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우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그러니 우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6

하곡

원고 by 인간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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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곡은 맹가가 도착한 지 이틀 뒤에야 도착했다.

운성은 연휴가 끝난 탓인지 일련의 사건 때문인지, 혹은 그 둘 다인지 온통 어수선했다. 운이 좋아 하남성 근처에 있어 이틀만에 달려온 것이지, 타지에 있었더라면 합류는 더 늦어졌을 것이다. 역참에 말을 맡기고 안장에서 뛰어내리기 무섭게 맹가가 평소처럼 침착한 낯으로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하곡은 예에 맞는 인사는 모조리 까먹은 채 본론부터 냅다 꺼냈다.

“희는요?”

“… 진정해. 이산 장군도 있다. 희는 다른 곳으로 간 것 같아.”

“어디로요?”

“그걸 이제 알아보러 가는 길이다. 서천 상단의 상단주가 너 아니면 이야기를 안 하겠다고 해서.”

“예?”

정신을 붙잡을 틈도 없이 하곡은 상단주와 독대하고 있었다. 상단까지 가는 동안 맹자와 이 장군이 알려준 정보가 귓가에서 빙글빙글 맴돌았다. 이명처럼 남은 정보들은 상단주가 들고 있던 부채를 까닥이는 순간 사라졌다.

하곡은 그제야 이 넓은 방에 알 수 없는 향이 들이차 있음을 깨달았다. 수행원이 한둘은 붙어있어야 할 텐데, 맹자를 대신해 그를 안내한 총관도 보이지 않았다. … 오롯이 그와 상단주, 둘뿐이었다. 상단주가 눈꼬리를 비스듬하게 접어 웃었다.

“서청입니다.”

“… 아, 하곡 정제두입니다. 편하게 불러주십시오.”

“불혹이 다 되어가신다고 들었는데 제가 편히 불러드릴 순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무어가 궁금하십니까?”

“예?”

“제가 굳이 이 장군과 대리인께 알려드리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저도 상인인지라 이 바닥에서 신뢰 하나로 먹고 살거든요.”

“지금 아이 목숨을 가지고 금전거래를 하고 있는 겁니까?”

“제가 회암의 신뢰보다 당신의 부탁을 우선할 이유를 대어보란겁니다, 선생.”

상단주가 어깨를 으쓱였다. 십칠 년밖에 살지 못한 아이의 목숨이 걸려있는데도 한없이 가벼운 태도였다. 하곡은 문득 이 치가 아득히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상단주의 눈이 햇빛을 받아 요사스럽게 반짝였다.

“회암- 그러니까, 주희는 본인의 위치를 ‘유’가 알길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우리도 하남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도록 안내해주었고요. 우리는 회암과 반년 간 함께했고, 그 기간만큼 쌓인 신뢰가 있습니다. 그게 당신의 부탁 하나로 무너질 건 아닙니다.”

“말마따나 반년이나 함께한 정이 있지 않습니까. 희가 객지에서 또, 이런- 부도덕한 폭력을 당하는 게 안타깝지도 않으십니까?”

“죽기를 바라는 이에게 저희가 무얼 하겠습니까?”

“… 뭐라고요?”

하곡은 문득, 부채소리에 사라졌던 맹자의 말을 떠올렸다. 난세를 몇 번이나 겪은 노장이다. 그에게 죽음과 삶은 기의 소멸과 혼합 같은 것이니 유학의 잣대를 들이대어선 안 된다. 같은 말이었던가. 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의 시선에서 용케 벗어나 살아온 상단주가 부채를 팔락였다. 하곡은 반사적으로 입술을 짓씹었다. 멍해지려던 의식이 일순 돌아왔다.

“그걸, …… 그걸, 기의 작용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단주님.”

“말해보세요.”

“도가에 대해선 견문이 일천하나…… 단순히, 이십여 년 전의 폭군과 낯이 비슷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도일수는 없습니다. 희는 그저, 열일곱 먹은, 제대로 공부할 기회도 얻지 못한 아이일 뿐입니다.”

