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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되어버린 __을 아시오?

원피스 크로커다일 드림 / 찬님(@Chalass_B) 리퀘스트

든프 by 정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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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바람과도 같다. 아니, 바람 그 자체다. 세상의 너머까지 그 여자로부터 태어난 바람이 닿도록 할 터. 그 바람을 멈춘 곳이 사막 한 중간이라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어떤 이들은 의아해하겠지. 어떤 이들은 궁금해하겠지. ―그러나, 그런 사연 따위는 상관없는 것이다. 작열의 햇 빛이 내리쬐는 황폐한 사막이든, 보는 이로 하여금 본능적인 공포를 자 극하는 깊고 긴 바다든. 그 여자는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롭기 그지없는 여자다. 그런 여자의 바람이 멈춘다면 원인은 하나뿐이다.

人. 인간, 사람. 자연의 힘 앞에서 누구보다 무력한 존재.

그런 그들이, 그녀의 앞길을 감히 막고 마는 것이다.

그녀 또한,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사는 존재에 불과하므로.

*

“… 크로.”

“… 위니.”

사람으로 무너진 그 여자는 결국은 또 사람을 찾아간다. 이미 알대로 알아버린 그 따스함은, 그녀의 고독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의 만남을 도와주는 것은 사람 사이의 일이 으레 그렇듯 술이고, 술로 적당히 달궈진 몸에 이성은 물을 탄 포도주처럼 묽어져 간다.

위아래로 뒤섞인 이성은 온기를 갈구하는 여자를 이윽고 안락한 침대로 인도하고, 그녀는 술을 나눠 마시던 남자한테 입을 맞춘다. 그 남자의 속은 알 길이 없지만, 그는 그녀의 목마른 간절함을 밀어내지 않는다.

―그들은 후회할까? 오늘 이 순간을, 이 밤을.

*

알라바스타. 광활한 사막에 위치한 대국.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을 것 같은 사막을 돌아올 곳으로 택한 강인함이 증명하듯 알라바스타는 강하 다. 그런 사람들이 일궈내어 살고 있는 나라다. 머리는, 순진해도 말이지. 그 덕분에 일은 한 수 더 쉬웠지만. 이 나라에 근간으로 자리하고 있는 순진한 강인함이 알라바스타를 풍요와 번창이 살아 숨 쉬는 오아시스로 만들었다. ―옹달샘 하나를 찾아서 헤매는 짐승의 본능을 자극하는.

“… 크로, 듣고 있어?”

“아니, 미안하군. 무슨 말을 했지?”

“나, 이대로 돌아다녀도 정말 괜찮은 걸까? 얼굴은 잘 안 보이지만.”

윈프레드는 처음 입어본 알라바스타의 의복이 낯선지 모자에 달린 천 을 만지작대며, 어쩐지 시선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며 불안해하는 눈치 였다. 당연했다. 해군 윈프레드 소장이 해적 크로커다일과 동행하고 있다 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윈프레드한테 두 번째는 없을 테니. 하지만, 시선 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건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술과 밤 이 얽혀있는 이유 때문이겠지. 어처구니없는 여자다. 여자를 올려다보는 감각은 나로서도 처음 느낀, 그다지 유쾌하진 않은 감각인데도.

“옷을 만지작대지만 않아도 괜찮을 테니 안심해라.”

모자에 달린 천을 친히 정리해 주려 손을 내밀자 윈프레드는 화들짝 놀라며 반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미 내민 손을 더 뻗으면 그만 인 일이었다. 고작 살갗을 스치는 손길 하나로 비 맞은 고양이처럼 구는 꼴이 우스웠다. 전날 밤, 그 살과 살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

“봐라, 시장에 나온 지 꽤 지났는데, 말을 건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 그건 그러네.”

“이 나라에 모처럼 왔으니, 있는 동안은 불편함이 없도록 하지. 알라바스타는 여러모로, 더위만 제외하면 살기에 아주 괜찮은 나라니까.”

