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블셀 00x99

(주의. 그냥,, 캐해 구리니까 주의해주세요. 급발진도 조심하세요. 중간에 잘린 노딱은 포타에 올라갈 예정입니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면 생기는 일.


알고 있는 건 어느 날부터 부쩍 어머니의 외출이 잦아지신다는 것. 주는 사람을 알 수 없는, 늘어나는 선물들. 자기 어머니가 불륜을 저지르는 걸 눈치채는 것은 금방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몰라요. 고작 고등학생인 정모가 할 수 있는 건 집 앞에 자주 주차되는 차 문이 언제 열리는지 지켜보는 것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술 취한 어머니 집 앞까지 데려다준 남자를 보았습니다. 정모는 그때 이 남자가 불륜 상대의 주인공일 거라고, 확신했어요.

"저희 엄마 좋아하세요?"

그 날은 교수인 어머니께서 옛 제자들을 만나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렇담 당연히 술에 취한 어머니를 데려다주는 건 불륜 상대는 커녕 애제자였던 세림이었겠죠. 세림은 당연하게 존경하고 있냐는 느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아 으응, 짧은 대답에 정모는 오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꼬인 걸까요. 

그다음부터는 복수? 정모는 망가뜨려 보고 싶었습니다. 이미 망가진 관계, 더 망가뜨려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술에 깨자마자 정모는 그 아저씨 (학생인 정모의 입장에는 아저씨일지도) 번호를 물었습니다. 왜 필요하냐는 물음에

"어제 실수한 게 있는데 직접 사과드리고 싶어서요."

정모는 능청맞게 답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 교수님 아들입니다. 어제 뵈었는데 기억하시나요?

갑자기 교수님 아들이 나한테 왜 연락을? 어제 알딸딸한 술기운에 실수했나 되뇌어보는 세림입니다.

- 안녕, 정모 맞지? 어제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거 들었어.

정모는 이 문자 한 통도 되게 웃겨요. 어제 한 말씀? 귀에 딱지가 안도록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여태 숨기다가 어제 얘기를 꺼낸 걸지도 모릅니다.

- 저 고민이 있는데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당신이 사랑하는 교수의 아들인데, 부탁 정도는 들어줄 수 있는 거 다 안다는 생각으로. 어쩌지, 세림은 그냥 너무 착한 제자여서 정모가 하는 말에 순수한 걱정이 듭니다. 아마 교수님께 말 못 할 고민인 것 같아요.

- 웅 그래 언제 괜찮아? 오늘 볼래?



어색한 둘 사이 공기. 정모가 입을 열었습니다. 정면 돌파로 가볼까, 아니면 그냥... 질러볼까요.

"저 남자 좋아하는 것 같아요. 부모님이 아시면 큰일 날 것 같아서요."

어... 잠깐만 뇌 정지 온 세림입니다. 이런 얘기를 나한테는 해도 괜찮은 건가? 저 정모야 부르기도 전에 선수 치기 당해버렸어요.

"주변에 어른이 아저씨 밖에 없어요."

세림은 처음 본 어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정모가 퍽 불쌍한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어요. 어찌 보면 어릴 적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을 해요. 자신을 믿고 이야기해 준 게, 고맙다는 생각도 들 정도입니다.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아저ㅆ...형이?"

여기서 세림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면, 정모가 남자를 좋아하는 건 이미 부모님 모두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정신병이라며 상담사를 붙여주시겠다고 권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물론 어머니께서는 불륜까지 저지르시는 마당에 뭔 상관인지 사랑에 성별은 상관없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이런 모습이 정모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정모는 세림에게 집으로 와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옆에 있어 주시면, 부모님께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냥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된다고, 세림은 간단한 부탁이라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인 제게 더 기대도 괜찮다. 라고 소리내어 말할 뻔했습니다. 웅 알겠어. 필요한 대답만 해주었어요. 정모는 대답을 듣고 좋아하는 것이 있는 지 물었습니다. 왜 궁금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냥, 답해주었습니다.

