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銘
다바오 사건 이후 연방군에는 비상이 걸렸다. 마프티가 돌아왔다는 소식도 더 이상 감출 길이 없었다. 오스트레일리아 건과 달리 다바오는 도심 한복판이었고 지구연방의 주요 거점인 홍콩이나 베이징과도 가까웠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고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날로 높아졌다. 안팎에서 쏟아지는 여론의 압박에 연방군은 마지못해 마프티의 부활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한밤중에 문득 잠에서 깨면 마주하게 되는 것이 있다. 대개는 벽과 파이프를 타고 퍼지는 함선의 엔진 소리라던가, 야간 근무를 하는 승무원의 기척이라던가, 아직 잠들지 않은 옆 방에서 흘러나오는 물 소리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간혹 정말 드물게도 경계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평화로운 운행 중에는 그런 생활 소음조차 없는 조용한 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불길한 예감은 어째 틀리질 않는다더니. 출발할 때부터 엔진 소리가 묘하게 마음에 걸린다 싶긴 했지만 정말로 차가 고장날 줄 누가 알았을까. 심지어는 민가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오로지 광활한 황야를 가로지르는 4차선 도로만이 덩그러니 놓인 이 외진 곳에서. 설마 무슨 일이 생기겠냐고 안일하게 굴며 빨리 출발하자고 보채던 동행인 녀석들의 멱살을 당장이라
오랫동안 군인으로 살며 몸에 밴 행동 중 하나는 작은 소리에도 금방 깨는 것이다. 함선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긴급 경보는 당연하고, 눈을 붙인 지 30분도 안 되어 제1전투태세가 발령되었다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허겁지겁 뛰쳐나간 게 하루이틀도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죽은 신분이 되어 완전한 일반인으로 돌아간 뒤에는
평소와 다름없는 저녁이었다, 고 샤아 아즈나블은 추후 회상했다. 식사를 마친 뒤, 정해진 순번에 따라 그 주의 당번이었던 사람이 식탁을 치우고 그릇을 씻었다. 남은 사람은 그 옆에서 후식으로 마실 커피를 내리며 일상의 화제를 입에 올렸다. 동네 주민 누구네 집이 어떻다더라, 날이 흐려지기 전에 어디를 보수해야겠더라, 뭐가 떨어졌으니 다음 주말에는 시장에
그 이후의 일은 사실상 기억에 없다. 드문드문 생각나는 장면은 있지만 마치 간밤의 꿈을 회상하는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오직 확실한 것은, 빈 지하실을 뒤로 하고 1층으로 돌아온 후 먼동이 틀 때까지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뿐이었다. 샤아 아즈나블의 영민한 머리는 아무로가 향했을 만한 장소와 도움을 청했을 만한 사람과 앞으로 취할 만한 행동
이틀 뒤, 카이 시덴과 샤아 아즈나블은 광저우의 한 사무실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카이가 평소에 기사를 쓰고 정보를 정리하며 제보자나 소식통을 만나는 사무실이었다. 대접하고 싶지도 않았고 대접 받을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상 내놓은 찻잔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었다. 향이 좋군. 과연 나같은 사람이 이렇게 좋은 차를 대접받아도 될
…하. 어이없어하는 웃음이 터졌다. 하! 하하하하! 집이 떠나가라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리던 케네스가 갑자기 정색을 하고 아무로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지구연방 수뇌부를 무너뜨리겠다고요.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압니까, 대위? 신랄한 목소리가 아무로를 비웃었다. 상대의 냉소적인 반응에도 중년의 영웅은 차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알고
케네스는 생각보다 더 수완이 좋았다. 아무런 연줄도 없는 서민 출신이 연방군 장성까지 오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마프티의 기체가 애너하임제이며 연방군에게 먼저 납품했던 신형기─페넬로페─의 완성형이라는 것이야 물적 증거만 없을 뿐 이미 관련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었지만, 그걸 토대로 애너하임이 마프티나 연방
환경오염이 가져온 기후 변화에도 다바오는 여전히 일 년 내내 안정된 날씨를 자랑했다. 지구 온난화로 과거보다 평균 기온이 높아지기는 했으나 태양이 내리쬐는 낮이 이전보다 조금 더 더워졌을 뿐, 아름다운 남국은 변함없이 어스노이드의 휴양지이자 관광지로서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남자에게는 다바오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거리 곳곳에 묻어 있는 고유
복귀한 구스타프 칼의 모습을 본 카이는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이거 살아 돌아온 게 기적일 정도군. 진네만이 옆에서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격추당하진 않았지만 거의 격추당한 것이나 다름 없게 걸레짝이 된 기체를 보고 정비반 인원들은 울상이 되었다. 예비기도 부품도 충분하지 않고 우주 만큼 보급이 원활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엉망인 기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