새가 날갯짓하는 소리가 얼핏 들린 것 같았다. 하곡은 숨을 삼키곤 말을 이었다. 기실 무슨 말을 내뱉고 있는지 저조차도 잘 인지하지 못했으나 틀린 말을 내뱉고 있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평생 그런 걸 모르고 지내게 할 수 없는 건 압니다. 그래도, 적어도 지학은 넘고나서, 역사를 이해하고 그 과오를 알 수 있을 즈음에 천천히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헌데 충년도 못 되어서 모든 걸 알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제가 희의 보호자였는데, 그 어린 애가 어른들에게 털어놓지도 못하고 혼자 앓다가 낸 결론이 유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나가 죽는 거였답니다. 그런, 그런 게… 그런 게, 아비 노릇 하던 이로써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 애가 기로 흩어져 죽는다면 차라리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건 그들이 잘못한 거라고, 네가 이렇게 서러운 일을 당할 이유가 없다고 말해주어야 해요. 그러려면 제가 희를 찾아야 하고요.”

“그러면 말입니다, 선생.”

상단주는 기꺼이 손을 뻗어 하곡의 식은땀을 닦아주었다. 그런 줄도 몰랐던 탓에 그의 낯이 순식간에 홧홧하게 달아올랐으나 상단주는 개의치 않아보였다.

“그 애가 이걸 바라지 않는다면요?”

“…….”

“뭐, 좋아요. 다 그렇다고 칩니다. 헌데 주희가 정말로, 당신의 사과나 감사는 필요치 않고 자신을 잊길 바란다면 무어라고 할 겁니까?”

“그러면…….”

하곡은 새어나올 것 같은 울음을 꾹 삼켰다. 희도 어쩌면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하곡이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제가, … 유가, 그 애를 아주 많이 사랑했노라고. 너를 잊어도 우리는 여전히 네 가족일 것이라고, 그렇게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확히 일각 뒤에, 하곡은 거의 엎어지다시피 달음박질해 본관을 뛰쳐나왔다. 역참으로 뛰어가는 발걸음이 다급했다.

“사, 사천이래요.”

“뭐?”

“사천이래요!”

상황을 눈치챈 이산이 급히 파발매를 띄우러 관으로 돌아가고, 상단주가 느긋하게 걸어나오며 맹가를 일별했다. 하곡이 뛰어간 자리에 점점히 물자국이 남았다.

… 새외로 간다고? 왜? 북해로 가고자 했다는 말을 들어도 새외와 연결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솟은 방풍림 사이로 말을 몰면서도 영 이해되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어려웠던가? 그냥, 그냥 못 견디겠다고 도움을 청하면 됐는데. 그러면 기꺼이 받아주었을텐데. 질책도 비난도 없이 고생했다고 달래주었을텐데.

… 그 정도도 못 받아들여줄 것 같았나? 알지도 못하는 이에게 삶을 부정당하는 것보다 유에 있는 게 더 어려웠나. 유에서 우리를 보는 게 돌을 맞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나….

“하곡!”

“… 서, 선생, 님.”

“…… 양명은 선산에 있지. 진정해라. 왜 사천이라던?”

말이 두어 번 발을 굴렀다. 고삐를 꽉 틀어잡고 몇 번이나 숨을 내쉬었는데도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는 잘 굴러가지 않는 머리로 한참을 고민했다.

“유, 일하게 새외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사천밖에 없으니까요.”

“… 그래, 그렇지. 북해로 가는 길은 황실도 뚫지 않았으니까.”

“사천에서 이어지는 새외라면 운남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래.”

“운남은 시신 발견이 유독 어려운 곳이니까, 거기로 갈 거라고…….”

하곡은 끝내 서러워져 울었다.