"좋아하는 거,,, 돼지?"

아직 굳어있는 정모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마음 반, 실제로 좋아하는 것 반으로 말했습니다. 초점이 없던 정모의 눈에 잠시 불빛이 반짝였던 것 같습니다. 정모는 웃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았지만 결국 제법 큰 입(처음에는 그리 큰 소리로 말하지도 않아서 큰 입이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벨루가 같다. 는 게 세림의 감상평입니다. 입에 잡아 먹힐지도요.)으로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한참을 혼자 웃으니 세림도 따라 웃었습니다. 따라 웃자마자 정모가 정색을 하는 바람에 머쓱한 상황이 되었지만요. 카페에서 나서 지하철까지 정모를 데려다주기 위해 나란히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인형뽑기 기계를 마주쳐버렸습니다. 세림은 인형뽑기 기계를 보면 천원은 넣어야 하기 때문에 정모를 끌고 앞으로 갔습니다. 적당한 크기의 벨루가 인형, 정모를 닮았습니다. 지갑을 여니 오천원 짜리 지폐만 덜렁 있었습니다.

"정모야, 형이 이거 진짜 잘하거든."

정모는 인형이 귀엽기는 하네요, 라고 말하고 지폐를 넣는 세림을 지켜보았습니다. 인형 뽑기는 아무리 봐도 사기 같다는 게 정모의 생각이에요. 그동안 세림은 삼천원을 날렸습니다. 입구 주변에서 맴도는 집게에 아,,, 어!!! 만 반복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고등학생, 정신연령은 자기와 비슷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버렸습니다. 그리고 2번의 실패 끝에 천원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세림은 열이 오르는지 입고 있던 코트를 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정모가 바닥은 더럽다며 주워들었지만요. 코트를 입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꽤 근육이 붙어있는 몸이었습니다. 목부터 달라붙어 있는 티는 움직이는 근육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했어요. 정모가 세림의 몸에 한 눈파는 동안 세림은 마지막 기회를 붙잡고 있습니다. 갑자기 소리 지르는 세림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손을 벌려 안겨 오는 세림을 막을 새도 없이 큰 가슴에 안겼습니다. 입 동굴이 보일 정도로 활짝 웃는 세림이 귀엽다고,,, 느껴집니다.

"정모, 너 가져. 형이 너 닮아서 뽑으면 주려고 그랬어."

그렇게 좋아했으면서 손으로 밀어 거절하니 옆구리에 쑤셔 넣었습니다. 원래 어른이 주면 받는 거라면서요.

"아저씨 감사해요."

세림은 아직도 그리 좋은지 웃고 있습니다.



세림이 정모네 집에 초대된 날입니다. 저녁 식사가 차려지기 1시간 전에 미리 방문했습니다. 정모가 문자로

- 아저씨, 긴장돼요.

라고 보냈거든요. 세림은 달려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직 부모님 모두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해요. 거실에서 기다리려 했지만 정모가 방으로 와달라고 했습니다. 방문을 여니 대뜸 무언가로 시야가 가려졌습니다. 그리고 떨어지더니 돼지 인형을 들고 있는 정모가 보였습니다.

"그때,, 보답이에요."

이렇게 말하고 있는 정모의 얼굴이 불타는 고구마 같습니다. 그리고 세림이도요. 갑자기 뜨거워지는 얼굴이 이상합니다. 보답 같은 거 안 해도 된다는 둥 말을 해야 하는데 입이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세림은 정모가 자기를 생각하고 뽑은 건지 샀는지 모를 돼지 인형을 준다는 것이 무척 좋아요. 돼지 인형이어서가 아니라 정모가 주었다면 무엇이든 좋았을 겁니다.

"고마워. 진짜 너무 좋아."

돼지인형을 꼬옥 끌어안았습니다. 정모도 인형처럼 꼬옥 안아주고 싶습니다.

"얼마에 뽑았어?"

작은 돼지 인형을 뽑는데 만원을 넘게 썼습니다.

"오천원 정도 나왔어요..."

