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테] 현대 au

이반틸 중심 약간의 미지수아, 루카현아

2차 by 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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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창문을 통해 넘어온 빛이 검은 머리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햇볕이 그리 뜨겁지 않을 텐데도 소년의 관자놀이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다. 꼭 감은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누군가 그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무심한 듯 툭툭 치는 손길에 소년은 힘겹게 눈을 떴다.

“웬일이냐? 네가 잠을 다 자고, 이반.”

익숙한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올리자 잿빛 머리의 소년이 언제나처럼 인상을 찌푸린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악몽을···꿨어.” 이반이 중얼거렸다. 아직 멍한 눈치다.

“땀 닦고 나와라. 밖에서 다들 기다리고 있으니까.”

“틸.”

“왜.” 그를 지나치려던 소년이 다시 몸을 반쯤 돌린다.

“···그냥.”

“왜 이래? 빨리 나오기나 해. 더 늦장 부리면 너 빼고 매점 가버릴 테니까.” 틸은 쏘아붙이곤 저벅저벅 문으로 향했다. 이반은 곧장 그 뒤를 따랐다.

반쯤 열린 뒷문 밖에는 네 명의 남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반 잘 자더라? 어제 늦게 잤어?” 현아가 말했다. 늘 그렇듯 넥타이는 없고 안에 검은 티를 받쳐입은 셔츠는 풀어헤친 모습이다.

“그러게. 나 이반이 그렇게 곤히 자는 거 진짜 오랜만에 봤어. 많이 피곤했어?” 미지가 물었다. 끝이 약간 올라가 있는 눈은 그녀 특유의 다정함으로 인해 매서워 보이지 않는다. 연둣빛 눈동자 속엔 친구를 향한 걱정이 피어오른다. 팔짱을 낀 채 옆에 선 수아가 지긋이 그를 보았다. 답을 원하는 눈치다.

“별거 아냐. 그냥 악몽을 좀 꿨어. 걱정 고마워.” 이반이 웃음을 띠며 말했다.

“허어어~! 무슨 내용인데? 앗, 떠올리기 싫으면 말 안 해 줘도 돼!” 미지가 눈을 빛내며 질문을 던지다 순간 이반의 눈에 스친 불편한 기색을 보곤 급히 취소했다.

“음···뭐,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잊힐 것 같으니까 말해볼게. 굉장히 긴 꿈이었는데, 간략히 요약해보자면 아주 먼 미래에 우리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는 거였어. 그런데 대결을 할 때마다 진 사람은 죽게 됐고, 결국···”

잠자코 있던 루카가 짧게 한마디 내뱉었다.

“개꿈이네.”

“하하, 그래 개꿈이네. 그깟 기분 나쁜 꿈 빨리 잊어버려!” 뒤에 서 있던 현아가 이반의 머리를 북북 쓰다듬으며 말을 덧붙였다.

“너 겨우 그런 꿈 때문에 식은땀까지 흘린 거냐? 겁쟁이 새끄아아아악-”

“예쁜 말 쓰자~ 예쁜 말~”

틸의 한쪽 볼을 꾸와아아악 잡아 늘린 현아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겨우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으나 틸의 볼은 이미 탱탱 부은 뒤였다.

“풉.”

매섭게 고갤 돌리자 가볍게 시치미를 떼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이반이었다.

잡다한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여섯 명의 일행은 매점 안에 들어와 있었다.

“뭐 먹을래?”

“저거.” 루카가 선반 깊숙한 곳에 놓인 과자를 가리켰다.

“으음~ 둘 중 뭐가 좋을까··· 수아야, 넌 어떤 게 나은 것 같아?” 미지가 조그만 초콜릿 두 개를 양 볼에 가져다 대곤 물었다.

“너.”

“응?”

“아, 아니. 오른쪽 거.”

“응! 이모, 이거 계산이요!”

이반은 북적거리는 매점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현아는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전자레인지 안에서 돌아가는 만두를 쳐다보고 있고 루카는 그런 현아에게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빛을 보낸다. 틸은 아이스크림 상자 앞에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팔을 뻗었다 구부렸다 했다. 이반은 틸의 어깨 너머로 쓱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곤 상자 깊숙한 곳에 들어있는 아이스크림을 두 개 꺼낸 뒤 빠른 속도로 계산을 마치곤 그중 하나를 아직도 벌건 틸의 뺨에 댔다.

“앗, 차거! 뭐하냐?” 틸은 곧바로 아이스크림을 내치며 이반을 쏘아보았다.

“먹어.” 이반이 태연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됐어. 너나 많이 처먹어.”

“안 먹으면 버린다?”

“버리든가.”

이반은 쓰레기통 앞에서 한 손에 아이스크림을 봉지째 덜렁덜렁 들곤 다시 물었다.

“진짜 버린다?”

“아오, 진짜!”

틸이 쿵쿵대며 다가와 물기 묻은 봉지를 잡아챘다. 사납게 끄트머리를 뜯어내곤 크게 한 입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었다. 머리가 아픈지 잠시 눈을 꼭 감았다.

“먹을 거면서.” 이반은 그의 앞에서 아이스크림 봉지를 벗기며 실실 웃었다.

“닥쳐.” 틸이 아이스크림을 우물대며 출구를 나섰다.

두 사람은 일행의 맨 뒷줄에 서서 천천히 교실로 돌아갔다. 이반은 제 옆에 나란히 서서 녹아가는 아이스크림 밑바닥을 향해 혀를 내미는 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뭘 봐.” 선명한 녹색 눈동자가 빙그르르 돌아갔다.

“아냐.”

그는 현아의 말대로 기분 나쁜 악몽 따위는 그만 잊어버리기로 했다. 학교는 아무 소란 없이 평화롭고, 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살아있다. 그저 꿈일 뿐이다. 그래, 꿈.

이반최애인인간의마지막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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