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NDM

자기방어

After CCA

某日 by 銘

오랫동안 군인으로 살며 몸에 밴 행동 중 하나는 작은 소리에도 금방 깨는 것이다. 함선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긴급 경보는 당연하고, 눈을 붙인 지 30분도 안 되어 제1전투태세가 발령되었다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허겁지겁 뛰쳐나간 게 하루이틀도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죽은 신분이 되어 완전한 일반인으로 돌아간 뒤에는 사라진 습관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십오 년 가까이 몸에 배어 있던 것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전장의 한복판에 있던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 이 순간 주변을 맴도는 어떠한 적대감과 살기를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 '탁' 소리는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전혀 신경쓰지 않을 소리였다. 고작해야 누군가 뭔가를 닫는 소리. 옆에 누웠던 동거인이 잠시 일어나 물을 마시면서 냉장고를 여닫는 소리일 수도 있었고, 겸사겸사 찬장이나 서랍장에서 뭔가를 찾는 소리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직감적으로 제 귀에 꽂힌 '탁' 소리가 평범한 일상 소음이 아니란 것을 느꼈다. 수마에 사로잡혀 있던 몸이 순식간에 긴장 상태에 들어가며 그의 의식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하나도 잠들지 않았던 사람처럼 눈을 말똥하게 뜬 채 아무로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무슨 일 있나?"

그가 움직이는 바람에 같이 깬 것인지, 평소보다 더 가라앉은 목소리가 옆에서 말을 걸었다. 어둠 속에서 비스듬히 몸을 일으킨 동거인의 얼굴이 이쪽으로 향해 있었다. 최대한 소리를 죽여 침대 아래로 내려가며 아무로가 딱딱하게 대답했다.

"누가 집에 들어온 모양이다."

"침입자라고?"

"그래."

소리가 들렸어. 아무로의 말에 샤아도 얼굴을 굳히더니 그를 따라 침대에서 내려왔다. 편안하고 아늑한 침묵에 잠겨있던 방이 순식간에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문가에 바짝 붙어선 채 그들은 바깥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아무리 조용히 움직인다 해도 살아 있는 인간이 완벽하게 기척을 지울 수는 없는 법이다. 돌아다닐 사람 없는 목조 바닥이 몇 번 삐그덕대는 소리에 침입자가 있다는 것을 확신한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어느 쪽에서 들어왔을 것 같아? 부엌이다. 역시 그렇겠지. 아무로가 미간을 찌푸렸다. 만약 현관으로 침입했다면 그 이상한 소리가 나자마자 경보가 온 집에 울렸을 것이다. 하지만 뒤뜰로 향하는 부엌문은 출입이 빈번한 탓에 보안 장치를 상대적으로 약하게 해두었는데, 침입자들은 그걸 진작에 간파한 모양이었다.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은 있어. 어쩔 텐가."

샤아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아무로가 솜씨 좋게 만든 경보 장치는 샤아가 전술적으로 예측한 위치 곳곳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다. 1층의 부엌부터 2층 가장 안쪽의 침실까지 설치된 것만 해도 족히 3, 4개는 되었다. 침입자의 정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어느 정도 철저하게 보안이 된 집 안에 발을 들여놓을 정도라면 이런 일에 매우 익숙한 자일 테니 보안 장치를 숨겨놓기 좋을 것 같은 위치야 보기만 해도 파악을 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가 전문 절도범이고 더 나아간다면 아마도 이쪽을 노리는 누군가다. 어느 쪽이 진정한 목적일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모를 경보를 울려 집주인을 깨우는 짓은 하고싶지 않을 테니 최대한 조심히 주변을 살피며 움직일 것이고, 그렇다면 몸을 숨길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었다. 계산을 마친 아무로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쩌겠어. 선택지가 하나 밖에 없는데. 샤아가 가볍게 웃었다.

"자네 체술이 아직 쓸모가 있기를 바라지."

"론데니온에서 그렇게 내던져진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실없는 농담은 이쯤이면 되었다. 대화가 끊어지는 것을 신호로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척척 움직이기 시작했다. 베개를 세로로 놓고 이불을 끝까지 덮어 침대에 사람이 누워 있는 것처럼 꾸며 두고, 달빛이 들어오는 창문에는 커튼까지 쳐서 방을 최대한 어둡게 만들었다. 모든 눈속임 작업을 끝내고 샤아가 소리없이 방문을 열었다. 아래층에서 작은 불빛이 움직인다 싶더니 작게 쿵 하는 소리가 났다. 거실에 놓인 나무 화분이 옮겨지는 소리였다. 이파리 사이에 움직임을 감지하면 소리가 나는 장치를 하나 숨겨놓았는데 아무래도 그걸 발견한 모양이었다. 센서의 인식 범위를 피하려면 최대한 후면에서 전원선을 잘라야 했을 테니 줄지어 놓인 화분을 조금씩 옆으로 빼내지 않고서는 어려웠을 것이다. 화분의 장치를 해제하고 나면 계단참에 피아노 줄로 만든 트랩이 하나 걸려 있는 게 마지막이니, 남은 시간은 대략 5분 내외였다. 가만히 눈빛을 주고받은 그들은 복도 양옆으로 갈라졌다. 아무로는 제 작업실이 있는 오른쪽으로 사라졌고 샤아는 침실 왼쪽의 욕실로 들어갔다. 침입자의 뒤에서 기습할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2층 바닥에는 전부 카펫이 깔려 있어 그들의 발소리를 충분히 숨겨주었다.

