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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맺는 방법 0

맨 처음은. 우울한 이야기부터.

기상호는 갓난아이 시절에 부모를 잃었다. 남은 혈연은 없었다. 광활한 우주에 피가 조금이라도 이어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은 말도 안되긴 하지만, 법적으로 그와 이어지거나, 그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과거에는 고아원이라고 불렸던, 지금은 자립센터라고 불리는 곳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자립센터는 아주 먼 옛날의 인식과 다르게 여유로운 편이었다. 교육도,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도 남부럽지 않게 지원받을 수 있었다. 단 하나, 예체능 계열의 교육만 제외하면.

우주연합 입장에서 예체능은 사치에 가까웠다. 수요가 없는 건 아니지만 연합이 나서서 지원해줄 정도로 필요한 것은 아니랄지… 연합 입장에서는 예체능 계열보단 연구자나 아니면 아예 당장은 파일럿이 더 필요했다.

그래도 예체능 분야에 대한 지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민간의 투자가 전부라는 점이 한계여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특정 연령대 까지 였다. 하지만 그게 어디야. 라고 어린 12살의 기상호는 생각했다. 이제 일년. 지원은 끊기겠지만 그만 두기 전 까지 농구를 계속 하고 싶다. 그런 생각에 필사적으로 했고 어쩌다 보니 후원 홍보물에 얼굴을 내비쳤다. 그리고 어느 날 연락이 왔다.

농구, 계속 할 수 있단다. 후원자가 생겼거든.

그 때 느낀 감정은, 혼란이었다.

아이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먼저 기상호는 가족이란걸 잘 몰랐다.

갓난아이 시절 이미 부모를 잃었다. 추억할 수 있는 데이터 따위의 것들은 당연히 존재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일까. 그들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경험보단 관념에 가까웠기 때문에 날이 갈 수록 서서히 무뎌져갔다. 10살에는 이미 남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무뎌질 수록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한 욕구는 더 깊어져 갔다. 하지만 본디 태어나길 남을 대하는 데 서투른 채로 태어나서 연결고리를 맺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상대방에서 자신을 원하지 않으면 의미 없다고 여기는 성격도 한 몫 했다. 그런 모습은 농구를 할 때도 간간히 보였다.

그렇게 농구도, 관계도 포기해나가고 있는 와중에 갑작스럽게 후원자가 들어섰다.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좋은 일이 일어나면 나중에 더 큰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서 밤 중에 덜덜 떨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딱히 그렇게까지 대단하게 좋은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일어났을 때 눈 앞에 붕 떠있는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그에 대해 알려주었다. 성준수. 19살. A-0554 거주.


그 후 5년이 지났다.

5년간의 후원은, 비슷하게 후원받는 다른 아이들보다 여유있고 넉넉했다. 12살 처음 후원받을 당시 듣기로는 성준수라는 후원자는 준프로로써 받는 모든 월급을 후원에 사용하고 있는 모양이라 했다. 그게 정확히 어떤 액수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받는 모든 돈을 자신에게 후원한다는 것이 멋지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고, 무엇보다 상대방을 궁금하게 했다. 처음 보는 자신에게 왜 이렇게 까지 해주는 것일까? 꼭 만나면 고맙다고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 만나면.

5년간 그 후원자는 단 한번도 자립 센터를 들리지 않았다. 편지도 돌려주지 않았다. 그래도 기상호는 1년간은 꾸준히 편지를 보냈다. 지쳐서 포기하긴 했지만.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 후원자에 대해, 처음엔 그저 초조하고 불안해하다가 이후에는 모든 감정이 분노나 배신감으로 바뀌었다. 왜 단 한번도 자신을 보러 오지 않는걸까? 아니면 적어도 편지 한 통 주었다면 이렇게 기다리지 않았을 것 같다. 아니다. 사실 받으면 더 받고 싶어질 것 같다.

그렇게 후원 받은 지 3년째 즈음에 디스플레이에서 움직이는 성준수를 처음 봤다. 그는 A팀 소속을 증명하는 유니폼을 입고 잠깐 뛰다가 다시 벤치로 돌아갔다. 아마 그 때가 그의 첫 프로 시합이었을 것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뛰는 모습, 공을 던지는 포즈, 그에 맞춰 그려지는 포물선. 농구가 이렇게 아름다운 스포츠였나? 그 때를 기점으로 기상호는 성준수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 날부터 몰래 그와 새로운 관계성을 정립했다. 그에 대한 프로필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버지…. 아빠…? 이건 너무 가까워보이나?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다른 구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 17살의 기상호는 마음속에 꽁꽁 숨겨둔 아버지를 만나러 몰래 센터를 나섰다.

