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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열을 띠는 메리 크리스마스

어른은 스스로 산타가 되기도 한다.

“열은?”

“……아침보다는 내려간 것 같아.”

“하필 오늘 같은 날 감기라니, 어지간히도 일이 꼬이는군. 화가 나.”

“어차피 마음대로 되는 게 없었던 달이야…….”

“누구보다도 기대한 건 너니까 하는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슬프지만 납득하고 있어. 회사가 나쁜 거야.”

“하… 그건 맞는 말이지. 정말이지 짜증 나는 곳이야.”

마지막 말에 동의하며 세키도는 아이제츠의 입에 초콜릿을 하나 넣어주었다. 올해 크리스마스를 위해 일찌감치 주문해 두었던 초콜릿 어드벤트 캘린더인데, 세키도의 것은 한 번도 손길이 닿지 못한 채 방치되다가 결국 아이제츠가 약을 먹은 후의 입가심을 위해 겨우 포장이 뜯겼다. 여전히 미개봉인 채로 반짝반짝 빛나는 나머지 2에서 24까지의 금색 숫자를 보면서 세키도는 지난날의 연장근무, 주말 출근을 떠올렸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만큼은 지켜내고자 노력했건만, 결과는 보는 바와 같이 침대 신세.

하지만, 따지자면 아이제츠도 조금은 잘못이 있었다. 겨우 일을 끝마치고 하품을 참으며 돌아오는 퇴근길. 영업이 종료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수령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들고 걸으며 직원의 권유로 함께 예약했던 하트 초를 꽂을지 말지 고민하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을 때. 2층 발코니에서 여름 잠옷 차림으로 이쪽을 내려다보는 아이제츠와 눈이 마주친 순간 추위도 졸음도 잊고 계단을 뛰어 올라갔던 게 아직 열두 시간도 채 지나기 전의 일이었다. 심지어 샤워를 하고 나왔는지 어깨에 걸친 수건 위에는 다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 끝이 딱딱하게 얼어 있어 그대로 화를 내며 이불 속으로 아이제츠를 밀어 넣은 기억을 떠올리면 또다시 속이 답답해지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품 안에서 느껴지는 고열에 세키도는 해열제와 해열 시트를 사러 문을 연 약국을 찾아다녀야 했다. 아무리 건강한 아이제츠라도 12월 말 겨울철에 이런 일을 하면 감기에 걸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데이트를 위해 미리 예매해 두었던 영화표는 카라쿠와 우로기에게 넘기고-남자 둘이 로맨스 영화를 보러 가야 한다니 소름이 끼친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반응이 돌아왔지만, 그건 세키도가 알 바는 아니었다.-들고 달리는 바람에 한쪽이 찌그러진 케이크는 늦은 아침 식사로 먹었다. 아이제츠가 죽 한 그릇을 겨우 비우고 잠들었다가 대화가 가능할 정도까지는 회복하자, 크리스마스에도 바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세키도는 새 해열 시트를 뜯어 아이제츠에게 다가갔다. 이쪽에 닿는 몽롱한 시선이 번번이 외면했던 주말의 시선과 겹쳐져 조금 죄책감이 들었다.

‘그런데 말이지…….’

해열 시트를 갈아준 뒤 세키도는 가만히 아이제츠를 바라보았다. 미안한 것과는 별개로, 어딘지 위화감이 들었다.

‘이 녀석… 왠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 같은데.’

물어볼까 말까. 세키도는 잠시 고민했다. 물어보면 왠지 조금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물어보지 않는다면 가뜩이나 12월 내내 방치했던 연인을 또 저버리는 일이라 마음에 걸린다. 게다가, 아이제츠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있다는 건 그것대로 불쾌한 일이기도 해서, 결국 세키도는 아이제츠를 눕히며 자신의 추측을 입 밖에 내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을 텐데, 기분이 좋아 보이는군.”

“…음… 들켰구나. 그렇게 티가 났어?”

“왠지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뭐가 좋은 거냐. 오늘 데이트는 다 망쳤는데.”

“그런가? 하지만 나는 세키도가 옆에 있으니까 슬프지 않아.”

“……설마 했는데, 역시 너…….”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그렇지……. ‘잡았다.’라는 느낌이었으려나.”

열이 번져 살짝 부은 눈가가 조금 휘었다. 그 말인즉슨, 망할 회사가 혹시라도 크리스마스에 자신을 또 불러낼까 봐 자기 몸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자신을 붙들어 두려고 얕은수를 썼다는 뜻이다. 확실히 평일도 아닌 휴일의 병간호까지 방해할 정도로 블랙인 회사는 아니었다.-물론 한없이 블랙에 가까운 회사이긴 했지만.-어쨌든 내막을 알게 되자 세키도는 기가 찼다. 그러나 환자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핸드폰을 꺼내 신경질적인 손짓으로 레스토랑에 전화를 걸어 저녁 예약을 취소하는 것에 그쳐야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이제츠도 작게 한숨을 쉬었다.

“생각해 보니 그 레스토랑에 못 가게 된 건 조금 아쉬울지도…….”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았으면 갈 수 있었어. 지금까지 잘 참아오다가 왜 갑자기 이런…….”

“그거야 나는 이제 착한 어린이 같은 건 아니니까.”

