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우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그러니 우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7

17세 - 사천

원고 by 인간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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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패다. 실수했다. 하지만 어디부터? 주희는 숨을 삼킨 채 제 손목을 붙든 남자- 하곡을 가만 바라보았다. 산동에서 사천까지 오는 것이 이렇게 빨리 걸릴 줄 몰랐다. 관리 둘이 사천에 왔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나갔어야 했나? 아니, 나가지 못했겠지. 분명 저를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 때문이라도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다가 아래서 붙잡혔을 것이다.

그는 일평생 실수했고 언제나 후회했다. 새 후회가 어깨 위로 쌓였다. 아, 그날 그 절벽에서 돌을 붙잡지 말았어야 했다. 강에 빠져죽을 걸. 바닷가로 가지 말 걸. 장강을 타지 말 걸. 상단과 접촉하지 말 걸. 살아있지 말 걸 그랬다…….

헛숨을 들이키자 하곡이 제 손을 좀 더 간절하게 붙잡아왔다. 주희는 그의 버릇을 알았다. 십여 년 전에는 주희가 그의 손가락 하나를 겨우 잡을 정도로 손이 작았으므로 하곡은 언제나 주희의 손을 더듬으며 그가 잡기 편하게 손바닥을 펼쳐주곤 했다. 그 버릇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그럼 열일곱 살의 주희는 불현듯 생각한다. 아, 다섯 살 때 흑도의 칼에 맞아 죽어버릴 것을 그랬다.

“내가,” 하곡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주희는 이맛가에서 눈꺼풀 위로 떨어지는 피를 다른 손으로 대충 문질러닦았다. 흙먼지며 잿가루가 상처에 들어가 따끔거렸지만 고통을 호소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 선생님도, 순자님도, 맹자님도 다들 널 찾았다. 집에 가자, 응? 피가 그렇게 나는데 치료도 안 하고 또 어딜 가려고 그래.”

“…….”

“양명 선생님이 잠도 못 이루시고 그랬다. 지금은 괜찮으시지만… 그래도 신년이잖니. 몇 달만 더 있으면 청명인데 귀향해야지.”

주희가? 그는 탄식하듯 웃음을 뱉었다. 시야가 온통 붉은 피로 엉망이었지만 기이하게도 돌아가자는 말 하나만큼은 선명히 보였다.

“전 못 갑니다, 선생님.”

그리고 대체로, 그에게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그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주희는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옷소매로 이마를 훔치자 피가 소매 끝에 진하게 배어나오다 못해 피부를 붉게 물들였다. 그 손으로 하곡을 밀어내자 그가 몇 걸음 물러났다. 의식했다기보다는 밀어내니 밀린 것에 좀 더 가까워보였다.

손아귀가 헐거워지자 주희는 틈을 타 손을 빼냈다. 잡지 못하게 등뒤로 손을 숨기자 하곡이 당황한 듯 눈을 빠르게 깜박였다.

“왜, 왜?”

“…… 잔적이 어딜 간단 말입니까? 복건성도 아니고, 하물며 선산이라니요. 파문당한 이가 어딜 가겠다고.”

“네가 왜 잔적이니, 희야. 너는 그 황제가 아닌데.”

“다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겠죠.”

“희야.”

希라. 주희는 이름을 곱씹었다. 朱熹도 朱希도 같은 발음으로 부른다면 황제가 곧 그고 그가 곧 황제이지 않겠는가? 이름은 어떤 것을 명명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 중 하나였다. 주희가 황제와 같은 발음으로 불리는 이상 황제는 그림자처럼 희에게 달라붙어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선산에도- 그 사당에도 황제의 그림자가 남아있을 것이다. 주희가 살아있는 내내. 어쩌면 죽고나서도.

사람은 이름을 따라간다던데. 왜 항상 바라는대로 되지 않는걸까? 자조에 가까운 웃음이 새었다.

“… 선생님께 안부 전해주세요.”

“희야, 그러지 말고……. 그러면, 차라리 인사만이라도 하자. 네가 하산하고 싶다면 그리 해줄테니 너 살아있다고 안부는 전해드려야 할 것 아니니. 거기가 네 집인데.”

“…….” 제 집은 없어요, 선생님. 주희는 말을 꾹 삼켰다. 아무에게도 민폐를 끼치지 않고 죽고 싶었다. 그러니 하곡에게 날선 말을 하는 건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돌아가자, 희야.”

그는 손을 내치지도 붙잡지도 못한 채 그저 못 박힌 것처럼 서 있었다….

“아니, 너는 돌아가야 한다. 네가 그걸 바라지 않던, 혹은 갈 수 없다고 해도.”