정모도 인형 뽑기 좀 하는구나! 라고 말하는 세림에게 하하 웃어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서로 지난 카페에서 3시간보다 1시간도 채 안 되는 정모의 방에서 대화를 훨씬 많이 했습니다. 이제 하나 정도는 확실해졌어요.


모두가 식탁에 모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오늘 회식으로 못 오신다 하셨기 때문에 교수님, 정모, 세림 셋이 식탁에 앉게 되었습니다.

"세림이랑 많이 친해졌나보다, 집에 초대도 하고."

교수님이 정모에게 말했습니다.

"네, 엄마보다 제가 세림이 형을 더 잘 알 걸요."

교수님은 흥미롭다는 듯, 정모와 세림은 번갈아 쳐다봅니다. 세림은 정모가 형이라고 불러주었다는 점에 눈이 살짝 커졌습니다. 그저 언제 정모가 말을 꺼낼지 긴장 상태이긴 하지만요.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하는 식사에 속이 안좋아집니다. 옆에 앉은 정모가 세림의 손을 포개어 잡았습니다. 이제 준비가 된 걸까. 오히려 세림이 식은 땀을 흘릴 것 같아요. 하지만 손을 잡고 말을 하지도 놔주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한 손으로 식사를 하다 숟가락을 놓쳤습니다. 쨍그랑 소리가 나고 정모의 목소리도 들려요.

"저 세림이형 좋아해요."

숟가락을 주우러 굽힌 허리가 저절로 펴졌습니다. 당장 뭐라고,,, 하기에는 진짜 좋아하는 것 같기도, 어쩌면 저가 먼저 좋아하게 된 걸지도 몰라서. 멍해졌습니다. 교수님은 으응, 그래. 라고 밖에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답에 아까의 세림보다도 정모가 더 당황한 듯 보입니다. 잡고 있던 세림의 손을 놓았습니다. 당황보다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사겨도 돼요?"

이건 정말 예상치 못했습니다. 교수님도 당황하신 듯 젓가락질을 삐끗했습니다.

"그건 너가 알아서 해야지. 나이 차이는 좀,, 그럴 수 있겠구나."

정모는 왜 자기 일이 아닌 것처럼 구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언가가 잘못된 것 같아요. 옆에 앉은 세림은 실제로 식은땀을 죽죽 흘리고 있습니다. 정모가 그 모습을 보고는 놀라 아저씨!!! 라고 소리치자 세림은 그대로 눈을 감았습니다.


세림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습니다. 옆에는 정모가 엎드려 자고 있습니다. 들어오시는 간호사 분께서 하시는 말씀은 그냥 급체한 거라고 하셨습니다. 아까 받은 (진심이었는지, 부모님께 밝히기 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고백을 생각하면 황당하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는 합니다. 생각해보니 고등학생이랑 어떻게 해보는 것도 양심상 맞지 않은 일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버렸습니다.

난방을 틀어도 추운 겨울이라 그런지 엎드려 자는 정모의 어깨가 떨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세림은 옆에 있던 담요를 둘러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처음으로 정모의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된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긴 속눈썹, 잘 때는 나오는 입술. 눈썹 위에 그리고 눈 옆에도 점이 있어요. 세림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앞머리를 거두고 눈썹 위 점을 눌러보았습니다. 찌르르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었어요. 아마 마음을 정리하는 일을 힘들 것 같습니다. 닿은 손가락이 차가웠는지 정모가 눈을 떴습니다. 언제 뜬 건지 세림을 빤히 보고 있었습니다.

"진짜 저랑 사귀면 안 돼요?"

어느샌가 정모의 눈에 물방울이 맺혔습니다. 목소리에도 물기가 어리기 시작했어요.

"저 아저씨 좋아하는 거 맞는 것 같아요."

