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파문
누군가가 억지로 잠에 빠져 들어 언제쯤 눈을 뜰지 알 수 없던 때가 은근히 희미하다. 깨어난 후에 언제 그렇게 무기력하게 있었냐는 듯, 내디뎠던 시간과 공간이 천차만별인 탓일지도 모른다. 1929년에서 모여든 마도학자들은 각자의 사유로 그 시대를 잊을 수 없겠지만 릴리아에게는 당사자인 그들만큼 절박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온전히 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계절을 싣고 나르는 바람은 그 계절을 닮았다. 봄에 부는 바람은 잔잔하고 부드러우며, 햇볕의 따스함과 어울리는 시원함이 있었다. 그런 봄바람은 해야 할 일을 위해, 가야 할 곳을 가고 있는 무표정한 소녀의 볼이나 머리칼을 살짝 쓰다듬고 지나가는 게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소녀에게는 나른해지기 쉬웠다. 어딘지 모를 지역과 시대에 살며시 내려앉은 계절은 폭풍
앨범에는 양갈래로 땋은 갈색 머리의 소녀가 씩씩하게 웃거나,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만들고 있으나, 유독 한 사진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삼각 고깔모자를 쓰고, 분하다는 듯 포크도 없이 손으로 레밍턴 케이크를 열심히 먹어 치우는 현장이 생생하다. 얘는 뭐 때문에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울면서 먹었나. 답은 어렵지 않았다. 좌측 하단에는 다른 사진처럼 찍어준
웃고 떠드는 소리가 저택에 공허히 울렸다. 아무도 그것이 부족하다 느끼지 않는다. 갖춰 입은 손님이 줄줄이 들어오는 파티가 아니다. 무대를 받들고 관객 앞에서 펼치는 공연도, 색칠된 문 뒤에서 거울을 들여다 보며 진행되는 ‘치료’도 아니었다. 한 쌍의 새가, 종도 생김새도 다른 카나리아와 앵무새가 서로를 향해 정답게 지저귀는 평화로운 한때였다. 숲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