쿵, 하는 소리가 적막을 깼다. 주희는 고장난 것처럼 몸을 돌렸다. 온통 붉은 것 사이로 언월도가 번쩍이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주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기실 떠돌아다니는 내내 모든 상황이 그랬지만- 눈앞에서 짙은 궤적을 그렸다.

“내가 네게 네 스스로의 몸을 소홀히 하라고 가르쳤나?”

“… 맹자님.”

“대답해, 주희.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덕치가 가능하던가? 그간 가르침받은 것이 우스웠나?”

목소리에 노기가 서려있었다. 산바람이 그들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며 스산한 소리를 냈다.

“뭘 하고 싶은건지, 어떤 걸 바라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네 마음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이 심즉리를 가르쳐? 이 자리에 양명이 없어 망정이지, 있었다면 널 아주 크게 혼냈을거다. 수신도 못 하는 이가 무슨 연유로 격물을 하겠다고!”

… 성리학은 버린 지 오래 되었다. 가르침을 행할 이유를 모르겠어서 그랬다.

주희는 관성적인 사죄의 말 대신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가 맹자의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어떤 말을 해야 맹자가 노기를 누그러트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뭘 선택해도 더한 분노가 따라붙을 것만 같았다. 이제 이마에서 흐르던 피는 뺨을 타고 흘러 목깃을 적시고 있었다.

“돌아가지. 하곡, 짐 챙겨서 역참으로 와라. 장군의 파발이 왔다면 관에서 마차를 빌릴 수 있을거야.”

“희야, 가자. 상처 치료도 하고……. 이거 봐라, 이마가 다 벌어졌네.”

“…….”

도망갈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이 적기였다. 주희는 사천에 남은 여름 별궁의 위치를 기억했다. 거긴 삼림과 떨어져있고, 사천의 숲은 언제나 우거져 있었으며, 맹가와 하곡은 장강의 산세에 익숙하지 않다. … 이래도 괜찮나?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이제 하곡은 주희의 손을 약하게 잡고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제 상처를 보느라 이마를 훑은 탓에 그의 손에도 핏자국이 새붉게 남았다.

맹자는 선두에 서 있었다. 그러니 지금이 기회였다.

“…….”

하지만 주희가 어찌하여 성인의 말을 어긴단 말인가? 그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주희는 문득 제 어깨를 짓누르는, 거진 십칠 년간 행한 유학의 가르침을 깨닫곤 한참 눈을 깜박였다. 이럴거면 도망치지 말지 그랬나. 누군가가 귀에 대고 비웃었다. 자결할 줄도 모르는 주제에 왜 도망쳤니, 주희? 무작정 뛰쳐나와서 네 죗값이 버겁다며 울기나 했지. 네가 일년 동안 한 일이라곤 모든 책임을 남에게 전가한 채 세상에서 네가 가장 괴롭고 불행한 사람인 것마냥 자기연민한 것 뿐이로구나. 무능한 것, 이제 네가 뭘 할 수 있지? 이런 식으로 네 스승들에게 대못을 박느니 목매달고 죽지 그랬어. 응? 그때 분명 기회가 있었을텐데, 주희.

과한 자기연민과 합리화는 죄였다. 기실 그런 걸 할 필요도 없었다. 주희를 동정하는 일은 세상의 모든 비천한 일들 중에서도 가장 위位가 낮은 것이었다. 그는 그 행위보다 천한 것이므로 동정할 이유는 없었다. 그간 한 모든 것들은 불요한 변명이었고 같잖은 동정이었다.

주희는 맥없이 하곡에게 이끌렸다. 그제야 피가 부족해졌는지 눈앞이 자꾸 빙글빙글 돌았다. 산 아래에 도착하고나서야 세상이 휘청였다. 티내지 않으려 애쓴 것이 무색하게 몸이 앞으로 확 고꾸라졌다.

“희야!”

“… 그냥 빈혈입니다. 괜찮아요.”

“쓰러지려고 했잖아.”

“그야 피가 났으니까요……. 거처에 가서 치료 좀 하고 가도 되겠습니까.”

“어딘데?”

“… 화장터 근처입니다. 청두에서 가장 큰 건물요.”

어디인지 짐작한 맹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주희는 길게 숨을 내뱉곤 몸을 일으켰다.

주 태조 집권 당시에 사천은 일종의 계획도시였다. 수도 다음으로 국학이 설치되어 성리학을 증진시킨다는 목적으로 재조성했기 때문이다. 정문에서 남쪽을 향해 뻗어나가는 대로를 중심에 두었기 때문에 청두의 가장 큰 건물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방금 하곡과 맹가가 염장이 노파에게 이야기를 들었던 그 건물이기도 했다.

한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을 벽은 무너졌고 색색으로 칠해졌던 기둥은 색을 잃었으나 하곡은 이 장소를 알았다. 여태껏 깨닫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없을 만큼 익숙했다.

