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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브나루 약 미츠나루

역잼 by 침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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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호도는 이제 아주 어렸던 시절 미츠루기를 쫒아다니던 그의 마음이 단순한 우정이나 동경이 아니었다는 걸 안다.

오랜 세월동안 쌓여온 그의 감정은 어느새 커다란 사랑으로 변해 더 이상 감출 수 없어졌다.

그리고, 미츠루기의 마음도.

최근 2년간 미츠루기가 자신을 위해 했던 일련의 행동들은 나루호도의 마음을 동요시켰다.

미츠루기가 자신을 위해줬던 그 모든 일들… 그저 친구만을 위해 이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그러니 미츠루기도 나를 좋아할지 모른다!

그 생각만 떠올리면, 출근길에 밟는 자전거 페달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지고, 하늘의 구름이 솜사탕처럼 폭신하고 달달해보이고, 빛바랜 사무실 블라인드를 걷으면서도 절로 미소와 콧노래가 나오곤 했다.

[나루호도. 이번 주 수요일에 입국 예정인데, 시간 괜찮으면 목요일 쯤 한번 보도록 하지.]

이것 보라지!

입국하자마자 나를 보고싶어하다니, 미츠루기도 생각보단 적극적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겐 물론 미츠루기나 법정 일을 제외하곤 선약이라곤 없었으므로 냉큼 [좋아! 어디서 볼까?]하는 답장을 보냈다.

그러나 미츠루기로부터 금방 답이 오진 않았다. 그가 몇 시간, 며칠이고 회신하지 않는 일은 왕왕 있었으므로 나루호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바지주머니에 넣어둔 휴대전화가 조금이라도 울린 것 같으면 그는 후다닥 꺼내어보았다. 물론 대부분은 광고 문자거나 그의 다리가 조금 저렸기 때문에 착각한 것에 불과했다.

세 시간쯤 지났을 무렵 나루호도의 낡은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여기서 보지.] 그리고 한 고급 양식 레스토랑의 주소가 적혀있었다. 아하, 미츠루기 녀석! 분위기 좋은 데를 찾느라 애먹었구나. 귀엽기는. 나루호도는 흐뭇한 얼굴로 미츠루가 보낸 문자를 액정 위로 살짝 쓰다듬었다.

빨리 그를 보고싶었다. 이번엔 고백하려나?

그의 마음이 따뜻한 공기를 불어넣은 것처럼 부풀어올랐다.

그리고 약속 당일 저녁, 초장부터 심각한 얼굴로 미간을 좁히던 미츠루기가 무겁게 입을 떼었다.

“나루호도, 너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나루호도는 양 손에 식기를 꽉 쥔채로 그의 고백을 기다렸다. 손에 땀이 나서 약간 미끌거렸다. 부디 소중한 순간에 포크를 떨어트려 분위기를 깨고싶진 않은데.

“나에게 최근…신경쓰이는 상대가 생겼어.”

어라? 이 녀석이 이런 고단수의 멘트를 쓸 줄은 몰랐는걸. 그래, 그 다음에는 아마 ‘그리고 그건 바로 너야…’라던가…….

“해외 체류 중에 만난 법조인인데, 그녀는….음, 네게 이런 말을 하려니 민망하군.”

“하하, 아냐. 뭘, 그나저나 빨리 말해봐. 어떤 사람인데?”

빨리 그게 나라고 말해.

“다정한 사람이다. 그리고 법정에서도 항상 빛나지.”

제발 그냥 농담이거나, 네 지인 연애상담을 대신 해준 거라고 해줘.

“나와 같은 검사인데…, 새로운 사법 체계를 검토하다 가까워졌다. 얘기가 그렇게 잘 통하는 사람은 처음이었어.”

나랑은 잘 안 통했나 보구나. 법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할 걸 그랬네.

“어쨌든, 음… 이성에게 이런 관심이 생긴 적은 처음이라, 경험자인 너한테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그렇구나. 말해줘서 고마워.”

왜 하필 나야? 지금 놀리는 건 아니지?

…차라리 농담이었다고 말해주면 안될까?

“어…야하리가 아니라 너한테 연애 상담을 해 줄 줄은 몰랐는데.”

“나도 신기하긴 하군.”

나, 지금 표정 괜찮나? 잘 웃고 있겠지?

평범하게 굴자. 평범하게.

“그 사람은 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글쎄…. 잘 모르겠다. 자주 얼굴을 보긴 한다만. 어제도……”

그 뒤로는 대체 무슨 정신으로 미츠루기에게 답해줬는지 모르겠다. 포크를 너무 세게 쥐어서 손끝과 마디가 하얘졌던 것 같기도 하고. 웃고는 있었지만 광대가 조금 떨렸던 것 같기도.

그러다 갑자기 조금 전에 삼켰던 소고기 조각의 기름기가 목구멍에서 느글거리게 느껴지고 속에서 신물이 치밀어 오르는 듯 했다.

“아, 미안. 미츠루기. 나 잠시 볼일 좀 보고 올게.”

“그래, 나루호도.”

그리고 나루호도는 미츠루기를 지나치면서, 그가 바로 휴대전화를 열어 메시지함을 보는 것을 흘긋 보고야 말았다.

바보 멍청이 미츠루기.

내 메시지에는 자기 편할 대로 답해주면서.

그는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에 도달해 세면대에 얼굴을 잠시 처박았다가 심호흡 후 고개를 들어 거울 속 자신을 마주보았다.

부끄러움과 실망, 질투의 색으로 형편없이 일그러진 얼굴이 한 눈에 들어왔다.

멍청이! 바보같은 녀석!

혼자서 지레짐작하고 들뜨고 좋아하더니 꼴 좋다.

남 마음도 모르면서! 네가 그럼 그렇지 뭐.

더 그러고 있다간 정말로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그는 눈을 콱 감고 차가운 수돗물로 퍽퍽 세수했다.

그러면서도 생각을 멈출 수는 없었다.

진짜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그런 표정도 보여주는 모양이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언제까지고 화장실에 죽치고 앉아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가 여기서 세수를 하든 샤워를 하든 미츠루기가 자신이 아닌 남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사라지지도 않기 때문에 나루호도는 결국 티슈 쪼가리로 얼굴의 물기를 닦고 나왔다.

그 와중에도 미츠루기에게 초라한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머리가 잘 뻗쳐 있는지, 휴지조각이 볼에 묻어있지는 않는지 확인하는 스스로에게 약간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 이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하기 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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