A팀이 소속된 구역은 A-5006이었다. 자립 센터는 B-1045로 섹터가 달랐다. 이 경우 우주선을 필수로 타야했다. 둘 사이를 이어주는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기상호는 지금까지 모은 용돈 중 일부를 사용하여 좌석을 샀다. B-1045에서 오전 11시에 출발하여 A-5004에 도착하기까지 2시간이 걸렸다. 오후 1시. 일단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오후 2시 30분쯤에 섹터 내부를 달리는 버스를 탔다. 그렇게 A-5006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 25분. A-5006에서 A팀의 훈련 장소를 찾았을 즘엔 오후 3시 40분이었다. 그래도 훈련 종료 시각인 오후 5시 30분까진 시간이 꽤 비었다.

하지만 그 곳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날 수 없었다. 기상호에게 주어진 기회는 얼마 없었다. 정확히는 다음 기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한시도 그 위치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1시간 30분이 지나 오후 5시 20분이 되었을 쯤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기상호가 기다리고 있었던 위치와는 좀 떨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아차 하는 사이에 성준수가 나와서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다. 아마 숙소로 돌아가려는 것이겠지.
잡아야한다. 얼른. 근데 뭐라고 부르지?

성준수씨? 준수씨? 이건 좀 이상하지 않나? 준수님? 이게 더 이상해…역시 성준수씨가…

“아버지!!!”

그리고 그 자리에 서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라 불린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소리가 컸다. 돌아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기상호는 주목된 시선에 굳었고 그럼에도 삐걱거리는 걸음걸이로 성준수에게 다가갔다. 성준수의 눈이 커졌다. 그를 알아봤다기보단… 왜 나한테 오지?라는 표정이었다.

기상호는 마침내 성준수 앞에 섰다. 그리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더 불렀다. 몰래 간직해온 아버지를.


“그니까 저는…기상호라고 하고요…. 올해 17살이예요.”

오늘로 딱 17살 되네요. 생일이거든요.

A-5004 구역에 위치한 패밀리 레스토랑. A팀의 훈련 장소하고는 좀 떨어진 가게로 손님이 적어도 망하지 않는 기묘한 가게. 그곳에서 성준수가 동료의 눈을 피해 기상호와 함께 저녁을 가장한 심문을 진행하고 있었다.

“B-1045의 자립 센터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자립 센터?”

“…아버, 아니 햄. 정말 몰라요?”

뭘 모른다는거지. 애초에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게 B구역에서 A구역까지 온거 말고는 정보가 없는데?”

“이미 알고 있어야 하는데….”

“뭘?”

“저요…….”

그러면서 기상호는 파스타를 먹다 말고 시무룩해졌다.

성준수 입장에서는 미칠 지경이었다. 기상호는 계속 중요한 것은 안가르쳐주고 자신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기상호. 17살. 자립센터에서 자랐고, 그 자립센터는 B구역에 있으며 후원은 12살 때 부터 받아서 부족함 없이 농구를 배우고 있다. 이제서야 섹터를 옮겨갈 수 있는 티켓을 살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며 2년 뒤부터 독립도 가능하다…….기타등등.

그래서 왜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지금은 햄이라고 부르는데 B지역의 사투리인가 보다.) 무엇 때문에 찾아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스무고개도 이것보단 정보가 있을텐데.

“햄 정말….”

띠링

기계음과 함께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성준수 눈 앞에 떴다. 프라이빗 모드를 안해서 맞은 편의 기상호에게도 어떤 알람이 왔는지 다 보였다. 성준수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 디스플레이를 톡 쳤다. 그러자 <B구역 자립센터 후원>이라는 이름과 함께 부담스럽진 않지만 적지도 않은 금액이 이체되었다. 이제 떠올랐다. 내가 후원하는 곳이 있었지. 물론 저번 달에도 돈이 나갈 땐 떠올랐을 것이다. 금방 잊는게 문제지.

“아.”

“…….”

성준수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눈 앞에 있는 아이가 누구인지.