열흘을 꼬박 달려 도착한 사천은 폐허에 가까운 광경이었다. ‘주’가 건재했을 때는 고관대작들의 겨울 별장 따위가 즐비했던 곳이다. 대다수는 심판 당시 목이 날아가거나 재산이 몰수되었고, 또 얼마는 민중의 공분을 샀으므로 멀쩡한 건물이라곤 찾기 어려웠다.

개중 몇몇 곳에선 남루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귀족이 떠나고나서 비를 피하기 위해 한둘씩 멀쩡한 집에 모여든 것이 꽤 커진 모양이었다.

“예전엔 사천이라고 하면 가장 번화한 곳을 이야기했는데.”

“거긴 항주잖아요.”

“장강 이남에선 항주가 제일이었지. 사천도 꽤 괜찮은 곳이었어.”

이십여 년 전의 영광을 이야기하기엔 내정된 시간이 너무 짧았다. 외지인을 향하는 시선도 좋지 않았다. 어디에서는 시체를 태우는 듯 퀘퀘한 시취와 재 향이 뒤섞여 났고 어디서는 서로 치고박고 싸우는지 둔탁한 소리와 함께 옅은 피비린내가 났다. 맹가는 말의 고삐를 잡아끌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기 전에 희를 찾는 게 우선이었고, 사천의 뒷수습은 차후 부관을 보낸 이산을 통해 수도에서 지휘할 것이니 당장 그들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사천에서 멀끔한 낯의 청년이 말을 데리고 돌아다닌다는 건 곧 관리와 통용된다는 걸 알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이가 지긋한 -혹은 어쩌면 그렇게 보이는- 이들 다수가 불신의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곧 옆에 매달려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멀찍히 물러났다. 공신의 낯이 온 천하에 퍼졌다지만은 사천의 대다수는 공신이 주를 몰락시키면서 그 반동으로 빈곤해진 이들이었다. 얼마는 발악하던 고관대작에게 착취당하다 버려졌고 얼마는 그 대작의 자식뻘 되는 이였다.

다행이라면 어린아이들이 아직 세상 물정을 다 아는 건 아니었다는 점이다. 하곡은 능숙하게 제 언변과 특유의 분위기로 아이들을 끌어모았다. 무뚝뚝한 맹가와 달리 서글서글한 낯이 인기를 끈 듯 했다. 아이들은 주로 일과와 요즘 유행하는 노랫가락 -누가 늑대의 간을 고아내어 먹겠단 생각을 한 건지- 따위를 이야기했다. 하곡은 참을성 있게 들어줬다.

“희도 이랬었는데.”

“걔 이제 열일곱 살이다.”

“그래도요. 그땐 귀엽지 않았어요?”

“음.”

“양명 선생님도 귀엽단 이야긴 하지 마시고요.”

“내 나이즈음 되면 전부 귀여워보인다만.”

“아이고, 맙소사.”

마지막으로 돌아가는 아이를 일별한 맹가의 시선이 먼 곳에 가 닿았다. 새외는 황실의 권력 밖이다. 타국과 직접적인 경계가 되는 만큼 유일한 통로에 군이 없을리가 없는데, 소식 하나 없는 것이 불안했다. 이미 나간건지, 아니면 사천에서 숨죽이고 맹가가 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지. 어느쪽이던 희소식은 아니었다. 유의 아이가 유를 두려워하는 것이 당연해서는 안 되었다.

주희의 소식은 정말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들려왔다.

“어……. 아, 뭐 가르쳐주고 다니는 오빠는 봤는데!”

“어디에 있는데?”

“화장터 쪽에 있을걸요? 뭐… 뭐라더라. 그, 시체 수습해주는.”

“염장이, 바보야. 그 형이 알려줬잖아.”

“네, 염장이! 그 일도 같이 해요. 어른들 일하러 가면 그 오빠가 우리랑 같이 놀아주는데.”

주희가 염장이 노릇도 할 줄 알았던가. 하곡의 시선이 허공에서 맹가와 얽혔다.

“뭘 가르치는데?”