“… 그래, 그러자.”

윈프레드는 하늘을 살짝 올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치기 어린 날에는 윈프레드의 시선이 향하는 그 끝에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 하나뿐이길 바란 적도 있었다. 해군도 해적도 없는 먼바다로 떠나자는, 나더러 꿈을 포기하라는 그 여자의 말에 홀린 듯이 끄덕인 날도 있었다. 살을 엮은 다음 날, 이 여자를 이대로 내 곁에 못박을까 한때나마 진심으로 생각했던 아침이 있었다.

―이 여자는 내 꿈을 방해한다. 나로 하여금 치욕과 수모를 선사한다.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 곁을 내어주었다. 다시는 맛보고 싶지 않았던, 굴욕의 쓴맛이 입 안에서 번졌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다. 곁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여자라면, 차라리 내 곁에 영원히 박제해 두겠다고.

먼 옛날,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고전을 하나 알고 있다. 지하 세계의 왕이 지상의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 여자를 납치하여 석류 세 알을 먹인 뒤, 지하 세계의 왕비로 앉혀두었다. 먼 옛날부터 존재했던 고전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시답잖은 입 놀음을 할 생각도 없다. 왕비의 자리에 오른 여자는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전해져 오는 바는 없다. 하지만, 그 여자는 오늘날에도 지하 세계의 왕비로서 불멸과 영원을 증명하듯 후손한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 사실만이, 중요한 것이다.

*

‘목표’를 달성한 날,

나는 윈프레드를 알라바스타의 왕비로 앉힐 것이다.

윈프레드라는 여자를 영원토록 박제하기 위하여.

치욕과 수모, 굴욕의 쓴맛으로부터 승리를 선언하기 위하여,

속을 알 리 없는 그 여자의 순해 빠진 눈이 장신구를 파는 상점의 진열대 앞에서 멈춰 섰다. 흰 보석과 노란 보석을 중심으로 검은색 가죽을 볏짚 모양으로 엮은 팔찌. ―지하 세계의 왕은 지하에서 나는 석류 세 알을 먹임으로써 사랑하는 여자를 지하 세계의 왕비로 박제해 두었다고 했다. 지금은 모자에 달린 천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윈프레드의 왼쪽 귓불에 박아둔 석류 한 알이 있었다.

현존하는 물건만큼 확실한 것도 없을 터. 나는 알면서 말을 걸었다.

“왜 그러지, 위니.”

“그냥, 저 팔찌를 봤는데 마음에 들어서. 온 김에 하나 살까?”

“네 손목에 잘 어울릴 것 같군. 하나 사주지.”

“정말? 굳이 그럴 필요 없어.”

“해적의 지갑 사정을 걱정해 주는 걸로 들어도 되나? 보석과 돈은 남아돌고, 오늘 나간 건 근처에 있는 송사리를 쓰러뜨려 채우면 되니 걱정할 필요 없다. 말하지 않았나? 있는 동안은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 응. 고마워.”

상점으로 들어오자, 화들짝 놀란 주인이 굽신대며 나를 반겼다.

“아이고, 크로커다일 님! 어서 오십시오.”

*

“수고 많군,”

“이런 곳에 어인 일로 직접 오셨는지요. 영광입니다!”

“밖에 진열된 팔찌를 사고 싶다만. 흰 보석과 노란 보석의 팔찌.”

“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런데… 옆에 일행분은 처음 뵙는 것 같은데 혹시… 사모님이신 걸까요?”

상점 주인의 시선은 의아함을 품은 채 윈프레드한테 향했다. 윈프레드는, 내가 여태껏 본 적 없던 표정을 지었다. 놀란 얼굴 정도는 풋내나는 시절부터 여러 번 봐 왔다만, 이런 말은 아무래도 처음이었겠지. 그 얼굴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구태여, 아니라고 변명하려는 윈프레드의 몸을 팔로 감싸 끌어안으며 대신 말했다.