“… 황궁?”

“별궁입니다.”

“겨울 별장이었지. 사천은 사시사철 따뜻하니까.”

그야 십여 년 전에 그가 직접 불태운 곳과 똑같았으니까. 주희와 맹가가 익숙하게 돌더미를 타넘었다. 하곡은 한발짝 늦게 둘을 따라갔다. 아직도 불이 꺼지지 않았는지 곳곳에서 탄내가 났다.

“그런 데가 화장터가 됐습니까?”

“사천은… 속절없이 무너진 주에 대한 반발심이 컸으니까요. 그만한 시체를 수습할만큼 큰 공간이 여기밖에 없었고.”

다 쓰러져가는 문을 열자 염장이가 주희를 마중나왔다. 옆에 어린아이 하나가 껴 있었다. 노파의 손에는 바구니가 들려있었고 어린아이의 손에는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책 하나가 들려있었다. 책등을 보니 시중에 파는 책이 아니라 누군가가 써준 책 같았다. 그 장소에서 책을 써줄 수 있을 만큼 글을 알고 지식이 깊은 건 주희밖에 없었다.

노파는 아무런 말 없이 바구니를 쭉 내밀었다. 그제야 약초 특유의 쓴내가 확 끼쳤다. 바구니를 받아든 주희가 잠깐 뒤돌아 고개를 꾸벅 숙이곤 어느 곳으로 사라지고, 어린아이가 책을 품에 안은 채 주희를 졸졸 따라갔다.

“금방 올 겁니다.”

하곡의 시선이 주희를 쫓아가는 걸 알았는지 노파가 먼저 입을 열었다. 주희가 그런 식으로 다쳐오는 게 익숙하단 낯이었다. 맹가가 곧 길게 숨을 내뱉곤 팔짱을 꼈다.

“… 오래 걸리지 않을테니 여기서 기다리지. 하곡, 희 따라가서 지켜보고 있어라. 또 어디로 도망갈라.”

“괜찮지 않을까요? 약속을 어기는 아이는 아니잖아요.”

“그게 벌써 오 년 전이다. 가서 보고 와. 바늘 다루는 일인데 상처 봐줄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있어야겠지.”

맹가는 -순황의 말을 빌리자면- 돌려말하는 재주가 없었으나 상황을 바꾸는 말은 할 줄 알았다. 그가 들으면 안 되는 내용이 나올 모양이었다.

하곡은 노파와 맹가를 번갈아보다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정치에 대해서라면 그가 의문을 가질만한 사안은 이 자리에 없었다.

곳곳의 잿더미가 움푹 파여있었다. 얼룩덜룩하던 머리카락의 이유를 알 것만도 같았다. 정원용으로 만들어둔 호수에 도착하자 그 옆에 앉은 주희와 어린 여자아이가 보였다. 아이가 손에 다 깨진 면경을 들고 주희가 그걸 보며 이마를 꿰메고 있었다.

… 호숫물은 탁했다. 바구니 안에 수통이 들어있었는지 근처 바닥에 가죽 주머니가 놓여있었다.

“희야.”

“아. …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다쳤으니 살펴보러 왔지. 약은?”

“이 정도는 안 발라도 금방 낫습니다. 괜찮아요.”

“그래도. 금창약 있으니 발라주마. 일어나지 말고 앉아있어.”

주변에 널린 게 온통 의료용품이었다. 손수건, 마취약, 진통제, 바늘, 실…. 순황이 주희에게 봉합까지 알려주진 않았으니 떠돌아다니는 새 익힌 것이 분명했다. … 전쟁이나 다툼 없는 시대였지만 주희에게는 아니었다. 하곡은 착잡한 표정을 숨기며 주희 앞에 무릎 꿇어 앉았다. 이마 곳곳이 색다른 피부로 덮여있었다.

“아프진 않고?”

“… 괜찮습니다. 진통제 먹었어요.”

“안 먹었어요.”

“청아.” 주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이를 제지했다. 청qīng. 맑을 청淸을 쓰나? 서청이 푸를 청靑을 쓰니 아마 맑을 청일 것이다.

“… 먹으면 바늘이 어딜 뚫고 들어가는지 감이 안 와서요.”

“됐다. 내가 무어 그런 거를 혼내겠니."

“…….”

“그냥, … 네가 아프겠구나 싶어서.”

“괜찮습니다.”

“네가 그렇다고 하니 그렇겠지만. 나는 처음 봉합했을 때 아팠어서 그런다.”

익숙해질 수 없는 것들 중 하나였다. 아마 하곡은 죽을 때까지 사람에게 쇠를 대거나 하는 일은 못할 것이다. 꼼꼼하게 약을 발라주고 몸을 일으키자 주희가 멋쩍은 낯으로 따라 일어났다. 한손에 청의 손을 잡고 있는 채였다.

