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와 그녀의 상자(사실은 항아리이지만, 이하의 글에서는 모두들 잘 아는 상자라고 하자)의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해석은 인생의 관점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세상에 온 사악이 퍼져나갔건만 희망만은 건재하다는 낙관도, 그 모든 것이 땅에 관영貫盈하게 되었는데 희망만 여전히 상자 안에 갇혀 있으니 세상에 희망 따위는 없다는 비관도, 한술 더 떠 사람의 마음 속에만
냉정하게 말해, 소녀전선 세계관에서의 인형은 만들어진 노예다. 신분과 노예제의 시대에 종과 노예가 그러했듯, 대화도 하고 마음을 지녔을지도 모르지만 그저 사고 팔 수 있는 물건. 인형이 노예보다 못한 점이 있다면, 노예는 태어나고 인형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뜻 있고 선한 세인트클레어St. Claire씨가 자기 손 닿는 노예들에게 잘 해 줄 수는 있다. 그
(스포 방지를 위한 END) [오귀인의 샘물]에서 우리는 엘마와 레네트, 미라벨을 통해 이 모든 개판의 근원을 보았다. 시작부터 시비를 거는 정치인도, 또 어디론가 잡혀 간 지휘관도, 앞으로 총부리를 돌릴 것임을 예견하는 듯 포진해 있던 슈타지의 존재도 확인했다. 그렇지만 모든 이야기가 마침표를 찍었을 때 내가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도무지 반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우주의 먼지 중에서도 작디작은 이 푸른 점, 그 안에서도 지극히 작은 톱니바퀴에 불과한 나의, 한 세기 남짓 될 - 어쩌면 그만큼에도 미치지 못할 짧디 짧은 삶은 과연 얼마만큼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말이다. 거기에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이 진정 진실이라면 어째서 인간이라는 생물은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이만한 아귀다툼을 벌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