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플라스파
앨범에는 양갈래로 땋은 갈색 머리의 소녀가 씩씩하게 웃거나,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만들고 있으나, 유독 한 사진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삼각 고깔모자를 쓰고, 분하다는 듯 포크도 없이 손으로 레밍턴 케이크를 열심히 먹어 치우는 현장이 생생하다. 얘는 뭐 때문에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울면서 먹었나. 답은 어렵지 않았다. 좌측 하단에는 다른 사진처럼 찍어준 가족의 코멘트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일 축하한다, 우리 쿠키, 다음에는 이기기를 바라마. 사진과 그 앨범의 주인인 스파토데아를 번갈아 흘겨 본 플란넬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누가 보면 이게 생일인지, 아니면 처음으로 펑펑 눈물 짰던 날이라 기념으로 찍은 건지 모르겠네.” 검정 가죽 점퍼 차림으로, 언제나 듣는 이를 살살 간지럽히듯 말로 툭툭 건드는 일은 곧 플란넬의 습관이었다. 그에 못지않게 곧바로 탄력 넘치는 스프링처럼 반응하는 스파토데아는 플란넬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씩씩거리는 소녀는 사진 말고도 코앞에 있다.
“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확실한 생일 기념 사진이거든!”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플란넬이 작은 불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람처럼 휙 넘겨버리는 것 또한 두 사람의 일상이었다. 그제야 눈에 덜 들어왔던 좌측 하단의 숫자도 시선에 잡혔다. 1월 10일. 뜨거운 여름을 쏙 빼닮은 소녀가 세상에 나타난 날이었다.
집에 돌아온 플란넬은 혹여나 고지서 납부일 같은 시시한 날들에 가려져 까먹지 않도록, 흔치 않게 펜을 꺼내 달력에 휘갈겼다. 꼬맹이 생일. 아마 이 날이 머지 않게 된다면, 플란넬은 파트 타임을 조금 더 늘려서, 어떤 선물을 주면 좋을지 고민하며 머리를 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줄곧 혼자였던 생활에 타인이 끼어드는 건 분명히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그 대상은 혈연 관계도 아니었지만, 그것이 어떻든 전혀 신경 쓰지 않게 된 게 단순히 길거리의 ‘악연’뿐이었는지. 의료비를 걱정하던 때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었다.
옆에서 플러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트로 이뤄진 부리로 달력을 콕콕 눌렀다. 그러고선 무슨 뜻이냐는 듯 플란넬을 바라봤다. 유일한 가족도 이런 걸 본 적은 또 처음이었을 테니, 플란넬은 자신의 전자 애완 에뮤를 살살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꼬맹이의 생일도 이제 조금은 중요하다는 거지. 주인의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플러피는 평소처럼 플란넬의 팔에 기대 머리를 부비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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