욕실 문 뒤에 몸을 숨긴 샤아는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주먹을 꽉 쥐었다 폈다. 팽팽한 것이 끊어지는 팅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이내 육중한 것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끼익, 끼익. 무게가 실린 나무 계단이 작게 비명을 질렀다. 기척이 점점 가까워졌다. 샤아는 더욱 벽에 바짝 붙으며 숨을 죽였다. 수신호를 하는지 잠시 멈췄던 기척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샤아는 아주 살짝 열려 있는 문 틈으로 지나가는 인영의 수를 세었다. 침입자는 넷이었다. 그렇다면 두 명은 복도를 경계하고 둘은 안으로 들어가겠지. 2인 1조로 움직이는 것이 이런 작전의 정석이니까.

아무로와 제가 이미 몸을 피했다는 것을 언제쯤 알아챌까 생각하며 샤아는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1, 2, 3, 4, 5, 6, 그리고 7. 거기까지 세었을 때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목표가 도망쳤다. 아무도 없어. 베개로 누워있는 것처럼 꾸며놨더군."

"어떻게 알아챈 거지?"

"뉴타입이다 이건가. 감이 좋은걸."

"얼마 안 됐으니 밖으로 도망치진 않았을 거다. 집안을 샅샅이 뒤져."

일사불란하게 사람들이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샤아는 조용히 문에서 멀어져 샤워 커튼이 쳐진 욕조 쪽으로 몸을 숨겼다. 목이 바짝 말랐다. 수많은 전장을 넘나들었고 사관학교에서 극한의 훈련도 받았지만 맨몸으로 생명의 위협을 마주하고 있는 순간은 긴장이 될 수밖에 없다. 주먹을 꽉 쥐고, 욕실 안에 들어온 침입자를 어떻게 해치울 것인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역시 단번에 목을 졸라 꺾어버리는 편이 깔끔하겠지. 마지막으로 백병전을 치른 것이 오래 전이긴 하지만 한 명 정도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끼익 소리와 함께 욕실의 문이 열렸다. 샤아가 숨을 멈췄다. 느릿한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샤아는 커튼 사이로 침입자를 주의깊게 살폈다. 목적이 암살인지 납치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빠르게 치고 빠져야 하는 작전 특성 때문인지 거창한 장비는 두르고 있지 않았다. 일단은 손에 든 권총과 작은 손전등이 전부인 듯 했다. 그렇다면 해볼 만 하지. 준비를 마친 샤아는 번개 같이 몸을 날려 침입자의 목을 낚아챘다.

복도가 번잡스러워졌다. 막 침입자 한 명을 쓰러뜨린 아무로가 퍼뜩 고개를 들고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다급한 발소리, 벽에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 거친 숨소리와 둔탁한 타격음. 몸싸움의 소음이 들렸다. 이봐, 무슨 일이야! 낯선 목소리가 멀리서 소리를 질렀다. 아마 1층으로 내려간 사람인 듯싶었다. 급히 뛰어 오는지 아래층을 질주하는 소리가 들리고, 빨리 도와줘! 또 다른 낯선 음성이 반쯤 목이 졸린 소리로 힘겹게 외쳤다. 아무로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미간을 찡그렸다. 무기로서 들고 있던 지렛대로 바닥 한 군데를 뜯어내자 뚜껑 닫힌 검은 상자가 나타났다. 아무로는 지렛대를 내던지고 상자를 꺼내 열었다. 회색 권총 한 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총을 들고 빠르게 상태를 점검한 아무로가 작업실 문을 홱 열어젖혔다. 건너편 복도에서 침입자 하나를 뒤에서 붙든 채 팔로 목을 조르고 있는 샤아와 막 계단에서 뛰어올라오는 또 다른 사람이 보였다. 아무로는 그 자리에 서서 제일 먼저 계단 쪽을 조준했다. 온 신경을 집중하고, 제가 그린 조준선 안에 목표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호흡을 멈추고 3초 뒤. 탕! 발사음이 울렸다. 계단을 뛰어오던 사람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 숨겨놓은 무기가 있으면 진작 말을 하지 그랬나."

정신을 잃은 침입자를 바닥에 내팽개치듯 내려놓으며 샤아가 불평했다.

"내가 뭘 믿고 당신에게 총을 맡겨."

가까이 다가온 아무로가 코웃음을 치며 침입자가 떨어뜨린 총을 발로 차서 저 멀리 치워 놓았다. 샤아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눈썹을 한 번 까딱하고 무릎을 굽혀 쓰러진 이의 품을 뒤졌다. 소속이 드러날 만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으나 지금 시점에서 이런 짓을 태연히 저지를 만한 곳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아무로를 올려다보자 그도 동일한 생각이었는지 고개를 가만히 끄덕여 보았다.

"루오 상회에 또 신세를 져야겠군."

"스테파니가 엄청 싫어하겠어. 얼굴을 또 어떻게 본담."

"차라리 콜로니로 옮기는 게 낫지 않겠나? 지구는 그들의 영역이야. 이런 일이 또 없을 거라고는 보장하지 못한다."

"하지만 콜로니는 너무 좁아. 여차할 때 몸을 숨기기도 어렵고 떠나기도 어렵다."

"틀린 말은 아니군."

"일단 그건 내일 생각하자. 지금은……."

아무로가 한쪽이 피범벅이 된 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걸 먼저 어떻게든 해야겠어. 아무로의 한숨 섞인 목소리에 샤아가 바닥을 나뒹구는 침입자의 몸을 발끝으로 툭 건드리며 덧붙였다. 이쪽도 잊지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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