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마

4대와 광견과 기념일과

ㆍ키류마지 ㆍ4대if ㆍ마스토돈 로그

달칵, 거실에 불이 들어왔다.

"실례하겠습니데이~"

양복 상의를 벗어들고, 한 손에 하얀 상자를 든 마지마가 들어섰다. 홀로 지내는 LDK의 작은 거실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것을 보고 마지마는 작게 한숨을 푹 쉬었다. 빈 맥주캔과 안주 봉다리가 없는 걸 봐서, 최근에는 거의 집에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며칠 전에 자신이 치워놓고 간 모습 그대로였다.

"카즈마?"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목소리를 높여보며, 마지마는 식탁에 흰 상자를 내려놓았다. 집에 돌아갔다는 보고는 받았는데. 주위를 둘러보며, 마지마는 넥타이를 끌러내렸다. 길이 엇갈린건가.

"카즈마"

막연하게, 거실 언저리에 시선을 둔 채 모퉁이를 돌려고 했을 때였다.

"왁!"

"와악!"

확, 하고 튀어나오는 시커먼 그림자에 놀라 재빨리 단도가 있는 허리춤에 손을 넣으며 펄쩍 뛰어올랐다.

"잠깐 기다려, 나야!"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

"키류고?"

그제서야 마지마는 상대방이 누군지 깨달았다.

"아니, 당신이 그렇게 감쪽같이 속을 줄은 몰랐지..."

그쪽도 막 집에 돌아온 참인지, 셔츠 한 장에 양복바지 차림을 한 키류가 멋적게 웃고 있었다.

"니 글마 내 놀래킬라꼬 지금까지 여서 숨참고 기댕기고 있었던기고? 바보고? 바보제, 참..."

"바보 아니야. 한 번 해 보고 싶어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지마는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이 집은 일협련이 감시중이었다. 수상한 놈이 드나들었으면 바로 연락이 왔을 터였다.

"내도 참, 바보고..."

"왜, 무슨 일이야. 형님"

"아무것도 아이다. 하아따, 놀라가 손해만 봐쌌네..."

투덜거리는 형님을 보던 시선이 문득, 흰 상자로 옮겨갔다.

"케이크?"

그 말에, 마지마도 생각났다는 듯이 뒤를 돌아보았다.

"아아, 마, 그거데이. 적당한 선물이 생각 안 나가"

"오늘이 무슨 날이던가?"

신기한 듯이 물어오는 동생에게, 마지마는 쓴웃음을 지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100일. 니캉 내캉 이래돼가"

"아"

그 말을 들은 순간, 키류는 머리가 띵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벌써 그렇게 되었던가? 그러고보니 그랬다. 형님은 무심한 것 같으면서도 이런 행사는 꼬박꼬박 지키는 사람이었다. 사귀게 되고 나서 항상 날짜를 체크하고 있었던 건가.

"이런, 나는..."

"되얐다. 이런 건 차피 자기만족이라 안하드나"

"니한테 그런 건 기대도 안한다. 히히!" 장난스레 웃는 형님의 모습에, 키류는 되려 속이 쓰렸다. 자신은 기대도 안 될 정도로 둔감한 놈이란 말인가. 미묘한 표정의 동생에게, 마지마는 품에서 작은 꾸러미를 꺼내 건넸다.

"이건...?"

"풀어봐라, 보믄 안다"

설마 상하기라도 할까봐 조심조심 뜯어본 포장지의 내용물은,

작은 넥타이핀이 든 상자였다.

"이거..."

"거창하지 않고, 자주 쓸만한 거 찾다 떠오른기라. 함 끼워봐라"

"여기서?"

"엉"

투명한 케이스를 열자 은은한 금빛으로 빛나는 핀이 드러났다. 디자인 자체는 수수했다. 머리 부분에 장식된, 옛 셔츠색을 닮은 붉은색 보석을 제외하면. 키류는 핀으로 넥타이를 고정하고 물었다.

"어때?"

마지마는 한 발짝 물러서서,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키류를 바라봤다.

그 얼굴에 점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어딘가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뿌듯해하는 듯한 미소.

"좋네"

마침내 참지 못하고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마지마는 말했다.

"이래야 내 남자제"

내 남자, 라는 말에 키류는 얼굴을 붉혔다. 형님은 이렇게 뚜렷한 애정 표현을 잘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기쁜 건가.

손을 뻗어, 턱에 손을 댄 채 자신의 모습을 감상하던 마지마의 몸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일에 눈을 동그랗게 뜬 형님을 품에 안았다. 자신의 키를 조금 넘는 체구에, 키류는 약간 부루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렸을 때 우유를 좀 더 먹을걸"

"그게 그래 불만이고"

귀엽다는 듯이 킬킬거리면서, 마지마는 부드럽게 키류의 몸을 끌어안았다.

키류는 그런 형님의 어깻죽지에 얼굴을 묻었다. 단단하고, 울퉁불퉁한 남성의 몸이었다. 도저히 품기 좋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따뜻했다.

잠시 그 온기를 즐기다, 마지마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카즈마"

"응"

"침실로 갈까?"

키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은데?"

"와, 갑자기"

"나는 선물도 준비 못했잖아. 그러니까 적어도, 당신이 원하는 걸 해 주고 싶어"

마지마는, 잠시 놀란 얼굴이 되었다가 곧바로 픽 웃음을 터뜨렸다. 회장이 되어서도 여전히 무르다니까.

"그럼, 같이 영화 봐 줄 수 있나?"

"좀비?"

"엉. 내 언제 니랑 느긋하이 영화 보는 게 소원이었다 안하나"

"좋지"

"옹야. 역시 우리 키류야구마"

히이 웃으면서, 마지마는 포옹을 풀고 소파로 걸어갔다. 그리고 키류가 뒤따라 소파에 앉자, 냉큼 머리를 허벅다리에 얹었다.

"딱딱하구마"

"미안하군, 딱딱해서"

비록 그렇게 받아치기는 했지만, 키류의 표정은 부드러웠다. 마지마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리모콘을 집어들었다.

"뭐, 됐다. 이건 이것대로 괘안구마. 뭣부터 볼라나? 키류야"

"내가 고르는 건가..."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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