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창문을 통해 넘어온 빛이 검은 머리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햇볕이 그리 뜨겁지 않을 텐데도 소년의 관자놀이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다. 꼭 감은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누군가 그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무심한 듯 툭툭 치는 손길에 소년은 힘겹게 눈을 떴다. “웬일이냐? 네가 잠을 다 자고, 이반.” 익숙한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올리자 잿빛 머리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남자가 그와 완벽히 대조되는 화려한 트리 앞으로 걸어왔다. 남자는 소매를 걷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10분이나 일찍 도착했네. 너무 서둘렀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주위를 쓱 둘러보자 많은 연인이 서로 꼭 붙어있는 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시선을 다시 트리로 옮겼다. '그 애는 언제쯤 오려나. 눈이 마주치면 무슨 말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