“크하하… 역시 그래 보이나?”

“하하, 상인의 눈을 속일 수는 없지요. 물론입니다! 사모님이 참으로 아름다우시니, 크로커다일 님과 아주 잘 어울리십니다. 아차, 검은색 팔찌라면… 이 팔찌를 말씀하시는 걸까요?”

“맞다. 착용해 봐도 되나?”

“네!”

나는 상점 주인한테 건네받은 팔찌를 윈프레드의 손목에 직접 둘러주었다. 자, 잠깐이라 속삭이듯 말하면서 상인의 눈치를 보는 윈프레드였지만 그 시선이 지금은 나를 제외한 사람을 향하도록 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가만히 있어. 위니.”

*

윈프레드를 독촉했다. 그러자 어젯밤의 상황이 겹쳐 보였던 건지, 윈프레드는 귀걸이를 찬 귓불까지 붉어져서는 그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며 서 있었다. 오랜만에 생각대로 풀린 일의 결말을 마주하자, 생각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나는 그 만족스러움을 유감없이 표현하였다. 지금 나 자신이 어떤 얼굴을 짓고 있을지는 나조차도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추측할 수는 있었다. 욕망의 얼굴을 마주한 사람이 서 있지 않나? 나는 윈프레드의 팔을 훑어보며 마저 말했다.

“그래, 잘 어울리는군. 내… 아내한테.”

“머, 먼저 나가 있을게.”

그 욕망을 견디지 못했는지, 윈프레드는 도망치듯 문을 열고 나갔다.

“미안하군. 내 아내가 부끄러움이 많아서 말이지. 잔돈은 가지도록.”

“아니, 이렇게 많이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또 오십시오.”

상점을 나서고 나자, 할 말이 많단 듯한 얼굴 그대로 윈프레드는 나를 쏘아붙였다. 주위의 시선을 끌면 안 된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인데, 이 나라에서 영웅으로 알려진 나한테 면박을 주다니.

“무슨 짓이야? 모르건즈한테 건수라도 잘못 잡히면 어쩌려고 그래?”

“걱정도 많군. 너를 알아본 사람도 없는데.”

“세계 경제 신문이 소문 같은 걸 놓칠 리 없잖아! 스캔이라도 터지면, 뒤처리는 해군의 몫이라는 걸 몰라?”

“그래, 그래. 해적의 뒤처리나 하느라 고생이 많군. 내 아내로 오해받는 일이 다분히도 싫었나 보지?”

*

“….”

윈프레드는 침묵했다. 장난으로도 상대할 말이 아니라 생각했는지. 그 여자의 침묵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본 적 없는 얼굴을 볼 수 있었으니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장난이 아닌 말을 확실히 전달할 필요는 있어 보였다.

“위니, 팔찌는 마음에 드나? 너랑 잘 어울리는군.”

“… 응. 고마워, 크로.”

진실과 거짓이 뒤얽힌 이틀 동안, 나는 이 순간만큼 숨김없는 진심을 전했다. 사랑하는 여자한테 석류를 먹이려던 지하 세계의 왕이 그랬을 것처럼. ―모든 것은 윈프레드라는 여자를 영원토록 박제하기 위하여. 치욕과 수모, 굴욕의 쓴맛으로부터 승리를 선언하기 위하여.

*

남자는 영원불멸한 왕국을 꿈꿨다.

지하 세계의 왕과 왕비에 빗대어 여자로부터 승리를 선언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알았을까?

지하 세계의 왕이 했던 모든 행동은, 지상의 한 여자한테 얽매인 결과라는 걸. 이 글에 적힌 모든 그의 모든 행위는 꿈꾸던 왕국과는 상관없었다는 걸.

―그는 지하 세계의 왕이 아니었다. 그는 글의 주인공조차 아니었다.

*

이 글의 주인공은,

불멸과 영원을 증명하듯 전해져 내려오는

지상의 여자였던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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