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고개
릴리버틴
누군가가 억지로 잠에 빠져 들어 언제쯤 눈을 뜰지 알 수 없던 때가 은근히 희미하다. 깨어난 후에 언제 그렇게 무기력하게 있었냐는 듯, 내디뎠던 시간과 공간이 천차만별인 탓일지도 모른다. 1929년에서 모여든 마도학자들은 각자의 사유로 그 시대를 잊을 수 없겠지만 릴리아에게는 당사자인 그들만큼 절박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온전히 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결코 좋지 않았던 과거의 인연과 부탁으로써 받았던 술 때문일 것이다.
29년산 즈브로카의 향은 ‘탈옥 보스’와 그의 친구들이 가진 의지만큼 신선했고, 자유로웠다. 그래서 그 좋은 술을 야금야금 다 마셔서 텅 비어버린 플라스크가 얼마나 아쉬웠던지. 릴리아는 그 이후로도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플라스크를 손에 쥐고 있으면, 연쇄 작용처럼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버틴은 어떻게 그런 좋은 술을 알고 있는가. 함께 겪은 일도 꺼내 먹기 편한 안주 같았다. 마침 버틴은 가방 속 로비에서, 한가로이 홀로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릴리아는 그 옆에 천연덕스레 앉곤 등받이에 턱을 괴었다. 애써 눈길을 주지 않으니 관심을 끌어야 했다.
“버틴,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시치미를 떼고 씩 웃는 얼굴에 버틴은 더더욱 책으로 얼굴을 가렸다. 귀찮아질 조짐이 안 봐도 훤하다. 종이 위의 글자는 갑작스러운 방해꾼 덕에 도무지 읽는 이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지지 않았다. 인색하게 구는 태도에 릴리아는 더더욱 능청스럽게 팔로 어깨를 감쌌다. 기초적인 근력의 차이란 그런 단순한 행동에서도 쉽게 느껴지는 것인지 생각하며, 버틴은 결국 한숨과 함께 책을 곱게 덮었다. 단단한 품에서 빠져나가기엔 너무 늦었다. 눈을 마주하고, 뭐냐는 듯 바라보면 옛이야기가 다시 흘러나왔다.
“왜, 예전에 네가 뇌물로 줬던 거 말이야.” 묘한 단어 선택 덕분에 무덤덤한 청자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튀어나왔다. 뭐? 평소처럼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모양새가 아닌 덕에 릴리아는 낄낄거린다. 한술 더 떠서 비밀을 얘기하듯 목소리를 깔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곤 물었다. 29년산 즈브로카, 너 그거 마셔보고 준 거지? 놀란 눈동자가 금세 덤덤함을 넘어 흐리멍덩해지고 답이 곧바로 돌아왔다. “추천을 받아서 샀을 뿐이야.” 그게 전부라는 확실한 꼬리표까지 덧붙였지만 이리저리 굴러가는 눈동자는 만족하지 못한듯 했다.
“뭐, 그러셨겠지. 천하의 타임키퍼가 술 같은 걸 입에 댈 리도 없고.” 그 직위에 맞는 책임이나 성품을 강조라도 하듯 플라스크만 까딱까딱 흔들며 눈앞에 보인다. 느닷없이 맞닥뜨린 과거의 파편이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면, 미약할지라도 밀어내거나 빠져나가려 했을 테다. 그러지 않고, 상대방은 그저 시선만 삐죽이 피할 뿐이었다. 괜히 드는 장난기에, 릴리아는 버틴의 어깨에 걸터진 쪽의 손으로 머리카락이나 그 밑에 있는 볼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들며 진실 아닌 이야기를 캐물었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할 테니까, 말해 봐. 진짜 한 모금도 마신 적 없어?” 버틴은 들고 있던 책을 써야 되는지 고민하며, 들릴 정도로 크게 탄식했다. 서로가 만족 못할 스무고개가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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