이불 밖으로 손 하나가 빠져나왔다. 세키도가 그것을 잡자, 아이제츠는 가만히 세키도의 손을 끌어 제 뺨에 가져다 대었다. 아직 미지근하게 남은 미열이 손등을 데웠다.

“착한 어린이라면… ‘산타 할아버지, 내일은 세키도와 함께 있게 해 주세요.’라고, 귀엽게 소원을 빌었겠지? 하지만 나는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어린애가 아니야. 정말 갖고 싶다면, 약간의 편법을 쓰는, 조금 나쁜 어른이지.”

“그렇군. 확실히 착한 행동은 아니야.”

“하지만 열을 내리느라 반나절을 꼬박 잠으로 보내버린 건 역시 슬프구나……. 나는 그냥 꾀병을 부리면서 아침부터 세키도를 독차지하려고 했을 뿐인데…….”

“이 정도로 그친 데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이었으면 지금쯤 입원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쨌든 그건 이제 아무래도 좋아. 그래서 말인데 세키도… 내일 병가 내지 않을래?”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말해라. 난 어제부터 머리가 어질어질해.”

“슬퍼지니까 짜증 내지 마…….”

“짜증 내는 게 아니라…… 그래, 일단 들어는 보지.”

한풀 꺾인 세키도의 목소리를 들은 아이제츠가 이번에는 이불을 조금 걷었다. 마치 이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한 동작에 세키도는 순순히 이불 안으로 들어가 아이제츠를 끌어안았다.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그 바보짓으로 높아진 체온에 화가 누그러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쨌거나 바보 같은 것과는 별개로, 가만 생각해 보면 나름 귀여운 투정이지 않은가.

다만 역시 두 번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일이었다. 세키도는 한 손을 들어 아이제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안기는 것보다 이쪽이 더 부끄러운지 얼굴이 닿아 있던 가슴팍이 조금 더 뜨거워졌다. 한참을 쓰다듬받던 아이제츠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어쩐지 아까처럼 뭔가 석연치 않은 기쁨이 느껴지는 얼굴이라는 생각을 할 때―

‘쪽’

―아이제츠가 그대로 입을 맞춰왔다.

평소에는 내심 해주길 바라도 수줍음을 타느라 잘 해주지 않던 것이다. 그런 입맞춤을 이런 상황에서 받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은 기쁜 것 같기도 했지만, 세키도는 기쁨을 오래 간직하지 않고 빠르게 이성을 찾는 타입이었다. 구강을 통한 접촉은 평소의 애정 표현이 아니라 병의 전파가 되는 매개로 인식되었다.

“아파서 응석을 부리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나까지 감기에 걸리면 누구한테 간호를 받을 생각이야!?”

“나는 건강해서 내일이면 나을 테니까 괜찮아. 합법적으로 병가를 낼 수 있게 도와주려는 거야.”

“그 바보짓에 나까지 끌어들일 생각은 하지 마라.”

“…나, 오늘 승부 속옷도 입었는데?”

우로기랑 같이 골랐어. 라는 말에는 결국 세키도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왜 그걸 녀석이랑 고른 거야?’ ‘카라쿠에게 골라달라고 하면 화낼 것 같아서.’ ‘맞는 말이지만 우로기와 고르는 것도 안 돼!’ 영양가 없는 공방이 오가는 중에 아이제츠가 세키도의 목에 팔을 둘렀다. 다시 키스를 조르는 얼굴에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은 세키도는 힘겹게 아이제츠의 팔을 풀어냈다.

“승부 속옷이든 뭐든 오늘은 안 돼! 애초에 나는 환자를 건들 정도로 양심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그럼, 세키도는, 나와의 크리스마스가 이렇게 지나가도 좋다고 말하는 거야? 세키도도 열이 내리는 데에 반나절이 걸린다고 가정하면… 내일도 쉬어야 겨우 크리스마스 하루분이 되는데……. 슬플 정도로 냉정해서 슬퍼진다…….”

열이 오른 얼굴에 물기가 어리더니 이제는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슬슬 짜증이 난다. 이 상황이, 애초에 이 상황을 불러일으킨 원인이. 세키도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내려놓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크게 한숨을 내쉬고, 세키도는 아이제츠와 눈을 맞췄다.

“나는 아직 출근하겠다고는 한마디도 한 기억이 없는데.”

“응?”

“애초에 진짜로 아파야 병가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나쁜 어른을 자처하기에는 소양이 부족하구나.”

“…? 그러면… 내일 출근 안 할 거야? 거짓말로 병가를 내고?”

“그래. 그러니까 그런 표정을 짓는 건 그만둬. 너의 그런 표정을 보고 있으면 화가 난다.”

말을 마친 세키도는 이불 밖으로 빠져나왔다. 말과는 다르게 혹여나 찬 공기가 새어 들어갈까 단단히 이불을 덮어주는 손길이 다정했다. 본인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선언하듯 강경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진짜 나쁜 어른이 뭔지 보여줄 테니까, 너는 어떻게든 내일 아침까지 다 나아라. 크리스마스 인사는 하루 미룬다.”


그다지 연말 분위기가 나지 않는 12월입니다만, 기분 전환이 될까. 하고 써 보았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댓글 2


  • 유영하는 개미

    달달한 세키아이 보고 행복해졌어요(´▽`ʃƪ)♡ 이미 지나버렸지만 설탕님께서도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셨길 바랍니다! 다가오는 2025년에도 늘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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