진짜에요... 흐려지는 말끝과 함께 눈물이 톡 떨어집니다. 정모의 볼 부근에서 점에 닿았던 손이 맴돌았습니다. 정모의 얼굴은 움직여 세림의 손에 포옥 닿았습니다. 스윽 움직여 부비는 바람에 벨루가가 아니라 고양이 같다는 생각을, 정신없는 와중에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근데 이 고백 정모는 아직 미성년자인데다가 저를 아저씨라고 부르는데 연애가 가능할까 싶습니다.

"정모, 너 아직 어려... 그리고 흡"

아직 체한 게 낫지 않은 건지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는 목 막힘에 이상함을 느끼면 시야가 뿌옇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우리 7살 차이 나자나,,, 너 나보고 아저씨라며...!!!!"

이만 세림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며능 혀엉,,, 세림이 형. 이제 사겨줄 거에요?"

"으응 아니."

눈물 죽죽 흘리던 정모가 세림이의 단호한 대답에 눈물을 멈췄습니다.

"정모 아직 성인도 아니잖아."

흡, 훌쩍.


정모의 고백 이후 3일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어요. 우선 어머니의 불륜 상대는 남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큰 오해를 해버린 정모는 아직 상황을 받아드릴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요. 그리고 정모와 세림의 관계는 아직 그대로, 학생과 직장인입니다. 정모는 어른이 되면 받아준다는 세림의 말에 1월 1일까지 잠만 잘까 고민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크리스마스이브, 정모와 세림의 공식 데이트 날입니다. 사귀는 사이는 아니지만 속상해하는 정모에게 세림이 먼저 제안했습니다. 그러면 크리스마스이브에 볼래? 왜 크리스마스 당일이 아니냐고 정모는 물으려다 아저...아니 형이 하자는 대로 좋다고 했어요. 영하의 날씨에도 서로 멋 부리겠다고 입김 호호 불며 기어코 코트를 입고 나왔습니다. 걸을 때마다 서로의 손이 스쳤습니다. ( 너무 추워서 스치는 감각도 못 느낄지도요) 세린이 정모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정모는 차가운 바람에 빨개진 귀만 보여줄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정모가 세림의 손을 먼저 잡았습니다.

"저 손시려워요."

말 없이 꽉 맞잡았습니다. 희미한 온기가 서로에게 전해져서 인지, 부끄러워서 인지 덜 춥다고 느껴졌습니다.

길거리에는 커플이 정말 많았습니다. 정모와 세림 빼고 모두가 사귀고 있는 것 같아 지금이라도 사겨야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발견한 인형뽑기 기계. 정모와 세림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바로 달려갔습니다.

"내가 진쨔로 오늘 바로 뽑아줄게!"

"세림이 혀엉, 내기해요."

세림이 갸우뚱합니다.

"형이 오천원 안에 뽑으면 1월 1일에 사귀고, 오천원 안에 못 뽑으면 오늘부터 사.. 사겨요."

여기서 '오천원 안에 뽑으면 1월 1일에 사귀고,'는 너무 작게 말하는 바람에 세림은 듣질 못했습니다. 그래도 뒤에 이어지는 말이 귀여워 그래. 라고 했습니다. 결과는 언제나처럼 기회를 꽉꽉 채워 성공한 세림이죠. 이번에는 고양이 인형을 뽑아 주었습니다. 정모가 고마워요,, 라고 말했지만 삐쭉 튀어나온 입술을 숨겨지지가 않아요.

"이 인형도 저 닮았어요?"

끄덕끄덕,정모는 언제는 벨루가 같다더니 이라는 둥 삐진 티를 팍팍 내더니 대뜸 돼지 인형이 있는 뽑기 기계 앞으로 섰습니다.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 넣었습니다.

"저번에 준 돼지 인형, 오천원으로 뽑은 거 아니었어요. 만원 넘게... 쓴거에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만원 안에 뽑겠다며 허둥지둥 조이스틱을 잡아 움직였습니다. 천원, 이천원, 삼천원 어느새 팔천원이나 공중분해 되었어요. 곁에서 응원하던 세림이의 얼굴도 심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모야아,, 형이 도와주께. 조이스틱 잡은 정모의 손에 겹쳐 집게를 움직였습니다.

