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샘플
일상적인 분위기의 샘플
(3090자)
“스승님, 배고파요!”
“이제 더는 못 움직이겠어요…”
바닥에 누운 엘릭 형제가 칭얼댄다. 목소리에는 힘이 없다.
“저녁 먹을 시간이긴 하네. 나머지 수업은 밥 먹고 마저 하자.”
엘릭 형제한테 향하던 새카만 시선이 노을로 물들여진 하늘에 꽂힌다. 밖이 어두워진 걸 확인한 이즈미가 허리에 손을 얹는다.
“오예!”
두 아이가 동시에 거수하며 환호한다. 눈에 생기가 돈다. 그 광경을 본 이즈미가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소리 없이 웃고선 식품 창고에 들어간다.
“… 이런.”
창고에서 나온 이즈미가 미간을 찌푸린다.
“왜 그래요, 스승님?”
“저녁으로 스튜를 만드려고 했는데 재료가 부족하네. 감자 여섯 개만 사와, 에드.“
이즈미가 에드의 손에 동화 몇 닢을 쥐어준다.
“네!”
“스승님, 저도 형이랑 같이 갈-“
알폰스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스승님 성격이라면 형이 돌아올 때까지 훈련시킬 게 뻔해, 얼른 도망가야지.
“넌 여기 남아서 나랑 마저 대련해야지?”
아니나 다를까, 이즈미가 튀어나가려던 알폰스의 뒷덜미를 잡는다. 새카만 눈이 형형하게 빛난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알폰스의 눈에 비쳐 귀신이 된다.
“형…!”
붙잡힌 알폰스가 짧은 단말마를 남긴다. 아이가 몸을 바르르 떨며 손을 뻗는다. 그 모습이 마치 맹수한테 붙잡힌 새끼 사슴과도 같다.
“잘 다녀오마, 아우야.”
알폰스의 소리 없는 비명을 뒤로 한 채 에드가 떠난다. 간절한 금빛 시선이 점으로 변하는 형을 따라붙는다.
*
“감자 여섯 개, 감자 여섯 개~”
에드가 작은 발을 옮기며 흥얼거린다. 짧게 주어진 휴식이 달콤해서 웃음이 절로 나온다.
“어디 보자…”
신이 난 아이는 혼잣말을 멈추지 않는다. 금색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야채 가게를 찾는다. 아직은 이곳의 지리가 익숙하지 않아 길을 헤맨다.
“안녕, 오빠. 좀 도와줄까?”
귓가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린다. 에드가 고개를 돌리자 이국적인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웃는다.
“뭐?”
에드가 눈을 휘둥그레 뜬다.
기척이 전혀 안 느껴졌는데, 언제부터 옆에 있었지?
“길을 잃은 것 같길래. 외지인 맞지?”
“그렇긴 한데…”
에드가 눈앞의 아이를 훑어본다. 작은 체구의 아이는 기껏해야 초등학생으로 보인다.
너무 어리지 않나? 이런 꼬마가 길을 알까?
본인도 꼬마면서, 에드는 답지 않은 허세를 부린다.
“못 믿는 눈치네. 싫으면 그대로 계-속 길 헤매고 있던가.”
미아가 입꼬리를 내린다. 몸을 홱 돌리며 손을 흔든다. 돌아서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한다.
“도와줘!”
분위기에 휩쓸린 에드가 미아의 팔을 붙잡는다. 목소리가 다급하다.
“뭐라고?”
미아가 고개를 돌린다. 오른쪽 귀 옆에 손을 대며 듣는 시늉을 한다. 이를 드러내며 웃는 표정이 얄밉다.
“… 도와달라니까!”
후회가 썰물처럼 밀려오지만, 에드는 결국 항복한다. 현지인의 도움이 있어야 길을 빨리 찾을 테고, 무엇보다도…
쪽팔리기 때문이다. 한 번 뱉은 말을 취소하는 건 체면이 서지 않는다. 에드가 이상한 구석에서 자존심을 세운다.