“더 이야기하다가 오련?”

“아뇨, … 맹자께서 기다리고 계실테니 가야죠.”

“인사하는 것까지 막으실 분은 아닌데.”

“그래도요.”

실로 얼기설기 엮어둔 책이 청의 손에서 흔들렸다. 청이란 이름은 지어준걸까. 책에는 무슨 내용이 있나. 궁금한 건 많았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았으나 하곡은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알았다. 희가 사천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청에게 물으며 회포를 풀기엔 그에게 내정된 시간이 짧았다.

“인사하고 와도 된다. 맹자께는 내가 말씀드려놓으마.”

“… 예, 선생님.”

계속 지켜보고 있으면 희가 부담스러워 할 것 같았다. 하곡은 고개를 까닥이며 나직하게 웃곤 몸을 돌려 그가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맹가와 노파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어째 그가 자리를 비울 때보다 분위기가 엉망이었다. 노파는 툇마루에 앉아있었고 맹가는 그나마 덜 무너진 담장 벽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주희는, 하고 묻는 말에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돌밭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청이 생각보다 어른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이제 왔네요.”

“치료만 한다더니.”

“죄송합니다.”

관성적인 사죄였다. 본인도 알고 있는지 주희는 말을 내뱉자마자 시선을 피했다. 빤히 바라보던 맹가가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작게 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떠나기 전엔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고작 일 년 조금 넘게 선산을 떠나있었다고 유의 사람을 꺼려하고 있었다.

“가지. 원랑께 안부 전해주게.”

“정의공께도요.”

노파가 대답하곤 고개를 푹 숙였다. 하곡은 그걸 바라보다 따라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맹가를 뒤따랐다. 등뒤에서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일부러 걸음을 늦추자 곧 주희가 걸어와 보폭을 맞췄다. 탄내나 시취 대신 금창약 특유의 알싸한 향이 났다.

“인사는?”

“…… 아, 인사요.”

“왜, 사천이 좋아?”

“같이 지낸 사람은 나쁘지 않았으니까요. … 허락하신다면 다시 오고 싶긴 합니다.”

“그러니.”

“인사는 잘 했습니다.”

“그러면 됐다. 관에서 이 장군 명의로 마차를 내어줄거야. 그거 타고 선산으로 돌아갈거다.”

“그렇습니까.”

딱딱한 말투도 돌아다니면서 익혔을까? 하곡은 질문하는 대신 주희의 손을 가만히 붙잡았다. 무얼 말해도 믿어주고 싶다는 의지 표명이었으나 그대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였다.

“긴장하지 말고. 선산까지는 열흘 조금 넘게 걸릴거다.”

“… 예.”

“그래, 가자.”

잡힌 손을 한참 내려다보던 주희가 멋쩍게 웃었다. 관계 개선의 여지는 언제나 있다. … 희도 괜찮아질 것이다.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었지만 하곡은 그저 따라 웃었다. 지금은 잘잘못을 재기보다는 절대적인 신뢰를 주고 싶었다.

“이제 가면 언제 와요?”

“…….”

상엿소리 같은 질문이었다. 청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답을 미루니 재촉하듯 옷소매를 꾹꾹 잡아당겼다. 주희는 한참을 침묵하다 겨우 입을 열었다.

“몰라. … 못 올 수도 있어.”

“그럼 제가 보러가려면요?”

“공림까지 오려면 한참 걸릴텐데.”

“공부하고 싶으면 거기로 가라고 했잖아요.”

그야 주희는 좋은 스승이 되지 못하니까. 그는 청이 애지중지하는- 그가 언젠가 짤막하게 써 줬던 책을 힐끗 쳐다봤다. 아이들에게 심학을 가르쳐주면서 개념을 정리해둔 것이 마음에 든 모양새길래 엮어줬더니 답잖게 배움에 눈을 뜬 것 같았다.

“… 관아에 가서, 산서로 가고 싶다고 해. 그럼 사천을 나가는 마차편에 끼어서 내보내줄거야.”

배움을 청하는 이를 무시할 정도로 정부가 냉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주희는 말라가는 입술을 짓씹었다.

“거기로 가면 볼 수 있어요?”

“그럼 내게 연락이 올 거야. 누구를 찾아가야 하는지 적어줄게. 회암의 소개로 왔다고 하고.”

“성리학을 배우고 싶으면 산서로 가요?”

책에 서천상단의 총관 이름을 적던 찰나였다. 주희는 서혜의 이름 밑에 회암의 소개, 라고 덧붙이곤 책을 덮어 돌려주었다. 청이 말간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그럼요?”

“배우지 마. 위학이니까.”

그래도 되는 학문이었다. 주희는 그 대답을 끝으로 청의 손을 잡고 하곡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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