"됐다!!!!!!"

세림이 정모에게 안겼습니다. 드디어 뽑았다며, 형 덕분이지!! 라고 말하면서 정모를 꼬옥 안았어요. 정모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너무 뜨거워서 과부하가 온 것 같습니다.


둘은 인형 뽑기 데이트(?) 후 세림이의 집으로 왔습니다.

"자고 갈 거지?"

아까부터 빨갛던 정모의 얼굴은 이제 정말 토마토가 되어버렸습니다. 넿. 혀도 꼬여 대답도 우스꽝스럽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챙겨오지 않은 정모에게 미리 사두었던 잠옷을 주었습니다. 빨간 체크 잠옷을 입은 정모를 보니 더욱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느껴져요. 살짝 깊게 파인 잠옷은 알지 못했던 정모의 점까지 보여줘서 귀가 또 붉어질 뻔했습니다. 둘은 팝콘을 뜯어 거실에 누워 아까 오면서 고른 영화를 틀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낭낭한 영화였습니다. 12시가 땡하고 지나자 영화 속에서는 캐롤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세림이 정모의 어깨를 툭툭 쳐요.

"구정모,"

사뭇 진지하게 풀네임을 부르니 괜히 긴장이 됩니다.

"너 똑바로 대답해야 돼."

"네."

흐읍.. 후...

"나 나이 많잖아,"

"스물 여섯 밖에 안됐어요."

"그리고 정모 대학 가면 젊고 너랑 잘 맞는 사람 많을 거야."

"저 나이 있는 사람이 좋아요."

"또..!"

" · · · 좋아해요."

"좋아해 나도."

세림이 질끈 눈을 감으며 말하고 다시 떴을 때. 정모는 또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훌쩍이는 저보다 훨씬 어린 아이를 달래는 데에는 재주가 없는 세림은 이번에도 안아주려다, 볼에 살짝 입맞춤을 해주었습니다. 혀엉 긍데 7살 차이며능 별로 안 나는 거예요. 킁,,, 이러면서 볼에 맞추었던 입술을 빤히 봅니다. 눈물 자국과 아직 나와 있는 입술. 손가락으로 벅벅 문질러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입술에는 안해주능 거에요?"

아직도 코훌쩍이는 정모가 말했습니다. 참 당돌한 고양이 같아요. 결국 정모에게 먼저 다가갔습니다.

영화 속 캐롤이 끝날 무렵, 고요 속에서 소리가 울렸습니다. 떨어진 두 입술을 다시 포개어져 숨까지 삼켰습니다. 세림이 정모의 잠옷을 질끈 잡자 정모가 한 손으로 꼭 잡아주었습니다. 질끈 감고 있던 눈을 떠 세림이 형을 보았습니다. 짙은 눈썹 그리고 스르르 떠지는 형의 눈에 박혀있는 눈동자. 세림이의 눈동자는 아무것도 못 읽을 것 같다가도 원하는 바를 투명하게 내비치고 있어, 지금만큼은 알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정모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죠.


세림이 준비한 케이크를 정모가 꺼내왔습니다. 당 떨어져어,,, 케이크를 자르기도 전에 한 입 와앙 해버렸습니다. 입가에 묻은 크림에 아까 전 생각이 나 정모는 혼자 손가락을 만지작거립니다. 눈치채지 못한 세림은 먹방을 야무지게 찍어줬습니다.

"아 맞다아!!"

케이크, 마지막 한 입을 남겨두고 세림이 방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산타 분장을 하고 나왔습니다. 정모는 어리둥절, 웃긴 세림의 모습에 웃어요. 선물이야. 산타가 준 선물은 목도리였습니다. 세림은 정모에게 직접 매어 주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야."

무언의 오해는 있었지만 어찌저찌 크리스마스까지, 지난 날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이번에는 정모가 먼저 쬭, 했습니다.

쪽..쪽쪽

이제 정말 자리를 피해주어야 할 것 같아요.

HAPP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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