“잘 생각했어!”
미아가 반색한다. 아이가 계산적으로 눈을 빛내며 에드한테 다가선다. 구보나 다름없는 걸음이다.
“야채가게는 어디야?”
왜 이렇게 느낌이 구리지? 대화를 길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막연하게 불길한 예감이 든다. 에드가 도끼눈을 뜬다. 반사적으로 주먹을 꽉 쥔다.
“여기서 금방이야. 한 블록만 더 걸으면 돼!”
푸른 시선이 짧게 에드의 주먹에 머무른다. 미아가 금세 눈빛을 주워 담는다. 검지를 들고 어딘가를 가리킨다.
“그래? 생각보다 가깝네.”
“맞아. 그런데 더블리스는 길이 은근히 복잡하니까, 내가 없었으면 바로 옆에 두고도 못 봤을걸?”
“… 길 안내나 마저 하시지?”
에드가 날카롭게 반응한다. 매서운 눈으로 미아를 째려본다.
“뭐야, 도와주는 사람한테 태도가 왜 이래? 오빠 어디 가서 성격 더럽다는 얘기 많이 듣지?”
미아가 어깨를 으쓱인다. 지지 않겠다는듯 사나운 눈으로 에드를 올려다본다.
“……”
정곡을 찔린 에드가 입을 꾹 다문다.
미아가 한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두 아이는 금세 야채 가게 앞에 도착한다. 갖가지 색의 싱싱한 채소가 진열대를 장식한다. 그 앞을 지키고 있는 건 덩치가 큰 남자다. 아이들이 다가오는 걸 본 그의 얼굴이 굳는다.
“야, 고마ㅇ…? 뭐야, 벌써 갔어?”
뒤를 돌아보니 미아는 온데간데없다. 에드가 의아해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성격 참 급하네. 고맙단 말은 듣고 가지.”
에드가 괜히 뒷머리를 긁적인다.
“에라이, 모르겠다! 아저씨, 감자 여섯 개만 주세요.”
“1000 센즈야.”
“네! … 어? 뭐야, 돈이 어디 갔지?”
주머니를 뒤적이던 에드의 눈이 커진다. 몇 번이고 주머니를 헤집고, 신발까지 벗어 탈탈 털지만 동화 한 닢도 나오지 않는다.
“너도 당했구나.”
남자의 목소리가 처량하기만 하다.
“당하다뇨?”
“저 꼬마는 소매치기거든. 나도 저번에 지갑을 뺏겼는데, 훔치지 않았다고 잡아떼니 당해낼 수가 없었지. 싹수가 아주 노란 녀석이야.“
마음 아픈 기억을 떠올린 그가 미간을 찌푸린다.
“뭐야, 그럼 진작 알려줬어야죠!”
에드가 소리를 꽥 지른다. 작은 몸에 어울리지 않는 성량이다.
“왜 날 탓하냐?! 알려줄 틈이 없었다고!”
“에이씨… 그럼 저 녀석이 어디 갔는지라도 알려줘요!”
“뭐, 에이씨? 너 어른 앞에서 아주 못하는 말이 없,”
“아, 됐고! 얼른 알려줘요! 저 급하다고요! 자꾸 시간 끌면 채소 다 밟아버릴 줄 알아!”
에드가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채근한다. 아이가 발을 들어 올리며 그를 위협한다.
“뭐 이런 막무가내가 다 있어?”
“밟는다?”
“아, 알았어! 저 식당 옆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던데?“
채소를 지키고 싶었던 가련한 남자가 검지로 식당을 가리킨다.
“좋았어. 망할 꼬마… 잡히기만 해봐, 아주 작살을 내줄 테다!”
에드가 성난 황소처럼 뛰쳐나간다. 내딛는 발걸음에 분노가 실리고, 금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실려 휘날린다.
“저렇게 성격 더러운 꼬마는 또 처음 보네.”
점으로 변하는 에드를 보면서 남자가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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