“뭐라고 했더라. 그…….”

“나, 나 알아. 모든 것은 마음 안에!”

“…… 마음 밖에는 어떤 이치도, 사물도 없다고?”

“맞아요! 어떻게 알아요?”

주희가? … 성리학이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하던, 그 애가? 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난 것 같기도 했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단 낯으로 새가 울듯 재잘거리며 말을 잇고 있었다.

“으응, 그거 말고. 성선설이랑 성악설도 알려줬어요. 그러면서 우리는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막 그런 말도 하고.”

“여기서 선하게 살기 어려우면 나중에 커서 다른 사람들 도와주고 그러랬어요. 자기가 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 화장터에 있다고?”

“거기서 잘 보이니까 그렇지 않을까요?”

“… 맹자님.” 하곡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호명했다. 학자로 키운 적은 없었지만 제 의견을 함부로 굽혀도 된다고 가르친 적이 없었는데, 어째서? …… ‘주희’가, 그만큼 싫었나? 하곡은 애써 표정을 갈무리하고 아이들의 손에 당과 한두 개씩 쥐여주어 돌려보냈다. 살풍경한 마을 사이로 웃음소리가 울려퍼지나 싶더니 곧 사라졌다.

사천은 무법 지대다. 여기까진 관의 손길이 닿지 않고, 또 새외로 향하는 길목인만큼 최소한의 안전장치만 되어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다수에게는 별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청두 안에는 있군.”

“화장터가 이런 구도심 안에 있습니까?”

“화장터라고 할 것도 없어. 매일같이 쌓이는 시체를 처리할 곳이 없어 그나마 인근에서 가장 큰 도시에 던져둔 게 쌓이고 쌓여 화장터 노릇을 하는거지. … 내가 주자가례를 읽힌 적은 없는 것 같은데.”

“한동안 서고에 틀어박혀서 안 나오던 적이 있었잖아요. 그때 읽은 거 아닐까요.”

“일단… 가보는 게 좋겠다. 전서도 보내야 하니까.”

화장터엔 온통 음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주희 전에 염장이 노릇을 하던 노파에게 물어보아도 아는 것이 없다는 답만 계속해서 돌아나왔다. 새삼스러울 정도로, 하곡이 지나온 사천의 광경은 주희랑 영 어울리지 않아 머리 한 구석에서 무언가 어긋나는 것 같았다.

하곡이 아는 주희는 지식을 습득하는 걸 즐거워하던 아이였다. 한창 어릴 땐 밤을 샐 기세로 책을 읽길래 그만 읽고 자자고 한참을 설득했던 기억이 선명했다. 손에 종이 냄새가 밸 정도로 좋아하던 희와 시취, 잿더미, 타들어가는 향을 연결하기란 영 쉬운 것이 아니었다. 희는 뭔가, 좀 더 청명한 곳에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숲, 물, 새소리, 그런 것들에 휩싸여서…….

“…… 산에 있는 건 아닐까요?”

“산?”

“사천은 분지잖습니까. 당장 여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도 산길이 있는데요.”

“산길이라고 해도 험해.”

“공림도 산이었어요. 희라면 익숙해할 법 합니다.”

그러니, 하곡이 주희를 그런 곳에서 찾은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어디서 물들인 건지 머리카락이 얼룩덜룩하긴 했지만, 또 어디서 맞은건지 이마를 타고 피가 흐르고 있긴 했지만, 붙잡은 손에는 만져보지 못한 굳은살이 박혀있었고 옷깃 사이로 얼핏 보이는 살갗 위에 흉터가 가득했지만, 종이와 먹과 책의 향이 아니라 전쟁터와 비슷한 향이 났지만, 그래도……. 하곡이 애타게 찾던 희가 맞았다. 어쩔 줄 모르고 시선부터 피하는 것도 오랜 버릇이었다.

“돌아가자, 희야.”

하곡은 새어나오려는 울음을 꾹 참고 손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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