19살 막 준프로가 되고 나서 고등 교육 기관에서 돌던 홍보물을 보고 무심코 후원해버린 아이.
그때 봤던 사진 속 아이와는 다르게 많이 자랐지만 못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 모습이 익숙했다. 살짝 소름돋을 정도로.

“그니까 이름이…. 기상호.”

“…정말 하나도 관심이 없으시네요.”

“뭐 바빴으니까….”

바빴다는 것 자체는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관심을 주지 못했다기엔 그냥 진짜 자동이체를 걸어두고 감쪽같이 잊고 있었다는 것이 정답이다. 그는 애초에 돈이라는 것에 큰 관심이 없어서 후원에 쓰이는 금액도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 정도로는 그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제서야 기상호는 진정으로 깨달았다. 이 사람은 정말 나한테 아무런 관심이 없구나. 남들에 비해 넉넉한 후원금 조차 그를 흔드는 크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에게 자신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변덕일 뿐이다. 잔잔한 파문조차 남기지 못하는.

“그래서 결국 왜 찾아온건데?”

정말, 그것만큼은 묻지 말고 그냥 반겨줬으면 좋았을 텐데.

“…저는요….”

“…야… 울어?”

“저는…맨날 기다렸어요…”

“…….”

“편지 보내도 답도 없고…. 다른 애들은 후원자가 일년에 한번이라도 얼굴 비추는데… 하다못해 민간 기업은 보여주기식 방문이라도 한단 말이예요… 근데 햄…아부지는… 왜 한 번도 안와요…? 돈만 보내주면 다예요?… 아니 그게 전부긴 하죠… 그래도 한번만 와주지… 아니면 편지라도…. 다섯 줄…아니 세 줄이라도 좋은데…….”

기상호가 냅킨을 죽죽 뽑더니 대충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입을 열었다.

“농구라도 잘하지 말던가… 그렇게 즐거워 보이니까… 괜히 동질감 들어서…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야 어디가”

“저 갈게요. 이거 다 아부지가 내세요. 아부지 돈 많잖아요.”

“뭔 소리야. 니한테 내라고 하겠냐? 인간적으로.”

성준수는 다급히 기상호의 손을 잡았다. 저녁 7시. 이제 막 17살이 된 아이가 다니기에는 어두운 시각이었다. 여기서 놓으면 정말 가버릴 것 같다. 키도 멀대같이 큰게 별 위험 없이 알아서 잘 돌아갈 것 같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가족을 이야기 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아이 같았다.

“일단 앉아. 지금 다른 섹터로 넘어가는 티켓 잡기 힘들어. 일요일 밤이라고.”

이건 살짝 뻥이다.

기상호가 자리에 살짝 엉덩이를 걸쳤다.

“센터에서도 걱정할테니까 그냥 내가 연락해둘게. 그니까 우리 집에서 하룻밤만 묶고 가.”

“……정말요?”

“그래. 먹던 거 마저 먹고.”

“…네….”

기상호는 제대로 자리에 앉아 남은 눈물 젖은 파스타를 꾸역꾸역 먹기 시작했다. 그와 거의 비슷한 키를 갖고 있어도 행동은 영락없이 아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성준수의 머릿 속은 더 복잡해졌다. 얠 데려가서 뭐 어쩌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

그냥 가벼운 후원인줄 알았다. 편지는 사실 온 줄 몰랐다. 준프로가 된 이후로는 업무용 계정 말고는 사적인 계정은 눈에 두지도 않았다. 스팸 메일이 더 많은걸 어찌하겠는가. 아마 아이의 작은 편지 같은 건 메일의 파도에 휩쓸려 파묻혔을 것이다. 뒤져보면 나올지도. 일단 나중에 열어봐야겠다.

이젠 자립 센터도 있으니 지원만 있으면 알아서 잘 크는 줄 알았는데…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이 아이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아버지라고 불리는 건… 잘 모르겠지만.

“아부지…….”

“야,야. 그 아버지라는 거 좀….”

“저 아이스크림 시켜도 돼요?”

“……하 됐다 말을 말자….”

그렇게 한탄을 하다가도, 착실하게 주문을 넣었다.


아래는 그냥 후일담/설정 및 소장용 결제창.

불시에 내려갈 수 있음. (사유: 퇴고도 안했고 정리도 안됐음...)

어차피 나중에 다 완성하면 준상온에서 배포해요~ 무료배포일 수도(아마...아니면 딱 책값만 받을수도)

여기부터 유료 분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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