얼마나 괴로우실까. 마음이 쓰려와 저번에 장터에 같이 갔을 때 산 뒤로 절대 옆에서 떼어놓지 않은 검을 꽉 쥐었다.

 

그리고 그날 밤. 왕궁을 지키던 병력들이 하나하나 죽어나갔다.

 

보름달이 아름다운 밤이었다.

 

7.

원래 입이 짧은 편이기도 했고 시간이 지나자 배고픔도 무디어져서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상상만 하고 있었을 때 밖에서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쪽을 뒤져라!”

“옙!”

 

기회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가고보자는 마음에 미친 듯이 몸을 움직여보였다.

 

“여기 안에서 인기척이 들립니다!”

“도끼! 도끼를 가져와!”

 

됐다! 나가자!

 

문이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와 몸을 일으켜 주었다.

 

“성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이기영이라고 합니다.”

“찾았습니다!”

“여기 물이랑 미음을 가져와!”

 

이것저것 주는 것을 받아먹고 옷도 조금 멀끔한 것으로 갈아입혀 주어서 감사 인사를 하고 일단 집에 가려 했는데 군인들이 제 앞길을 막고 막무가내로 가마에 자신을 밀어 넣었다.

 

집에 좀 가자…… 집에 갈래……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좀 알고 가고 싶었는데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고 반항하면 아플 것 같아서 그냥 얌전히 실어다 주는 것을 수용하고 말았다.

 

가마가 멈추고 누군가가 문을 열어주어 밖으로 나와보자 왕궁 가장 중심이었다.

 

뭐야. 나 2 왕자 편만 들었지 반역은 준비한 적 없는데? 나 죽어? 아니 나 진짜 억울한데?

 

주춤하는 걸음걸이를 눈치챈 군인들의 눈빛에 잠시 시선을 그들의 허리춤에 찬 검에 두었다가 결국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검에 확정으로 베이는 것보다는 말로 설득이라도 해보자. 싶어 궁 안에 들어가자 친근한 얼굴이 왕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에 앉아있었다.

 

“왕자 저하……?”

“드디어!”

 

마주 보고 있는 얼굴은 친근한데 이 공간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시체가 몇 구 남아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피 웅덩이가 보였다.

 

세자의 자리에 올려 평화롭게 왕위를 잇게 하려고 했더니 그사이를 못 참고 반역을 저지른 모양새에 머리가 아찔해 잠시 몸을 휘청이자 왕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저하. 가까이 다가오지 마십시오.”

 

말이 끝나자마자 사형선고라도 받은 듯 굳어지는 얼굴에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무섭습니다.”

 

버릇을 고쳐야한다. 툭하면 칼을 빼드는 왕 옆은 무서우니까! 종이에 베여도 아픈데 칼은 얼마나 더 아플까.

 

“기영…..”

“2왕자 저하. 아니. 이제 폐하라고 불러야겠군요.”

“무섭다니…접니다…저에요……”

 

세상이 무너진 표정이 이어진다. 안돼. 넘어가면 절대 안된다.

 

“폐하. 진심입니다.가까이오지 말아주십시오”

“당신이 금은보화를 가질 수 있게 하겠습니다.”

 

한발자국, 그가 다가오는 것을 허용했다.

 

“이 나라에 있는 관직 중 가장 높은 곳에 당신을 앉혀드리겠습니다.”

 

한발자국, 그가 다가오는 것을 허용했다.

 

“저로 인해 당신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당신에게 구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무인들을 호위로 붙여드리겠습니다”

 

한발자국, 그가 다가오는 것을 허용했다.

 

“제가 이 나라를 드리겠습니다.”

 

그것으로는 조금 부족해서 다가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것이 부족하다면 제가 이 나라를 넓혀 옆나라까지. 황제의 자리에 올라 좋은 것들을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한발자국, 그가 다가오는 것을 허용했다.

 

“당신에게. 저를, 저 자신을 드리겠습니다.”

 

두발자국, 그가 다가오는 것을 허용했다. 이제는 그와 왕의 거리는 꽤나 가까워져있었다. 

 

“폐하. 그 말을 제가 어찌 믿겠습니까?”

 

눈 앞에 있는 붉은 곤룡포가 점점 더 어두워지는 피에 물들어간다. 하얀 버선이 피를 머금어 붉어지기 시작했고 장도가 바닥에 굴려진다. 그리고 제 앞에 찰박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은 왕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버릇은 확실히 고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그에게 선물 받았던 호신용 단도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저를 지키라고 이것을 선물해주셨지요. 제가 지금 폐하가 두려우니 그것을 두 손으로 주워들어 저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를 찔러주시면 조금 믿음이 갈 듯 싶습니다.”

 

피가 얕게 튀어 입고 있던 새하얀 두루마기에 붉은 방울 자국이 생겼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말이 끝나자마자 허겁지겁 피구덩이에 떨어진 단검을 집어 드는 왕의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을 뿐. 자신의 특별한 사람이 되어달라고 칼을 자신에게 정말로 휘두르는 모습에 칼을 잡은 손 위에 손을 올려 막아주고는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잘하셨습니다. 폐하.”

 

■■■이 ■■■을 완전히 소유하게 되는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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