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끝나고 난 뒤

[좀 죽어주면 안될까?]

자작룰 by 모지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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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말

너와 나는 현재 동거중입니다. 이유는 별 거 없습니다. 우리는 얼마 전 길에서 마주쳤고, 한눈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아보았으니까요. 우리는 서로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묶어놓기 위해 동거라는 아주 현명한 방법을 생각해보았지요.

자, 이제 상대방이 방심한 틈을 타 죽여버리면 되겠습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점이라면...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나(I)에게 쓸데없는 정을 느끼게 된 너(YOU)라는 겁니다.

페이지 1. 우리 뭐 먹을래?

- 오늘도 평범한 하루입니다. 평범하게 아침에 일어나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어봅시다. 서로를 증오하고, 또 애정하는 미묘한 마음은 그대로인 채로요.

- 아침을 먹으려고 냉장고를 열어보면, 냉장고는 텅 비어있습니다. 배가 고파 아침을 먹어야 하니 나와 너가 같이 장을 보러 나가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렇게 자유롭게 마트로 향하고, 여러 음식들을 사고, 또 집으로 함께 돌아옵니다. 흔한 동거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요.

- 마트에 너와 나 혼자서 가지는 못할겁니다. 그야 혼자남은 상대가 어디로 사라질지 모르는 걸요.

- 마트에 도착하면 자유롭게 음식들을 사도록 해봅시다. 음식을 사는 과정에서 너가 자유롭게 판정할 수 있도록 놔두세요.

- 음식의 맛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미각 판정의 결과에 따라 결정합니다. 판정에 성공하면 맛이 좋고, 실패하면 맛이 없는 요리가 됩니다.

넘기기 조건: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다.

페이지 2. 우리 이래도 될까.

- 그렇게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고 나면 기분이 미묘해집니다. 이건 지극히 평범한 동거하는 사람들의 일상이잖아요. 과연 우리가 이런 일상을 보내도 되는 걸까요.

- 어쨌거나 심심해진 나는 너에게 영화나 보러 가자고 제안합니다. 너의 거절에도 소용은 없습니다. 나에게는 공짜 영화 티켓이 어쩌다보니 두 장 생겼으니까요.

- 너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을 해도 나는 무조건 너와 함께 할겁니다. 그야 영화를 보고 오는 사이 너가 어디로 도망쳐 사라질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넘기기 조건: 나와 너가 함께 영화를 본다.

페이지 3. 연극이 끝나고 난 뒤

-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나면 나는 네게 선언합니다. 너를 반드시 죽일 것이라고요.

- 둘은 자유롭게 대화합니다. 서로가 품고 있는 증오심, 혹은 애정을 마음껏 대화 속에 녹여내 봅시다.

- 나에게 어떠한 판정을 해도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넘기기 조건: 너와 나 중 하나가 죽는다.

마지막 페이지. 막.

그렇게 너(혹은 나)의 숨이 끊어지고 나면 나(혹은 너)의 마음속에는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옵니다. 그렇게 너(혹은 나)는 휴대폰을 들어 스스로를 신고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게 나(혹은 너)에 대한 예의겠죠. 그래요, 분명히 그럴 겁니다.

너(혹은 나)는 휴대폰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버튼을 꾹꾹 누릅니다. 112.

뚜르르르-하는 신호음이 멈추고, 곧이어 네, 경찰서입니다 하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너(혹은 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에게 고백합니다.

"제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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